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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86

Chapter: 286

   메시지를 보고서 잠시 머리가 멍해졌던 나는 이내 정신을 다잡고 다시금 메시지를 확인했다.

   

   [자칼 버로우의 상태가 ‘악신의 계약자’에서 ‘당신의 종’으로 변합니다!]

   

   종? 그 시종이라는 단어에 들어가 있는 종을 의미하는 건가?

   

   내가 이해한 것이 정확한 지 확인하기 위해 감정 스킬을 ‘종’이라는 단어에 사용하자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운명의 종속]

   [이 자의 삶과 죽음이 당신에게 종속됩니다.]

   [1. 종속된 대상은 당신에게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2. 종속된 대상은 당신에게 이로운 행동만을 해야 합니다. 3. 종속된 대상은 당신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라야합니다.]

   

   모든 문구를 확인한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단어는 하나였다.

   

   노예.

   

   여기에 적혀 있는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자칼이 내 노예가 됐다는 거랑 다를 바가 없잖아.

   

   아니지. 어쩌면 노예보다 더할지도 몰라.

   

   짖으라면 짖고. 기라면 기고. 배를 까뒤집으라 그러면 배를 까뒤집어야 하는 데 그 과정에서 아무리 열이 받아도 꼬리 흔드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없다니.

   

   종이란 것에 대해 이해를 끝마친 나는 팔짱을 낀 채 자칼의 쓸모에 대해서 고민했다.

   

   일단 지금은 크게 쓸모가 없어.

   

   약해빠진 데다가, 아는 것도 없다시피 하고, 인맥도 옅고, 그렇다고 조이나 페이비처럼 내가 게임 속에서 아끼던 캐릭터인 것도 아니니까.

   

   가지고 놀면 재밌긴 하겠지만 딱 그 정도. 이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보긴 어렵지.

   

   근데 이건 어디까지나 지금의 이야기야.

   

   버로우 공작가라는 배경과 콩등 공자라는 별명이 붙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준수했던 게임 속 성능을 생각해 봤을 때 이 녀석을 잘만 키울 수 있다면 분명 쓸모가 생길 터.

   

   뭣보다 매력적인 건 이 녀석이 내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거야.

   

   이 말인 즉슨 모니터 너머의 캐릭터를 굴리는 것처럼 이 녀석을 굴릴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흐흫. 자칼에게 어떤 지옥을 선사해볼까.

   

   죽어라 구르면서 나에 대한 원망을 차곡차곡 쌓아갈 녀석을 생각하니까 절로 웃음이 새 나오네.

   

   일단 버로우 가문의 창술을 기반으로 해서 만능형 쪽으로 키우는 게 맞겠지?

   

   거기에 카리아나 알새틴이 해주는 것처럼 여러 귀찮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야 할 테고.

   

   나중에 사교계에서 내 편이 될 수 있도록 정치력도 늘려야할 거고.

   

   하나하나 늘어놓고 있자니 점점 할 일이 늘어나는 것 같지만 뭐 어때 내가 할 것도 아닌데.

   

   이 애매모호한 장난감 노예가 망가지지 않을 때까지만 굴리면 되는 거잖아.

   

   우선 뭐부터 시켜야 할까 고민을 하던 그 때에 자칼이 몸을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

   

   잠에서 깨어난 자칼은 핏줄 선 눈을 부릅뜬 채 발가락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한 쪽 손으로 얼굴을 누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꿈에서 빠져나온 건가.

   

   나크라드에게 당해 던전의 쐐기가 된 후로 자칼은 계속해서 꿈을 꾸었다.

   

   저택이 활기차던 때의 꿈을.

   

   자칼의 형이 살아있을 적의 꿈을.

   

   그 형이 죽어갈 때의 꿈을.

   

   저택의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꿈을.

   

   그의 아버지가 목을 조르는 꿈을.

   

   어머니와 사용인들이 그를 원망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꿈을.

   

   그리고 따스하고도 포근한 무언가가 자신의 몸 안에 흘러들어오는 꿈을.

   

   그 모든 꿈이 지나간 후에 자칼이 마주한 것은 정체 모를 이를 마주하는 꿈이었다.

   

   분명 바로 앞에 서 있을 터이거늘 성별도 체형도 나이도 얼굴도 목소리도 그 무엇도 알아볼 수 없는 기묘한 존재.

   

   그저 신성하고 성스럽다는 사실만이 느껴지던 그 존재는 꿈에 등장해서는 그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불쌍하고 우둔한 아이야.’

   ‘나의 사도가 그대를 죄악에서 구원했을지언정 그대가 저지른 모든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본래라면 그대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을 터이나.’

   ‘본인의 사도가 이룬 공을 생각하여 속죄의 기회를 주도록 하겠다.’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품어야 할 아이야.’

   ‘그대는 평생 나의 사도를 위해 살아야 할 터이나.’

   ‘동시에 자신의 주제를 언제나 되새겨야 할 것이다.’

   

   그건 도대체 무슨 꿈이었을까. 이상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생생했던 꿈을 되새기던 자칼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 다급히 자신의 쇄골을 살폈다.

   

   기묘한 꿈속에서 정체모를 것이 쇄골이 자국을 남겼음이 떠오른 것이다.

   

   “…미친.”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고?

   

   그럼 그건 진짜로.

   

   “왜 그런 빈약한 몸을 자랑하는 거야? 나 웃겨보려는 거라면 실패. 너무 허접해서 측은할 지경이거든.”

   

   자칼이 쇄골이 남은 성흔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 때에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자칼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다.

   

   저 선명하고도 얄미운 목소리를 자칼이 어찌 잊겠는가.

   

   네 년이 여기에 왜 내 옆에 있느냐고 따지기 위해 고개를 든 자칼은 루시의 얼굴을 마주하고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과거 자칼은 루시를 싫어했지만 그녀의 외견이 괜찮단 사실자체는 인정했다.

   

   어디에 데려 놓아도 눈에 띄는 그 얼굴은 도저히 부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다만 어디까지나 귀엽고 예뻐 보일 뿐. 매력적이라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칼에게 있어 루시는 멀리서 보면 예쁘지만 곁에 다가가는 순간 그 안이 독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되는 인형일 뿐이었다.

   

   그저 예쁘기만한 꼬맹이였단 말이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루시를 눈에 담은 자칼은 하려던 모든 말을 잃어버린 채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밖에 되새기지 못했다.

   

   “크흡. 힐끗힐끗 훔쳐보는 꼴이라니. 자기 변태성도 못 감추는 거야? 진짜 역겨워. 혀 깨물고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죄송합니다. 영애께서 너무도 아름다우시기에.”

   

   누가 네 년 따위를 좋아하겠냔 소리를 하려던 자칼은 자신의 입에서 튀어 나온 공손한 어투를 듣고서 경악했다.

   

   뭐냐. 왜 내 입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냐.

   

   “푸하하핳. 안 그래도 멍청하던 얼굴이 더 멍청해진 것 좀 봐!”

   “이 상황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궁금해? 알고 싶어? 그럼 무릎 꿇고 제발 알려달라고 빌어봐. 그러면 알려줄지도 모르잖아?”

   

   내가 왜 그딴 짓을 해야 하느냐 소리치려던 자칼이었지만 그의 몸은 생각이 달랐다.

   

   자칼이 바라지 않았음에도 그는 어느새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루시의 앞에 머리를 박았다.

   

   “부디 당신의 이야길 들을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내 몸이 왜 말을.

   

   …설마.

   

   “와아. 자존심이라곤 쥐뿔도 없나 보네? 하긴 그러니까 머저리마냥 음습한 약골 악신이랑 계약한 거겠지. 역겨운 인간 이하의 쓰레기 같으니.”

   

   그 정체 모를 성스러운 존재가 이야기했던 자신의 사도가.

   

   “축하해. 날 모실 영광이 주어졌으니까.”

   

   루시 알른이었다고!?

   

   “뭐야. 너무 기뻐서 말도 안 나오는 거야?”

   

   자칼은 신실함과도 선함과도 성스러움과도 거리가 먼 루시가 신의 사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런다고 현실이 달라지진 않았다.

   

   차마 고갤 들지 못하는 그의 육신은 이미 루시에게 굴복한 지 오래였다.

   

   “하긴 음습한 악신과 계약한 쓰레기한테는 과분한 영광일 테니까.”

   “…그걸 어찌.”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내가 타리키와 계약했단 사실을 어떻게 아는 것이냔 말이다.

   

   분명 저택에서 떠나갈 때에 네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을 터인데!

   

   “네가 어마어마어마한 멍청멍청이인 건 알겠는데. 좀 생각을 하고 말하는 게 어때? 머리 안에 든 게 장식은 아닐 거 아냐.”

   

   루시의 이야기를 들은 자칼은 곰곰이 자신의 기억을 돌이켜 보았다.

   

   악신의 사도에게 저택이 완전히 집어먹혔을 때의 일.

   

   어느 침입자가 일으킨 소란 속에서 저들의 진짜 목적이 영지 전체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일.

   

   계약했던 것과 이야기가 다르지 않으냐고 소리쳤던 일.

   

   자신이 바라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라며 멱살을 붙잡았던 일.

   

   그리고.

   

   “영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 자칼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떨린다.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데?”

   “버로우 영지는 어찌 되었습니까?”

   

   자칼의 떨리는 눈동자 속에 비친 루시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궁금해?”

   “예.”

   

   알고 싶었다.

   

   “너무너무 궁금해?”

   “예. 그렇습니다.”

   

   과거 행복했던 저택의 풍경으로 돌아가고 싶단 자신의 멍청한 소망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쓰레기 공자가 보면 엄~청 놀라게 될 텐데. 그래도 궁금해?”

   “예. 여전히.”

   

   정체 모를 존재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무마되었는지.

   

   그게 아니라면 재앙이 찾아와 씻을 수 없는 죄가 되어버린 건지.

   

   “알고 싶습니다.”

   

   알고 싶었다.

   

   자칼의 목소리를 듣고서 웃음을 흘리던 루시는 이내 발 끝으로 자칼의 턱을 끌어 올리며 목소리를 냈다.

   

   “흐응. 엄청 간절한 것 같기는 하네.”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부디.”

   “그러니까 안 알려 줄래.”

   

   이 년이 끝까지 장난을!

   

   키득거리는 루시의 모습에 자칼이 속으로 분노를 토한 순간.

   

   루시가 입꼬리를 한층 더 끌어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눈으로 보는 편이 더 재밌을 테니까 말야. 아줌마?”

   “데려가란 거지? 안 그래도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해뒀어.”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자칼의 어깨 위에 손이 올려지고 주변의 풍경이 뒤바뀐다.

   

   어두운 방 안에서.

   

   어느 광장의 모습으로.

   

   “하. 그 좆 같은 악신 때문에 시간을 얼마나 날려먹은 거야.”

   “난 이번 년도 장사 완전 망했어. 답이 안 보여.”

   “에헤이. 이 사람들아. 그래도 예술 교단 덕에 목숨을 건진 게 어디인가.”

   “야. 이 새끼야. 너만 이득 봤다고 여유로운 체 하기냐?!”

   

   항상 광장 한 가운데에 앉아 대화를 나누던 상인들.

   

   악신의 사도가 머무를 적엔 공허한 눈을 한 채 손만을 움직이던 이들의 입에서 생기가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세상에. 언니. 너무 마른 거 아니에요?!”

   “너도 그렇잖니! 설마 악신이 몸을 빼앗아가서 다이어트를 시켜줄 줄이야!”

   “덕분에 요새 그 이가 저 나갈 때면 불안해 한다니까요.”

   “어머. 진짜?!”

   

   도시의 마당발인 두 여자.

   

   악신의 기운이 도시를 뒤덮었을 때엔 단 한 번도 입을 연 적이 없던 이들에게서 흘러나오는 호들갑스런 목소리에 그 주변으로 다른 여자들이 몰려든다.

   

   “몸에 이상 있으신 분들은 교회로 찾아와 주세요!”

   “저기. 사제님. 이 친구 얼굴이 아직 안 나은 것 같은데요.”

   “야! 너 진짜!”

   “아. 죄송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건 주신 아르마디의 관할이라.”

   “사제님?!”

   

   자칼이 멍청한 꿈을 꾸던 때엔 술집의 배경처럼 존재하던 두 남자가 예술 교단의 사제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것들을 가만 살피던 자칼은 문득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르른 하늘. 흘러가듯 지나가는 구름들.

   

   그리고 그 한 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태양.

   

   거기에 어둠은 존재치 아니했다.

   

   “하.”

   

   정체 모를 존재의 말이 옳았다.

   

   그의 멍청한 행동으로 인해 생겨날 뻔 했던 죄는 흩어져 버렸다.

   

   본래라면 목숨을 잃었을 무수히 많은 이들이 웃으며 일상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죄는 죄로 남았을 지언정 현실에 자리하지는 못했다.

   

   “자칼.”

   

   귀를 파고드는 딱딱하고 무거운 목소리에 자칼이 고갤 돌린다.

   

   그의 아버지.

   

   버로우 가문의 가주가 그 곳에 있었다.

   

   “자칼 버로우.”

   

   자칼은 버로우 공작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을 보는 것이 죄스러워서.

   

   자신이 저지르려 했던 멍청한 행동이 죄스러워서.

   

   그리고 이 모든 죄스러움의 규탄이 아버지의 입에서 튀어나올 것 같아서.

   

   저 삭막한 눈이 자신을 밀어내다 못해 지옥으로 떨어트려 버릴 것 같아서.

   

   자칼은 입을 다문 채 뒷걸음질을 쳤다.

   

   허나 그 걸음은 멀리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도망이 이어지기 전에 성큼 다가 온 버로우 공작이 그의 목덜미를 끌어 안았기에.

   

   “잘 돌아왔다.”

   “…아…버님? 저.”

   “잘 돌아왔어.”

   

   무어라 말을 하려던 자칼은 자신의 형이 죽고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아버지의 온기에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멍청한 어린 아이가 지녔던 소원은 멀고도 먼 길을 지나 태양의 따스함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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