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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87

소녀에게는 조그마한 소원이 하나 있었다.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며 신기한 것들을 잔뜩 보고 싶다는 소원.

하지만 할아버지는 어린 소녀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소녀는 매일 밤 꿈을 꾸고 있었다.

마치 이것이 유일한 도피처인 것처럼.

그 꿈은 무려 3종류!

첫 번째는 나갈 수 없는 소녀의 마음을 반영한 것처럼, 서울을 구경하는 꿈이었다.

그 꿈속에서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그 불편함쯤이야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꿈은 그녀의 소원을 반영한 것처럼 다양한 풍경을 보여줬으니까.

꿈속에서 그녀는 서울 구석구석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그 꿈은 엄청나게 다양해서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잠에서 깨고 나면 꿈의 내용은 대부분 까마득히 잊혔지만, 몇몇 장면들은 소녀의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꿈에서도 커다란 탑이 나왔었지. 할아버지 집에서도 보이는 저 거대한 탑. 꼭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하지만 소녀가 꿈속에서 문고리를 아무리 돌려봐도, 탑의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철컥, 철컥, 철컥.

문고리 소리만 요란하게 울릴 뿐.

절대로 열리지 않았다.

두 번째 꿈은 그녀의 친구들이 꿈속으로 놀러 오는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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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없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

소녀 자신과 똑같이 생긴 꿈속 친구들이었다.

그녀들은 소녀에게 정체불명의 기억을 보여주곤 했다.

정말 즐거운 것들로만 가득한 기억.

그 기억 속에서 소녀는 여러 가지 장소를 돌아다니며, 환하게 웃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기억 속의 할아버지는 조금 차가웠지만, 실제 할아버지랑 다르게 자유롭게 어디든지 돌아다니라고 하셨다.

소녀에게는 특히 오브젝트 위험 지역이 즐거워 보였다.

비누 거품을 보글보글 내뿜는 나무.

정말 머리가 핑 돌 정도로 즐거운 향기를 뿜는 호수.

투명한 수정이 흐르는 것 같은 계곡물.

크기가 소녀만 한 귀여운 아기 고양이가 뛰노는 숲.

그런 신기한 곳에서, 소녀들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언제나, 어느 순간 잘려 나간 것처럼 툭 끊어져 버렸다.

마치 재미있는 만화를 보다가, 끊어진 느낌으로.

‘더 보고 싶어.’

하지만 아무리 더 보고 싶다고 졸라도, 소녀와 똑같이 생긴 친구들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을 뿐이었다.

세 번째 꿈은 정말 기분 나쁜 꿈이었다.

붉은색의 질척질척한 액체가 소녀에게 끊임없이 달라붙는 꿈.

혼자서는 도저히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질척질척한 액체.

게다가 그 액체가 몸에 달라붙으면,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목소리에 색깔 따위는 없을 텐데, 붉은색이라고 느껴지는 목소리.

그리고 그 액체 속으로 파묻혀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을 때.

소녀의 유일한 친구들이 손을 있는 힘껏 잡아당겨 주었다.

그리고 액체에서 벗어나는 순간, 소녀는 꿈과 친구들을 전부 잊고 잠에서 깨어나 버렸다.

언제나.

***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오무룡의 저택.

오무룡의 손녀는 창가에 앉아 도심 속 인형 박람회장에서 터져 나오는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화려한 색색의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자, 소녀의 마음속에는 직접 그 축제에 가보고 싶다는 설렘이 피어올랐다.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어….’

소녀가 그렇게 상상에 잠겨있을 때였다. 늘 소녀의 곁을 지키는 친절한 집사 아저씨가 다가와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 죄송하지만 지금 회장님께서 부르십니다.”

집사의 말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축제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잠시 접어두고, 소녀는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소녀가 할아버지의 부름에 따라서 도착한 곳은 처음 보는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생소한 기계가 가득하고, 중앙에는 기분 나쁜 액체 담긴 수조가 있었다.

소녀는 이상하게 춥고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몸을 움츠렸다.

수조 옆에 서 계신 할아버지가 싱긋 웃으며 소녀에게 손짓했다.

소녀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할아버지?”

약간 불안해진 소녀는 할아버지를 불렀지만, 오무룡은 그녀에게 안대를 하나 줄뿐이었다.

소녀는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안대를 쓰고 액체 속에 몸을 담갔다.

약간 따뜻하고 끈적한 액체.

분명 기억에 없는 촉감이었지만, 이상하게 익숙한 질감이었다.

그리고 소녀의 귀에는 끊임없이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뭔가를 믹서기로 갈아버리는 소리, 그리고 갈아버린 무언가를 소녀가 있는 액체 속에 붓는 소리.

갈아버리고, 붓고.

갈아버리고, 붓고.

갈아버리고, 붓고.

갈아버린 무언가를 액체 속에 집어넣을수록, 액체는 점점 달라붙는 것처럼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소녀는 호기심에 안대의 틈으로 구경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그러면 안 된다는 말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우리는 괜찮아. 그러니까 보면 안 돼.’

‘미안해.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친구의 목소리처럼 친근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갈아버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갑자기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무언가로 싹둑싹둑.

발끝부터 시작된 통증이 점점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

소녀는 그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눈을 감은 소녀가 다시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핏물이 발목까지 차오른 새하얀 공간이었다.

언제나 3가지 꿈을 꾸던 장소.

꿈의 공간에 발을 딛자, 잊었던 기억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익숙한 공간.

달라진 점은 그립고 따스한 온기를 품은 핏물이 발목까지 차올라 있다는 점뿐이었다.

소녀는 깨어있을 때 들렸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생각나, 그녀들을 찾기 위해 사방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어디 있는 거야?’

하지만 아무리 하얀 공간을 뛰어다녀도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포기할 즈음.

‘미안해.’

‘너만은 행복하기를 원했는데….’

친구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바닥에 가득한 핏물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소녀가 고개를 돌려 핏물을 내려다보자, 핏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녀의 조그마한 손이 둥실 떠올랐다.

‘여기 숨어있었구나!’

소녀는 환한 얼굴로 그 손을 힘껏 잡아당겼지만, 친구는 너무나 가벼워서 핏물 속에 넘어져 버렸다.

소녀의 손아귀에는 친구의 손만이 덩그러니 잡혀있었다.

‘!’

그것을 시작으로 핏물에서 수많은 살덩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소녀와 똑같은.

하지만 사정없이 토막 난 시체들이었다.

‘왜? 왜 이런 일이?’

그 순간, 하늘에서 붉은빛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붉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붉고 질척한 액체가 몰려들어 그녀를 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를 꺼내줄 친구들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

서울에 위치한 인형 박람회장, 경호 인형 전시관.

‘!’

유령화 중인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귀급’ 경호 인형을 향해, 나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흔들면 눈동자가 살짝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왼쪽으로 흔들면 눈동자가 살짝 왼쪽으로 움직였다.

진짜로 유령화를 보네?

영체 촬영 카메라도 못 만드는 협회에서 영체를 보는 인형을 만들다니,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계산기도 없는데, 컴퓨터를 만들어 낸 셈이랄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귀급이 영체를 본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로 다른 인형들 앞에서 손을 흔들어봤지만, 유령화를 간파한 것은 ‘아귀급’ 경호 인형뿐이었다.

‘별거 없네.’

<대 오브젝트 경호 인형 전시관>에는 상당히 기대하고 들어갔었으나, 나는 금세 흥미가 식어버렸다.

그저 빠르고 강할 뿐인 인형들이라니, 전혀 신기하지 않아.

그렇게 전시관 밖으로 자리를 옮기자, 불꽃놀이가 여전히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뚜방뚜방.

고개를 들고 불꽃놀이를 구경하며 걸어 다니다 보니, 조금 관심이 가는 것이 보였다.

퍼레이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인형들의 행진.

인형의 지치지 않는 힘과 칼로 잰 것 같은 퍼포먼스는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나는 유령화 상태로 가로등 인형 위에 앉아서 퍼레이드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이 장면은 미니 사신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네.’

특히 황금 사신에게 보여주면 신나서 따라 하기 시작할 텐데, 황금 사신이 하는 퍼레이드를 한 번쯤 보고 싶었다.

커다란 북을 치는 인형과 나팔을 부는 인형들.

절로 몸을 들썩이게 되는 리듬.

퍼레이드는 그런 신나는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점점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행진하던 인형들이 부자연스럽게 멈추고,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를 믹서기에 가는 것 같은 소리.

그리고 소녀의 고통에 찬 신음.

인형 박람회장에 깔린 음악은 물론이고, 퍼레이드 음악마저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소리였다.

하지만 나 말고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멈췄던 인형들은 다시 어색한 동작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어딘가 삐걱거리고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 삐걱거리는 동작을 퍼레이드의 일부로 느끼는 것 같았다.

끔찍한 소리와 기괴한 움직임을 보이는 인형들.

명백히 수상한 상황인데도, 그 누구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뭔가 문제가 생겼어.

나는 두리번거리며 이런 이상 현상을 만들어 낸 해로운 오브젝트를 찾기 시작했지만, 그 어디에도 해로운 오브젝트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를 가는 소리와 소녀들의 비명이 멈추자.

덜컥.

다시 한번 인형이 멈춰버렸다.

그리고 인형의 눈에서 서서히 붉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하면서, 해로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

나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갑자기 인형들이 해로운 오브젝트가 되어버리다니!

그리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사악한 퍼레이드 인형들은 공연의 일부인 척하며 사람들 사이사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지체할 틈 없이, 퍼레이드 인형들을 바라보며 공간을 잡고 찢어버렸다.

수많은 인형이 박살이 나는 것과 동시에, 인형 박람회장 공기가 변했다.

인간과 닮은 인형들이 갈기갈기 찢어지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던 인형들은 섬뜩한 음악을 연주했고.

마치 가로등처럼 박람회장을 밝혀주던 인형들은 붉게 물든 불길한 빛을 뿌렸다.

그리고 모든 인형이 일제히, 인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너무 많아!’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내 공간 절단에 가루가 되었던 인형들도 천천히 재생되고 있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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