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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9

저니와 괴한은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검을 겨뤘다.

정작 싸우는 걸 보면 과연 ‘저런 얼굴을 할 정도인가?’ 싶은 수준이었지만 굳이 찬물을 끼얹진 않았다.

‘생각보다 잘 버티네.’

몇 주라는 시간은 실력이 극적으로 바뀌기엔 부족한 시간이었으나 형편없는 기본기를 다듬는 덴 그리 부족하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본인이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몇 주 전의 저니와 지금의 저니는 확연히 달랐다.

그렇기에 괴한을 상대로 어느 정도 버티고 있는 거 아니겠어?

“흐…얍!”

괴상한 기합 소리와 함께 저니가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괴한은 그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드는 검을 어렵지 않게 막으며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신체 능력은 저니보다 괴한이 살짝 더 높은 것 같고….

그럼에도 저니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괴한의 수준도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이었다.

매번 느끼지만 사도란 놈들은 하나같이 신체 능력에 비해 기술이 형편없다.

그런 신체 능력을 갖출 정도면 테크닉도 어느 정도 늘 법 한데 기이할 정도로 치우쳐져 있다.

차근차근 힘을 기르지 않고 급격하게 강해진 사람처럼.

이것도 에델의 가호 때문인가?

“하압!”

“윽…!”

지금도 봐.

힘 차이도 별로 안 나는데 한 명은 굳이 힘으로 찍어 누르려고 하고, 다른 한 명은 그걸 또 곧이곧대로 받아주고 있고.

“총체적 난국이네.”

그래도 문제점은 확실히 파악했어.

뭐가 문제인지는 예전부터 알긴 했지만 이번 싸움을 보고 확신을 갖게 됐다.

역시 문제점을 파악할 땐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 싸우는 게 좋긴 하네.

탱그랑!

심드렁하게 보는 사이, 검과 검이 강하게 부딪히고 힘이 풀린 저니의 손에서 검이 튕겨 나왔다.

빨리 검을 줍든지 아니면 뒤로 물러나든지 해야 할 텐데, 당황했는지 허둥지둥하는 저니의 심장을 향해 날카로운 은빛이 쇄도했다.

“…꺄아악!”

“거기까지.”

챙!

“윽?!”

쿠당탕!

빠른 속도로 짓쳐들어오는 검의 윗면을 내려치자 괴한이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목숨을 끊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

하지만 나는 무방비하게 드러난 목과 등에 검을 꽂는 대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저니를 잡고 일으켜 세웠다.

어차피 죽어도 살아나면서 뭐가 그리 무서운 건지.

저니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땅에 떨어진 검까지 주워 그녀의 손에 쥐여 주자 그제야 숨을 가다듬은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를 전했다.

“고, 고, 고마워….”

별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갑자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괴한은 당황한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게, 다 이겼다고 생각한 순간에 방해를 받았으니 당연히 억울하겠지.

애초에 죽게 내버려둘 생각은 없어서 결판이 나기 직전에 끼어들 생각이긴 했지만, 조금 미안하긴 하네.

죽어도 부활한다지만, 그러면 저니가 여기까지 올 때까지 또 한참 기다려야 하잖아.

시간 아깝게 그럴 순 없지.

나는 품속에서 동전 한 닢을 꺼내 손가락으로 튕겼다.

팅!

“응? 이건….”

화폐로서의 가치는 없지만 기념품 정도는 되겠지. 화폐로 쓰지 못할 뿐이지 나름 금으로 되어 있으니까 팔아서 돈으로 전환해도 될 테고.

괴한은 내가 던진 그라시스 기념주화를 반사적으로 받으면서도 얼떨떨한 듯했다.

“이걸 갑자기 왜…?”

“수고비.”

여흥에 잠깐 어울려 준 대가로 저 정도 보수를 받았으니 이젠 딱히 불만 없겠지.

주화를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뒤집어서도 보고, 그걸 준 나를 번갈아서 보던 괴한이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대충 고맙다는 뜻인 것 같은데… 왜 저렇게까지 고마워하는 거지?

감격에 벅찬 반응에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 괴한은 행여나 내 마음이 바뀔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로 주화를 급하게 주머니에 넣더니 어딘가를 향해 달려서 사라졌다.

등장만큼이나 갑작스러운 퇴장이었다.

괴한이 퇴장한 자리를 물끄러미 보고 있을 때 저니가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카나, 내 거는?”

“…?”

…맡겨 놨나?

가볍게 무시하니 저니는 흙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땡깡을 부렸다.

“나도, 나도 카나가 준 선물 가질래! 나도 줘!”

빼애애앵!

콱!

“적당히 해.”

“…넵.”

저니의 머리 바로 옆에 검집을 박아 넣자 시끄럽게 굴러다니던 그녀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왜 사람들은 좋게 말하면 듣질 않고 꼭 폭력을 행사해야만 말을 듣는 걸까.

이해할 수가 없네.

툭툭.

…으, 먼지.

저니가 바닥에 구른 탓에 뿌옇게 변한 옷을 털자 흙먼지가 부스스 일었다.

나는 흙먼지에 닿지 않게 거리를 벌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저니의 문제는 역시나 겁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나는 피해를 입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싸움의 기본이니, 다치지 않게 몸을 사리는 거야 그럴 수 있다 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기껏 공격을 잘 피하고 잘 막아서 주도권이 뺏어 왔으면서 공격을 안 하고 사리기만 하니 이길 수 있을 리 있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주 확실한 순간에만 나선다고 해야 하나.

우세를 취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공세를 취해야 하는데, 반격이 날아오는 게 두려워서 쉽사리 공격하지 못하는 느낌.

이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대검 삐약이가 귀찮게 하던 걸 묵인한 거였는데 정작 대검 삐약이는 저니에게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대검 삐약이가 안 보이네.

“대검 삐약이는?”

“유키 님? 어… 수련. 수련하러 간대.”

그렇구나.

참 한결같은 삐약이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검 삐약이가 있다고 해서 저니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조금 전 괴한과 다르게 저니와 대검 삐약이의 수준 차이는 상당히 많이 나는 데다가, 대검 삐약이의 성격상 저니와 대련한다고 해서 봐주면서 할 것 같진 않았다.

겁을 없애는 게 목적인데 더 겁먹고 움츠러들 게 뻔해.

“….”

겁을 없애는 방법이라….

좋은 방법이 있긴 하지.

그라시스 내에서 내로라하는 인재가 모이는 홍염 기사단….

…은 예전 얘기구나.

내가 아는 홍염 기사단은 귀족 중에서 실력 좀 있다 싶은 놈들은 왕실 기사단으로 가고, 왕실 기사단에 들어가지 못한 귀족이나 출신은 좋지 않지만 실력은 좋은 녀석들이 오는 곳이었거든.

혹은 정말 애국심이 투철해서 적과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녀석이거나.

왕실 기사단에 들어가는 놈들은 위험하게 적과 싸울 필요가 없어서 좋고, 왕족이나 귀족 놈들은 제 목숨 지킬 전력이 늘어나니 좋고.

정작 우리보다 그들이 먼저 죽은 것이 유머라면 유머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홍염 기사단의 실력이 크게 뒤떨어지는 곳은 아니었다.

홍염 기사단의 단장은 그라시스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앉는 자리였으니까 오히려 고점은 더 높았지.

홍염 기사단을 만든 취지는 무시한 주제에 그런 전통은 꼬박꼬박 지킨 게 우스울 따름이다.

‘…생각이 좀 샜네.’

아무튼, 그런 홍염 기사단 내에도 겁많은 녀석이 들어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히, 히이익?!’

‘모, 못 하겠습니다! 차라리 절 죽이십쇼!’

몸이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거나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던 녀석들.

주로 연병장에서 사람과의 대련을 통해 실력을 기른 녀석들이 마물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그런 반응을 보이곤 했다.

물론 실전 경험이 없다고 해도 침착하게 잘 싸우는 녀석들도 많았지만.

제대로 싸우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길 수 있을 텐데 겁먹고 도망치기나 하고 말이야.

그리고 당시 부단장이었던 나의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가.’

‘…예?’

‘가서 싸워.’

‘…잘 못 들었슴다?’

‘그럼 잘 들리게 해줄게.’

‘우, 우와악! 저주한다 부단자아아앙!’

싸울 수밖에 없게끔 강제로 굴리든가.

‘부, 부단장님?’

‘응.’

‘…검을 왜 저한테…?’

‘죽여 달래서.’

‘….’

‘….’

‘…덤벼라, 이 마물 새끼들아!’

…더 큰 공포를 주든가.

고작 검 한 번 빼 들었다고 마물보다 더 무서워하는 건 좀 상처받긴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아, 참고로 저주를 퍼부었던 놈은 며칠 동안 계속 마물 무리와 싸우게 했더니 엄청나게 용감해져서 나에게 대련까지 신청하더라.

‘히, 히이이익…! 부단장, 무서워…!’

그 후로 다른 공포증이 생겨난 거 같긴 한데, 뭐 내 알 바는 아니니까.

에델의 가호를 받은 사도라고 해도 인간은 인간.

내가 가르친 녀석들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즉, 죽도록 굴리면 자연스레 해결되는 문제란 말이지.

“어, 어째서 갑자기 오한이…?”

무언가 낌새를 느낀 걸까, 저니가 몸을 부르르 떨며 주변을 살폈다.

내가 굴리고 싶어서 굴리는 게 아니라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니까, 응.

알았지?

* * *

[카나님한테 선물 받았닼ㅋㅋㅋ]

(그라시스 기념주화.jpg)

제국 금화는 아닌 거 같은데 반짝반짝 예쁘게 생김

이제부터 이건 우리 집 가보다

[댓글]

-구라ㄴ

┗진짠데?? 못 믿겠으면 저니 방송 다시보기 보고 오셈

-삽니다

┗응 안 팔아~

-비틱 ㅗ

-어떤 용감한 새끼인가 했는데 너였구나

-ㄹㅇ임?? 어케 받음?

┗저니랑 맞짱 떴는데 죽이려는 거 막더니 줬음

┗와 개부럽네;

[나도 카나 쨩한테 선물 받을래]

그러니까 저니 따라다니면서 싸움 걸면 카나 쨩한테 선물 받을 수 있단 거지?

후욱후욱.. 카나 쨩의 손때가 묻은 선물..

이건 못 참겠다 저니 줘패러 간다ㅅㄱ

[댓글]

-이건 좀 역하네요..

-보자마자 썰어버릴 듯

-넌 나가라;

-제발 죽어

지금까지는 카나의 경계심과 결계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고 그저 방송을 통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러나 둥지 안에 있던 새가 밖으로 나오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칼춤을 췄던 전과 달리 마주쳤다고 해서 검부터 뽑아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참아왔던 욕망이 들끓기 시작했다.

[선물 대신 쓰다듬게 해달라 하면 안 되나?]

나도 카나 머리 쓰다듬어 보고 싶은데..

[댓글]

-손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 : 쪼매 섞어주소. 내 손이 이래가…

-X크스, 손이…!

-혹시 장래 희망이 후크 선장이신가요?

-잘리는 건 확정이냐고ㅋㅋㅋㅋ

-우리 카나는 물지 않아요. 대신 썰어요

[와! 팬미팅!]

그니까 지금 찾아가면 카나가 대화도 해주고 악수도 해주고 포옹도 해주고 쓰담쓰담도 하게 해주고 선물도 준다는 거죠??

이건 못 참지ㅋㅋ

[댓글]

-얜 또 뭐야

-진짜 미치겠네;

-페도페도야…

-형, 올해도 그렇게 살 거야??

귀엽고 유순한 외모와 반대되는 무심한 태도. 그러면서도 저니의 스킨쉽은 받아주며 그녀를 은근히 챙겨주는 모습.

집사의 손길만 허락하는 까칠한 고양이 같은 매력에 사람들은 푹 빠졌다.

‘혹시 나도?’라고 생각하며 카나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과, 단순히 카나가 좋은 사람들의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가고.

팬미팅 아닌 팬미팅 소식에 자기가 사는 동네에 연예인이 오면 보러 나가는 것처럼 마침 근처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 연유로 오르도로 향하는 저니와 카나 앞에 수많은 플레이어가 몰려 들었으니.

“아, 밀지 좀 마요!”

“줄 서세요, 줄! 서순 지키시라고요!”

“서순이 아니라 순서 아님?”

“옥수수 팝니다! 팝콘도 팔아요!”

급기야는 장사치까지 몰려들어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가 펼쳐진 상황에 카나는 정말 깊게 고민했다.

‘그냥 다 죽일까….’

기사들이 쳐들어온 날 이후로 조금 좋아졌던 카나의 마음 속 사도에 대한 이미지가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최대 피해자는 구경거리가 된 카나도, 죽을 위기에 처한 사도들도 아니었으니.

“마, 나온나! 함 뜨자!”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옥상으로 따라와.”

“저니 님! 팬이에요! 안아 줄게요!”

“꺄악! 뭐, 뭔데 너희들?!”

카나와 함께 즐겁게 오르도를 향해 가던 중 산더미 같은 도전장을 받게 된 저니야말로 이 사태의 최대 피해자였다.

저니는 무수한 PVP 요청에 기겁하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어딜 보든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을 보는 듯한 눈이 그녀를 반겼다.

“우와아아앙! 카나야! 도와줘!”

결국 저니는 체면도 집어던지고 카나의 다리에 매달려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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