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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92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3인 가족이 넉넉히 살만한 아파트의 안방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전등은 꺼져 있었고, 두꺼운 암막 커튼이 창문을 가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외부와 단절된 것처럼 고요한 공간 안에는, 누군가 침대를 끌어다 안방 입구를 막아 둔 듯 보였다.

콰앙!

저 멀리 강 건너에서 강력한 충격파가 몰려들었다.

부스스.

충격파에 흔들리는 아파트는 마치 영화 속에 폭격당한 건물 속처럼 돌 부스러기가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잔뜩 겁에 질린 아이의 목소리가 어두운 방 안에서 울려 퍼졌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지만, 굉장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만약 방안에 깔린 짙은 어둠이 그 얼굴을 가려주지 못했다면, 아이는 더욱 겁에 질렸을 것이다.

그토록 안전하다고 장담했던 협회 인형의 폭주, 그리고 불과 수 분 전부터 울려 퍼지기 시작한 강렬한 충격파.

여러 가지 사건으로 불안에 떠는 엄마와 달리, 아이의 아빠는 망원경을 암막 커튼 사이로 들이밀며 바깥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다.

“됐어.”

아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거리를 가득 메웠던 인형들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낸 탄성이었다.

사실 아빠가 망원경을 바라보는 외부 상황은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없었지만, 강 건너에서 충격파가 터져 나오는 것과 함께 상황이 천천히 바뀌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시작은 검은 사신 숫자의 급격한 증가였다.

거대 검은 사신들은 인형 사태 초기에 인형들을 잔뜩 잡아먹고는, 행동을 멈춰버렸었다.

인형을 한계까지 집어넣어 배가 볼록 튀어나온 채, 그저 앉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행동을 멈췄던 검은 사신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빠른 걸음걸이로, 서울의 남부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검은 사신들은 배가 홀쭉해진 채, 다시 인형들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검은 사신들에 의해 인형들이 급격하게 줄어들자, 다른 미니 사신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인형들을 전부 처리하기에도 모자라 보이던 황금 사신들이 뭔가를 찾는 것처럼 구석구석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다른 미니 사신들도 고개를 내밀고 돌아다녔다.

‘역시 반려 오브젝트는 미니 사신이지. 협회 인형은 처음부터 껄끄러웠어.’

아빠는 자신이 인형을 사버린 탓에 거실이 인형에게 점령당했다는 사실마저 뇌리에서 지우고 미니 사신 찬양을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곧 인형 폭주 사태도 해결되겠어!’

아빠가 한창 미니 사신들의 활약을 구경하고 있었더니, 시야 전체를 커다란 황금 사신의 얼굴이 가득 채워버렸다.

히히.

황금 사신은 약간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

아빠가 깜짝 놀라서 망원경에서 눈을 뗐더니, 망원경 끝에 황금 사신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방안을 가득 채우는 따뜻한 태양의 향기.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황금색 빛.

빛이 너무 부족한 방안이라서 그런지, 황금 사신의 따뜻한 온기는 방안을 가득 메워버렸다.

그 포근한 온기는 서울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던 인형 폭주 사태가 조만간 마무리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

콰앙!

보라 외신이 거대한 손바닥을 마주 치자, 강렬한 충격파가 주변 건물과 도로를 엉망진창으로 박살 냈다.

나는 그 충격파를 피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지만, 내 반사신경으로는 충격파를 전부 피하지 못했다.

‘윽.’

그 보라색 충격파에 닿아버린 한쪽 다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그리고 나는 자리에 서는 것과 동시에 한쪽 손을 뻗어 외신의 손을 향해 주먹을 움켜쥐었다.

뀩.

하지만 외신의 손은 우그러진 공간 속에서도 멀쩡했다.

‘저게 말이 되나?’

분명 지구에 영향을 주고 있는 부위마저 때릴 수가 없다니?

이게 게임 속의 보스 몬스터였다면, 밸런스 문제로 긴급 패치를 해야 할 수준이었다.

‘흠.’

현재 상황은 서로가 서로에게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내 공격은 보라 외신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고, 나 역시 재생에 장작을 태우는 정도로는 장작이 바닥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내가 목적하던 결과는 상당히 얻어내고 있었다.

나는 ‘미니 사신이 닻을 찾아낼 때까지 시간 끌기!’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저 녀석, 점점 강해지고 있네.’

하지만 마냥 낙관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보라 외신의 흐릿한 형상은 점점 진해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충격파의 범위와 위력도 점점 강화되었다.

거기에 상처에 달라붙는 보라색 실타래 같은 것이 늘어나서, 재생하는데 필요 장작이 점점 늘어만 갔다.

게다가 보라 외신이 강해지면서, 현실의 뒤틀림도 강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예린이가 있는 곳까지 뒤틀림이 닿아버려!

그전에 미니 사신들이 ‘닻’을 찾아내기를.

아니면 뚜시 백만 대를 맞는 한이 있어도, 예린이 들고 멀리 도망갈 거야.

***

이미 공기가 보라색으로 물들어 기괴한 느낌을 풍기는 주택가.

회색 사신이 근처에서 싸우고 있어서 그 충격파가 마치 지진처럼 울려 퍼지는 장소.

그리고 이미 황금 사신들이 ‘닻’을 찾기 위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던 곳.

금발 소녀는 그런 한적한 주택가를 희미한 감각에 의존한 채, 걸어가고 있었다.

감각이 가리키는 곳은 할아버지의 저택이었고 처음부터 가려고 했던 곳도 할아버지의 저택이었다.

끼이익.

충격에 조금 뒤틀렸는지,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드디어, 드디어 도착했네.’

언제나 자신을 반겨주던 집사.

언제나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던 정원.

그녀의 그리운 기억이 가득 남은 저택은 이제 생소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철저히 훈련된 직원들이 있던 자리에는 삐걱거리는 인형들이 대신 자리를 잡고 있었고, 할아버지가 기르던 난초는 모두 노랗게 시들어 있었다.

화르르.

사람 하나 없는 저택에서 인형들을 불태우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자신과 같은 클론 자매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을 향해 한 걸음씩.

붉은 사신은 금발 소녀가 가는 곳이 의아한지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던졌다.

‘왜 여기로 가는 거야?’

회색 사신이 내린 명령.

‘수상한 오브젝트를 찾아라.’

이곳은 황금 사신들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곳이니까, 올 필요가 없다는 거겠지.

“이곳에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

금발 소녀는 그렇게 다짐하듯이 말하고는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가서 비밀 방으로 내려가는 장치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밀 통로를 열자, 죽음의 냄새가 확 몰려들었다.

코가 마비될 정도의 피 냄새.

그리고 금발 소녀만이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자매의 죽음.

자매들의 남은 영혼의 흔적.

금발 소녀의 눈에는 이리저리 찢어지고 토막 난 자매들이 보이고 있었다.

‘미안해.’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지하를 향해 걸어 나가자, 자매들의 흔적이 천천히 붉은 불꽃에 타서 사라졌다.

그리고 금발 소녀가 저택에서 내디뎠던 모든 발걸음이 불꽃이 되어, 저택을 태우기 시작했다.

‘!’

자매의 흔적이 하나둘 타서 사라질 때마다 붉은 사신이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어쩐지 조금 쓸쓸한 표정의 붉은 사신들이었다.

붉은 사신은 그것을 보며, 정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동생들이 잔뜩!’

붉은 사신이 그렇게 의지를 내며 달려들자, 쓸쓸한 표정의 붉은 사신들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붉은 사신을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어느새 수백 마리의 붉은 사신들을 이끌게 된 금발 소녀는 지하실에 드디어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끔찍한 모습으로 뒤엉킨 자매들과, 그 자매들과 융합된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할아버지.”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나지막한 금발 소녀의 목소리.

하지만 금발 소녀의 목소리는 할아버지, 오무룡에게 닿지 않았다.

자매들이 뒤엉킨 구체에 접합된 오무룡은 그저 사랑스럽다는 것처럼 뒤틀린 자매를 쓰다듬고만 있었다.

금발 소녀는 할아버지의 광기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 손을 내밀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렇게 모든 붉은 사신 자매들의 힘을 엮은 거대한 불꽃을 피워냈다.

***

콰앙!

보라 외신이 내뿜는 충격파와는 다른 느낌이 진동이 서울에서 울려 퍼졌다.

오무룡의 저택을 전부 집어삼키고,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이 솟구쳐 오르는 붉은 불기둥.

하지만 그 불기둥은 보라색 파동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금발 소녀가 엉망진창이 된 채, 튕겨 나왔다.

“!!!”

광기에 먹혀 인간의 말조차 잃어버린 오무룡이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미니 사신의 힘을 가볍게 뛰어넘는 힘을 내뿜는 오무룡에게, 금발 소녀는 무력감을 느꼈다.

이렇게 또 이길 수 없는 걸까.

아직도 저 오무룡의 하반신을 이루는 구체에서는 자매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리는데!

그 순간 고급 주택가를 태양처럼 찬란한 황금빛이 채우기 시작했다.

‘빛?’

금발 소녀가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보자,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장작을 잔뜩 집어넣어 강도를 강화한 돌덩어리를 들고 있는 황금 갑옷 사신이었다.

‘도망가야 해!’

‘위험해!’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바위를 보며, 붉은 사신들이 금발 소녀를 잡아당겼다.

깜짝 놀란 금발 소녀는 발밑에서 불길을 뿜어내며, 빠른 속도로 바위 밑에서 벗어났다.

금발 소녀가 자리에서 벗어나자, 황금 갑옷 사신은 장작으로 붙들고 있는 바위를 오무룡의 위로 떨어트렸다.

***

쿠웅.

사람 하나 없는 고급 주택가 위로 커다란 바위가 지면을 강타하는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디서 저런 바위를 구한 거지?

그런 의문을 품고 있었더니, 능력 무효화의 불길이 외신의 피부에 달라붙어서 태우기 시작했다.

화르르.

‘닻이 사라졌구나!’

파괴 조건을 채워서 외신의 격을 잃어버린 보라 녀석은 외신이 아니게 된 것뿐만 아니라, 오브젝트조차 되지 못했다.

그저 붉은 외신이 만들어 낸 ‘오브젝트 능력 부산물’이 되어서, 하얀 불꽃에 의해 녹아내리고 있었다.

키이이익!

전신이 녹아내리며 지르는 고통스러운 비명.

지구와 유리된 공간에 숨어있던 외신의 울부짖음이, 이제는 확실히 지구에 닿고 있었다.

가장 먼저, 바닥을 채우고 있던 잔잔한 액체 같은 표면이 굳기 시작했다.

그리고 색채 우주를 그대로 투영하던 표면은 거울처럼 이리저리 갈라지더니, ‘쨍’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조각으로 깨어졌다.

그렇게 깨어진 조각들은 바닥에 다시 떨어지기도 전에, 마치 모닥불에서 튀어나온 불티처럼 헤일로의 불꽃에 휩싸여 사라져 버렸다.

하늘에 새겨진 거친 공간의 상처는 점점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던 색채 우주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색채 우주가 멀어질수록 협회의 야심작이었던 협회 인형들은 그 힘을 잃고 분해되었다.

마치 지구상의 규칙만으로는 성립되지 못하는 인형인 것처럼.

산소나 질소 같은 성분들이 뒤틀려 만들어진 실타래는 뒤틀림이 사라지자, 제 모습을 되찾아 공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앙대!’

인간들을 구하겠다고 실타래를 잔뜩 온몸에 휘감고 있던 황금 사신들은 아쉬운 탄성을 질렀다.

마치 붕대에 다리만 튀어나왔던 때처럼, 고치에 다리만 튀어나온 황금 사신들이었다.

뒤틀렸던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틀림이 모두 사라지자, 동쪽 하늘에서 점차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들은 태양을 향해 만세를 하고 있었고, 다른 미니 사신들도 따사로운 태양 빛을 받으며 미소 지었다.

색채 우주에서 넘어온 보라 외신도 이렇게 쓰러트렸으니, 협회 인형 사건도 해결된 거겠지?

그나저나, 박람회는 또 망해버렸네.

SDVIMVFoanVzY1YwSVhjamMzUkt1WlJKZ0NsamtaQ0sveENFK2VoZUwvVUFMSkd4ZVhIOEk0RlpCRXdGU1Y5Yg

힝.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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