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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93

Chapter: 293

   루엘이 루시와 함께하게 된 지도 어느덧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루시와의 첫 만남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형식이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 루엘은 루시를 자신의 핏줄처럼 아꼈다.

   

   자신에게 육신이 없어 루시를 전장에 내몰아야 한다는 것을 진정 안타깝게 생각할 정도로.

   

   그러니만큼 루엘은 루시라는 여자아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주신께서 내린 축복 탓에 빌어먹을 꼬맹이처럼 행동을 하지만 그 속은 선하다는 것이나.

   

   약한 모습을 자주 보이지만 정작 타인을 위해 움직여야 할 때는 모든 고통을 감내할 정도로 올곧고 강직하다거나.

   

   은근히 외로움을 잘 탄다거나.

   

   하도 주변 사람들의 미움을 사 온 탓에 다른 이들이 자신을 좋아할 거란 생각 자체를 안 한다거나.

   

   평상시에는 지극히 상식적인 녀석이 가끔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행동을 한다거나.

   

   지금처럼 무언가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주변을 잊어버린 채 그것만을 쳐다보고 있는다거나 하는 것을 말이다.

   

   던전학 교수에게 던전의 작성을 위한 용지를 받은 루시는 아카데미의 수업이 끝나자마자 방에 틀어박혀서는 용지를 붙잡고 있었다.

   

   평소라면 해가 떨어지고 훈련장의 문이 닫힐 때까지 죽어라 수련을 하다 돌아와서는 밤늦은 시간까지 신성의 훈련을 하던 것이 루시거늘 오늘의 그녀는 일과를 모두 내버린 채 던전의 작성에만 집중했다.

   

   딱히 기한이 촉박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3주 내로만 완성하면 문제없을 거라고 던전학 교수가 이야기를 했으니까.

   

   지금 루시가 던전의 작성에 몰두하고 있는 이유는 오롯이 하나. 던전의 작성 자체가 너무나도 즐거워서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약점 공략 기믹을 쓰는 건 좋은데 단서를 어떻게 알려주는 게 좋을까. 눈에 보이게 하는 건 너무 뻔해서 탈락. 그러면…’

   

   자신이 머릿속에서 하는 생각이 흘러나오는 중이라는 것도 모른 채 펜을 움직이는 루시의 모습에 루엘이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손으로 던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저리도 좋을까.

   

   하기야 평소 던전과 관계된 일이면 감정선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녀석이니 저렇게 히죽거리지 않으면 되래 이상하겠구나.

   

   평소라면 식사도 거른 채 머리를 싸매고 있는 루시에게 잔소리를 했을 루엘이었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들떠서 어찌할 줄을 몰라 하는 루시의 모습은 저 나이 대의 어린 아이가 마땅히 지녀야 할 모습이었으니까.

   

   자신의 의무에 짓눌려 유희다운 유희조차 즐기지 않던 아이다. 가끔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도록 내버려 두어야지.

   

   ‘…아니 뭐 집어넣은 것도 없는데 왜 벌써 용량이 가득 차!? 던전을 만들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젠장. 일단 복잡한 기믹은 최대한 빼자. 그리고.’

   

   루시가 저렇게까지 머리 아파하는 것을 보면 던전을 만든다는 게 상상 이상으로 까다로운 일인 모양이야.

   

   던전에 한해서라면 전지에 가까운 능력을 보이던 녀석이 저리도 머리를 쥐어 싸매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항시 악신이 만든 던전을 공략하는 입장이었던지라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만 악신의 무리들도 나름 고민을 했겠군 그래.

   

   아아. 그래서 본인의 일행이 던전을 박살낼 때 그토록 화를 냈던 것인가.

   

   ‘엑?! 이 기믹 아직 쓰면 안 돼?! 왜?! 이건 던전 공략의 기본이잖아!’

   

   저리 어려워하는 것을 보니 무어라도 훈수를 하고 싶다만 던전에 관해서 자부심을 가진 루시이니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조언을 하지는 말자꾸나.

   

   무슨 조언을 해주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는 상황이니 일단 기다리다 루시가 무언가를 물었을 때에 좋은 답변을 해 줄 준비나 해둬야지.

   

   그리 판단을 내린 루엘은 루시가 할 질문을 예상해가며 어떤 답을 할지 준비해 두었다.

   

   이는 진심으로 루시를 돕고 싶다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루시에게 ‘할아버지! 대단해요!’ 라는 소리를 듣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손녀 같은 여자아이가 해주는 아부는 어디를 가나 어려운 사람 취급을 받던 성기사 루엘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으니까.

   

   허나 안타깝게도 루시가 루엘에게 질문을 하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여러 시행착오에 스스로 고민하고 답을 낼 뿐 다른 이의 도움을 구하진 않았다.

   

   루엘이 혹시나 하며 기대를 하다가 역시나 하고 쭈그러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어느새 시간이 저녁을 넘어 밤을 지나 새벽에 달해 창 밖에서 햇빛이 흘러 들어오는 그 순간에도 루시는 여전히 눈에 실핏줄을 세운 채 펜을 움직였다.

   

   “저 녀석은 피로를 모르는 것인가.”

   

   초저녁 즈음 잠에 들어 아침에 깨어난 리나는 책상에 앉아 있는 루시의 등을 보다가 루엘 쪽으로 다가왔다.

   

   “중간에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했느냐?”

   <일어나기야 했지요. 저 아이도 사람일지언데.>

   “그렇단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로 돌아와서 또 펜을 쥐었단 것이겠구나.”

   <예.>

   “참. 대체 무슨 마경을 만들려고 저러는 것인지.”

   

   이러다 1학년 학생들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주겠다는 리나의 말에 루엘이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설마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경고를 들었으니 루시도 신경을 쓸 겁니다.>

   “신경이야 쓰겠지. 허나 신경을 써봐야 그게 기괴할 정도로 어렵단 사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루시는 무의식 중에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버릇이 있다.

   

   오랫동안 다른 이들에게 무시를 당해온 영향인지 자신이 규격을 한참 넘어섰다는 걸 잘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당장 루시가 주변인들에게 내어주는 과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녀는 이 정도면 충분히 할만할 것이라 생각하며 과제를 내어주지만 정작 그 과제의 당사자는 매일 같이 주마등을 마주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그녀의 주변인이 아서나 조이, 프레이, 페이비 같은 초인들밖에 없어서 다들 따라가고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에 누구 하나 과로로 죽지 않았을까.

   

   “분명하다. 루시 저 아이는 이 정도면 쉽겠지라고 말하며 그 누구도 통과하지 못할 마경을 만들어 낼 거다.”

   

   루엘은 차마 리나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런 것을 내 놓으면 분명 교수에게 다시 해오라는 말을 들을 테고 루시는 이전보다 쉬워졌지만 여전히 1학년 수준은 아득히 넘은 물건을 내놓겠지.”

   <…이 정도면 3왕자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는 말을 할 게 훤히 보이는 군요.>

   “하. 분명 그럴 거다. 그 3왕자 녀석도 동 나이대에는 천재라는 말에 부족함이 없는 괴물인데 말이다.”

   

   그리고 정작 루시에게 언급될 3왕자도 루시가 만든 던전을 보면 ‘이걸 공략할 수 있다고? 본인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라는 답을 하겠지.

   

   루시는. 특히 던전과 관계된 루시는 자중을 모르는 인간이니까.

   

   “그러니 교수에게 내어주기 전에 우리가 미리 걸러낼 걸 걸러내자꾸나. 괜한 시간낭비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오늘 따라 세심하시군요.>

   

   평소에는 루시가 겪는 일의 대부분을 방관하듯 지켜보기만 하시는 분이 오늘따라 왜 이리 많은 관심을 보이시는 걸까.

   

   버로우 영지에서의 일을 거치며 마음을 바꾸셨나?

   

   루시와 관계되지만 않으면 누구보다도 어른스러운 리나의 모습에 루엘이 감탄을 하던 그 때.

   

   리나가 여우의 모양새를 하고 있음에도 녹아내린다는 걸 알 수 있는 웃음을 지었다.

   

   “이 일이 빨리 끝나야 루시가 바니걸 차림을 보여줄 것 아닌가.”

   <…예?>

   “기대가 되는 구나. 격이 오르기 전의 루시가 바니걸 차림을 했을 때에도 이성이 증발할 것 같았는데 지금의 루시가 그 차림을 한다면. 그리고서 경멸하는 표정과 함께 본인을 밟아준다면. 하악. 상상을 했을 뿐인데 벌써 몸이 떨리는 구나.”

   

   침을 질질 흘리며 부들대는 그 풍경에 루엘의 머리가 짜게 식었다.

   

   참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분명 리나님께선 능력있는데다 기품까지 넘치는 분이신데 어찌 루시의 앞에만 서면 생물 취급도 하기 싫은 변태가 되는 것인지 원.

   

   루시가 언제 어디에 가도 눈에 띌 만큼의 외모를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한층 더 매력을 더한 지금은 눈을 마주하는 순간 말문을 막히게 할 수준에 달했지만.

   

   그래도 저 어린 아이를 보고서 이러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내 아직 육신을 들고 있었을 무렵이었다면 메이스로 머리를 찍어 예절 교육을 해드렸을 것이야.

   

   “끝났다아아아!”

   

   리나의 얼굴이 녹아감에 따라 루엘의 혐오가 점차 커져가던 그 때에 루시가 환희에 찬 목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아버지! 빨리 봐주세요! 저 엄청 열심히 만들었어요!’

   “할배. 빨리 한 번 봐주세요. 할배처럼 뇌가 굳은 구닥다리는 생각할 엄두도 못 낼 던전을 만들었으니까!”

   

   속으로만 이야기 하라 몇 번을 말해야 하는지.

   

   너무 들떠서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이긴 한다만서도.

   

   루시가 저리 즐거워 하는데 기분을 상하게 할 순 없으니 잔소리는 하지 말자꾸나.

   

   …으음. 그리고 되도록 악평도 자제를 해야겠구나.

   

   요즘 들어 저 녀석의 장난기에 당한 것이 많아 이번에도 장난스레 말을 하며 루시가 시무룩해 하는 것을 보려 했다만 저 환한 웃음을 망칠 수는 없지.

   

   고쳐야 할 부분이 있더라도 최대한 좋게 좋게 이야기를 하자꾸나.

   

   그리 마음을 먹은 루엘은 천천히 루시가 만들어 둔 던전을 눈에 담았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던전의 크기가 작다는 것이구나. 루시라면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 완주할 수 있을 듯한 수준이야.

   

   아무리 아이들을 시험하는 것이라지만 이는 너무 짧은 것이 아닌가?

   

   루엘은 의문을 품었지만 일단 그를 삼켜둔 채 던전의 내용을 읽어갔다.

   

   이를 만든 건 루시니까. 이 녀석이 던전을 짧게 만든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의 추측은 옳았다.

   

   루시가 만들어낸 던전은 짧으면서 짧지 않았다.

   

   <같은 장소를 무한히 반복하는 던전인가.>

   ‘네! 맞아요. 특정 조건을 달성하면 던전의 풍경이 바뀌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또 조건을 달성해야 하는 거에요!’

   

   과연. 이거라면 기믹 공략 능력을 평가하는 데에 제격이겠구나.

   

   <좋은 발상이다.>

   ‘그쵸? 그쵸?’

   

   루엘은 칭찬을 받은 루시가 웃는 소리를 들으며 루시가 작성한 던전을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전체적으로 구성이 좋군.

   

   너무 억지스러운 부분도 없고 이전에 얻은 깨달음이 다음에도 유효하게 사용된다는 것도 매력적이야.

   

   하하. 왜 그리 머리를 싸매나 싶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는 구나.

   

   이런 것을 만들려면 많은 고민을 해야지.

   

   …음? 이게 아니라고?

   

   여태까지의 경향을 생각해보면 이전에 써먹었던 기믹이 다시금 활용될 터인데?

   

   아아! 이런 식이었나.

   

   나란 사람이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나도 많이 녹슬었군 그래.

   

   처음에는 던전의 보완점을 찾아내려 했던 루엘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상황이 바뀌었다.

   

   일정 지점을 넘어섰을 때 루엘은 과거 용사와 함께 여러 던전을 공략하던 때로 돌아가 진지하게 루시가 낸 문제를 풀고 있었다.

   

   <하! 그래! 본인에게 걸리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던전의 최종 보스를 쓰러트리고 그 끝을 보는데 성공한 루엘은 묘한 달성감에 목소리를 높이다 루시가 히죽거리고 있음을 깨닫고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완전 잘 만들었죠? 그쵸?’

   <…부정할 수 없구나.>

   

   이 던전은 시험을 치르기 위한 곳임과 동시에 깨달음의 장이자 연극의 무대였다.

   

   마지막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한다면 아무리 냉정한 자라도 소리를 내지르게 되겠지.

   

   그만큼이나 이 던전은 잘 만들어져 있었다.

   

   <그대가 만든 것을 칭찬하자면 밑도 끝도 없을 것 같구나.>

   ‘흐흥. 그럼요. 누가 만든 건데요!’

   <그러니 먼저 문제점 하나만 지적하고 가자꾸나.>

   

   다만 그렇다 하여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점이요? 이 던전에 그런 게 있어요?’

   <그래. 1학년 중 그 누구도 이 던전의 끝을 보지 못할거라는 문제점이 말이다.>

   ‘…네?’

   <수많은 던전을 공략해 보았던 본인조차도 중간에 무수한 고민을 거듭해야 했었는데 1학년 학생이 이를 단번에 공략할 수 있을 리가 없잖으냐!>

   

   다시금 생각을 해보아도 말이 안 되는 수준이구나.

   

   이런 것을 실전조차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시험이랍시고 내놓을 생각을 하다니.

   

   루시가 주신의 사도여서 다행이구나. 이 녀석이 악신의 아래로 들어가서 악의를 담아 던전을 만들어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그 곳은 분명 과거 본인을 포함한 용사 일행조차 죽음을 각오해야 할 괴악한 장소였을 것이다.

   

   ‘엑. 그… 그치만 나오는 몬스터도 약하고. 딱히 위험한 것도 없으니까 시간을 들이면 충분히.’

   <그게 되겠느냐? 학생들이 시험기간에 던전학 시험만을 보는 것도 아닌데?>

   

   절대 공략할 수 없으리라는 단언에 루시가 눈에 띌 정도로 시무룩해졌다.

   

   항시 당당한 표정을 짓고 다니는 루시에게선 쉬이 볼 수 없는 절망.

   

   그 모습에 옆에 있던 리나가 이건 이것대로 매력적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루엘도 루시도 그녀의 목소리를 가볍게 무시했다.

   

   리나가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건 일상적인 일이었으니까.

   

   ‘으으. 이 이상 뺄 것도 없어요. 이 이상 기믹을 줄이면 던전의 컨셉이 사라진다고요.’

   <그 부분에는 동의한다. 이 던전을 축소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냐.>

   ‘그럼 어떡해요?! 다 날리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할까요!?’

   <그럴 필요 없다. 본인에게 기책이 있거든.>

   ‘…뭔데요?’

   <어차피 그 누구도 한 번에 공략하지 못할 던전이라면 공략할 기회를 여러 번 주면 되지.>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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