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방뚜방, 어수선한 분위기의 연구소 내부를 돌아다닌다.
소리치는 사람, 서류 더미를 잔뜩 끌어안고 어디론가 뛰어가는 사람.
격리실에서 쉬는 게 지루해지면 이렇게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오늘은 한층 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격리실은 철저하게 밀폐된 공간이었지만 딱히 나올 수 없는 곳은 아니었다.
그저 법으로 정해진 규격의 오브젝트 격리 시설일 뿐, 나를 잡아 둘 수 있는 시설은 아닌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유령 같은 영체가 돼서 돌아다닐 수 있으니, 현대 과학으로써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몇 분전만 해도 예린의 품에 안겨 영화 감상을 하고 있었는데, 예린의 사수인 김중뢰에게 잡혀가 버렸다.
혼자서 보는 영화는 재미가 없으니 격리실 벽을 슬며시 통과해서 연구소 내부 탐험을 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내가 선택한 곳은 한창 회의 중인 회의실.
회의 중인 회의실 중앙 탁자 위에 대자로 누워 있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아무도 나를 못 보는 것도 좋고, 왠지 서늘한 감촉도 마음에 들어서 가장 좋아하는 휴식 장소 중 하나였다.
“이세희 소장이 실종됐다고 확정하기에는 이른 것 같습니다. 서울 숲은 전자기기 일체가 먹히지 않으니 연락이 조금 지체되는 것은 흔한 일로 보입니다.”
오오, 정론의 김중뢰가 타당한 말을 했다.
아무리 허당인 소장이라도 수 시간 만에 실종됐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
예린도 별다른 반발 없이 동의했다.
땡땡이를 자주 치는 예린도 회의 중엔 열심히 노트북으로 뭔가를 투닥투닥 치곤했다.
뭔가 노는 걸까? 하고 봤더니 제대로 회의록도 쓰고 의견도 내서 약간 쇼크, 나랑 매번 놀러 가는 예린은 어디로 간 거야! 하고 놀랐었지.
하기야 전력으로 쉴 각을 보는 직원이 능력이 없다면 진작 잘리지 않았을까? 하고 납득을 했다.
소장 실종설은 아직 판단하기 힘드니 좀 더 기다려보자는 결론이 날 법도 한데, 부소장이 반대 의견을 냈다.
“서울 숲은 오브젝트 발생이 잦은 만큼 연락을 유지하는 현지인들이 많아요. 그들에게 확인해 본 결과 아직도 소장이 서울숲 거주지 내로 들어오지 않았답니다. 적어도 뭔가 트러블에 엮인 것은 틀림이 없어요.”
“그럼 대대적으로 수색해야할까요? 이번에 발생한 집단 폐사 사건으로 정부나 다른 연구소의 조사팀도 많이 있을 테니, 충돌도 염두에 둬야합니다.”
회의는 결국 소장도 찾고 폐사 원인도 찾을 겸 해서 회수반과 보안팀으로 구성된 조사대를 보내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결말이다.
지금 당장 갑자기 소장을 찾으러 나가면 재미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장에게 문제가 생겼을 확률은 낮아도 폐사 사건도 있고 하니 흥미로운 일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회색 사신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아니 몰라. 격리실에는 없나 봐.”
“이번 사태가 끝나기 전까지는 잘 보고 있어야 해. 이번 폐사로 이목이 집중된 상태인데, 문제 생기면 서울 연구소 꼴 나는 거야. 청문회 터지고 불려 나가고 난리 난다.”
다들 폐사 사건이 내가 한 짓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내가 나타나면 어떤 반응을 보여 줄까? 하는 것이었다.
“아!”
나랑 자주 지내던 예린은 뭔가를 느꼈는지 갑자기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신아, 나와서 영화보자! 이번에는 팝콘도 튀겨서 각 잡고 보는 거야!”
후후, 예린이 당황한 모습은 오랜만에 봤는데, 거의 1년만이 아닐까? 나를 애타게 찾는 예린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연구소 밖으로, 서울 숲을 향했다.
***
“갑자기 업무시간에 영화이야기는 뭐야?”
못마땅해 보이는 김중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으, 선배 때문에 망했어요. 영화를 계속 보고 있었어야 했는데. 회색 사신은 격리실에 없으면 회의실에 자주 들른단 말이에요.”
“뭐 사신이 격리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연구소 부지를 마구잡이로 돌아다닌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게 문제가 되는 건가?”
“문제가 되죠. 사신이는 청개구리라 가면 안 되는 상황이면 훌쩍 튀어 나가버린다고요. 아마 이번 회의를 듣고 있었으면 8할은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걸요.”
김중뢰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사신은 격리된 뒤로 연구소를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너무 과한 걱정 아닌가? 게다가 사신의 지능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무작정 언어를 이해한다고 단정 짓는 건 위험하다고 말했잖아.”
“아무튼 데이터로 증명을 할 수는 없지만, 제 직감으로는 분명해요. 사신이는 분명 서울 숲으로 갔을 거예요. 저도 서울 숲으로 나갈 거니까, 외근 처리해주세요.”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는 필드 워크에 간다고 하니 놀라면서도 선배는 결재를 해줬다.
“안 그래도 서울숲은 위험하니, 조심해.”
갑작스러운 외근 신청에 결재를 해주면서도 걱정을 놓지 않는 김중뢰는 좋은 선배였다.
물론 오예린이 어떤 생각으로 외근을 신청하는지 알았다면 절대로 허가해주지 않았겠지만 고지식한 김중뢰는 예린의 꿍꿍이까진 예상할 수는 없었다.
***
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날씨, 콘크리트로 된 천장 위에 앉아서 시야 끝까지 펼쳐진 숲을 바라봤다.
기분 좋게 부는 바람에 다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옥상에 설치된 CCTV를 마주 보고 앉아 바람을 만끽했다.
차가운 콘크리트를 높게 세운 네모난 초소.
문명과 야생의 경계를 여기만큼 명확하게 보여주는 곳이 또 있을까?
서울 숲으로 들어서는 도로는 숲의 경계를 넘자 엉망진창으로 부서져 있어서 그 야생의 경계를 더욱 확실하게 부각시켰다.
서울 숲은 평양에서 나타난 파괴 불가 오브젝트인 ‘강철탑’이 원인으로 생긴 숲이다.
핵을 쏴 갈겼는데도 멀쩡한 거로 유명한 오브젝트였는데, 강철탑의 등장으로 막연하게 인류가 생각하던 편견 하나가 부서졌다.
‘핵을 갈기면 웬만한 오브젝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 말이다.
핵이 통하지 않는 오브젝트는 그 뒤로도 잔뜩 나타났다.
유령같이 물리적 영향을 받지 않는 오브젝트는 생각보단 흔했으니 말이다.
강철탑은 문명을 부수는 걸로도 유명했는데, 영역 안에 들어간 전자장비는 거의 확실히 망가졌고 높은 건물이나 도로들도 박살이 났다.
그래서 저 너머는 문명의 바깥이라고도 불렸다.
초소 안에는 머리를 빡빡 민 군인 두 명이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따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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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으로 보이는 초소병은 초소 내 설치된 TV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후임으로 보이는 초소병은 서울숲 방향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TV에서는 이번에 발생한 폐사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왔다.
원인이 신종 오브젝트냐? 아니면 사신이 한 짓이냐? 이런 주제로 패널들이 토론하는 TV프로그램이었다.
[이번 집단 폐사 사건은 세희 연구소의 관리 미숙으로 보고 빠른 결단이 필요합니다.1년 전의 서울 연구소 사건에서 보듯이 역량이 부족한 연구소에 오브젝트를 관리하도록 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특히 ‘귀여운 강아지’와 달리 ‘회색 사신’은 특급 위험 오브젝트이니만큼 문제가 생기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될 겁니다!]
패널은 이번 폐사 사건은 세희 연구소의 관리 부족이라고 지적하며 서울 연구소의 사건을 말했다.
인간이었던 내가 죽음을 맞이했던 그 테러 사건 말이다.
“이번 집단 폐사도 역시 사신의 짓일 것 같슴다. 저런 괴현상을 만들 수 있는 오브젝트가 서울 인근에 여러 개체 나타난다면 너무 이상함다.”
서울숲을 주시하던 초병이 숲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오오, 역시 폐사 사건하면 내 이야기도 나오는 건가!
“글쎄 ‘회색 사신’이 했다는 증거가 없다면 밝혀지지 않은 신종이 한 거로 결론이 날 것 같은데. 숲속에 들어간 연구원 숫자가 꽤 많으니까 곧 밝혀지지 않겠냐.”
여론만 보면 회색 사신이 한 짓이라고 확정하는 분위기 같던데, 조사는 그런 식으로 결론이 나는 것은 아닌가 보다.
하긴 여론이 아무리 회색 사신이 한 짓이라고 성토해도 증거도 없이 사신의 짓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TV에서는 어떤 패널이 나와 이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 사회가 얼마나 불안한 토대 위에 서있는지를 떠들고 있었다.
오브젝트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의 초소병보다 감정적이 돼서 분노하는 패널은 뭔가 좀 이상해 보이기도 했다.
“역시 이상함다. 돌아올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안 왔슴다.”
후임병은 여전히 숲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뭔가 걱정거리가 있는 표정이었는데,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였다.
요즘 서울숲 주변은 폐사니 뭐니 흉흉한 소문이 들려오니 저렇게 걱정을 하는 거겠지.
“이렇게 날이 흐리니 못 돌아오고 있는 걸 수도 있어 인마. 이 근처에서 비오면 뇌우로 완전 개박살 나는 거 알잖아.”
“그래도 이상함다. 보통은 한 달이면 숲에서 나왔는데, 아직도 안 나왔슴다. 마음 같아서는 이상 현상 발생 보고올리고 수색반이라도 부르고 싶은 마음입니다.”
“야야, 허위 보고 발각 되면 바로 감옥행이야. 오브젝트 관련은 무관용인 거 알지? 얄짤없어. 정 그렇게 걱정되면 사설탐정이라도 써서 알아보던지, 수색 반보다야 그쪽이 더 빠르고 정확할 거다. 돈은 좀 들겠지만.”
우리나라도 탐정이 있었구나. 인간이었을 때, 탐정을 쓸 일이 없었으니 생각지도 못했다.
후임 병은 선임에게 받은 연락처로 희희낙락하며 탐정에게 의뢰하고 있었다.
돈이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으니 찾아달라는 소리를 하는 걸 보니 꽤 친한 사이로 보였다.
“어?”
탐정 의뢰니 뭐니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나가자 선임이 뭔가를 발견한 소리를 냈다.
드디어 본 건가? 반가운 마음에 CCTV 앞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사…사신!”
두 명의 초소병은 얼마나 놀랐는지, 계단으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3층은 되어 보이는 초소를 그대로 뛰어내려 트럭을 타고 도망가 버렸다.
내 인사정도는 받아주면 안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