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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Chapter: 3

   내가 이 세상에 들어오고 나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상태창이 없단 것이었다.

   

   게임빙의물이면 보통 상태창 외치면 딱 창이 떠오르는 게 기본이잖아.

   

   그걸 보면서 어떻게 성장해야 할 지를 고민하는 게 보통이라고. 왜 난 상태창이 없는 거야.

   

   루시의 몸에 빙의한 첫 날 난 내게 상태창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온갖 발악을 했다.

   

   속으로 생각하고, 말로 하고, 소리도 쳐보고, 글로도 써보고, 혹시 이 곳의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건가 싶어서 시녀에게 상태창이 뭔지 물어보고.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다 해보았던 나이지만 내가 수치심에 몸부림치는 동안에도 상태창은 나오지 않았다.

   

   삼일이 지난 지금은 반쯤 체념한 상태다.

   

   그래. 상태창이 안 나올 수도 있지.

   

   그렇다고 내가 캐릭터를 만들 때 넣어두었던 스킬이 사라진 건 아닐 테니까.

   

   …그치? 안 사라졌지? 메스가키 스킬만 남겨두고 다 없어진 거 아니지?

   

   어쨌든 스킬이 그대로 있다는 전제 하에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도록 강해지는 것.

   

   지금 루시의 몸으로는 던전에 나오는 고블린 하나도 쓰러트릴 수 없을 테니까.

   

   계단 3층 올라가는 것도 힘들어서 헥헥대는 몸으로 어떻게 던전을 클리어하겠냐고!

   

   메스가키 캐릭터를 만들 때 처음엔 즐기자는 느낌으로 스킬을 잔뜩 넣어놔서 다행이야.

   

   다른 때처럼 고인물 플레이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어떤 참사가 일어났을지.

   

   이 허약한 메스가키의 몸에 이득이 되는 스킬은 안 박아 놓고 패널티 스킬만 잔뜩?

   

   이야. 그랬으면 루시의 방에 있는 프릴로 밧줄을 만들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품 안에서 집사장에게 받은 영약을 꺼내서 화장대 위에 늘어 놓았다.

   

   유리 병 안에 담긴 영약은 아무리 보아도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굳이 비유 하자면 어릴 적 알약을 못 먹는 아이에게 주는 가루약을 물에다 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영약을 섭취하게 되면 몸이 뒤틀리는 고통을 느끼게 될 겁니다.’

   

   …설마.

   

   딱 보면 몰라? 나를 겁주려고 한 거짓말이잖아.

   

   신경 쓰지 말자.

   

   체력 상승 영약의 뚜껑을 연 나는 슬며시 냄새를 맡아 보았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 안에 든 게 평범한 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래서 더 불안했다.

   

   왜 그렇잖아. 폭풍 전 날의 밤이 가장 고요하듯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이 약도 입 안에 털어 넣는 순간 극한의 경험을 시켜주지 않을까.

   

   잠시 망설이던 나였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어차피 마셔야 하잖아.

   

   어린애 같은 투정하지마.

   

   굳은 결심을 한 나는 단번에 병 안에 있는 액체를 마셨다.

   

   놀랍게도 영약에선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이거 영약 맞나? 영약치고는 너무 평범하잖…

   

   변화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영약을 들이키고서 1초나 지났을까? 갑작스럽게 몸이 뒤틀렸다.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전신에서 고통이 찾아왔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내 근육을 쥐어 짜내는 것처럼 온 몸에서 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바닥을 뒹구는 것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씨발. 뭔데. 뭐냐고.

   

   게임에서 영약을 섭취할 때 고통스럽다는 묘사 같은 건 없었잖아!

   

   근데 왜 이렇게 아픈 건데?! 응?

   

   뭔가 잘못된 거 아냐? 이거 진짜 영약 맞아?

   

   집사장이 날 엿 먹이려고 독약을 영약이라고 준 건… 그럴 린 없지.

   

   내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베네딕이 자신의 목을 날릴 텐데.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진 않겠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나는 거울에 비친 루시의 모습을 보았다.

   

   마구잡이로 뒤엉킨 머리카락과 잔뜩 울어서 그런지 충혈된 눈.

   

   벌벌 떨리는 손과 힘이 빠져서 자꾸만 쓰러지려 하는 다리.

   

   흐트러진 옷매무새.

   

   그야말로 참교육 당한 메스가키 그 자첸데?

   

   씨발.

   

   욕지거리가 자꾸만 새 나왔다.

   

   방금 전에 느꼈던 고통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난 예전에 실수로 내 살을 구웠던 적이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고 캠핑을 가서 모닥불을 피웠는데 뭐에 걸려서 넘어지는 바람에 불 위를 굴렀지.

   

   살이 불에 구워진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누군가가 내 몸을 계속해서 난도질을 하는듯한 느낌이었으니까.

   

   빠르게 불이 꺼져서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그 날의 기억은 내 인생 최악의 고통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늘 새롭게 최악의 고통이 갱신 됐다. 방금 전 겪었던 고통은 그보다도 끔찍했다.

   

   숨이 거칠어져서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심호흡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침대에 드러눕고 싶었다.

   

   정말로 끔찍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고 예전에 즐거웠던 일들을 꿈에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전의 나였다면 분명 이 쯤에서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나는 결코 강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오늘은 달랐다. 마음이 자꾸만 해야 한다는 말을 외쳤다.

   

   괜찮아. 안 죽어. 다치지도 않았어. 그저 아팠을 뿐이야.

   

   괜찮아.

   

   재차 호흡을 다스린 후에 고개를 들었다.

   

   아직 다른 영약들이 남아 있지만 저걸 먹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저게 정말로 영약이 맞는지 아닌지를 알아 내야 했다.

   

   진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었는데 그게 영약이 아니라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확인을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직접 몸을 움직여보는 것이었다.

   

   나는 방금 체력 상승의 영약을 먹었으니 저게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다면 내 체력이 더 늘었어야 한다.

   

   검증의 방법은 간단했다.

   

   저택의 1층 로비에서 3층까지 올라가 보는 것.

   

   영약을 먹기 전에는 맨 위층까지 올라가기만 해도 녹초가 되었지만 체력이 늘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오리라.

   

   방에서 빠져 나와 1층으로 내려가던 중에 한 시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렇지만 무시했다. 대답을 해줄 여력이 없었다.

   

   지금의 난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1층에 도착한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라갔다.

   

   평소보다 몸이 가벼웠다. 모래주머니를 다고 다니다 떼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단순히 기분탓 인 걸까?

   

   제대로 확인을 해보기 위해 난 전력을 다해 뛰듯이 계단을 올라갔다.

   

   평소라면 한 층을 올라다가 지쳐 쓰러져야 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난 3층에 도착을 한 후에도 숨이 가쁘다는 느낌을 받을 뿐 이전처럼 녹초가 되지 않았다.

   

   영약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다.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그를 확인한 나는 방으로 돌아와 화장대 위에 올려진 두 개의 영약을 가만 바라보았다.

   

   저걸 먹으면 더럽게 아프겠지.

   

   아무것도 모르고 먹었을 때는 상관이 없었지만 그 고통을 알고 나니 손을 대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저 두 개의 영약은 반드시 섭취해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처음에 세 개 다 들이켜 버릴 걸. 그랬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움직이지 않는 유리병과 눈싸움을 하던 나는 머리를 마구잡이로 휘젓고 나서 화장대의 앞에 섰다.

   

   그리고 유리병을 잡아 챘다.

   

   정확히는 잡아 채려 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방금 전의 고통을 기억하는 건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은 영약을 먹길 거부하고 있었다.

   

   괜찮아.

   

   방금 겪었던 고통이 떠올랐다.

   

   괜찮아.

   

   온 몸의 근육이 뒤틀려 찢어져서 새롭게 기워 넣는 듯한 그 고통이.

   

   괜찮아.

   

   전혀 괜찮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그런 고통을 겪었다가는 아카데미 시험을 보기도 전에 미쳐버리고 말 거야.

   

   난. 나는 못해. 나는.

   

   어라?

   

   고통에 대한 공포가 온 몸을 사로잡았던 순간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공포라는 단어가 자취를 감췄다.

   

   극복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내 뇌에다 손을 뻗어서 감정을 훔쳐가 버린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방금 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복잡해진 머리에서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공포 극복. 내가 메스가키 캐릭터를 만들 때 넣어두었던 스킬.

   

   그게 발동한 거야. 그게 내 머리에서 공포를 지워버린 게 분명해.

   

   메스가키말고 다른 스킬도 멀쩡하게 발동하는구나.

   

   그걸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될 줄이야.

   

   좋아. 잘 됐네. 덕분에 생각에 망설임이 사라졌어.

   

   후회는 나중에 하자.

   

   이거 마신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 더럽게 아플 뿐이지.

   

   미래를 위해서 한 순간의 고통 쯤이야 견딜 수 있어.

   

   나는 두 영약의 뚜껑을 연 후에 두 병 안에 든 액체를 모두 다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이번에도 방금 전처럼 영약에서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고통이 나를 찾아왔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루가 지나 저녁이 되어 있었다.

   

   

   *

   

   본의 아니게 하루를 날려 먹긴 했지만 영약의 효과는 분명 내 몸에 제대로 깃들어 있었다.

   

   체력도 그렇고 힘도 그렇고 이전보다 월등히 늘어난 상태였다.

   

   계단을 몇 번이고 오르내려도 몸이 멀쩡했고, 맨날 낑낑대며 열어야 했던 저택의 여러 무거운 문도 가볍게 열 수 있게 됐지.

   

   이로써 내가 생각해 두었던 첫 관문을 통과한 셈이었기에 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물을 찾으러 왔다.

   

   내가 사용할 무기.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은 무기간의 밸런스가 잘 맞는 편이었다.

   

   비교적 성능이 좋고 떨어지는 정도는 있어도 아예 쓰지도 못하는 쓰레기 같은 건 없었지.

   

   그래서 난 내가 쓸 무기를 고를 때 성능보다는 내가 얼마나 잘 쓸 수 있을까만을 고민했다.

   

   일단 한 손에 방패를 드는 건 확정이다. 방패 계열 스킬의 최고봉인 철벽이 있는데 방패를 쓰지 않는 건 범죄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니 이제 남은 손에 들 한 손 무기를 선택해야 했는데 선택지는 단 세 가지 뿐이었다.

   

   단창. 검. 그리고 둔기.

   

   일단 아무리 생각해도 검은 아니었다.

   

   검에 잘못이 있는 건 아니었다. 멋있는데다가 성능도 상위권에 속하는 검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단지 내가 검을 잘 다룰 자신이 없을 뿐이었다.

   

   내가 생전 휘둘러 본 검이라고는 식칼뿐이다. 심지어 난 요리를 거의 하지 않아서 몇 번 잡아본 적도 없다.

   

   그런 내가 검이라는 어려운 무기를 잘 다룰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창도 비슷한 이유에서 기각이었다. 원래 창은 초보자가 다루기 가장 좋은 무기라 여겨진다만 그건 개활지에서 싸울 때다.

   

   소울 아카데미에서의 전투는 대부분 좁은 길목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곳에서 내가 창을 잘 다룰 수 있겠는가.

   

   벽에 부딪쳐서 이도 저도 못하다가 죽는 미래가 뻔히 보인다.

   

   그렇기에 내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뿐이었다.

   

   “아가씨가 찾으시는 무기가 뭐라고요?”

   ‘메이스랑 방패요.’

   “귀 먹었어? 한 번만 다시 말해 줄게. 메이스랑 방패.”

   

   무기고를 지키던 병사는 자신이 들은 게 맞는 지 재차 확인을 했다.

   

   나 같은 여자애가 메이스를 내놓으라고 말을 하는 게 이상하게 보인 것 같았다.

   

   확실히 어울리는 무기가 아니긴 해. 150은 될까말까한 꼬맹이한테 메이스는 괴리감이 있지.

   

   그치만 지금 나한텐 어울리고 말고가 전혀 중요하지 않거든? 그러니까 내놔. 당장.

   

   병사는 성질 더러운 아가씨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는지 세 번을 되묻지 않았다.

   

   대신 안으로 달려가서 무기고 있는 방패와 메이스 중에 가장 상태가 좋은 걸 가져왔다.

   

   “그런데 루시 아가씨. 이것들이 좀 무거운데.”

   

   ‘그냥 줘요.’

   “허접 병사 말이 많네? 내놓으라면 그냥 내놔.”

   

   “넵.”

   

   병사가 건네준 방패와 메이스는 상당히 묵직했다.

   

   무겁긴 하네. 이전의 나였다면 제대로 붙잡지도 못하고 떨어트렸을 거야.

   

   그렇지만 지금의 난 영약을 도핑한 상태거든? 이 정도야 거뜬하지!

   

   내가 메이스와 방패를 양 손에 들고도 멀쩡히 서 있었더니 병사가 놀란 듯 눈을 끔뻑였다.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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