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잡아끄는 미사일과 포탄으로 이루어진 불꽃놀이를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폭발에서 나오는 매캐한 냄새도 점점 심해지고 있었고, 포탄이 터질 때 나오는 불꽃은 태양 아래서는 그리 눈에 띄는 편은 아니었다.
슬슬 포탄의 폭발도 질려오기 시작했다.
구경도 신나게 했으니, 슬슬 도봉구 장벽 안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 왔다.
도봉구로 향하는 길은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
처음 밟는 눈은 기분이 좋다.
폴짝폴짝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장벽 안으로 들어갔다.
전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그마한 발자국이 내 뒤를 따라서 쭈욱 이어졌다.
***
인류의 손에서 벗어나 10년이 지나버린 도봉구는 나름대로 신선한 느낌이었다.
건물을 집요하게 박살내는 얼음 병사들 때문에 낮게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잔해들, 맹렬한 추위와 눈보라로 사라진 식물들.
이런 요소들이 모여서 도봉구는 혹한의 겨울로 망해버린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도시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처음 보는 신기한 동물들이 꽤 많이 보였는데, 아마 동물이 아니라 오브젝트겠지.
중심부의 온도는 영하 100도라고 하는 도봉구니까, 보통의 생물은 없을 것 같았다.
영하 100도인 곳이 있으면 주변 환경이나 기후가 완전히 망가져야 할 것 같은데, 멀쩡한걸 보면 이것도 오브젝트의 신비일까?
오브젝트의 입장에서도 이런 부분은 잘 모르겠다.
사실 유령화 같은 것도 뭔가 수상쩍지 않은가?
사실 유령화는 시간정지 능력만큼 물리적으로 이상한 능력이다.
유령화가 물리력은 무시한다고 해도, 중력은? 관성은?
나처럼 비전문가도 의문이 마구마구 샘솟는 능력이었다.
뭐, 자세한 건 과학자들이 연구소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있겠지.
***
도봉구 장벽을 향하는 수송차량 내부는 적막에 잠겨있었다.
수송차량에 탄 채로 직원들을 둘러보자, 긴장한 표정들이 역력했다.
오브젝트에 대해 많이 알수록 그 공포는 커져만 가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대 오브젝트 요원, 가장 오브젝트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니까 말이다.
나는 직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 정신 차려!”
커다란 외침에 차량 안의 요원들이 푹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도봉구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 했던 도봉구 잠입 시나리오보다는 훨씬 좋은 상황이다.”
“얼음왕좌의 공격으로 시작된 만큼, 얼음 왕좌의 병사들이 대부분 밖으로 나온 상태니까 말이다.”
“게다가 가장 위협적인 기온은 주변으로 퍼져나가 거의 희석된 상태다.”
“지금 행해지는 포격과 미사일 공격은 모두 우리를 위한 미끼 공세에 불과하다.”
“주공은 우리들이다.”
“평소에 하던 훈련대로 수행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거다.”
“우리의 실패는 국가의 실패임을 마음에 새기고, 모두 허리를 펴고 당당해져라.”
“부담이 되면 믿는 거다. 이제까지 인류가 쌓아온 오브젝트 데이터와 너희가 해온 훈련을 믿어라.”
“우리는 반드시 얼음 왕좌를 파괴하고 귀환할 것이다!”
나는 직원들의 우렁찬 대답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작전 돌입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
저 멀리 보이는 얼음 왕좌를 이정표 삼아서 뚜방뚜방 걸어 나갔다.
얼음 왕좌는 높이가 20m는 되는 거대한 의자라서 멀리서도 잘 보였다.
사실 멀리서 보일 정도로 높은 구조물은 아니지만, 얼음 병사들이 주변 건물들을 죄다 다져놔서 잘 보이는 것이긴 했다.
왕좌를 향하는 여정 중, 신기해 보이는 공간을 발견했다.
왕좌를 향해서 일직선으로 걷다보니 나타난 공간은 마치 야구장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원형으로 둥글고 평평한 설원, 그 위에는 얼음 조각상으로 변한 동물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 설원을 둘러싸듯이, 깨진 유리처럼 생긴 거울들이 잔뜩 배치되어 있었다.
거울은 중앙의 설원을 비춰주고 있었는데, 거울에 비친 장면은 평범한 설원이었다.
딱 하나 다른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장승.
5m는 돼 보이는 거대한 장승이 거울 속에는 존재했다.
실제 설원에는 장승 따위는 온데간데없는데 말이다.
장승은 움직임을 보이는 물체를 향해 고개를 돌려서 추적하는 뭔가 공포영화에 나올 것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뭔가 움직이기만 하면 고개를 돌려서 쳐다봤는데, 그 대상이 생물이면 냉동 빔을 쏴서 얼려버렸다.
하지만 돌멩이나 작은 동물들에는 반응하면서 나에겐 무반응이었다.
내가 설원을 달려봐도, 천천히 뚜방뚜방 걸어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고개를 피하는 것 같았다.
장승의 얼굴이 있을 법한 곳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 밀어도 절대로 봐주질 않았다.
나만 빼고 놀아주네.
아무리 주의를 끌어도 이 악물고 나를 따돌리는 장승은 부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파괴 조건을 확인하는 순간, 의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척 보기에도 오래 걸리고 귀찮아 보이는 조건이 나왔다.
운이 나쁘면 며칠은 걸릴 법한 귀찮은 조건이라,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기로 했다.
***
우리의 쾌 진격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서 좌초되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광선에 요원이 당해버린 것이다.
“!”
한 명의 대원이 얼굴이 얼어붙어서 그대로 즉사했다.
저 멀리 보이는 설원에서예고도 없이 날아오는 광선에 요원이 당해버린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들의 목숨은 하나하나가 모두 한국의 미래였다.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잃어버려도 괜찮은 목숨이 아니었다.
나는 공격이 날아온 곳으로 비콘을 던져 설치하고 요원들에게 경고를 했다.
“모두 주목! 적의 공격은 목표를 시인한 뒤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엄폐를 철저히 해라! 정확한 공격원은 비콘이 설치된 곳 약 5m 위다!”
몸을 드러내지 않으면 광선에 맞지 않는다.
모두들 기민한 움직임으로 엄폐에서 엄폐로, 적대 오브젝트의 위치를 향해 달려간다.
도착한 곳은 원형의 설원.
거울들이 잔뜩 배치되어 있었다.
“전원! 거울을 봐라, 오브젝트는 장승이다. 시선으로 광선을 쏘는 것으로 보인다!”
오브젝트와 싸우려면 관찰을 해야 한다.
관찰하지 못하면 죽는다.
거울들이 잔뜩 배치된 설원.
거울 속에는 정체불명의 장승이 서있었다.
고개를 돌리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지만, 이런 엄폐가 없는 설원을 돌파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진 않았다.
쾅.
이미 정해진 오브젝트 조우 절차의 하나로 요원들은 수류탄을 던져서 장승과 거울의 파괴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장승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실체가 없기 때문으로 보였다.
거울은 파괴되었지만, 순식간에 재생했다.
물리 공격으로 처리할 수 없는 타입의 오브젝트다.
골치가 아프다.
장승을 우회해야 하나?
그럼 시간 손실이 너무 크다.
게다가 다른 루트에 오브젝트가 없다는 보장도 없다.
의뢰를 해서라도 노란 탐정을 데리고 왔어야했나?
너무 직감에 의존하는 타입이라 이번 임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필요하니 생각나는군.
직감 하나는 오브젝트급인 녀석이었는데, 루트 고르기 같은 불확실한 선택에서는 직감만으로 톱클래스였다.
고민을 거듭 해봐도 역시 이 오브젝트를 처리하고 가는 방법 외에는 없어보였다.
이런 오브젝트도 처리하지 못한다면, 저 너머의 얼음 왕좌를 처리하긴 더욱 힘들다.
오브젝트를 상대하려면 관찰이 우선이다.
분명 힌트가 있을 것이다.
어떤 규칙성을 가지고 배치된 오브젝트의 경우, 퍼즐 같은 해결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 것도 없는 공터 중앙에는 실체가 없는 장승이 있다.
그 주변을 비추는 거울들이 잔뜩 배치되어 있다.
거울들은 깨진 유리 파편처럼 조각나있어서 장승의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없게 되어있군.
나는 엄폐를 끼고 주변을 빙글 빙글 돌면서 거울에 비친 장승 상을 확인했다.
거울이 배치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
고통에 찬 가쁜 숨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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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허억… 헉….”
또 한 명의 요원이 광선에 맞았다.
온몸을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는 동료,살아날 가능성은…없다.
맞은 곳은 겨우 다리였지만, 다리가 얼어붙고 냉기가 전신에 스며들어 수 분 내로 목숨을 잃는 것이다.
벌써 몇 번째인가, 엄폐가 불가능한 공터에서 요원들의 희생은 늘어만 갔다.
다행히 요원들의 희생으로 유의미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딱 한 곳, 장승의 전신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깨진 거울들이 하나로 모여 보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장승을 직시해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장소를 찾기 위해서 벌써 세 명의 요원이 추가로 이 오브젝트에게 당했다.
더 이상 피해가 생기기 전에 해결해야만 했다.
얼음 왕좌를 파괴하기 위한 폭탄을 옮기려면 최소한 5명은 있어야 하니까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거울과 장승. 그리고 거울상.
그래, 거울.
거울들을 살펴보면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장승이 비치지 않는 거울들이 몇 개 존재했다.
그런 거울이 있는 걸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니!
쓰이지 않는 거울들을 활용해야 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
오! 하고 절로 감탄이 나오는 거대한 스케일의 의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높이 20m에 달하는 거대한 얼음 왕좌는 그만큼 거대한 얼음 병사4명이 가마처럼 짊어지고 있었다.
길만 닦인다면 병사들이 일어나서 가마를 짊어지고 바로 그 길로 달려 나갈 것 같은 박력이 느껴졌다.
다만 지금은 그 육중함을 뽐낼 뿐 움직이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도봉구를 해방하기 위해 얼음 왕좌를 박살내러 왔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박살내는 조건이 어려워서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너무 쉬워서 문제였다.
지금이라면 돌멩이 하나로도 부술 수 있다.
얼음 왕좌가 ‘오브젝트’가 아니라니?
그럼 내가 처리해야하는 오브젝트가 누구인 거야?
설마 그때 본 장승?
확실히 그때 확인했던 장승의 파괴 조건은 어려워보였다.
[비친 장승의 전신을 하나의 거울에 비춘다.] 였던가?
장승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