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달에게 점거된 제임스 우주 정거장.
그 속에서 여자는 천천히 눈을 떴다.
처음에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눈을 깜빡이며 어둑어둑한 주변을 둘러보자, 서서히 잠들기 직전의 상황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잠들었었구나….’
여자는 멍하니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지금처럼 위급한 오브젝트 사태에서 잠들어선 안 되었지만, 그녀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우주 정거장에 나타난 특급 오브젝트 ‘녹색 달’.
그와 동시에 발생한 지구와의 연락 두절.
갑작스럽게 자라나기 시작한 풀과 나무.
게다가 정거장이 뒤틀리면서, 근무하던 동료들과는 뿔뿔이 흩어져 버려서, 홀로 끝없는 어둠과 추위 속에서 오들오들 떨었으니까.
“밍!”하고 우는 ‘우호적인’ 괴생명체를 만나는 순간, 긴장이 풀려 잠들어 버린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품속에는 여전히 괴생명체가 안겨있었다.
“미잉. 미잉.”
잠이 들어서 그런지, 눈을 감고 코를 고는 것처럼 미잉거리는 귀여운 괴생명체였다.
여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품속의 괴생명체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렇게 따뜻하고 보드라운 감촉을 즐기고 있었더니, 괴생명체가 눈을 뜨고 잠에서 깨어났다.
“안녕.”
여자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두 눈을 마주 보며 인사를 했다.
“미잉!”
그러자 괴생명체도 여자의 억양을 따라 하며, 미잉거렸다.
후후.
여자는 작게 웃으며 괴생명체랑 노닥거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구조가 오지 않으면 100%로 죽는 우주인 데다가, 오브젝트 사태까지 겹쳤으니.
여자는 자포자기, 이판사판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괴생명체는 인간에게 관심 있는 것처럼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괴생명체는 마치 친구에게 들었던 미니 사신 같은 느낌을 풍겼다.
‘생긴 건 다르지만, 조금 미니 사신 같기도 하네.’
제임스 연구소에서는 미니 사신은 ‘달’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녹색 달에서 태어난 이 괴생명체와 미니 사신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괴생명체는 여자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곤 했다.
손을 뻗으면 똑같이 뻗었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손을 마주 뻗어서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을 걸면 밍미밍거리면서 말을 따라 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괴생명체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누군가 있는 것만으로도 혼자 있을 때보다는 훨씬 마음이 풍족해졌다.
그렇게 노닥거리다 보니, 지구 너머로 다시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둠과 한기가 가시고, 정거장 내부에 온기가 감돌았다.
꼬르륵.
그러자 여자의 배가 울었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밥을 못 먹었네.’
여자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배고프다고 생각하자, 괴생명체가 점점 그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밍!”
그렇게 사람보다 크기를 키운 괴생명체는 커다란 소리로 밍밍거리더니, 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
여자는 정말 깜짝 놀랐지만, 놀랄 기색을 드러낼 틈도 없이 괴생명체는 여자를 움켜쥐어 버렸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고, 나를 잡아먹는 건가?’
여자는 괴생명체의 커다란 손아귀 안에서 눈을 질끈 감고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괴생명체는 여자를 번쩍 들어 올려서 머리 위에 얹을 뿐이었다.
‘?’
그러고는 스르륵 스르륵 소리를 내면서 통신 콘솔이 있던 구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여자는 겁을 먹었던 게 조금 무안해져서, 괴생명체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밍!”
괴생명체는 그런 여자의 행동에 그저, ‘밍!’이라고 대답하며 바닥을 기어갈 뿐이었다.
스르륵 스르륵.
괴생명체가 이동할 때 내는 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덩치가 커서 그런지 이동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어?”
그리고 통로 끝의 코너를 도는 순간, 끝없는 정글이 펼쳐져 있었다.
‘???????’
말도 안 돼.
우주 정거장이 왜 갑자기 숲이 된 거지?
여자는 굉장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 있었던 우주 정거장이 사라져 버렸어.
우주 정거장에 갑자기 풀과 나무가 생겨나는 것도 충분히 오브젝트다운 일이었지만, 지금 현상은 그 이상이었다.
“이게 ‘달’의 공간 침식인 건가.”
붉은 달의 사막, 푸른 달의 호수 등.
달이 환경을 변화시키는 사례는 꽤 많이 관측되긴 했지만, 직접 겪으니 느낌이 달랐다.
그야말로 현재 인간의 기술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영역!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통로는 온데간데없었고 전후좌우 어디에도 끝없는 정글이 펼쳐져 있었다.
괴생명체와 서 있는 곳은 꽤 높은 언덕 위였는데, 여기서는 정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숲은 마치 거대한 녹색 융단처럼 지평선까지 뻗어 있었다.
울창한 나무들은 빽빽이 들어차 마치 브로콜리 숲처럼 보였다.
여기는 더 이상 정거장이라고 볼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지평선 끝에서부터 바람이 밀려오자, 나뭇잎들이 바람에 일렁이며 초록빛 물결을 만들어 냈다.
숲 특유의 습한 공기가 피부에 부딪혔다.
시조새를 닮은 생소한 새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내는 새소리와 축축한 나무 향기가 숲의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하, 하하.”
여자는 정글을 내려다보며,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
미니 사신 정원 얕은 곳, 마시멜로 평원.
나는 폭신폭신한 마시멜로 위에 누워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우주 정거장으로 어떻게 가야 할까.’
붉은 사신 로켓이나, 내가 붉은 사신으로 변신해서 날아가는 것은 실패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면에서 일정 이상 멀어지면 장작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멀리 날아갈 수가 없었다.
아마 이게 검은 사신들이 말하던 ‘엄마는 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가장 좋은 방법은 황금 사신들을 거대 검은 사신 발리스타에 집어넣고 무차별적으로 우주로 쏘아 보내는 방법이었다.
뭐, 우주에서는 정교한 조준이 필요하더라도 황금 사신을 백만 단위로 발사하면, 정거장에 도달하는 황금 사신도 나오지 않을까?
문제는 ‘황금 사신이 우주에서도 정원으로 돌아올 수 있는가?’였다.
우주에서 장작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는 꼴을 보면, 못 돌아올 가능성도 꽤 있었다.
만약 못 돌아오면 황금 사신들이 우주 미아가 되어버리는 건데, 그건 좀….
그래서 안전한지 실험을 해봐야 하는데, 실험하려면 우주로 가야 하니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답이 없네.
역시 지금 강철탑을 파괴하기엔, 내 능력이 부족한 걸까?
도무지 답이 안 보이는 상황에 손바닥 위로 시선을 돌리니, 황금 사신 둘이 내 손바닥 위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마치 온몸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전신에서 황금색 불꽃을 피워 올리는 황금 사신들.
시작은 내가 다이어트하려고 붙잡은 황금 사신들이었다.
장작 때문에 살이 쪘다면, 장작을 내보내면 될 것 같다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운동이었다.
그래서 황금 사신을 한 손에 하나씩 붙잡고 장작을 마구 퍼부어버렸다.
처음에는 ‘앙대!’, ‘댖지가 돼버려!’라면서 버둥거리던 황금 사신들이었지만, 이제는 히히 웃으면서 노는 중이었다.
내가 장작을 아무리 집어넣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이젠 넘치는 장작을 이용해서 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만화 속 초인들의 싸움처럼 서로를 향해 장작 덩어리를 쏘아 보내는 놀이였다.
둥글게 뭉친 장작을 날려 보내거나, 빔 형태로 가공해서 쏘아 보냈다.
펑. 펑.
장작들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황금색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서로를 향해 장작을 마구 날리는 모습이 나름대로 멋있어서 그런지, 슬금슬금 다른 황금 사신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줄을 서서 돌아가면서 해야 할 정도로 인기 있는 놀이가 되어버렸다.
‘나도 빔 쏘고 싶다.’
태양 빛을 모아서 쏘는 ‘황금 사신 빔’ 말고도 장작을 빔처럼 쏠 줄 알다니.
너무 부러웠다.
힝.
황금 사신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빔을 쏘는 방법을 알아내려고 하는 중에 황금 사신 하나가 내 귓가로 다가왔다.
‘황금 티라노!’
그 녀석은 다가와서는 내가 엄청나게 관심 있어 하는 주제를 꺼내 들었다.
티라노라고?
***
이제는 우주 정거장처럼 느껴지지도 않는 정글 한가운데.
여자는 커다란 괴생명체의 위에 탄 상태로 울창한 숲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건물처럼 높게 솟은 나무들에서 뻗어 나온 가지와 잎사귀는 위에서 내려오는 태양 빛을 가리고 있어서 숲속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야말로 광활한 녹색의 심해 같은 느낌이었다.
괴생명체는 여자를 바닥 위에 내려놓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커다란 열매를 가지고 내려왔다.
마치 먹으라는 것처럼 반을 쪼개준 열매는 마치 코코넛 열매처럼 내부에 찰랑거리는 액체가 들어있었다.
괴생명체가 넘겨준 열매의 과즙을 천천히 마시자,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맛있어….”
너무 맛있어서 그런지, 여자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고마워.”
그리고 정신을 차린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괴생명체도 기분 좋은 듯 큰 소리로 대답했다.
“밍!”
둘은 커다란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열매를 먹으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우주 정거장에 표류하였을 때는 상상하지도 못한 평온한 시간이었다.
열매를 잔뜩 쌓아두고 보내는 평화로운 시간.
하지만 나무 위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숲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츠르르.
미세한 진동으로 나무 위에서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하는 먼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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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뒤를 이어 쌓아 놓은 열매들이 흔들리고 부딪치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이… 잉”
괴생명체는 잔뜩 긴장한 느낌으로 천천히 여자를 향해 기어 오더니, 여자를 몸으로 덮어버렸다.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어?”
하지만 여자의 말에도 괴생명체는 대답하지 않았다.
괴생명체는 공포에 질려있었다.
그렇게 괴생명체가 여자의 몸을 아예 가리자, 풀을 닮은 그 몸은 훌륭한 위장이 되었다.
여자는 천천히 마시고 있던 열매를 품에 안은 채, 숨 쉴 수 있도록 조금 열어준 틈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시체가 썩어들어가는 듯한 지독한 누린내가 주변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절로 기침이 날 것만 같은 끔찍한 짐승 냄새.
육식 동물 특유의 냄새였다.
쿵. 쿵.
품에 안은 열매 표면의 과즙의 표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면이 무겁게 울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무언가, 굉장히 위험하고 거대한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
제임스 타워, 임시 로켓 발사대.
제임스는 커다란 로켓 근처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회색 사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나 잘 풀릴 줄이야.”
회색 사신은 마치 사람만 한 황금 사신이라도 된 것처럼 굉장히 신나 하며, 로켓 주변을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로켓에 필요한 공기 역학은 완전히 무시해 버린 형상.
공력 가열 문제는 오브젝트 소재를 이용해서 가까스로 막아낸 불완전한 로켓이었다.
회색 사신이 티라노에 묘하게 집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티라노 모양 사탕을 주면 으슥한 골목으로 쫓아올 것만 같았다.
평소에는 인간 수준의 지성체처럼 행동하는 회색 사신이었지만, 유독 티라노사우루스에 대해서는 무지성 오브젝트 같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황금-메카-티라노 로켓의 주변을 뛰어다니던 회색 사신은 어느새, 로켓 안에 들어가 버린 상태였다.
회색 사신은 유령화로 로켓 외벽을 통과해서, 안전벨트를 매고 히히 웃고 있었다.
그러고는 마치 빨리 출발하라는 것처럼 내부 카메라에 똑똑 노크했다.
제임스는 그 모습을 보고는 직원들을 향해 명령했다.
“발사 준비 시작해!”
제임스 우주 정거장 탈환 계획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