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5
이른 아침 던전의 문이 열리자마자 그 안에 진입한 아서는 절찬리에 루시를 향한 원망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정신 나간 녀석!
내 몇 번이나 자신을 기준으로 난이도를 정하지 말라 이야기를 했거늘 이게 무슨 짓거리냐!
던전에 진입하고서 처음으로 들어온 방의 상대가 뭐 이리 강한 것이야!
처음으로 등장한 병사를 상대할 때부터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만 방의 마지막인 이 기사는 정도를 넘었다.
이건 이미 현직에서 일하는 기사의 수준을 뛰어넘은 괴물이지 않은가!
“3왕자님!”
“안다!”
몸을 뒤틀어서 기사가 날린 검을 피해낸 아서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화염마법을 기사의 얼굴에 때려 박았다.
마법이 착탄하며 굉음과 함께 회색의 연기가 피어오른다.
얼굴을 터트릴 생각으로 캐스팅한 마법이니만큼 어느 정도 피해를 줬으리라 생각했던 아서였지만 그의 기대는 완벽히 어긋나버렸다.
회색 연기를 뚫고서 돌진한 기사의 얼굴은 마법을 맞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멀쩡했던 것이다.
“젠장!”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기사의 모습에 아서가 바람마법으로 몸을 가볍게 만든 후 기사의 검을 피해낸다.
애초부터 막는다는 것은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다.
기사와 아서 사이에 존재하는 근력의 차이는 어설픈 방어를 죽음으로 이끌 만큼 거대했으니까.
수세에 몰린 아서가 이를 악물던 그 때 기사의 뒤편에서 등장한 프레이가 기사의 목을 노리고서 달려들었다.
페이비의 버프를 받은 프레이는 바람의 모양새를 한 짐승과도 같았으니. 아무리 압도적인 스펙을 지닌 기사라 할 지언정 그녀의 검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프레이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기사가 한 걸음 물러섬에 따라 아서에게 숨을 고를 여유가 주어진다.
“조이! 아직이냐!”
“거의 다!… 캐스팅 끝났어요!”
“좋아! 프레이!”
“확인!”
알겠다 답을 한 프레이는 이내 자신의 검 위에 오러를 덧씌우고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위력의 일검을 내질렀다.
채애앵! 갑작스레 쏘아진 필살의 일격은 기사의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투구 아래에서 눈을 치켜 뜬 기사는 다급히 검을 치켜세워 프레이의 일검을 막아내는데 성공했지만 그 대신 그 뒤에 날아들 것에 대처할 여유를 잃고 말았다.
“타올라라!”
기사의 발치에 붉은 빛의 마법진이 새겨지더니 그 가운데에서 주홍색의 불꽃이 피어올라 그를 집어 삼킨다.
“크으윽!”
철을 녹이는 대장간의 불꽃과 같은 열기에 과묵하던 기사의 입에서 고통어린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저 안에 있는 것이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지금쯤 불꽃에 잡아먹혀 스러지고 말았을 터이나 기사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불꽃의 온기에 적응했다는 듯 이를 악문 채 자신의 검을 휘둘러 마법진을 베어버렸다.
불꽃이 흩어지고 기사가 거친 숨을 내뱉으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걸로도 부족했다는 거냐.”
미간을 찌푸린 아서가 혀를 차면서 검을 다잡은 그 때에 기사가 투구 아래에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훌륭하다. 그대들은 시험에 통과했다.”
저 앞에 있는 문으로 나가면 된다 설명해 준 기사는 검집에 검을 집어넣음과 동시에 신기루마냥 흩어져버렸다.
그를 시작으로 해서 훈련장을 채우던 모든 기사들이 자취를 감춘다.
“죽을 것 같아.”
안전을 확신한 것일까. 방금 전까지 최전선에 서 있던 프레이가 한 치 망설임 없이 바닥에 몸을 뉘인다.
“프레이 켄트. 경계를 늦추지 마라.”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일까. 아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프레이를 나무랐지만 프레이는 아무 말도 안 들린다는 듯 귀를 틀어막을 뿐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이. 조이가 확인을 끝마치기 전까지는.”
“괜찮습니다. 3왕자님. 방금 확인 끝났습니다. 이 곳은 이제 안전합니다.”
“거 봐. 안전하다잖아. 3왕자님.”
“…쯧.”
가볍게 혀를 찬 아서는 검을 집어넣고는 긴 한숨과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노려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니 갑옷 전체를 공격하잔 제안이 유효했군. 좋았다. 조이.”
“제가 아니라 페이비가 제안한 겁니다. 3왕자님. 제가 한 건 그 제안을 실행에 옮긴 것밖에 없죠.”
“아뇨. 조이의 마법이 아니었더라면 실행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텐데요.”
“그…으런가요?”
“그래. 조이. 그대의 공이 크다.”
“맞아. 화염 엄청 대단하고 뜨거웠어.”
다른 세 사람이 연이어 칭찬의 말을 건네자 품 안에서 부채를 꺼낸 조이가 다급히 자신의 입가를 가렸다.
자신의 느슨한 웃음이 드러나는 게 싫은 것이리라.
다만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웃음이 지어지며 그녀의 눈매 또한 살짝 느슨해졌단 것이겠지.
조이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서는 이내 가볍게 웃음을 흘리고는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간신히 첫 번째 방을 돌파했는데 벌써 첫 시험을 치를 시간이 다 되어 가는가.
“루시 알른. 그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던전의 난이도를 이 따위로 만든 것일까.”
소울 아카데미 1학년 중 최상위의 능력을 지닌 네 사람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방을 클리어하는 데에 수고를 들여야 했다.
그렇다는 것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공간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던전 바깥으로 내쫓기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일 터.
“던전학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루시 알른이 날뛰면 뒤에서 제어를 해야지 잘한다 잘한다 하며 부추기면 어쩌자는 것이냐.”
최초의 방부터가 이 꼴인데 뒤로 나아가면 난이도가 얼마나 높아질 것인가.
괜히 기말고사 내내 던전을 공략할 수 있게 개방한 것이 아니었다.
그 정도 기한을 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공략을 시도할 수조차 없었을 테지. 아서의 투덜거림을 옆에서 가만 듣고 있던 페이비는 웃음과 함께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달랬다.
“그래도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이 정도 난이도라면 아카데미의 선배님들도 곤욕을 치를 테니까요.”
“…그도 그렇군. 1학년의 시험도 이렇게나 어려운데 대체 윗 학년들은 무슨 괴물을 상대하게 되는 걸까.”
프레이 켄트와 본인이 성녀님의 지원을 받고서도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이 이 곳의 기사다.
윗 학년이 상대해야 할 이들은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울 터인데 평범한 2학년이나 3학년이 그를 감당할 수 있을까?
…절로 그들에 대한 연민이 피어나는 군.
“3왕자님.”
“뭐냐. 조이.”
“여기서 더 진행하실 건가요. 아니면 돌아가실 건가요.”
“…흠.”
첫 번째 방을 공략하는 데에 걸린 시간을 생각해보면 다른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두 번째 방을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일단 진행하는 편이 낫겠지.”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다. 던전의 난이도가 이 따위로 구성된 이상 던전의 공략은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어.
그러니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음 방을 눈에 새기고 그를 공략하기 위한 단서를 찾는 편이 나을 터.
“그럼 슬슬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시간을 끌다간 다른 시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될 듯 하여서.”
“그렇겠군. 프레이. 일어나라. 움직일 시간이다.”
“에에.”
힘들다 투덜거리는 프레이를 억지로 일으켜 세운 후 다음 방으로 넘어가고서 10분이 지난 후.
거대한 늑대의 이빨에 물어뜯기기 직전 바깥으로 내보내진 아서는 자신의 목이 멀쩡한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루시 알르으으은!”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던전을 공략하는 데 성공한다면 루시 알른의 뇌리에 결코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악몽을 남겨주겠노라고 말이다.
*
기말고사 날의 점심.
왕국 역사학 시험을 끝마친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던전학 시험이 치러지는 곳을 향해 걷고 있었다.
할배가 협력을 거부했을 때는 진짜 다 찍어버릴까하는 생각까지 했었거든? 어차피 이번 시험은 망치건 말건 별 상관없는 시험이니까.
시험을 망쳐서 얻을 패널티라고 해봐야 아카데미에서 주어지는 보상을 못 받는 정도인데 지금의 나한테 그 보상은 크게 중요치 않은 물건이라서.
근데 운 나쁘게 시험을 망쳤을 때를 생각해보니까 도저히 대충 준비할 수가 없더라.
조이가 기세등등해지는 거?
괜찮아. 그건 귀여우니까.
우쭈주. 참 잘했어요. 라면서 웃어넘겨줄 수 있어.
아서가 어깨를 피는 것도 마찬가지.
그건 좀 마음에 안 들지만 그대로 여기까지는 허용범위야.
정 거슬리게 하면 지금보다 훈련강도를 더 빡세게 만들어주면 되니까.
그렇지만 프레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허접이라 그러는 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그 녀석이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지으면 난 진지하게 신성이 담긴 메이스로 프레이를 후려칠지도 몰라.
내가 아닌 프레이의 안전을 위해 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심한 나는 내게 약점이 잡힌 노예 2호 애버리에게 찾아가 여러 시험의 범위에 대해 물었다.
우리 좆밥 노예가 모든 시험 범위를 알고 있을 거라 여긴 것은 아니었고 열심히 조사해서 나한테 바치라 명령할 생각이었지.
근데 걔 내가 물어보는 시험 범위를 모두 다 알고 있더라.
성격 더러운 악역 영애 스타일이면서 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지.
진짜 짜증나. 이래서야 나만 게을러빠진 폐급 인간인 것 같잖아.
‘왜 제대로 대답해 드렸는데 화를!… 아뇨.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죄드리겠습니다.’
어쨌건 난 애버리가 알려준 시험범위를 기반으로 공부를… 하진 않았고. 로그 기능을 활용해 합법적인 컨닝을 시도했다.
컨닝이 어떻게 합법적일 수 있냐고?
당연히 합법적일 수 있지. 그야 안 들키면 합법인 거잖아.
상식이라고.
몰랐다면 지금부터 알아두도록 해.
하여튼 로그 기능을 이용해 첫 시험을 성공적으로 치른 나는 내가 만들어낸 던전의 반응이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던전학 시험이 펼쳐지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던전학 교수들과 학과 조교들이 입을 모아 극찬한 걸 보면 아카데미의 학생들도 분명 감탄하고 있겠지?
어이어이! 이런 던전을 어떻게 생각한 거냐고!
알른 영애 스게에에에!
공략만 잘 하는 줄 알았더니 제작도 잘하는 거냐고 www
같은 반응을 기대하고 던전의 입구가 있는 곳에 발을 들인 나였지만 그 곳의 풍경은 내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대체 던전 안에서 몇 번이나 죽은 거지.”
“나 트라이 스무 번 넘게 했는데 첫 번째 방도 못 깼어.”
“진짜 무슨 생각으로 이런 던전을 만든 걸까.”
그 곳은 절망과 원망으로 그려진 일종의 지옥도였으니.
“두 번째 방이 더 끔찍해. 아. 씨발. 아직도 손이 벌벌 떨리네.”
“내 친구는 오줌 지려서 옷 갈아입으러 갔어.”
“네 이야기냐.”
“친구 이야기라고!”
“하아. 던전 공략하다 시험 시간 놓쳤어. 자살 마렵다.”
바닥에 주저앉아 한탄하고 있는 이들의 사이에 던전을 향한 감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에 서린 것은 오롯이 증오. 증오뿐이었다.
“진짜 던전 만든 새끼 죽여버리고 싶다.”
“알른 가문의 영애랬나.”
“넌 그걸 믿냐. 그냥 교수들이 만든데 숟가락 얻은 거겠지.”
“그럼 대가리를 후려쳐야 할 대상은 던전학 교수인가.”
“진짜하게?”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데.”
던전의 제작자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나무에 묶어 매달아 화형을 시킬 듯한 분위기에 난 얌전히 걸음을 뒤로 물렸다.
괜히 말을 걸렸다가 헛소리를 지껄이면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뻔했으니까.
…
당분간은 밤에 돌아다니는 건 자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