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6
소울 아카데미의 점심시간.
가장 먼저 시험을 끝마치고 식당에 온 아서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서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던전학 시험의 두 번째 방이었다.
어두컴컴한데다 길마저 복잡해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동굴.
그리고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쫓아오는 거대한 늑대.
“통과하라고 만든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지.”
문제는 하나였다. 추적자의 역할을 맡은 늑대가 너무나도 강하다는 것.
프레이 켄트가 전력을 다해 휘두른 검도 녀석의 두터운 털을 넘어서지 못했다.
조이 파트란이 공을 들여 준비한 마법도 녀석에게 피해를 주는 데 실패했다.
혹여 물리적인 공격이 닿지 않는 상대인가 싶어 성녀님께서 정화의 마법을 펼쳤음에도 늑대는 멀쩡했다.
어린 아이가 공상 속에서 만들어낸 무적의 괴물도 아니고 그게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적당히를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아서는 속으로 짜증을 내긴 했지만 루시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모르진 않았다.
애초에 쓰러트리지 못하게 만들려 한 것이겠지.
당장 처음에 마주했던 병사들을 상대하는 방법도 그런 종류이지 않았나.
적을 쓰러트리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조건을 알아내어 시련을 넘어서는 방식.
당시엔 냉정히 상대를 살필 여유가 없어 다소 우악스럽게 그들을 쓰러트리고 말았다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 방이 처음에 배치된 이유는 명확하다.
조건을 찾아내라. 주변을 관찰하고 고민하는 것으로 시련을 넘어서라.
“즉, 그 늑대는 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이지 쓰러트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봐도 무방한가.”
팔짱을 낀 아서는 여태까지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지식들을 돌이켜보았다.
그렇다면 일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동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단서를 찾는 것이겠군.
“…아니지. 그 전에 늑대를 따돌릴 방법부터 알아내지 않으면 곤란해.”
육중한 몸에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빠른 속도.
성녀님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감당하는 게 불가능한 무력.
철괴마저 씹어 먹어 버릴 송곳니까지.
녀석을 따돌릴 방법을 알아내지 못하면 동굴을 둘러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녀석을 따돌릴 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진 몇 번이나 죽음을 마주하며 돌아다니는 것말고는 방법이 없어.
“불쌍왕자님. 표정이 창백하시네요. 조금 있으면 유령이 되실 것 같은 걸요?”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따라 고개를 든 아서는 루시 알른의 깔보는 듯한 눈을 보고서 목에 힘을 줬다가 이내 긴 한숨을 내뱉었다.
“누구 때문인지 알고서 하는 소리인가.”
“누구 때문인데요? 불쌍 왕자님을 불쌍하게 만드는 건 불쌍 왕자님 본인이잖아요?”
“…그대가 만든 던전 때문에 이러는 것 아닌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갤 갸웃거리는 루시의 모습에 아서가 미간을 찌푸린다.
한 왕국의 3왕자가 분노한 것이니만큼 보통의 사람이라면 슬며시 눈치를 보았을 터이지만 루시는 그러는 대신 자신의 웃음소리를 한 층 더 키울 뿐이었다.
“풉. 그렇게나 어려우셨나요? 불쌍왕자님에게는 좀 기대했었는데 완전 실망스럽네요. 평소에 그렇게 잘난 체를 하시더니. 실은 투덜거리는 것밖에 모르는 허접이셨군요?”
…나는 왜 화를 참지 못한 것일까.
무슨 말을 하더라도 무시당하는 것이외에 결과가 나오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지 않았느냐.
도대체 왜 잠시를 참지 못해 이 빌어먹을 꼬맹이에게 깔봐져야 하는 것인가.
“불쌍왕자님. 이젠 말하는 방법도 잊으셨나요? 아가가 되어버리셨나요?”
“시끄러우니 무슨 용건으로 찾아 온 건지나 이야기해라.”
“흐흫. 화나셨나요? 귀여운 여자애한테 도발당해서 부들부들 하신가요?”
“루시 알른.”
“알~겠어요. 조금 더 있음 울먹거리실 것 같으니까 여기까지 할게요.”
시뻘개진 아서의 얼굴을 보고서 만족스럽다는 듯 고갤 끄덕인 루시는 자리에 앉는 대신 테이블에서 한걸음을 물러섰다.
“…단순히 놀리러 온 것이었나.”
“그럴리가요. 전 불쌍왕자님처럼 한가하지 않은 걸요.”
“그럼 무어냐.”
“당연한 거 아닌가요? 이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었으니까죠.”
“답을 들었다고?”
아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묻자 루시가 슬쩍 고갤 돌려선 하얗고 자그마한 손으로 자신의 비웃음을 가리는 척 했다.
“네. 불쌍왕자님이 부들대는 걸 보다보니 제가 만든 던전이 완벽하단 걸 새삼 느낄 수 있었거든요.”
“완벽? 그 괴악한 던전이?”
“푸하핳. 부정하고 싶으신가 보네요? 하긴 던전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 허접허접왕자님께서 무얼 아시겠나요. 이해해요. 멍청하다는 건 괴로운 일이니까요.”
“아아! 진짜! 이리 와서 앉아 봐라! 내가 완벽의 정의에 대해!…”
“꺄아~ 화나셨다~ 너무 무서우니까 도망쳐야지~”
아서는 종종걸음으로 도망치는 루시의 뒷모습을 이마에 핏줄을 세운 채로 노려봤다.
오냐. 내 던전의 끝을 보고서 그대에게 그대가 만든 던전이 얼마나 허접했는지 이야기를 해주겠다.
그 때에 가서도 그대는 무어라무어라 말을 하겠지만 그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리라.
그 때의 그대는 패배자일터이고 본인은 승자일 테니까.
피가 나올 정도로 입술을 꾹 깨물고 있던 아서는 식사를 하려던 생각이 싹 달아나는 걸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3왕자님? 어디가?”
“마침 잘 되었군. 프레이 켄트. 따라와라. 답이 나올 때까지 던전에 들이박을 생각이니.”
“응? 나 밥 먹어야 하는데.”
“나중에 배가 터질 때까지 먹여줄 테니 일단 따라와라. 왕자의 명이다.”
“…맛있는 거 사줘야 해.”
“오냐. 일단 조이와 성녀님을 찾도록 하지.”
*
같은 시간. 던전의 공략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은 아서 일행 뿐만이 아니었다.
2학년의 엘리트들이 뭉친 세실 일행도.
3학년의 라흐비 공자 일행도.
이외의 수많은 도전자들도.
모두들 하나 같이 던전에 들어갔다가 내쫓기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현재 그들을 가로 막고 있는 벽은 두 번째 방에 존재하는 늑대였다.
물리적 수단, 마법적 수단, 신성적 수단 중 그 어떤 것을 사용해도 쓰러트릴 수 없는 늑대는 도전자들의 입에서 비명을 뽑아내는 악몽이었다.
오죽 늑대라는 존재가 끔찍했으면 최초 공략을 노리던 이들 중에서 도저히 못하겠다며 포기하는 이들이 여럿 나타났을까.
어느 용병단 단장의 아들이자 프레이처럼 무예 특기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평민 토비도 그 포기자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그도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던전의 최초 공략을 노렸다.
토비 본인이 바란 것은 아니었고. ‘예술교단의 사도가 만든 장신구를 손에 넣으면 평생 놀고 먹을 수 있을 거야!’ 라면서 호들갑을 떠는 친구의 뜻을 따랐을 뿐이었지.
허나 친구의 욕심은 현실의 벽 앞에서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첫 번째 방은 공략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분위기가 좋았다.
토비가 용병단에서 자라나면서 얻은 지식을 활용해 지휘를 한 덕에 별 어려움 없이 돌파할 수 있었으니까.
허나 두 번째 방에서 늑대의 형태를 갖춘 악몽을 마주한 순간 토비의 친구들은 그대로 던전학 시험을 내던져버렸다.
‘저런 걸 어떻게 공략하라는 거야!’
단단히 겁에 질려버린 친구들은 토비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낙제를 하고 말겠다며 떠나가 버렸고 그렇게 토비도 강제로 포기자가 되고 말았다.
아쉬운 일이다.
늑대의 공략법에 대해 추측가는 것이 있었는데 그를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조교님께선 파티멤버를 새로 구해도 괜찮다 그러셨다만.
“미안. 네가 바라는 수준이 되기 어려울 것 같아.”
“이 파티에 평민이 낄 자리는 없다. 돌아가도록.”
“아하하. 미안해. 나중에 빈 자리가 생기면 연락할게.”
시험 첫 날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한 자리가 빈 파티가 어디 흔하겠는가.
안면이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친하건 안 친하건 찾아가서 자리가 있냐 묻던 토비였지만 그의 자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아. 이렇게 된 이상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한시 빨리 내 공략법이 맞았는지 확인하고 싶다만.
아니지. 차라리 조교님께 가서 혼자서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볼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토비는 아카데미의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이동하다 우연히 루시 알른의 얼굴을 마주했다.
오늘도 혼자이신가.
소문이 좋지 않다는 건 대충 들었다만 그래도 저 분의 주변만 텅 비어 있는 것을 보면 항상 신기하군.
남자건 여자건 한 번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지닌 것이 저 분이지 않나.
꽃의 향취에 홀려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멍청이가 나올 법도 하거늘.
모두들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할 뿐 차마 다가가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저 분의 악명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한 번 알아보고 싶을 지경이야.
평소였다면 토비는 여기까지만 생각을 한 후 루시에게서 시선을 뗐을 것이다.
용병단장인 아버지에게 귀족의 위험성에 대해 누누이 들어온 그다.
흥미본위로 다가갔다 문제를 일으키면 아버지에게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을 게 뻔한데 뭘 하러 루시에게 다가가겠는가.
허나 오늘은 예외였다.
이번 던전학 시험의 설계자가 루시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녀라면 자신의 추측이 옳은 지 그른 지 답을 내어줄 것이라 생각했기에.
토비는 자신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발을 움직였다.
“잠시 실례해도 괜찮겠습니까. 알른 영애.”
“흐응? 푸핫. 뭐야. 멍청한 골렘처럼 생긴 녀석이네.”
“토비라고 합니다. 대련학 수업에서 몇 번인가 무기를 맞댄 적이 있습니다만.”
“그랬나? 기억이 안 나네. 아무래도 돌대가리 골렘 네 실력이 기억할 가치가 없을 만큼 개허접했던 모양이야.”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을만큼 직설적인 무시였지만 토비의 표정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용병단에서 일을 하다 보면 귀족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일상이 되기에 이런 것에 익숙한…
“그래서 뭔데? 아. 설마 작업 걸러 온 거야? 푸하핳. 자기 주제를 잊어버릴 만큼 내가 매력적이었던 거구나? 미안해~ 변태 골렘. 너 같은 건 생리적으로 무리라.”
…아니. 아무래도 익숙하다 착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영 표정관리가 어렵군.
영애와 직접적으로 대화하는 건 처음이다만 왜 사람들이 영애에게 다가가지 않는지 알 것 같아.
“크흠. 아뇨.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럼 뭔데? 빨리 말해. 너처럼 존재감 없는 골렘이랑 내가 지닌 시간의 가치는 전혀 다르단 말야. 알아 들어?”
“그. 제가 전해 듣기로 영애께서 이번 던전학 시험의 설계를 맡으셨다 들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아아~ 정답을 알려달라고 부탁하러 온 거구나~ 그런 것 치고는 너무 고개가 높지 않아? 이 페도 골렘에는 다리를 굽히는 장치가 없는 걸까?”
미쳐버리겠군.
도대체 평소에 성녀님이나 파트란 영애는 어떻게 알른 영애와 붙어 다니시는 거지?
지금도 손이 부들거리는 걸 등 뒤로 감춰야 할 지경이다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말을 건 자신이 원망스러워지는 토비였지만 그는 애써 분노를 억누르면서 말을 이었다.
이미 영애께 말을 걸어버렸는데 최소한 바라는 답은 듣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던전 두 번째 방에 관한 물음입니다만. 그 늑대. 작은 늑대를 기반으로한 환영이지요?”
“…흐응.”
토비가 말을 내뱉은 순간 노골적인 무시로 일관하던 루시의 눈가가 그믐달처럼 굽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변의 여러 소음이 사라진다.
꼭 주변과 소리가 차단되어 버린 것처럼.
“계속 지껄여봐. 멍청한 골렘이 지껄이는 이야기가 얼마나 엉망진창일지 궁금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