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사신들의 낙원. 세희 연구소!>
헬멧 연구원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세희 연구소 주차장 입구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천막을 이용해서 만든 간이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천의 색이 알록달록하고 화려해서 마치 서커스 천막 같은 느낌을 풍겼다.
“어제오늘 사이에, 갑자기 뭔….”
헬멧 연구원은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나타난 초대형 천막을 올려다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이런 이벤트가 있다는 고지는 없었다.
‘아무래도 이세희 연구소장이 한 짓이겠지.’
박서아 부소장이 한 일이라면 적어도 한 달 전에 알려줬을 테니 말이다.
아마 전 세계 단위로 사람들을 구한 붉은 사신 때문인지, 요즘 연구소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만든 시설로 보였다.
그때 황금 사신이 실험실 가운에 달린 주머니에서 불쑥 머리를 내밀더니 어깨 위로 슬금슬금 기어 올라왔다.
세희 연구소에 뭔가 신기한 게 생겨서 그런지, 황금 사신도 살짝 들뜬 표정이었다.
“그래, 같이 들어가서 구경하자.”
헬멧 연구원은 그런 황금 사신의 머리를 톡톡 두들기면서 천막의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들어가니 생각보다 제대로 꾸며진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서커스 같은 공연장보다는 박물관에 가까운 구조.
천장에 달린 은은한 조명과 입구와 이어지는 복도에는 미니 사신들의 사진들이 잔뜩 붙어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점액을 태우는, 낫과 망치를 든 붉은 사신 사진.
수상할 정도로 고화질로 찍힌 대기권을 돌파하는 즐거운 황금 사신 사진.
그리고 나머지는 세희 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돌려보던 잡지에 실려있던 사진들이었다.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주간 미니 사신!>이라고 부르는 잡지의 사진이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일찍 연구소 휴게실에 나타나는 잡지였는데, 누가 만드는지도 밝혀지지 않은 신비로운 잡지였다.
연구원들은 우스갯소리로 연구소에 미니 사신 잡지를 만드는 오브젝트가 숨어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잡지에는 회색 사신이 눈을 감고 모델 같은 포즈를 취한 채, 화려한 옷을 입은 사진들이 가끔 실리기도 했다.
도대체 누가 만드는 걸까?
회색 사신이 옷을 입은 사진이 있을 정도면, 진짜 오브젝트가 만들어 내는 잡지일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사진들이 잔뜩 붙은 복도를 지나자, 세희가 나타나서 팸플릿을 잔뜩 안겨주더니 오늘 해야 할 일을 설명해 주었다.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팸플릿 나눠주기.
돌아다니면서 행사장 관리하기.
마지막으로 애착 사신이 없는 사람들을 미니 사신과 대면 시켜주기.
그 말과 함께 세희는 병아리를 담을 법한 커다란 종이상자를 하나 넘겨주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종이상자 안에는 형형색색의 병아리 같은 미니 사신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앙!’
‘앗, 누가 물었어!’
소리는 안 나지만, 굉장히 소란스럽게 뒹굴뒹굴하는 병아리들이었다.
그 미니 사신들과 놀아주다 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서 손님들이 천막 안으로 차례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 녹색 점액 사태 때문인지, 찾아오는 손님들의 숫자가 상당했다.
헬멧 연구원이 예상했던 것의 10배는 되어 보였다.
‘이거, 천막 안 만들었으면, 연구소가 마비됐겠는데?’
헬멧 연구원이 텅 비어 버린 종이상자를 옮기며 행사장을 둘러보자, 유독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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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사신 포토 존★>이라고 적힌 곳이었다.
애착 사신 혹은 포토 존에서 돌아다니는 프리 사신과 다양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었다.
스티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처럼 다양한 소품들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다른 곳에서 구하기 힘든 미니 사신 크기의 소품들이 가득했다.
그곳에서 한 여자가 황금 사신의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 브이 하자!”
포토 존에 있는 여자는 해맑은 얼굴로 만세를 하는 황금 사신에게 브이 모양을 한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황금 사신은 그 ‘브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 저 녀석.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황금 사신 같네.’
태어난 뒤, 3일 정도만 볼 수 있는 희귀한 황금 사신이었다.
다른 황금 사신보다 조금 작고, 약간 무표정하고,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황금 사신.
한없이 해맑기만 한 황금 사신들도 뭔가를 배우는 것인지, 인간들 사이에 있으면 점점 언어를 쉽게 알아듣곤 했다.
물론 그래봐야 언어를 직접 이해하지는 못하고, 눈치가 빨라지는 수준이었다.
여자는 계속해서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황금 사신은 자기 손가락을 브이로 만들고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황금 사신이 귀여웠는지, 여자는 브이를 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바로 사진을 찍어버렸다.
찰칵.
***
송파구 인근 대형 병원.
제임스 우주 정거장의 유일한 생존자는 너무 많이 자서 그런지, 꿈을 꾸지 못하고 금세 깨어나 버렸다.
“하아.”
여자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배 위에 뭔가가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뭔가 따뜻하고 폭신폭신한 것이 느껴졌다.
이불 안을 살펴보자, 그 안에는 초록색 피부를 가진 손바닥만 한 오브젝트가 몸을 말고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지만, 척 보기에도 새로운 미니 사신처럼 보였다.
그리고 여자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밍밍이가 살아있었구나!’
이 아이가 ‘밍밍이’라는 것을 말이다.
초록색 피부.
고양이 귀처럼 볼록 튀어나온 삼각형.
노랗게 빛나는 두 눈.
귀여운 곡선을 그리는 입.
비슷한 부분은 대단히 많았지만, 여자는 그런 이유들을 초월해서 느낄 수 있었다.
밍밍이가 확실하다고.
여자는 감격해서 흐르는 눈물을 닦고, 조그마한 밍밍이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잠에서 깨지 않도록 천천히.
그리고 밍밍이를 얼굴 근처까지 옮기자,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미잉. 미잉. 미잉.”
깊이 잠들었는지, 일정한 박자의 미잉 소리였다.
‘후후, 귀여워.’
여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밍밍이의 커다란 잎사귀를 콕콕 찔렀다.
“앗!”
하지만 잎사귀가 상당히 예민했는지, 밍밍이는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나 버렸다.
졸린 것처럼 눈을 깜빡이던 밍밍이는 이내 상황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날아서 도망가려고 했다.
“밍!?”
여자는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는 밍밍이를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지금 놓치면 다시 만나기 힘들어질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받아서 있는 힘껏 붙들고 늘어졌다.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밍밍이는 몸을 둥글게 말고 초록색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밍밍이의 몸에서 복슬복슬한 풀 같은 것이 마구 돋아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스 볼처럼 풀로 뒤덮인 밍밍이는 나지막한 소리로 울었다.
“미잉.”
전보다 훨씬 작아졌지만, 우주 정거장에서 봤던 그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애벌레처럼 앞뒤로 좀 길어진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아마 속에 들어있는 게 인간 형상의 미니 사신이라서 그런 거겠지.
“그런 거 안 해도 돼.”
폭신폭신한 풀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여자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푸스스.
그 순간 순식간에 돋아났던 풀들이 몸에서 떨어지더니, 초록 사신이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여자는 초록 사신을 향해 최대한 크게 미소 지었다.
그러자 초록 사신은 행복한 얼굴로 여자에게 날아가 안겼다.
“밍!”
우주에서 살아남은 오브젝트와 인간의 재회 순간이었다.
***
문명은 물론 사람마저도 사라져 버린 서울숲 깊숙한 곳.
나는 그곳을 미니 사신들과 함께 쳐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오브젝트로 새롭게 태어났던 곳.
내가 가진 유령화와 물리 면역을 얻은 곳.
그리고 내가 셀 수도 없이 죽을 뻔했던 곳.
그렇게 조금 깊숙이 들어가자, 잿더미로 변해버린 마을 폐허가 보였다.
‘불타는 강철 돼지상이 있었던 마을이네.’
약간 추억에 잠긴 것 같은 기분으로, 인적 하나 없는 숲속을 걸었다.
마을을 지나자, 인간의 흔적이 거의 없는 진정한 서울숲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 저기 근처에 세희랑 만났던 토굴이 있었지.’
‘저 바위 너머부터 대왕 두더지가 날아다니던 영역이네.’
그렇게 추억을 되짚으며 서울숲을 나아갔다.
뚜방뚜방.
그러자 미니 사신들은 내 뒤를 따라 걸으며, 해로운 오브젝트를 제거하고 있었다.
‘드디어 서울숲의 오브젝트들을 정리하게 되는구나.’
태어났던 때에는 내가 너무 약해서 정리할 수 없었고, 그 뒤에는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너무 넓어서 내버려 뒀었지.
게다가 미니 사신들은 굳이 사람들이 없는 곳까지 들어오지 않으니까, 이제서야 정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미니 사신들을 서울숲에 골고루 퍼트린 뒤, 나는 가장 중요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울숲의 원인, 강철탑.
그 앞에 서자, 전에 봤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은은하게 공터를 가득 채웠던 안개가 없어졌다.
경건함마저 느끼게 만드는 고요함도 사라진 상태였다.
성스러운 고요 대신, 천천히 뭔가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공터를 채웠다.
그리고 공터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강철탑의 표면에 검은색 균열이 보였다.
‘<Nostalgia>는 역시, 강철탑 위에서 봤던 일곱 달의 풍경을 말하는 거였던 걸까?’
천천히 부서지고 있는 강철탑을 올려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서지고 있는 이상, 더 건드릴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철탑의 파괴 조건을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강철탑을 ‘눈’으로 보자,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 >
텅 비어 있는 파괴 조건.
그리고 그 위로, 하늘에 닿을 것처럼 뻗어나간 강철탑의 첨단 너머로 검게 물든 별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