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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14

새벽에만 볼 수 있는 푸른빛이 은은하게 번지는 길거리.

잿빛 소녀는 노란 사신에게 살포시 웃어주며,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잿빛 소녀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이 서로 이야기하는 마지막 날일지도 몰라.’

어쩐지 오늘이 노란 사신과 함께하는 마지막 날이 될 것만 같은 서글픈 예감이 들었다.

분명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서 가고 있는 것일 텐데….

하지만 그런 슬픈 생각을 떨쳐내려는 듯, 소녀는 즐겁고 가벼운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진지한 이야기를 해버리면, 정말 마지막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으니까.

가족과 학교, 그리고 노란 사신과 함께했던 즐거웠던 시간에 대해 말하면서도, 소녀의 의지에는 애잔한 감정이 묻어났다.

‘그러고 보니, 이제 노란 사신이가 발하는 의지를 알아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더욱더 오브젝트에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점점 오브젝트에 가까워지고 있는 자기 모습에 대한 생각도 소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괜찮아.’

노란 사신은 잿빛 소녀의 불안감을 느낀 건지, 소녀의 뺨을 토닥이며 의지를 전해왔다.

그런 의지를 전해주는 노란 사신은 언제나처럼 쭈글쭈글 소심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란 사신을 자주 봐온 잿빛 소녀는 눈치챌 수 있었다.

저 표정이 최대한 자신만만해 보이려고 노력한 결과인 것을 말이다.

아파트 단지로 다가갈수록 잿빛 소녀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노란 사신이 절대 잃어버리지 말라고 당부했던 ‘인형’을 꼭 껴안은 채, 소녀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슬픔을 억누르려 애썼다.

평범한 인형일 뿐이었지만, 노란 사신에게 받은 그 선물은 소녀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다.

‘절대로. 절대로 손에서 놓지 않을게.’

여전히 잿빛 소녀는 노란 사신과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순간인 것 같기도 했다.

새벽빛에 푸르스름하게 물든 거리를 걸으며, 잿빛 소녀는 노란 사신과의 마지막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

한 오래된 존재가 그가 버틴 시간만큼이나 오래된 꿈을 꾸고 있었다.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들에게 휩쓸려 죽어가던 시대.

그런 기이한 현상에 현혹되어, 옥을 통해 그것들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연금술사’들이 있던 시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검은 거인이 그 모든 것을 끝내버린 시대였다.

그때 한 남자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시대의 흐름에 의해 모두 사라져 버린 ‘연금술사’도 되지 못했고, 검은 거인을 신으로 섬기지도 못한 남자의 커다란 소망이었다.

‘검은 거인을, 신을 닮고 싶다.’

인간의 염원을 먹고.

손짓만으로 공간을 짓이기고.

세상의 운명을 자유롭게 주무르고.

바라는 것을 모두 현상으로 만들어 내는.

남자는 그런 신으로 향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세계가 망해버리더라도, 계속.

그 남자의 눈에는 아직도 보이는 것만 같았다.

검은 거인이 남자를 향해 내뻗은 거대한 손아귀의 그림자가.

[….]

그리고 오래된 남자는 끝없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꿈….]

꿈 같은 것은 잃어버린 지 오래인 줄 알았건만….

그때 남자의 영역 안으로 노란 사신과 석고 인형 하나가 걸어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는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일은 전부 생생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석고 인형은 노란 사신에게 꿈속에서 봤던 장면을 세세히 묘사하며, 아파트 단지의 중심을 향하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꿈속에서 봤던 그 장소야.’

그렇게 석고 인형은 남자가 의도한 대로 노란 사신을 남자의 곁으로 인도하는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 사신과 석고 인형은 종착지, 중앙 건물에 도착했다.

‘그럼, 들어갈게.’

석고 인형은 잔뜩 긴장한 것 같은 느낌으로, 건물의 유리문을 천천히 밀어내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기름칠이 되지 않은 것처럼 스산하게 울리는 문소리.

석고 인형과 노란 사신이 도착한 건물 내부에는 하얗게 빛나는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야. 꿈속에서 여기를 왔었어.’

석고 인형은 마치 홀린 것처럼 중얼거리면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하얗게 빛나는 모래를 밟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얀 모래사장에는 구덩이가 잔뜩 파여 있었다.

마치 묫자리를 파놓은 것 같은 직사각형의 구덩이.

그리고 그 구덩이 안에는 미라처럼 바짝 마른 사람들이 한 명씩 들어있었다.

그렇게 노란 사신과 석고 인형은 구덩이를 하나씩 확인하며, 점점 모래사장 깊숙이 들어갔다.

[이 정도면 괜찮겠군.]

남자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모래사장 속에서 수많은 석고 인형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철사와 석고를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인형들은 일제히 노란 사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석고 인형들의 습격은 노란 사신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노란 사신이 손을 흔들자, 미니 사신 인형 옷들이 잔뜩 튀어나와 버렸으니까.

안에 미니 사신이 없는데도, 저절로 꾸물꾸물 움직이는 인형 옷들이었다.

원본 미니 사신보다는 못하더라도, 충분히 강력한 인형 옷들이었다.

[역시 이 정도로는 붙잡지 못하는가.]

남자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움직이려고 생각하자, 이미 노란 사신이 있는 모래사장 위에 서 있었다.

***

노란 사신이 갑자기 달려든 석고 인형들을 모두 처리하는 순간,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이 정도로는 붙잡지 못하는가.]

잿빛 소녀가 고개를 돌리자, 하얗고 붉은 무언가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로써 신을 향할 마지막 퍼즐 조각이 내 손아귀에 들어왔도다.]

오래되어 보이는 하얀색 로브.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핏물처럼 흘러내리는 붉은 색.

검게 물든 두 팔.

그리고 머리 위에 얹어진 깨진 헤일로.

그 기괴한 모습은 밝은 모래사장에서인데도 불구하고, 한없이 어둡게 보였다.

‘강한 오브젝트!’

노란 사신은 격렬한 의지를 토해내며, 인형 옷의 대군을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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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모래사장을 가득 채울 정도의 대군이었다.

[….]

그 모습을 본 하얀 오브젝트가 말없이 한쪽 손을 천천히 펼치자, 주변의 공기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그의 손 주위로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그리고 그가 손을 꽉 움켜쥐는 순간, 허공에 검은색 구체가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점에 불과했던 그것은 순식간에 팽창하더니,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공기는 물론 빛마저도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검은 구체를 중심으로 공간 자체가 뒤틀리고 찌그러지고 있었다.

우드드득.

인형 옷들은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마치 폭풍에 휩쓸린 배처럼 허우적거리며 검은 구체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인형 옷들은 각자의 능력을 사용해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공간의 왜곡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텅 비어버린 공간만이 남았다.

‘????’

그것을 본 노란 사신은 굉장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가짜!’

그리고 노란 사신은 분노를 토해내며, 인형 옷들을 더욱 불러냈지만….

그 순간 하얀 오브젝트의 부서진 검은 헤일로가 마치 살아있는 듯 맥동하며 강렬한 빛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부서진 헤일로의 가장자리는 불규칙적으로 요동치며 주변의 공기를 일렁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부서진 헤일로의 파편이 완전한 헤일로의 형상을 이루자, 검은색 빛의 기둥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된 검은 섬광은 점점 그 크기를 키우더니, 사방을 가득 채워버렸다.

살이 에이는 것 같은 한기.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진동.

세상을 그림자 속에 가둬버릴 것 같은 섬광.

그리고 그 섬광이 사라지자, 모든 인형 옷이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강한… 엄마 빔?’

노란 사신은 헤일로에서 뿜어져 나온 섬광을 보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하얀 오브젝트가 노란 사신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마치 검은 구체를 만들었던 때처럼 압도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하얀 오브젝트는 주변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공간이 흔들리더니 서서히 뒤틀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노란 사신을 향해 소용돌이치며 그대로 집어삼켜 버렸다.

그렇게 끝없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하얀 오브젝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는 잿빛 소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잘했다. 이제 네가 원했던 꿈을 더 꾸도록 해라.]

그 순간, 잿빛 소녀의 정신은 TV 화면이 꺼지는 것처럼 끊어져 버렸다.

***

이른 새벽, 황금 사신들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그 시각.

나는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버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은은하게 점멸하는 황금 사신들과 작은 ‘삐-‘ 소리를 내며 잠든 검은 사신들이 보였다.

‘흠.’

뭔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에서 깨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뭘까?

평소에 안 쓰던 머리를 열심히 굴려 가며, 곰곰이 생각해 내려고 노력했다.

황금 사신이 잠든 사이에 ‘미니 토끼 꼬치’ 만들기?

해보고 싶긴 한데, 아닌 것 같아.

꽤 오래전에 봤던 하늘을 관통하고 날아가는 황금색 혜성 찾기?

잊고 있었는데, 이것도 아닌 것 같아.

‘아!’

그 순간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노란 사신에게 미니 사신용 티라노 인형 옷을 만들어달라고 해야겠군.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된 것은 미니 사신들이 티라노 모양으로 뚜방뚜방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라는 신의 계시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트리케라톱스 하얀 아귀들을 마구 뜯어먹는 놀이를 하자고 하면 아주 즐거울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을 해결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뚜방뚜방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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