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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15

노란 사신과 석고 인형이 사라져 버린,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

마치 태양처럼 하얗게 타오르는 모래사장에 움직이는 자는 아무도 남지 않아, 적막이 내려앉았다.

오직 ‘오래된 자’만이 홀로 서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정말 오랜 세월 끝에 결실을 보게 된 ‘오래된 자’는 밀려드는 환희에 휩쓸려 버렸다.

[정말 오래 걸렸군.]

오래된 자는 검게 물든 손아귀를 내려다보며, 자신이 흘려보낸 수많은 세월을 떠올리고 있었다.

검게 물든 세계.

신을 닮았지만, 전혀 다른 검은색 점액이 가득한 땅.

수천 년을 헤맨 끝에, 신에 닿는 길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세계가 멸망 직전이었다.

이제서야 신으로 향하는 길을 알아냈는데, 멸망이라니.

역시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포기하려던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야말로 운명의 인도.

사각사각.

생각에 잠긴 오래된 자는 모래사장을 천천히 걸어 구덩이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멸망한 세계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재료는 ‘인간’이었지만, 이 새로운 세계는 인간이 바퀴벌레만큼이나 많았으니까.

‘역시 외신의 영향이 없는 세계의 인간은 이토록 번창하는가.’

가장 신경 쓴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붉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외신.

두 번째는 이 세계에서 ‘회색 사신’이라고 불리는 ‘신’이었다.

외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래된 자’가 다루는 모든 ‘인형’들은 인간의 단말에 불과했다.

회색 사신과 그 하수인들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 멸망해 가는 세계에 번창했던 한 ‘마도서’를 따라 했다.

‘절대로 인간을 죽이지 않는다.’

회색 사신과 그 하수인들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을 죽이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의 죽음에 민감했으니까.

사회에서 사라질 필요가 있는 인간은 가짜 시체로 사고사 처리한 뒤, 모래사장에 수용했다.

그렇게 수많은 인간을 수집한 끝에, 인간으로부터 ‘힘’을 얻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오래된 자’는 모래사장에 묻힌 마른 인간을 바라보며, 아쉬운 목소리를 흘렸다.

[수많은 사람을 이용했지만, 결국 신과 같은 형태에는 닿지 못했지.]

아무리 해도 신과 같은 힘, 제대로 된 ‘장작’에 닿을 수 없었다.

인간을 모래사장에 파묻고 쥐어짜야만, 비슷한 힘을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신의 권속을 손에 넣고, 연구해야 비로소 신에 닿을 수 있겠지.’

역시 신의 힘은 인간의 인지로는 이룰 수 없고, 모방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래된 자는 위험하지만, 필요한 마지막 계획을 실행했다.

일명 ‘노란 사신’ 포획 계획.

다른 미니 사신과 거의 교류를 하지 않는 노란 사신을 유인해서 잡아들이는 계획이었다.

이제 노란 사신을 손에 넣었으니, 신으로 향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셈이었다.

진정한 ‘장작’을 손에 넣을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자’는 연구보다는 이곳을 떠나는 것을 우선시했다.

비록 위장은 완벽했지만, 언제 회색 사신이 나타날지 모르는 일.

만에 하나 일어날지도 모르는 문제를 무시할 순 없었다.

노란 사신을 이용해서 신에 닿는 일은 안전해진 뒤의 일이다.

오래된 자는 양손을 펼치고, 천천히 모래사장을 자신의 내부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천천히.

***

삐이이-

이른 새벽에 들리는 청명한 새의 울음소리.

잿빛 소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흐아암.”

졸린 것처럼 하품하며 소녀가 눈을 뜨자 익숙한 방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어젯밤에는 제시간에 잠들었을 텐데, 이상하게 졸음이 쏟아졌다.

고개를 흔들며 애써 졸음을 떨쳐내고, 잿빛 소녀는 천천히 창문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잿빛 소녀는 창문의 손잡이에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 순간, 손끝에서 뭔가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의아해하며 손을 내려다보자, 자신의 손에 쥐어진 작은 물건이 보였다.

“이게 뭐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손안에는 낡고 허름한 옷을 입은 작은 소녀 인형이 놓여 있었다.

인형의 모습은 마치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 같았다.

잿빛 소녀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굉장히 소중한 보물을 발견한 것만 같았다.

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녀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졌다.

가슴 한편이 절절하게 아려왔다.

“나를 본뜬… 인형?”

작은 인형을 감싸 쥔 채, 소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순간, 머릿속을 가득 메운 강렬한 고통에 소녀는 비명을 질렀다.

견디다 못한 소녀의 몸이 축 늘어지며,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그렇게 쓰러지는 동안에도 소녀는 인형을 놓지 않았다.

손안의 인형에서 전해지는 묘한 온기가, 마치 위로라도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형에 감춰진 수수께끼 같은 기억의 실마리를 찾기라도 하듯, 소녀는 그 작은 온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

따스한 햇살이 소녀의 얼굴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으음….

잿빛 소녀는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리려다가, 깜짝 놀라 상체를 세웠다.

“학교!”

이미 늦은 아침의 햇살이 내리쬐는 방안, 잿빛 소녀의 머릿결을 천천히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좀 더 누워서 쉬어.”

시선을 돌리자, 상냥하게 웃는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언니?”

잿빛 소녀는 이상하게도 ‘언니’의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언니는 잿빛 소녀에게 갑자기 쓰러져서 놀랐다는 둥,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잿빛 소녀는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상한 기억의 조각들이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슬픈 감정.

매캐한 향냄새.

사각형의 액자.

그리고 액자 안에서 환하게 웃는 언니의 얼굴.

절대로 깨달아서는 안 되는 기억 같아서, 소녀는 고개를 강하게 도리도리 흔들며 기억을 흩어버렸다.

“아니, 일어날 거야.”

소녀는 천천히 이불을 치워내며 일어났다.

그때,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자, 자기 오른손에 단단히 움켜쥔 작은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잿빛 머리카락을 한 소녀 인형이었다.

눈으로 다시 보기 전까지 잊었던.

어느새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던 그 인형이었다.

‘싫어. 떠올리고 싶지 않아.’

목소리에는 공포에 질린 듯한 떨림이 묻어났다.

소녀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인형을 붙잡고 있는 손에서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손가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세게 죄어들어 갔다.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손끝에서부터 전해졌다.

‘언니….’

그 순간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처럼 소녀의 머릿속이 뒤엉켰다.

눈앞이 흐려지고, 귀가 먹먹해졌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아픔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소녀는 이내 축 늘어졌다.

의식이 스러져 가는 찰나의 순간에도, 소녀의 손은 단단히 쥐어진 채였다.

인형에 깃든 기억을 향한 열쇠를 절대 놓을 수 없기라도 한 듯이.

***

소녀는 눈을 떴다.

굉장히 슬픈 꿈을 꾼 것 같았다.

슬픈 울음소리와 액자가 나오는 꿈이었다.

벽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바람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잿빛 소녀는 진실을 깨달았다.

소녀는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

아니, 소녀는 정신을 잃고 싶었다.

‘미안해, 언니.’

다시 눈을 뜬 석고 인형은 마음속으로 작게 사과하며, 뼈대만 남은 침대에서 일어섰다.

석고 인형은 자신의 의지로 한 걸음, 걸어 나갔다.

그러자 석고 인형의 몸을 유지 시켜주는 무언가와의 연결이 끊어져 버렸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왼쪽 팔이 완전히 부스러졌다.

‘가짜 집’이 앙상한 골격을 드러냈다.

다시 한 걸음, 더 걸어 나갔다.

몸을 지지해 주고 있던 오른쪽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가짜 가족’이 그 본모습을 드러냈다.

바닥에 엎어진 채, 조금씩 기어 나갔다.

‘가짜 자신’이 그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얼굴의 반이 부스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아프지 않아.

‘가야 해.’

‘친구를 구해줘야 해.’

석고 인형은 자신의 의지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

장난감을 구하기 위한 ‘노란 사신 찾기’는 사건으로 발전해 버렸다.

‘노란 사신이 사라졌어.’

아무리 찾아도 노란 사신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니 사신을 느끼는 내 감각은 지구 전역을 아우르는데도 말이다.

미니 사신들에게 묻고 물어서 노란 사신의 비밀 아지트도 발견했지만, 그곳에도 노란 사신은 보이지 않았다.

아지트에 남겨진 유일한 단서는 강력한 정신 오염을 품은 잡동사니들.

그리고 그 잡동사니들이 발견된 매우 수상한 아파트 단지.

뼈대를 드러낸 건물.

흩날리는 검은 먼지.

그리고 그 안을 돌아다니는 석고 인형들.

밤에 오면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장소였다.

‘그래서 이런 수상한 곳을 그냥 내버려 두자고 판단했다고?’

나는 분노를 담아, 의지를 뿜어내며 황금 사신을 입에 넣고 마구 씹고 있었다.

‘앙대!’

‘으앙!’

그렇게 아파트 단지로 뚜방뚜방 걸어 들어가며 황금 사신들을 단죄하고 있자, 기묘한 석고 인형이 천천히 기어 오고 있었다.

그 석고 인형은 얼굴은 온데간데없었고, 왼팔마저 어깨에서 떨어져 나간 처참한 상태였다.

게다가 양발마저도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석고 인형은 멈추지 않고 필사적으로 기어 왔다.

다른 석고 인형들은 그 존재를 눈치채지도 못했다.

석고 인형은 나를 발견하더니, 오른손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그 손에는 잿빛 머리카락의 잘 만들어진 인형 하나가 꽉 쥐어져 있었다.

그 인형은 노란 사신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쓰러진 석고 인형을 향해 몸을 숙였다.

그러자 석고 인형에게서 희미한 의지가 새어 나왔다.

‘드디어 찾았어.’

오랜 시간 먼 길을 지나온 듯한 기쁨과 안도감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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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러나 힘겹게 석고 인형은 팔을 뻗어 인형을 내밀었다.

내가 그 인형을 받자, 깊은 한숨과 같은 의지를 내뱉었다.

‘이제 전부 끝났어….’

마지막 임무를 완수한 듯 평온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석고 인형의 몸이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모래성이 무너지듯 조각조각 흩어져 사라졌다.

바람에 자욱이 흩날리는 재처럼, 허공으로 스며들어 갔다.

‘….’

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잿빛 머리카락을 한 인형을 내려다보았다.

얼핏 보기엔 오브젝트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인형.

그 인형에서는 나와 연결된 오브젝트가 아니라면 절대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작고 희미한 연결 고리가 느껴졌다.

그 희미한 연결은 수많은 공간의 틈새 중 한 곳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거기 있었구나.’

나는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그 자리에서 공간을 찢어버렸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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