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5
기말학 시험 6일 째의 점심 무렵.
여기저기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는 데에도 익숙해진 나는 여느 때처럼 식당 구석에 앉아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노골적인 시선을 받을 때는 솔직히 좀 긴장을 했었어.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사는 거야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쳐다봐 진적은 거의 없었거든.
보통은 나한테 시비 걸릴까봐 다들 피하고만 다녔으니까.
근데 생각을 해보니까 쳐다본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더라고.
결국 다른 녀석들은 날 노려보기만 할 뿐 따로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고 들으라는 듯 악담을 퍼붓는 것도 아니고 얼마 전 평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악질적인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동물원의 짐승을 보듯 날 구경하기만 하는 건데 저기에 신경 쓸 이유가 있나 싶더라.
그래서 볼 테면 보라 내버려두기로 했지.
혹시 알아? 어쨌든 간에 내 겉모습만큼은 꽤 괜찮으니까 가만 노려보다가 어느 순간 미운 정이 들어버릴지?
어느 스마트폰 게임에서 유행하던 말처럼 ‘그래서 어쩌라고. 난 예쁘잖아?’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거잖아.
스스로 자뻑하듯 저런 말을 하는 걸 상상해봤더니 좀 속이 메스꺼워졌지만 내가 다른 녀석들을 도발할 때 비슷한 말을 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더 속이 메스꺼워지네.
다른 생각하자. 다른 생각.
좋은 것들도 많잖아.
예를 들어서 오늘로 내 아카데미 기말 시험이 끝났다는 거라던가.
아카데미의 시험은 보통 일주일에 걸쳐서 진행되는 데 각 학생마다 치러야 할 과목이 다르기 때문에 시험기간의 끝도 학생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나 같은 경우에는 오늘 오전에 치른 역사학 시험으로 끝.
할배가 이건 내가 아는 역사와 다르다면서 이것저것 훈수를 뒀지만 난 그 모든 훈수를 무시하고 로그 기능에 기록된 것만을 믿었다.
지난 번 파트란 축제에서 호되게 당했는데 할배 말을 어떻게 믿어?
시험에서 물어보는 건 진짜 역사가 아니라 역사책에 적힌 역사라고!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의 생생한 증언 따위는 필요치 않아!
<아니. 말이 안 되지 않으냐! 그 겁쟁이 녀석에게 어찌 냉철왕 따위의 별명이 붙을 수 있지?! 할 줄 아는 거라곤 부하에게 떠넘기고 도망치는 것밖에 없던 쓰레기가 그 놈이었거늘!>
역사학 시험에 발작버튼이 눌린 듯 여태까지도 투덜투덜거리고 있는 할배의 말을 흘려 듣고 있으려니 저 멀리에서 종업원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아. 드디어 나왔네.
내가 주문한 아카데미 특제 크림 파스타가.
멀리서 봐도 먹음직스러워 보이네.
흐흐흫. 벌써 맛이 상상이 된다.
면을 포크에 감아서 한 입에 베어 물면 꾸덕꾸덕한 크림이 입 안에 가득차서 고소한 맛이.
“잠시 실례해도 괜찮겠습니까. 알른 영애?”
파스타의 맛을 상상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내 앞을 가렸다.
도대체 누구야? 어떤 건방진 자식이 내 즐거운 상상을 가로 막은 거지?
미간을 찌푸린 채 얼굴을 들었더니 거기엔 아예 초면인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얘 누구?
교복을 보면 아카데미 2학년 학생인 거 같긴 한데.
완전 처음 보는 얼굴인 걸 보면 게임 속에 언급도 안 되던 엑스트라 중 하나겠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그 놈 주변에 다른 학생들 몇이 더 있는 걸 보고 턱을 괴었다.
날 알지도 못하는 녀석들이 무리를 지어서 나한테 말을 걸러 왔다면 그 이유는 하나뿐이다.
이 새끼들 백 퍼센트 나한테 시비 걸러 온 거야.
‘아뇨. 안 괜찮은데요.’
“말을 하기 전에 한 번 생각을 해보는 게 어때? 너 같은 허접 쓰레기가 나처럼 고귀한 사람의 시간을 뺏어도 될 리가 없잖아?”
얌전히 꺼지라는 말과 함께 손을 휘휘 내저었더니 맨 앞에 서 있는 녀석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다.
아직 제대로 된 도발도 안 했는데 벌써 부들거리더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조절이 이렇게 안 되는 걸 보면 그리 대단한 녀석은 아닐 듯 해.
“그러지 말고 잠시 시간을 내어 주시죠. 중요한 내용입니다.”
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면 적당히 때려눕힌 다음에 신경을 꺼버렸을 텐데 지금은 시선이 너무도 많다.
아카데미 식당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이 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안 그래도 던전학 시험 때문에 평판이 바닥을 찍고 있는데 여기에서 과격한 행동을 했다간 그게 어떤 괴악한 소문으로 뒤바뀔지 몰라.
그러니 명백한 명분을 만들자. 저 녀석이 먼저 주먹을 휘두르게 만드는 걸로.
팔짱을 끼고서 몸을 뒤로 물린 걸 이야기를 들어주겠단 신호로 알아들은 것인지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은 엑스트라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감사드립니다. 저는…”
“저기♡ 사람인지 마물인지 구분이 안 되는 허접 들러리♡ 부탁을 하는 사람치고는 시선이 너무 높은 거 같지 않아?♡ 천하게 생겼다고 행동까지 천하면 곤란해?♡”
“죄송합니다.”
“그럼 죄송해야지♡ 나처럼 착하고 귀여운 사람이 아니었다면 크게 혼났을 거라구?♡”
빈정거리는 목소리에 입술을 꾹 깨문 녀석은 실례한다는 말과 함께 의자에 앉으려고 했다.
시선을 맞추라는 말을 합석하라는 말로 이해한 건가.
“누가 앉는 걸 허락한다 그랬어?♡”
“…예?”
“사람이 아니라 동물처럼 생긴 너잖아?♡ 그럼 네가 있을 자리도 동물이 있어야 할 자리지♡ 안 그래?♡”
눈짓으로 바닥을 가리켰더니 얼굴이 벌개진 엑스트라가 자신의 주먹을 꼭 쥔다.
거기에 더해 노골적인 무시에 화가 난 듯 그와 함께 온 떨거지들이 이런저런 소리를 내는 걸 보아 조금만 더 긁으면 누구 하나 터지겠네.
“싫어?♡ 여자애 하나 괴롭히려고 무리를 지은 쓰레기한테 자존심이 있을 줄이야~♡ 정말 놀랍네~♡”
“저희는 그런 것이.”
“됐고♡ 어디 한 번 지껄여봐♡ 짐승 새끼가 어떤 울음소리를 낼지 궁금하니까♡”
“…저희가 영애를 찾아뵙고자 한 것은 이번 던전학 시험에 대해 여쭈어 볼 것이 있어서입니다.”
하.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온 건가 했더니 던전 관련된 부분이야?
뭔데. 너무 어렵다고 징징대러 온 거야?
그럼 힌트를 보면 되잖아. 거기에 적힌 어휘가 이상하기는 해도 내용 자체는 무척 정상적인.
“그 던전. 정말 공략 가능한 장소인 겁니까?”
…뭐?
“현재 선두에 서 계신 분들께서 하루 종일 공략을 시도하고 있음에도 5층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초부터 공략을 하게 해 줄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닙니까? 보상을 내어주기 싫어서…”
“푸흫♡ 푸핳♡ 푸하하하핳♡”
이 새끼가 지금 하고 싶어 하는 말은 그거지?
보상을 주기 아까워서 애초에 공략할 수 없는 던전을 만든 거 아니냐고.
그냥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희망고문만 할 생각 아니었냐고.
하. 씨발. 어이가 없네.
그냥 적당히 겁 줘서 쫓아버릴 생각이었는데 너넨 안 되겠다.
감히 이 썩은물의 자존심을 건드리다니.
“영애? 지금 제 이야기를.”
“닥쳐♡ 네 역겨운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구역질이 날 것 같으니까♡”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발을 움직여 쓰레기 자식의 앞에 섰다.
키가 작으니까 이럴 때 참 불편해. 누구의 앞에 서더라도 항상 올려다볼 수밖에 없으니까.
시선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이 상대를 무릎 꿇게 만들어야 하잖아?
“…알른 영애?”
날 부르는 목소리에 싱긋 웃는 걸로 대답을 해 준 나는 녀석의 발목을 걷어차는 것으로 녀석의 시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내 주었다.
으음. 역시 쓰레기는 바닥에 있어야 잘 어울린다니까.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저희는 단지!…”
“닥~쳐♡ 방금 내 말 못 들었어?♡ 돼지들이 꿀꿀거리는 거 듣기 싫다니까?♡”
분명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 줬는데 왜 이해를 못 하는 거지?
얼빠 여우한테 부탁해서 짐승 울음소리라도 배워야하나?
진심으로 의아해서 고갤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바닥에 나자빠졌던 쓰레기가 걷어차인 다리를 절뚝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영애께서 이렇게 나오시면 저희도!”
“해봐♡”
“…예?”
“해보라고♡”
덤벼. 너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내가 온 정성을 담아 만든 던전을 트롤 던전 취급하는 지 보게.
맨 앞에 선 녀석을 깔보듯 바라보며 덤비길 기다렸지만 쓰레기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필 뿐 누구 하나 먼저 나서지 않았다.
아카데미 2학년이라는 것들이 1학년한테. 그것도 자기들 허리춤을 간신히 넘는 여자애 하나한테 쫄아서 못 나서는 게 말이 돼?
더 열 받는 건 이딴 쓰레기들이 내가 만든 던전을 의심했다는 거야!
그럴 자격이 있는 애들, 최소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이거 깰 수 있는 거 맞냐고 물어봤다면 웃으면서 대답을 해줬을 거야.
걔네들은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근데 선두는커녕 순위권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들어가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을 패배자들 따위가 자기들의 무능을 내 던전 탓으로 돌리려 하다니!
“자그마한 여자애한테 겁 먹은 쫄보들♡ 처발리는 게 무서워서 부들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허접들♡ 허접 교수는 무서우니까 엄마~하면서 만만한 여자애한테 달려 온 쓰레기들♡”
“…”
“푸하하핳♡ 화났어?♡ 그래서 어쩔 건데?♡ 때릴 수 있어?♡ 못 하잖아?♡ 나한테 매도당하는 거 말고 아무것도 못 하잖아?♡ 응?♡”
“…적당히.”
“아아♡ 알겠다♡ 나한테 매도 듣고 싶어서 일부러 시비걸러 온 거구나?♡ 으~♡ 역겨운 페도 변태 마조 새끼들♡ 제발 좀 꺼져줄래?♡ 너네랑 말 섞다가 나도 이상한 게 옮아버릴 것 같♡…”
정면에서 도발을 당하던 녀석이 이를 악문 채 주먹을 치켜 든다.
주먹에 솟은 혈관을 보면 알 수 있듯 저 주먹에는 이 쓰레기의 전력이 담겨 있다.
근데 진심이 담겨 있으면 뭐해. 이렇게 느려 터졌는데.
손목을 잡는 것으로 주먹을 멈춘 나는 그대로 팔을 비틀어버렸다.
쓰레기는 저항해보려고 했지만 근력의 차이가 너무도 심했기에 그 저항은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했다.
“끄아아악!”
별로 세게 비틀지도 않았는데 엄살은.
이건 허접이라고 부르는 게 아까울 정도네.
귀 아프게 땍땍거리는 것이 짜증나서 콧대를 후려치는 것으로 입을 다물게 만든 나는 그 옆에서 공격을 준비하던 녀석의 명치를 후려쳐 넘어트린 후 옆으로 고갤 돌렸다.
거기엔 나를 덮치기 위해 달려드는 덩치 하나가 있었다.
허리를 붙잡은 후 무게로 짓누르려는 건가?
판단이 틀렸다고는 안 하겠는데 말야.
그렇게 티나게 달려오면 누가 거기에 당해주겠냐?
턱을 걷어차는 것으로 덩치를 제압한 나는 앞으로 고꾸라진 녀석의 머리를 툭 걷어차 준 후에 주변을 살폈다.
한심한 쫄보 새끼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나한테 시비를 걸러 온 거지?
내 악명을 모르나? 그럴 리가 없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쓰레기 대표에게로 향한 나는 그 입을 짓밟는 걸로 죄송하니 뭐니 지껄이는 것을 차단한 후에 말을 이었다.
“처음 했던 질문에 대답해줄게♡ 거긴 당연히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이야♡ 그것도 어떻게 2학년이 된 건지 의심스러운 너희 허~접들조차도 공략할 수 있게 만든 곳이라구♡”
마침 잘 됐네.
안 그래도 던전을 공략하는 걸 보면서 많이 답답했었는데.
“내가 직접 보여줄게♡ 너희들이 얼마나 멍청했는지♡ 너네들의 수준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수치심에 부들부들 떨다가 죽고 싶어질 정도로 세심하게 알려주도록 할게♡ 아아~♡ 난 정말 착하다니까?♡ 그치?”
내 발에 입을 짓밟힌 녀석을 바라보며 물었더니 그 쓰레기가 필사적으로 고갤 주억거렸다.
이 정도면 이 짐승 새끼들도 내 말을 이해한 것 같으니 여기까지 할까.
쓰레기 대표의 턱을 걷어차는 것으로 녀석을 기절시킨 나는 옆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던 종업원에게서 접시를 빼앗듯 가져왔다.
으엑. 면이 다 불어버렸잖아. 정말 기대하고 있던 건데.
…아. 이거 보니까 더 열 받네. 몇 놈 더 패서 스트레스 해소를.
“하아.”
뭐야.
또 누구 나한테 시비 걸고 싶은 사람 있어?
이번엔 좀 때리는 맛 있는 샌드백이길 바라며 고갤 돌린 나는 그 곳에서 이마를 짚고 있는 던전학 교수를 보곤 그대로 멈춰버렸다.
“알른 영애?”
“…네헷?!♡”
“저희 이야기 좀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