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8
기말학 시험 던전의 마지막 층.
아카데미 던전의 기록을 활용해 보스룸 앞에 도달한 아서 일행은 여태까지 수도 없이 반복했던 것처럼 각자 전투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시도를 할 때마다 이런 저런 것을 바꿔가며 최적의 방향을 찾아내려 했던 이들이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런 논의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이미 아서 일행은 최적의 준비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낸 채였으니까.
그런 준비과정의 한 가운데에서 아서는 이 던전에 들어오기 전 조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마지막 마법을 공략할 수 없다면 애초에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면 돼요!’
그녀가 신이 나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서는 그것이 진실로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을 지녔다.
타인이 만들어낸 마법진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일지언데 작금의 우리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존재하는 이의 마법진에 개입해 그것을 흩어 버리겠다니.
마법학 수업을 들으며 관련 내용을 배운 아서는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 알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3왕자님. 여태까지 그 마법진을 몇 번이고 이 눈에 새겼으니까요. 이미 그 마법진의 구성을 각인했으니 거기에 개입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요.’
허나 조이는 아서의 의구심을 앞에 두고서도 당당했다. 자신이 실패할 것이라 조금도 생각지 않는 당당함에도 아서는 오히려 더욱 불안해질 뿐이었다.
보통 조이가 어깨를 필 때는 무언가 괴상한 실수와 함께 처참한 실패를 맞이하곤 하니까.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한 아서는 다급히 조이를 만류하려 했지만.
‘뭣보다 설령 실패가 예정되어 있더라도 그게 도전하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잖아요?’
그녀가 덧붙인 말을 듣고서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가 무한한 이상 예정된 실패는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도전을 하지 않는 쪽이 이상하다. 단서라는 것은 도전의 끝에 마주하게 되는 것이라고 이 던전을 통해 루시 알른이 알려주지 않았던가.
‘그래. 한 번 해보지.’
‘…저. 도전을 위해 한 가지 부탁을 드릴 것이 있습니다. 혹여 저 없이 5층의 보스를 마지막까지 몰아붙여 주실 수 있을까요?’
아서는 그 말을 떠올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가능할까.”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내 일단 답을 해놓긴 했다만 진짜 가능할지는 모르겠군. 5층의 보스는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목을 주무르던 아서는 어느새 옆에 다가온 프레이가 소매를 잡아 당기기에 그 쪽으로 고갤 돌렸다.
“왕자님.”
“뭐냐.”
“이번에는 나 마음대로 움직일게.”
“…그대가 언제 내 말을 들었다고 그러는가.”
이전에도 틈만 나면 제멋대로 움직이다가 사고를 치던 녀석이 왜 새삼 마음대로 움직이겠다 그러는지 모르겠군.
“나 마음대로 안 움직였는데?”
“아니. 그게 나름대로 자제를 한 거였다고?”
“응.”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 고갤 갸웃거리는 프레이의 모습에 아서가 살짝 굳어 버렸다.
그게 나름대로 자제를 한 거였다고? 그리고 이제는 그것보다도 더 제멋대로 움직이겠다고?
“우리가 조이 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고 하는 말이겠지?”
“그래서 하는 말이야.”
확신에 가득 차 있는 프레이의 눈을 본 아서는 잠시 고민을 하다 이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프레이라는 사람의 독단적인 행동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이전에 그녀가 지닌 재능 자체는 인정하고 있었다.
루시 알른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독보적인 천재라 여겨졌을 프레이가 이리 이야기를 한다면 무언가 방도가 있는 것일 테지.
만약 무작정 내뱉은 말이라면. 뭐. 나중에 쫓겨난 후에 이 녀석에게 한 마디를 해주면 될 일이니.
“혹여나 싶어 질문 드리는 것입니다만 성녀님께서도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단 생각에 아서가 고개를 돌리자 페이비가 여느 때와 같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3왕자님.”
“예.”
“여유를 가지세요.”
“…예?”
“조이가 있을 땐 왕자님께서 조율을 맡으며 한 발 물러나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이가 없죠.”
이전에 조이가 담당하던 것을 이제는 아서가 해야 한다. 그러니 조율을 신경 쓰기보다는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해줄 것이라 믿고 자신의 일에 집중하라.
“켄트 영애도. 저도. 어떤 상황에서도 한 사람 분을 할 수 있는 인간이니까요.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죠.”
그 이야기를 들은 아서는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여태까지 아서는 모든 것을 자신의 생각대로 이끌어나가려 했다. 그가 옆에서 지켜봤던 루시 알른이 그러했기에.
루시의 방식이 너무도 효율적인 것처럼 보였기에.
아서도 자연스레 그녀의 방식을 따라하게 되었다.
허나 지금은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모두들 서로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데 굳이 아서가 상황을 조율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믿어주세요. 저희를.”
페이비가 아서의 눈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냈고.
“믿겠습니다.”
거기에 화답하듯 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낸다.
그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아서 일행이 해야 할 일은 하나.
5층의 보스를 쓰러트리는 것 뿐.
“시작합시다.”
아서가 5층의 문을 밀어서 열자 그 안에서 스산한 공기와 함께 진창 속에서 흘러나오는 듯 기분 나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의 저택은 어땠나. 나의 추억은 어땠나. 즐거웠는가? 재밌었는가?”
두 팔을 훤히 벌린 폐인이 마력이 담긴 목소리로 가하는 위압은 그 자체로 숨을 막히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서 일행은 그를 앞에 두고서도 태연했다.
처음 저 목소리를 마주했을 때는 굳었을지 몰라도 저를 백번도 넘게 들은 지금은 그저 또 난리를 피운다는 생각을 하게 될 뿐이었다.
“이제는 마지막 장이다. 부디 결말까지도 그대들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온ㄷ…”
무의식중에 버릇처럼 지휘를 하려던 아서였지만 그가 말을 하는 것보다 먼저 프레이가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검에 오러를 두른 그녀는 폐인이 검을 뽑아들기도 전에 그 목을 쳐 날리려 들었다.
허나 폐인은 짐승의 송곳니와 같은 날카로운 공격을 앞에 두고서도 당혹스러워 하지 않았다.
대신 입가에 진득한 웃음을 피운 그는 오러를 두른 손으로 가뿐히 프레이의 공격을 받아냈다.
“성급하다. 극의 배우로써 대사를 할 틈은 내줘야한다 생각하지 않는가?”
“딱히?”
감정 하나 담기지 않은 어투로 폐인의 물음에 답한 프레이는 무감정한 얼굴에서 상상할 수 없는 사나운 검무로 폐인을 몰아붙이려 들었다.
“슬프군. 슬퍼.”
그러던 어느 순간 프레이가 급히 뒤로 물러섰다.
슬프다는 대사.
푸른색으로 물든 눈.
공격을 하라는 듯 대놓고 보인 빈틈.
공격해선 안 되는 기믹이라는 걸 눈치 채고서 한 퇴각.
뭐냐.
혼자 할 수 있었던 거냐.
아서는 그를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여태까지는 저 모습이 나오자마자 아서가 다급히 프레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자신의 공격에 매몰되어 검을 휘두를까 싶어 다급히 목소리를 드높였다.
허나 그 모든 건 사실 할 필요 없는 행동이었다.
프레이는 스스로 그 기믹을 공략할 줄 알았으니까.
이럴 거면 진작에 할 수 있다 말을 해줄 것이지.
아서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주변에 몇 개의 마법진을 그려냈다.
네가 네 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나도 내 할 일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도록 하마.
조이에 비해 마법을 다루는 실력이 부족하다고는 하나 아서 역시 일반적인 규격을 한참 초월한 인간이다.
이미 1학년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버린 아서의 실력은 보스의 기믹을 공략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무대의 색을 바꾸도록 하지!”
폐인이 목소리를 드높임과 동시의 그의 몸 이곳저곳에서 붉은 기운이 맴돈다.
5층의 보스가 지닌 기믹 중 하나.
정해진 시간 내에 특정 부위를 모두 공격해야 하는 패턴.
붉은 기운을 모두 공격하지 못하면 그 즉시 공략자의 목숨을 위협할 마법이 쏘아지지만.
이번에 그 위협은 허투루 돌아갔다.
아서는 저를 보자마자 준비해두었던 마법을 발현했기에.
그의 마법진 중심에서 쏘아진 빗방울 같은 마력탄의 포화가 모든 붉은 색을 가격하며 폐인을 무력화 시킨다.
“좋았어. 왕자님.”
“쓰잘데기 없는 말은 됐으니 네 할 일이나 신경 써라. 프레이.”
“…진짜 성격 나빠.”
“너보단 아니다.”
티격태격거리던 두 사람은 비틀거리던 폐인이 자신의 검을 뽑아들기 무섭게 입을 다물고 각자가 할 일을 찾아서 몸을 움직였다.
그 후에도 아서 일행은 말없이 서로 해야 할 일을 수행했다.
폐인이 저주를 흩뿌리자 페이비가 즉시 그를 정화했다.
녀석이 검을 든 채 돌진하자 프레이가 그를 가로막고 방어전을 펼쳤다.
그리고 그 틈 동안 마법진을 구성한 아서가 화력을 통해 폐인을 쫓아냈다.
그 과정 속에서 상처 입은 프레이를 페이비가 치유해 주었고 그 동안 아서가 앞으로 나서서 틈을 번다.
누구 하나 지휘하는 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유기적인 연계.
물론 조이가 없음에 따라 생겨나는 공백이 없지는 않다.
중앙에서 조율을 맡아주는 이가 없기에 생겨나는 잡음은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아서 일행은 무너지지 않는다.
무너질 것만 같은 다리를 각자의 임기응변으로 억지로 붙들며 성공을 향해 나아갈 뿐.
“흐하하하! 그래! 좋아! 마지막까지 가보자!”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어느 순간 폐인이 웃음과 함께 자신의 주변에 붉은 색의 마력을 흩뿌렸다.
5층의 보스 마지막 패턴.
그 동안 수도 없이 아서 일행을 좌절시켰던 기믹.
도저히 공략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던 재앙.
그것이 구성되는 것을 본 아서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뒤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이!”
이제 네 차례다.
네 녀석이 바라던 대로 여기까지 끌고 와 주었으니 우리의 고생을 무의미하지 않게 만들도록!
아서의 시선을 받아낸 조이는 웃음과 함께 자신의 목에 걸린 붉은 보석을 쥐었다.
얼마 전 루시가 그녀에게 선물해주었던 보석.
지난 기간 동안 꾸준히 마력을 품었기에 이제는 조이가 지닌 비장의 한 수가 된 물건.
가볍게 심호흡을 한 그녀는 자신의 마력을 보석에 밀어넣음과 동시에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망막에 담기는 물리적인 시야는 필요치 않다.
필요한 것은 오롯이 마력을 보는 마법사로써의 눈.
파트란 가문의 영애로써 아주 어릴 때부터 단련 받아 온 감각.
보인다. 나의 마력이.
보인다. 폐인이 지닌 붉은 마력이.
보인다. 저 녀석이 그려내고 있는 그림이.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가 수도 없이 마주했던 마법진이.
이 시점이 올 때까지 내가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저 녀석의 마법이.
내가 기억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마법이!
입꼬리를 끌어올린 조이는 보석에 담긴 마력을 해방함과 동시에 눈을 떴다.
그녀의 청색 눈동자 위에 불의 속성을 담은 주홍색의 마력이 스치고.
그녀가 품고 있던 마력이 주변으로 퍼져나가 폐인의 붉은 마력을 밀어내려 들었고.
조이의 마력과 폐인의 마력이 서로를 향해 날선 이를 드러내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헛되다! 그대 같은 반푼이가 날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귀족의 지위를 지녔으면서 자기 관리도 못 하는 게으름뱅이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니군요!”
약간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버릴 상황 속에서. 조이의 입꼬리에 스민 웃음이 한 층 더 기세를 더했다.
죄송하지만 전 지지 않을 겁니다!
다른 분들이 기적을 일으켜 저를 여기까지 데리고 와 줬는데 실패할 순 없다고요!
그랬다간 왕자님이고 페이비고 켄트 영애고 간에 저한테 잔뜩 핀잔을 던질 게 뻔하니까!
그러니 제 성공을 위한 제물이 되도록 하세요!
귀족이라는 호칭조차 아까운 게으름뱅이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