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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25

거대한 석상이 있는 건물 내부.

분홍 소녀는 석상 밑에 새겨진 뭔가 의미심장한 글귀를 읽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글귀를 만지작거렸다.

“이거 왠지 최근에 파낸 흔적 같지 않아?”

분홍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푸른 사신 방향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손끝을 맞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흔적이 날카롭고, 돌가루가 아직도 꽤 남아 있어.”

<?>

푸른 사신은 조금 흥분한 것처럼 마구 떠드는 애착 인간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있었던 거 같아. 그 사람들도 위 계층으로 향했겠지?”

분홍 소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살짝 혼란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떡하지?”

“사람들을 만나면 뭘 해야 해?”

“할아버지 말고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푸른 사신은 어쩐지 조금 설레는 것 같으면서도 불안해하는 애착 인간을 향해 살짝 웃어주었다.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황금 사신이 하던 것처럼 양 주먹을 꾹 쥐고, 문자열을 날려 보냈다.

그 모습이 조금 어색해 보여서, 분홍 소녀는 작게 웃었다.

분홍 소녀는 푸른 사신을 어깨 위에 올리고, 커다란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계층을 잇는 탑 방향으로 계속.

뚜벅뚜벅.

아무도 없는 새하얀 복도에 분홍 소녀의 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지구에 있던 공원처럼, 많은 유동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커다란 복도.

너무 넓게 만들어진 복도를 둘이 걷고 있어서 그런지, 푸른 사신은 이 복도가 굉장히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푸른 사신의 눈에 뭔가가 얼핏 움직이는 게 보였다.

스르륵.

복도에 잔뜩 장식된 석상 중 하나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눈동자를 돌려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깜짝 놀란 푸른 사신은 허둥지둥 분홍 소녀의 뺨을 마구 때리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분홍 소녀가 푸른 사신의 부름에 따라 고개를 돌리자, 석상이 눈을 도록도록 굴려서 소녀를 바라보았다.

“!!!”

깜짝 놀란 분홍 소녀는 푸른 사신을 품에 꼭 안고, 복도를 마구 뛰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하얀 벽과 검은 석상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계단과 복도를 지나자, 커다란 건물의 옥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느새 하늘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옥상 너머로 물이 가득한 계층의 전경이 내려다보이고 있었다.

분홍 소녀는 옥상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정돈했다.

“도대체 뭐였던 걸까? 쫓아오지 않은 걸 보면 별로 위험한 건 아니었나 봐.”

분홍 소녀는 숨을 몰아쉬면서 히히 웃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계층의 전경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하늘 장막 사이로 보이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

빛 한 점 없어서 밤의 색에 물든 건물들.

그리고 그 건물들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잔잔한 수면을 이루는 맑은 물.

“하늘이 두 개로 보여.”

하늘에 가득한 별빛이 물 위에 똑같이 비춰서, 별하늘 사이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첨벙.

그때 물 위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 위에 떨어진 것은 푸른 사신에게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물건이었다.

황금색 광택.

날카로운 이빨.

거대한 턱.

그것은 엄마가 좋아하는 골든-메카-티라노의 머리통으로 보였다.

<저것 좀 보세요!>

푸른 사신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자, 검은 석상들이 꾸물꾸물 공룡 머리를 부숴서 잡아먹고 있었다.

“저 석상들 진짜로 움직이고 있었네, 내심 착각이라고 생각했는데….”

석상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금속으로 만든 튼튼한 공룡 머리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아, 이래서 쓰레기가 없었구나.”

분홍 소녀는 어쩐지 후련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대로 푸른 사신은 굉장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엄마, 엄청나게 화낼 텐데….>

미니 사신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티라노 장난감이 부서졌으니, 당장이라도 탑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엄마가 되도록 늦게 오기를!’

‘애착 인간과 둘이 함께하는 여행이 조금이라도 길어지기를!’

푸른 사신은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

늦은 밤, 서울숲 한복판.

내 눈에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행성이 보이고 있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나는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3개월만 신경 안 쓰면 까먹는 경우가 많아서, 생각을 떠올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분명히 봤었던 행성이야. 어디서 본 걸까?’

‘TV 다큐멘터리?’

‘절대로 아냐.’

생각이 너무 안 나서, 근처에서 뚜방거리는 황금 사신을 하나 붙잡고 생각을 시작했다.

인형 놀이를 하듯이 황금 사신의 팔다리를 휘적휘적 휘둘렀다.

‘으앙, 엄마가 괴롭혀!’

황금 사신의 주먹을 쥐게 한 다음, 옆에 있는 황금 사신을 마구 때리게 하다 보니 굉장히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예린이랑 미국에 갔을 때 봤었어.’

하늘에 떠오른 검은 행성은 처음으로 검은 시체를 통해 전지전능한 감각을 느꼈을 때, 봤었던 행성의 모습이었다.

나는 붙잡은 황금 사신을 풀어준 다음,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푸른 사신은 저 행성에 있겠지.

왠지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감각이 닿지 않아도 닿을 수 있을 거야.

그곳이 어떤 곳인지 내가 알고 있고, 미니 사신이 그곳에 있으니까.

그렇게 끝없이 감각을 앞으로 뻗어내자, 희미하게 푸른 사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찾았다!’

굉장히 미약한 연결이었지만, 연결은 연결이었다.

푸른 사신의 장작은 건강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불안해하지도 않고 있었다.

‘다행이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푸른 사신으로부터 간절한 의지가 전해져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되도록 늦게 오기를!]

[애착 인간과 둘이 함께하는 여행이 조금이라도 길어지기를!]

‘….’

황금 사신들은 큰일 났다고 난리였는데, 실종된 푸른 사신은 행복해 보이네….

뭐, 행복하면 좋은 거지.

나는 미니 사신들을 불러 모으고, 의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푸른 사신 찾았어. 괜찮아 보여.’

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황금 사신들이 신나서 마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만세!’

‘다행이야!’

그리고 몇몇 황금 사신들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소식을 미니 사신 네트워크에 흘렸다.

이제 가출한 푸른 사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려는 순간, 하늘에서 진화액이 쏟아져 내려왔다.

내 연결을 타고, 빛의 기둥을 따라서 주룩주룩.

나는 진화액의 악취에 기겁하며 의지를 내뿜었다.

‘으악. 갑자기 뭐야.’

미니 사신들은 일찌감치 수상한 냄새를 느끼고,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앗!’

‘엄마 냄새나!’

나는 그 의지를 듣는 순간, 진화액을 사방으로 흩뿌려 버렸다.

‘으앙!’

‘엄마가 미쳤어!’

그리고 온몸에 진화액을 묻히고 미니 사신들을 쫓아가자, 모두 후다닥 도망가 버렸다.

죽음의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

끝의 세계, 탑 상층.

푸른 사신과 분홍 소녀가 마치 휴양지처럼 예쁜 계층을 넘어서 올라가자, 조금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계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집.

파이프가 그대로 드러난 도로.

그곳은 이제까지 왔던 계층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집 모양이 이상해.”

파이프를 엮어서 만든 건물들은 어딘가 파탄 나 있었다.

입구가 없거나.

천장이 너무 낮거나.

벽이 찌그러져 있거나.

아니면 내부 공간이 없거나.

게다가 제대로 쓸 수 있는 시설도 보이지 않았다.

인간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잔뜩 기대했던 소녀는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 층은 제대로 된 곳일 거예요!>

하지만 푸른 사신의 응원과는 달리 그다음 층도, 그 다음다음 층도 완전히 파탄이 나 있었다.

심지어 그 다음다음 층은 건물이나 도로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고, 그저 널찍한 원판이었다.

“….”

그렇게 분홍 소녀와 푸른 사신은 아무것도 없는 층을 지나, 새로운 층계를 향했다.

“하아.”

계층 탑 내부.

어쩐지 조금 쌀쌀하게 느껴지는 기온 속에서 분홍 소녀는 입김을 불었다.

<모두를 따뜻하게 해주세요!>

그 모습을 본 푸른 사신이 문자열을 써 내려가자, 따스한 온기가 분홍 소녀 주변에 내려앉았다.

“고마워.”

분홍 소녀는 고마움을 표하며, 탑의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분홍 소녀는 내심 이번에도 아무것도 없을 거로 생각했지만, 밝은 빛을 뚫고 보인 광경은 예상과는 조금 다른 광경이었다.

특이하게도 탑의 입구보다 확연히 낮은 원판의 높이.

그리고 그 밑으로 인간의 흔적이 물씬 느껴지는 거대한 도시가 보였다.

전부 파이프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확실하게 건물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와.”

분홍 소녀는 탑에서 내려다보는 그 거대한 전경에 입을 크게 벌렸다.

가로수 모양으로 이리저리 찌그러진 파이프.

파이프로 만들어진 정갈하게 쭈욱 이어지는 중앙대로.

파이프를 두들겨서 만든 말과 마차.

그야말로 파이프로 만든 거대한 도시였다.

그리고 그 도시 안에는 파이프로 만들어진 행인 모양 동상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길을 걷는 행인 모양 파이프.

양산을 쓰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 모양 파이프.

길거리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모양 파이프.

통. 통. 통.

탑에서 이어지는 웅장한 계단을 타고 내려와서, 커다란 대로를 걸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아.”

분홍 소녀는 파이프를 두들기고 깎아서 만든 말의 목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파이프 대로 양옆으로 늘어선 건물들은 그 내부까지 정밀하게 꾸며져 있었다.

재료는 전부 파이프였지만.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거 처음 봤어.”

분홍 소녀는 살아있는 채로 동상이 되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나 사람이 많을 수가 있는 거였구나.”

그렇게 계속 걸어 나간 끝에 도착한 곳은 대로와 이어진 거대한 문이었다.

<왕립 연금술사 아카데미.>

분홍 소녀는 문에 쓰인 글씨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연금술사 아카데미? 그게 뭘까?”

<….>

푸른 사신은 이상하게도 그 글씨가 커다란 슬픔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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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물과 검은 석상이 있었던 계층.

분홍 소녀와 푸른 사신이 떠나간 그곳에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모든 검은 석상들이 목을 길게 빼고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눈에서 하얗고 희미한 빛을 흘리며, 올려다보고 있었다.

석상의 눈에는 왠지, 커다란 푸른 별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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