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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3

저 멀리서 또 건물이 폭삭 주저앉고 있었다.

강철탑의 맥동에 닿은 건물은 수수깡처럼 부러지고, 모래처럼 흩어졌다.

심장이 맥동하듯이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강철탑의 영역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오브젝트로 처음 눈을 뜬 곳이 서울숲이었던지라, 나름 강철탑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데도 생소한 현상이었다.

문명을 갈아엎는 출력도 증가한 것 같았다.

예전에는 문명을 절구에 넣고 뭉갠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믹서기로 갈아버리는 것 같았다.

도대체 강철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가슴 언저리에 손을 대고 불꽃을 느낀다.

말랑한 피부 밑에서 차분하게 올라오는 열기.

개구리가 예상 외로 약해서, 장작의 양은 아직 충분했다.

이 정도 양의 장작이면 서울숲에서 며칠 돌아다녀도 괜찮아 보였다.

강철탑은 평양이니, 서둘러서 움직여야했다.

빨리 끝내야, 빨리 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한걸음 걸을 때마다 주변이 휙휙 바뀌었다.

마치 축지법처럼.

유령화 상태에선 물리법칙이 조금 느슨해지는 기분이 든다.

한걸음 걸으면 열 걸음은 걷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조절하기가 힘들어서 유령화 상태에서는 4발로 아장아장 기어다닌 적도 있었다.

지금은 초고속 무빙워크를 타고 있는 감각으로 슥슥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보기 드문 울창한 숲이 나타나자, 유령화를 풀고 땅에 발을 디뎠다.

몇 번을 와도 기분 나쁜 숲이다.

처음 서울숲에 떨어졌을 때는 이유 없이 싫은 숲이었는데, 요즘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기분이 나빠지는 것 같다.

역시 주변에 사람들이 좀 있고, 관심도 좀 받는 편이 기분이 좋다.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서울숲이지만, 문명을 파괴한다는 점 때문에 과대 평가된 감이 있다.

사실 서울숲 깊은 곳에는 인간을 적극적으로 죽이려 드는 오브젝트는 거의 없었다.

인간을 너무너무 죽이고 싶어 하는 살인 괴물 같은 녀석들은 사람 보기 힘든 서울숲에 계속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다.

물론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에게 해롭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긴 했다.

그리고 살인 괴물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철탑을 향해 걷고 있을 때, 괴상한 고성이 서울숲에 울려 퍼졌다.

꽉 막힌 듯한 답답한 고성을 지르며 거대한 살덩이가 나무를 마구잡이로 부수면서 달리고 있었다.

그 육중한 발걸음에 땅은 사정없이 떨렸고, 그 자리에는 하얀 살점이 마구 뿌려졌다.

그 살점 속에서는 작은 지렁이 같은 기생충이 우글우글 거렸다.

강철탑 인근에서 자주 보이는 ‘유령잡이’였다.

물론 저 ‘유령잡이’라는 이름은 내가 멋대로 붙였다.

저런 하얀 살덩어리 괴물에 대한 이야기, 인간이었던 시절에는 듣지도 못 했으니 말이다.

유령잡이는 척 보기에도 살인 괴물 같은 흉측한 생김새와 덩치를 가졌지만, 아마 살인 괴물은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유령잡이’는 유령밖에 보질 못한다.

서울숲에 들어서면 유령화를 푸는 것도 저놈들 때문이다.

물론 아귀처럼 강하거나 죽이기 힘든 오브젝트라서 피하는 건 아니었다.

혐오스러운 외형을 가진 오브젝트라서 피하고 있었다.

정신 건강에 안 좋은 외형이니 최대한 눈에 담고 싶지 않다.

유령잡이는 영체 오브젝트를 주식으로 삼는 녀석들인데, 자신의 살점을 집어던져서 사냥을 했다.

질척질척하고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살점에는 절대로, 절대로 맞고 싶지 않다.

하얀 덩어리 괴물들이 뛰노는 숲이 끝나고, 그 뒤로 넓은 공터가 보였다.

그 공터 중앙에는 목표로 하던 것이 있었다.

핵을 맞은 최초의 오브젝트, 인류 문명의 하드 카운터.

강철탑이었다.

***

강북구의 한 도심 대로변, 이곳은 저녁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 한명 없이 한산했다.

그 대로변에 위치한 커다란 전자제품 매장의 유리창은 강풍에 휩쓸려 처참하게 깨져 있었다.

진열된 물건들이 바람으로 엉망진창으로 널브러진 가운데, 전시된 TV는 여전히 전원이 들어와 있었다.

TV는 뉴스 속보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서울숲 사태에 대해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간단하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강철탑의 맥동 주기와 다음 맥동의 예상 범위를 알려주고, 해당 지역에 사람들의 대피를 촉구하고 있었다.

현재 강철탑의 영역은 이미 서울의 경계선을 넘어서까지 침범해있었고, 다음 맥동은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 일대까지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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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구에 위치한 이 전자제품 매장은 이미 긴급 대피 경고가 내려진 상태였다.

콘크리트 건물이 많은 서울에서 맥동에 휘말리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우니 대부분의 사람이 대피한 것이다.

막을 수 없는 강철탑의 확장과 기약 없는 대피 등등의 암울한 뉴스들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갑작스럽게 전해진 낭보가 있었다.

숨은 영웅들의 활약에 대한 이야기였다.

무려 한 가지 목적을 위해 10년이나 고된 훈련을 반복한 특수 임무 팀에 대한 이야기였다.

도봉구를 탈환하기 위해 묵묵히 노력해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강철탑 사태로 인해 관심에서 멀어진 상태였지만, 얼음 병사들에게 완전한 침묵을 선사해 준 전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도봉구의 온도는 드라마틱하게 상승 중이었고, 도봉구에 남은 얼음 왕좌는 반파된 채 점점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얼음 왕좌 파괴를 위해 파견된 특수 임무 팀의 귀환은 확인되지 않았다.

아마 강철탑의 맥동만 아니었으면 드론들을 잔뜩 날려서라도 수색 작업을 펼쳤겠지만, 지금은 아무리 많은 드론을 날려도 맥동 한 번이면 모조리 가루가 돼버려서 수색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사람으로 이루어진 수색반을 보내기엔 도봉구는 여전히 위험한 오브젝트가 많다는 점도 걸림돌이었다.

아나운서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의 영웅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빕니다.>

그 희망찬 멘트는 땅울림 소리에 지워졌다.

두근.

마치 심장소리처럼 울리는 땅울림이 길거리를, 건물을, 전자 제품 매장을, TV를 갈아버리면서 방송은 끝이 났다.

***

으적으적.

살점을 씹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대한 신속하게 퇴각을 하고 있었지만, 결국 오브젝트에게 발각되었다.

설인.

개인 화기만 있다면 손쉽게 처리가 가능한 오브젝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요원들이 지참한 기본 무장은 모두 가루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남은 장비 중 무기라고 할 만한 것은 다목적 나이프 한 자루였다.

나이프 한 자루로 설인 떼에게 대적하기는 힘드니, 그저 열심히 뛰어서 도망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방금 설인의 먹이가 된 요원이 마지막 남은 부하였다.

결국 팀원을 모두 잃은 팀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결국 나도 설인들에게 먹혀버리겠지.

너무 무리하게 뛰는 바람에 숨이 턱까지 닿았고, 설인들은 나보다 훨씬 민첩하고 빠르니까 말이다.

콰당.

너무 오래 뛰어서 그런지 결국 미끄러운 설원 한복판에서 넘어져 그대로 쓰러졌다.

이제 다시 일어서서 뛰어갈 힘은 거의 남지 않았다.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둑어둑한 하늘에는 구름 고기들이 떼 지어 몰려가는 것이 보였다.

평화로워 보이는 하늘이었다.

“?”

설인들의 소리로 그토록 시끄럽던주변은 어느새 적막함으로 가득찼다.

이상함이 느껴졌다.

숨을 고르고 상체를 일으키자, 나를 쫓아오던 설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살아남은 건가?”

나는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조금이라도 합류 지점에 가까운 곳까지 향해야 한다.

강철탑의 이상 활동을 관측했다면 합류지점에 대기 중인 대기팀이 마중을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희망은 아직 있었다.

“안 돼….”

하지만 그 희망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비틀거리며 걷던 나는 다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아아아!”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분명 임무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의 구름은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를 불길한 보라색 빛이 가득 채웠다.

설원의 달이 떠올랐다.

생존 확률은 이제 0%에 한없이 가까워졌다.

지쳤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림자 속으로 몸을 던졌다.

***

그림자 속에 들어간 나는 영문 모를 벌판 위에 서있었다.

석유 냄새가 물씬 풍기는 평야였다.

석유 냄새 때문인지 어지러웠다.

시야가 이따금씩 일그러질 정도로 말이다.

평야는 검고 질척질척한 진흙이 잔뜩 깔려 있었고, 정체불명의 검은 풀들이 바닥에 듬성듬성 자라있었다.

하늘에는 6개의 달이 떠있었다.

무지개 같은 색을 가진 달들이었는데, 그 중 보라색 달만 없었다.

별 하나 없이 검고 어두운 하늘.

짙은 석유 냄새 때문에 어지럽다.

아니 석유 냄새가 아니라도 어지럽나?

벌판 위에는 검은색 진흙더미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찾듯이, 혹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움직이는 듯한 진흙더미들.

그 모습에서 한 가지 예감이 들었다.

하… 여기가 내 종점인가.

일종의 체념 같은 예감을 안고 내 손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추하게 흘러내리는 진흙 같은 무언가였다.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이 세계가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알아보려고 해도 나에게 남은 시간이 없겠지.

그리고 이미 나는 돌아갈 수 없는 경계를 넘은 것 같았다.

죽을 때는 한국 땅에 묻힐 줄 알았는데…

아아, 어지럽다. 어지러워.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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