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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32

모든 것이 마무리된 끝의 탑.

내가 쏜 ‘회색 사신 빔’에 의해 거미가 가루가 되어버리자, 내 몸에 잔뜩 달라붙어 있었던 검은 사신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겼어!’

‘엄마 승리!’

처음에는 승리를 즐거워하며, 꿈틀꿈틀.

조금 시간이 지나자, 검은 사신들은 흐물흐물한 액체의 형태에서 벗어나, 미니 사신 형태로 변해갔다.

반들반들한 표면 위에 검은 사신의 머리가 볼록 솟아나는 식이었다.

그리고 흘리는 의지도 승리를 기뻐하는 내용에서, 나를 만난 것을 즐거워하는 내용으로 변했다.

‘엄마 따뜻해.’

‘엄마가 좋아.’

특히 내 주변에 달라붙어 있는 녀석들은 날카로운 이빨로 가볍게 깨물거나, 핥기도 했다.

나는 내 볼에 달라붙어 냠냠 물던 검은 사신 하나를 손아귀로 붙들었다.

‘으앙!’

그러자 검은 사신은 깜짝 놀라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자꾸 무는 검은 사신들에게 어떤 벌을 줘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며 쳐다보고 있었더니, 버둥버둥하던 검은 사신은 다시 얌전히 히히 웃으며 내 얼굴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엄마 상냥해!’

한참 동안 내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자, 검은 사신은 내 손가락을 꼭 껴안으며 의지를 흘렸다.

귀엽긴 하네.

그리고 이번에 ‘회색 사신 빔’을 쏘게 해주기도 했고.

‘….’

하지만 그래도 나를 깨물었으니, 머리통을 물어버려야지!

히히.

나는 그대로 검은 사신의 머리통을 입 속에 넣어버렸다.

‘앙대!’

‘엄마가 잡아먹었어!’

그러자 다른 검은 사신들은 깜짝 놀라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앗!’

‘무너진다!’

검은 거인의 형상을 유지하던 검은 사신들마저 도망가기 시작해서 그런지, 거대 인형 옷은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통통. 통.

말랑한 소리를 내면서 지면에 떨어지는 검은 사신들.

그리고 그 말랑한 검은 사신 위로 나도 떨어졌다.

그렇게 폭신한 검은 사신 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더니, 하늘에서 천천히 점멸하는 헤일로가 보였다.

내가 헤일로를 향해 손을 뻗자, 헤일로는 빠른 속도로 내 손아귀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마치 내가 헤일로의 주인인 것처럼.

나는 헤일로는 손에 들고 천천히 살펴보았다.

‘이게 바로 그 언령의 헤일로.’

나는 이것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장난들을 떠올리며, 히히 웃었다.

그렇게 헤일로를 손가락에 걸고 빙빙 돌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자, 저 멀리 검은 수평선 위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태양이었다.

처음에는 희미한 빛줄기가 어둠을 가르더니, 점차 강렬한 금빛 광채가 폐허에 내리쬐기 시작했다.

태양의 따스한 빛이 이 황폐한 풍경을 감싸자, 폐허 속에서 조그마한 꽃들이 일제히 피어올랐다.

깨진 돌 사이사이, 그리고 널브러지고 부스러진 파이프 사이사이.

노랑, 보라, 하양, 분홍 등 여러 빛깔의 꽃들이 칙칙한 폐허를 수놓고 있었다.

태양이 떠올라서 사라진 별들을 대신해, 폐허에 나타난 별자리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작은 꽃들은 함께 춤을 추듯 흔들렸고, 그 모습은 마치 폐허 위에 생명의 물결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꽤 괜찮네.’

그것은 평소에 꽃을 구경하는 습관이 없는 나도 무심코 바라볼 만한 풍경이었다.

검은 사신들도 반짝이는 아침 햇살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힘겹게 자라난 꽃을 신기한 것을 보는 것처럼 찬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콕콕.

그렇게 관찰하던 검은 사신들은 살짝 이슬이 맺힌 꽃잎을 조심스럽게 찔러보기도 했다.

“꽃이 피었어….”

갑자기 나타난 검은 사신들 사이에서 위축된 것처럼 보였던 분홍 머리 소녀도 푸른 사신을 품에 안고 꽃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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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소녀를 올려다보며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푸른 사신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도 예린이 보고 싶네.’

끼이익. 끼이이이익.

그때, 마치 새벽에 우는 닭처럼,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거대한 구조물에서는 큰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무너질 것처럼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거미와 공간을 헤집으면서 싸웠던 여파겠지.

뭐, 오브젝트가 날뛰어도 멀쩡할 정도로 튼튼한 구조물이니까 당장 무너지진 않겠지만, 슬슬 이 세계에 작별을 고하고 예린이에게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자! 모두 모여봐! 집에 가자!’

내가 그렇게 의지를 뿌리자, 미니 사신들이 꾸물꾸물 내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분홍 소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푸른 사신에게 새끼손가락을 붙잡힌 채 다가왔다.

나는 저 멀리 나와 연결된 지구를 느끼며 천천히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와 미니 사신들, 그리고 그 애착 인간을 모두 데리고 공간을 뛰어넘었다.

***

회색 사신이 사라진 끝의 탑 위로 따스한 태양 빛이 내리쬐었다.

그러자 오랜 세월을 버텨온 ‘끝의 탑’이 풍화되기 시작했다.

파이프로 만든 도시가 가루로 흩어졌다.

아카데미생이 거닐던 도로, 커다란 가게들도 사라지고, 웅장한 아카데미 건물도 점점 흩어져 갔다.

계층을 이어주던 거대한 계층 탑도 흩어져 갔다.

언제나 새것 같았던 파이프의 표면이 거칠어지더니, 순식간에 녹이 슬어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끝의 탑에 있는 모든 것이 부스러졌다.

밭의 흔적도, 텅 빈 마을의 흔적도, 그리고 분홍 소녀가 떠나온 조그마한 마을도, 전부 사라져 버렸다.

모든 흔적은 녹가루가 되어서, 바람을 빨갛게 물들이며 흩날렸다.

마지막 순간, 끝의 탑이 천천히 진화액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해를 먹는 거미는 오랜만에, 굉장히 오랜만에 평안한 기분으로 꿈을 꾸고 있었다.

끊임없이 몸을 태우는 고통도 없고, 삐걱거리는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도 없었다.

지금 거미가 꾸는 꿈은 아주아주 오래된 꿈이었다.

주인이 아직 탑을 만들고 있지 않았던 시절의 꿈, 그리고 망가진 눈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오래된 꿈.

[자, 이거 봐 봐. 너랑 같이 일할 동료를 만들었어.]

거미의 눈앞에 잘 익은 빵처럼 갈색빛이 도는 단발머리의 주인이 보였다.

꿈속의 주인은 커다란 거미의 눈앞에 거대한 마도서를 들이밀고 있었다.

[귀엽지?]

꿈속의 주인이 들이민 마도서는 쭈글쭈글하고 날아다니기까지 하는 거대한 두더지였다.

[이 아이는 ‘유령화’로 우리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도와줄 거야.]

주인은 언제나 웃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진화액이 퍼져서 식량이 부족해지고, 더 나아가 사람이 살 땅조차 없어지고 있었는데….

[그럼, 왕국의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는 거대한 탑을 만들자!]

[언젠가 모든 일은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그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연금술사니까!]

그렇게 웃던 사람이었다.

꿈은 거대한 두더지의 못생긴 얼굴을 바라보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깜빡깜빡.

꿈이 끝나자, 해를 먹는 거미는 눈을 뜰 수 있었다.

‘살아남은 건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작아진 크기.

말랑한 몸통.

짧아진 8개의 다리.

거미는 이미 죽고 전혀 다른 존재로 되살아나 버렸다.

***

미니 사신 정원, 핫초코의 바다.

그 바다 위로 투명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구조물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투명 미끄럼틀!’

녹지 않는 설탕으로 만들어진 보석 같은 놀이공원이었다.

그 설탕 구조물의 꼭대기에는 본체 하얀 아귀만큼 커다란 빵거미가 입에서 설탕실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빵거미는 아직 회색 사신이 돌아오지 않은 미니 사신 정원에서 대인기를 끌고 있었다.

‘대단해!’

황금 사신들은 그 모습을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몇몇 황금 사신들은 빵거미가 설탕실을 뿜는 앞으로 달려가, 설탕 덩어리를 뒤집어쓰기도 할 정도였다.

다른 미니 사신에게도 대인기였다.

동료가 사라져 버린 푸른 사신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회색 사신의 귀환을 기다릴 뿐이었다.

하얀 아귀는 그 거대한 구조물을 억울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뀨힝힝.”

하얀 아귀는 밧줄로 고정되어서 모닥불 위에서 천천히 구워지는 중이었다.

하얀 아귀를 굽던 붉은 사신마저 설탕 구조물로 떠나가 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게 잊힌 하얀 아귀는 너무 오래 구워져서 까맣게 변해버렸다.

“뀨힝힝힝.”

하얀 아귀는 빵거미와 자신의 대우 격차를 느끼며, 더욱 서러운 울음소리를 흘렸다.

***

뚜방뚜방.

뚜방.

황금 사신이 어디론가 걸어가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황금 사신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

황금 사신이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앞으로 걷기 시작하자, 그림자 속에서 검은 사신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황금 사신의 걸음에 맞춰서 뚜방뚜방 걷기 시작했다.

뚜방뚜방.

뚜방뚜방.

검은 사신은 꽤 많은 숫자의 황금 사신들이 아침마다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 궁금해서 몰래몰래 따라가는 중이었다.

‘도대체 뭘까?’

검은 사신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황금 사신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림자와 그림자를 넘나들며 꾸물꾸물.

그렇게 도착한 곳은 평범해 보이는 아파트 현관문이었다.

‘특별해 보이지 않아.’

검은 사신은 현관문을 유심히 살펴봤지만,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검은 사신은 몸을 액체처럼 바꿔서 틈으로 스며들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현관문이 열려버렸다.

삐-!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던 검은 사신이지만, 현관문을 연 존재를 본 순간 너무 놀라서 ‘삐’ 소리를 내버렸다.

‘엄마?’

눈에서 황금색 빛을 뿜어내는 납 인형이 뚜방뚜방 걸어 나갔고, 그 뒤에는 검은 사신만큼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황금 사신들이 보였다.

‘어떡해?’

‘큰일이야!’

‘엄마의 애착 인간이 혼낼 거야!’

건물 밖으로 나온 납 인형이 뚜방뚜방 걸어가는 방향은 세희 연구소 방향이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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