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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33

공간을 끌어당기자, 진화액으로 가득했던 끝의 탑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기분 나쁜 석유 냄새는 점점 멀어지고, 익숙한 향기가 가까워졌다.

핫초코와 마시멜로가 섞인 달콤한 향기.

눈을 뜨자, 끝없이 펼쳐진 마시멜로 벌판이 눈에 들어왔다.

‘돌아왔다!’

끝의 탑에서 있었던 시간은 그렇게 길지는 않았지만, 석유 냄새가 가득한 곳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오랜만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대로 마시멜로 위로 쓰러지듯이 누웠다.

말랑말랑하고 따뜻하네.

그렇게 누워있으니, 정원 곳곳에서 미니 사신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엄마다!’

황금 사신들은 내 몸 위를 기어오르더니, 내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며 의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도와주러 못 가서 미아내!’

내 뺨에 찰싹 달라붙은 황금 사신은 아마 거미랑 싸울 때, 막혀버린 정원 게이트를 통과하려고 열심히 박치기하던 녀석 중 하나로 보였다.

나는 멀쩡해 보이는 이마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아마 인간이 그랬으면, 머리가 깨져서 쓰러질 만큼 열심이었지….

뭐, 물리 면역이라서 박치기를 한 흔적조차 남지 않았지만 말이다.

삐-!

삐이-!

시선을 돌려보자, 출신이 다른 검은 사신들이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삐삐거리고 있었다.

불변구 출신의 검은 사신들과 끝의 탑 출신의 검은 사신들.

내가 볼 때는 완전 똑같이 생겼는데, 자기들끼리는 어디 출신인지 구분이 되는 건가?

‘삐’ 소리의 억양 같은 걸로 구분하나?

‘잘했어!’

‘열심히 했어!’

그리고 서로를 향해 잘했다고 칭찬하며, 서로의 머리로 손을 뻗더니 마구 쓰다듬어 주기 시작했다.

그 순간, 오랜만에 만난 검은 사신들이 삐삐거리며 재회하는 장면 속으로 황금 사신들이 난입해 들어왔다.

‘새로운 동생?’

‘동생이 증식했어!’

태양처럼 해맑은 표정을 한 황금 사신들의 파도였다.

황금 사신들은 새로 온 검은 사신들을 하나씩 붙잡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고파?’

‘장작 말랐어.’

그리고 황금 사신들이 굉장히 안타까워 보이는 표정을 하더니, 검은 사신들을 와락 껴안아 버렸다.

황금 사신들은 심장과 심장을 맞대고, 장작을 마구 밀어 넣었다.

통통하고 말랑말랑한 장작 교환이었다.

황금 사신과 검은 사신은 그렇게 장작을 반반으로 나누더니 서로 손을 맞잡고, 히히 웃었다.

‘가자!’

그러고는 둘씩 짝을 지어서 미니 사신 정원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름을 붙이자면, ‘미니 사신 정원, 황금 사신 관광 가이드.’ 일려나?

검은 사신처럼 ‘삐’ 소리도 안 내는데 두 배는 소란스러운 느낌이 드는 황금 사신들이 일제히 빠져나가자, 구석에서 조용한 아이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분홍 소녀의 품 안에 안겨있는 조그마한 푸른색 모자 덩어리.

탑으로 납치되었던 푸른 아이돌 사신과 다른 푸른 사신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서로 한참 동안 부둥켜안고 힝힝.

쟤네는 왜 이렇게 애틋하지?

다른 미니 사신들은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다행히도 시간이 조금 흐르자, 푸른 사신이 뭉쳐 있던 구체는 해체되었다.

애틋한 분위기도 사라져서 평소의 푸른 사신들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분홍 소녀의 머리 위에 서서, 자신의 애착 인간을 자랑하는 푸른 아이돌 사신.

그걸 보며 ‘대단해!’를 연발하는 푸른 사신들.

그리고 어색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분홍 소녀.

나는 분홍 소녀를 바라보며, 새삼스레 걱정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끝의 탑’에서 데리고 온 녀석이니까, 사실상 외계인 아닌가?

저 외계인을 어떻게 해야 하지?

탑에서 살아서 그런지, 영양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

병원에 데려가야 할까?

문제는 겉모습만 비슷하고, 완전히 다른 종류의 생명체일 수도 있다는 거야.

게다가 언어도 달라 보여.

가끔 입을 열고 말하는 걸 들어보면 연금술사들이 쓰던 언어를 쓰는 것 같네.

머리가 복잡해졌다.

모르겠다.

나는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황금 사신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불러오라고 시켰다.

예린이, 세희, 서아, 제임스.

아무나 와서 해결해 줘!

히히.

***

송파구 외곽, 제임스 타워.

제임스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상황실의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의 앞에 놓인 홀로그램 화면에는 검은 행성에 대한 최신 조사 결과가 끊임없이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눈을 비비며 화면을 응시하던 그의 표정이 점점 더 진지해졌다.

첫 번째 보고서가 그의 주의를 끌었다.

<검은 행성의 크기 변화 분석>이라는 제목 아래, 시간에 따른 행성의 크기 증가 그래프가 표시되고 있었다.

미세하지만 분명한 상승곡선이 제임스의 눈썹을 찌푸리게 했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자 <물리적 실체 부재 확인> 보고서가 나타났다.

고해상도 이미지들이 줄지어 나열되어 있었는데, 각각의 사진에는 여러 가지 그래프와 측정 결과가 표시되고 있었다.

“광학적인 방법을 제외한 모든 탐지 장비는 ‘신호 없음’이라. 미니 달과 똑같군.”

제임스는 천천히 숨을 뱉으며, 다음 보고서로 넘어갔다.

세 번째 보고서는 더욱 심상치 않았다.

<접근 속도 추정>이란 제목 아래,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들이 펼쳐져 있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여러 간접적인 지표들을 종합해 본 결과 검은 행성이 지구를 향해 서서히 접근하고 있다는 가설이 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보고서 말미에는 이 ‘가상 속도’ 계산이 맞다면 불과 반년 안에 지구와 충돌한다는 결론이 적혀 있었다.

그 결론을 확인한 제임스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미국 본사에서 보내온 <공간 유실 현상 연관성 분석> 보고서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이 보고서에는 검은 행성의 크기 변화와 전 세계 각지에서 보고된 공간 유실 사건들의 빈도를 비교한 상세한 통계 자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두 변수 사이의 높은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보며 제임스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제임스가 슬슬 보고서를 닫으려는 순간, 긴급 연락이 수신되었다.

<‘이름없음’의 이상 행동이 관측됨.>

<이름을 잘못 붙여도 나타나지 않거나, 나타나서 가만히 있는 경우가 발생.>

“….”

긴 침묵 끝에 제임스는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딸깍.

리모컨 소리와 함께 홀로그램 화면이 꺼졌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불안하군.”

그의 목소리에는 피로와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제임스는 의자에서 일어나, 화려하게 장식된 서류 가방이 놓인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가방을 능숙한 동작으로 연 뒤, 그 안에 있는 두 권의 책을 꺼냈다.

‘0호 유물’과 최근 작성된 그 유물의 해석본이었다.

제임스는 혹시나 해서 천천히 ‘0호 유물’을 살펴봤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저 검은 행성의 등장은 ‘0호 유물’에도 적혀 있지 않아.”

“그리고 ‘이름없음’에 대한 것도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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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예언서는 아니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어떤 변수가 있을지도 몰라.”

제임스가 다시 ‘0호 유물’을 가방 속에 밀봉하고 있자, 바지 밑단을 붙잡고 꾸물꾸물 움직이는 황금 사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뭔가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제임스를 타고 오르는 황금 사신은 제임스의 어깨 위에 서서, 제임스의 귀를 잡아당겼다.

‘엄마가 불러!’

‘급한 일이래!’

왠지 다급해 보이는 황금 사신의 모습을 보고, 제임스는 황금 사신을 전용 테이블로 옮겼다.

황금 사신 전용 테이블에는 여러 장난감과 푸딩, 그리고 황금 사신 소통 버튼이 놓여 있었다.

제임스가 황금 사신을 테이블 위에 풀어놓자, 황금 사신은 해맑은 얼굴로 뚜방뚜방 걸어가더니 젤리를 하나 집어 먹고 버튼 앞에 섰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을 활짝 피고 하늘 높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고는, 버튼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화면에는 제임스가 만든 ‘황금 사신체’로 글씨가 새겨졌다.

<엄마가 부르고 있어!>

황금색의 둥글둥글한 글씨체.

황금 사신이 누른 버튼은 회색 사신이 부른다는 버튼이었다.

황금 사신은 버튼을 누르고, 만세를 하며 의지를 뿜어냈다.

‘엄마가 불러!’

제임스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으며,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이런 버튼이 있다는 건, 회색 사신에게는 비밀이야.”

그러자 황금 사신도 양손으로 입을 막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히히.

황금 사신은 비밀 놀이를 하는 것처럼 웃었다.

“그나저나 회색 사신의 호출이라.”

제임스는 회색 사신의 호출을 받고 작은 기대를 품었다.

‘어쩌면 이번 사건의 해결책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이번 호출이 이름없음이나 검은 행성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

예린이가 오기를 기다리며 마시멜로 위에 누워서 뒹굴뒹굴하는 중, 황금 사신들이 깜짝 놀란 얼굴로 달려와서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다급해 보이는 황금 사신 셋.

‘황금 사신 셋’ 급 비상사태였다.

황금 사신들에게 이끌려서 세희 연구소 안뜰로 나가자, 예상 이상의 사태가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황금 사신 다섯 급 사태였다.

안뜰에는 나랑 똑같이 생긴 납 인형이 눈에서 황금색 빛을 내며,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 주변에는 미니 사신들이 잔뜩 모여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조금 상했다.

미니 사신들이 귀찮게 안 달라붙어서 좋아야 하는데, 왜 이럴까….

그런 의문을 품고 내가 천천히 납 인형에게 다가가자, 미니 사신들이 나와 인형을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엄마가 둘이야!’

‘아니, 조금 달라?’

미니 사신들은 조금 혼란스러워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진짜 엄마!’

‘이쪽이 진짜야!’

그러더니 몇몇 황금 사신이 내 발목에 달라붙는 것을 시작으로 미니 사신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미니 사신들은 마치 도플갱어를 만난 뒤, 진짜를 깨달은 것처럼 내 쪽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버렸다.

후후.

제대로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미니 사신 고치가 되어버렸지만,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납 인형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진짜 엄마의 힘이야!’

하지만 납 인형은 여전히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멍한 표정의 납 인형 뒤쪽으로 이제까지 본 적 없을 정도로 굉장히 놀란 표정의 두 명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제임스와 예린이였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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