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4
본래 내가 교회의 부정에 관한 조사를 부탁한 이유는 페이비 때문이었다.
그 때 당시 페이비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기에 차츰차츰 진실을 알려주는 것으로 그녀에게 닥칠 충격을 줄이려 했지.
이런 내 계획은 나크라드의 트롤링 때문에 박살이 나버렸다. 그 녀석이 페이비에게 빨간약을 들이부어 버렸으니까.
참 다행스러운 것은 페이비가 모든 진실을 알고 나서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진실을 깨닫고 나서도 보란 듯 일어선 그녀는 분명 성녀라는 호칭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페이비와 관련된 불안이 사라지고 나서도 난 계속해서 알새틴에게 교회의 부정을 수집해 달라 부탁했다.
이쯤 되어서 깨닫고 말았거든. 교회의 부정에 관한 것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다 한들 실질적인 증거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는 걸.
내가 아르마디의 사도인 이상. 그리고 페이비의 친구인 이상. 난 언젠가 교회를 적대하게 될 텐데 그 때 입으로 교회의 부정을 떠들어 대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
증거가 없는 주장은 음모론이 될 뿐이잖아.
그래서 난 알새틴에게 계속해서 교회에 관한 조사를 이어나가 달라 부탁했다.
이 정보 수집은 메네스테일에서의 사건이 끝나고 카리아가 합류하면서 한층 더 속도를 더했다.
알새틴의 스승이자 과거 왕국의 그림자로써 이 대륙 오만 곳에 거미줄을 쳤던 그녀는 한 때 베네딕의 옆에 섰던 사람답게 자신의 경외스러운 능력을 한껏 펼쳐보였으니.
그 줄의 끝은 먼 과거 페이비가 자라났던 고아원까지 닿게 되었다.
‘그리 어렵진 않았어. 이 쪽에 협력한 귀족이 자기 공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거든.’
자신이 성녀를 만들어냈단 사실에 도취된 이는 비밀로 묻어둬야 할 내용을 입 밖으로 내고 싶어 근질근질한 상태였고 결국 그 먹잇감은 카리아가 펼친 거미줄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 녀석을 타고 천천히 교회 쪽 정보를 캐낼 생각이었는데. 이야. 주신 교회 녀석들 눈치가 좋더라. 살짝 이상한 낌새가 보이자마자 입을 다물게 만들어버릴 줄이야.’
허나 그 먹잇감 안에 든 것은 그리 많지 못했다.
제대로 된 것을 캐내기도 전에 그 안에 기생하던 녀석들이 먹이를 죽이고 도망쳐버렸으니까.
카리아는 그래도 얻은 게 꽤 많으니만큼 계속 조사를 하다보면 재밌는 걸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말을 하고는 내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고용주님이 별로 좋아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아는데. 성녀님이 어떤 사람인지 시험해보면 안 될까?’
그녀는 페이비가 만들어진 성녀라는 사실을 불안하게 여겼다.
교회의 윗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페이비이니 중요한 순간 문제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페이비라는 사람이 얼마나 올곧으며 성실한 사람인지 아는 나는 그 의심자체가 불쾌하게 여겨졌지만 카리아는 완고했다.
자신의 두 눈으로 모든 광경을 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고 말이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것을 지금 마주하게 할 뿐이야. 고용주님.’
결국 두 손을 든 것은 내 쪽이었다.
온갖 매도 속에서도 의견을 관철하는 카리아를 설득하기엔 내 능력이 부족하기도 했고.
다른 상황 같았으면 날 도와줬을 할배조차도 카리아의 의견에 동조했으니까.
<다른 모두가 그대와 같은 굳건함을 지니고 있다 생각하지 마라. 보통의 인간은 약하다.>
‘페이비가 저보다 약할 것 같진 않은데요.’
<그렇다면 자신의 악몽을 마주하고서도 멀쩡할 수 있겠지.>
그렇게 페이비를 자신이 자라난 고아원으로 데려가는 계획이 수립되고서 며칠이 지난 지금.
밤중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창백해진 채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페이비를 보는 난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다시금 일어나, 부패한 교회와 맞서 싸우고, 그 끝에 모든 거짓을 만들어낸 이를 처벌하기는커녕 용서한 그녀가.
답답한 캐릭터라는 평가와 한없이 선하다는 평가를 한 몫에 받는 페이비가.
나 같은 반푼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결한 사람이.
어떻게 의심이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다들 게임 속 페이비를 모르니만큼 의심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주신의 사도가 보증을 하고 있는 거잖아.
왜 주신의 사도가 지닌 안목을 믿어주지 않는 건데?
이거 진짜 억울해!
“영애님.”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할배와 저 멀리서 몰래 살피고 있는 카리아를 향해 분노를 쏟아내던 나는 페이비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다급히 고갤 돌렸다.
“염치없음을 알면서도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페이비가 불안에 떠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이르게 마주한 진실 속에서 이미 몇 번이나 흔들렸으니까.
허나 자신의 떨림조차 참아내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은 내게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 일 끝나면 카리아고 할배고 다 조져버릴 거야.
“저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가 주시겠습니까?”
자신은 부족한 사람이라 도저히 먼저 발을 움직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페이비에게 대답을 하는 대신 고아원의 문을 열어보였다.
지금의 페이비에게 자그마한 매도조차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런 내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인 걸까. 페이비는 눈을 살짝 치켜떴다가 이내 어색한 웃음과 함께 내 근처로 다가왔다.
“그리 유쾌한 장소는 아닐 겁니다.”
고아원 안에 발을 들인 순간 피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단순한 혈액의 비린내가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이고 쌓이며 늘러 붙어버린 지독한 향취.
이 세상에 익숙해지기 전의 나였다면 이미 속을 게워냈을 향내는 이 공간이 무얼 하던 곳인지를 묘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도는 나중에 해야겠죠.”
피냄새를 맡고도 애써 태연한 체를 하던 페이비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보여주었다.
“여긴 식당이에요. 언제나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장황한 기도를 하고 밥을 먹어야했죠. 식사는 항상 부족했고 아이들의 배에선 언제나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여기는 성경 공부를 하던 곳이에요. 낮엔 언제나 여기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죠. 다들 졸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옆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죠.”
“여긴… 어른들이 쓰시던 방이에요. 아이들이 쓰던 곳보다 시설이 좋아서 언젠가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하던 사람들이 많았죠.”
“저희가 자던 침실이에요. 이 좁은 곳에서 수십 명이 잠을 청해야했죠. 그 땐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니었네요.”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페이비의 흔들림은 커져만 갔다.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던 입술은 어느새 여는 것조차 버겁게 되었고. 손의 떨림은 점차 강도를 더해갔으며. 다른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느려지기만 했으니.
페이비가 점차 무너져가고 있다는 사실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해 보였다.
“여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나아가며 고아원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가던 페이비가 멈춰서고 만 곳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의 앞이었다.
“여긴.”
페이비가 설명하지 않아도 난 이 지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당사자인 페이비보다도 더 잘 알고 있지.
그래서 난 이빨을 부딪히면서도 애써 말을 이어나가려는 페이비의 손을 살포시 붙잡았다.
‘괜찮아요.’
“말 못하겠으면 안 해도 돼. 허접한테는 이게 정상이니까 말야.”
페이비는 가만 나와 맞잡은 손을 바라보다가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목소리를 냈다.
“…아뇨. 괜찮습니다. 영애님. 잠시 마음을 다잡을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랍니다.”
지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짙어지는 혈향은 이 고아원 전체에 퍼진 냄새의 근원이 이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닫혀 있네요. 잠시만요. 방금 전에 열쇠가.”
‘그런 거 필요 없어요.’
“됐어. 이런 허접한 문을 여는데 열쇠가 왜 필요해?”
이딴 철문을 박살내는 데는 메이스도 필요 없다고.
페이비의 앞으로 나선 나는 주먹 위에 신성을 담았다.
신성의 격이 오름에 따라 이를 다루는 것에 한층 더 능숙해진 나는 신성을 집약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바라는 대로 신성이 움직이는 데 고생을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집약을 끝마친 후 주먹을 내지르자 철문에 박혀 있던 여러 마법들이 먼저 박살이 났고 그 후에 문이 부서지며 스산한 지하실의 복도 너머로 날아갔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고갤 돌린 나는 얼떨떨한 듯 멍하니 서 있는 페이비의 옆으로 가선 다시금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촉감을 느끼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페이비는 날 내려보다가 이내 딱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여기는 어른들이 기도실이라고 부르던 곳이에요. 저희들이 저녁 때마다 와야 했던 곳이고, 다들 오기 싫어했던 장소죠. 왜냐하면 이 곳에 오면 저마다 다른 방에 들어가서 고문을 당해야 했거든요.”
페이비는 애써 무덤덤한 체 노력하면서 그 때의 정경을 설명했다.
친한 친구를 고문 시키고 다른 사람은 그를 치유하게 만든다거나.
정체 모를 약물을 주사해 끝없는 갈증에 시달리게 한다거나.
모진 고통 속에서 신을 부르짖게 만든다거나.
“이 곳에 있던 아이들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영원한 휴식을 얻게 된 친구를 부러워했답니다. 그런 장소였어요.”
미처 지워지지 못한 고문의 흔적이 남은 장소를 살피는 페이비의 표정에는 나 따위가 짐작하지 못할 수많은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지금의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어른들을 미워하고 있을까?
아무리 기도를 해도 도와주지 않던 주신을 증오하고 있을까?
고통 속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친구들을 떠올리며 슬퍼하고 있을까?
“영애님. 꼭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페이비의 부름을 들은 나는 가만히 서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금의 나는 그녀가 바라는 모든 것을 들어줄 수 있다.
고아원의 어른에게 복수하고 싶다 그런다면 기꺼이 이루어줄 수 있다.
왜 그런 악인들이 신성을 품고 있는 것인지. 어찌하여 주신께서 자신들에게 신성만을 줄 뿐 도움을 주지 않았는지 묻더라도 기꺼이 모든 진실을 이야기해줄 수 있다.
주신을 대신하여 원망을 받아 달라 해도 난 묵묵히 그녀의 울분을 들어줄 수 있다.
지금의 나는 메스가키 스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으니까.
그녀가 하는 말이라면 따라야만 하니까.
“제가 이 곳에서 기도를 올리는 동안 제 곁을 지켜주세요. 제 기도를 들어 주세요.”
허나 페이비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았다.
그저 슬픔 속에서 잠들었을 이들만을 생각했다.
아직 진정한 성녀가 되지 못했음에도.
신의 뜻을 알지 못함에도.
페이비. 너는 같은 답을 내놓는 구나.
하. 정말.
네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지금도 나에게 너는 성녀야.
허접 주신 따위에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결한 사람이야.
페이비의 웃음에 마주 웃어준 나는 그녀의 두 손을 한 군데로 끌어모은 다음 그 위에 내 두 손을 포개고서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페이비의 부드럽고도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하늘에 계신 주신이시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에 밤과 어울리지 않는 따스함이 담겼으며.
“부디 당신의 사도가 자리한 곳을 눈에 담으소서.”
페이비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온기가 불쾌한 혈향을 밀어냈고.
“저도 모르는 새 당신의 모욕이 되어버린 이 불경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소서.”
어느 순간 싸늘하던 지하실 전체가 아침녘과 같은 따스함을 품게 되었으니.
“당신의 구원을 바랐으나 구원받지 못하고 저물어 간 이들의 자리를 보소서.”
이는.
“당신의 보살핌을 얻지 못한 이 불쌍한 이들의 원망을 품어주시고.”
분명.
“이들의 혼을 구원 하소서.”
성녀의 기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