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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39

축제의 짙은 안개가 거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 속에서 쇠가 끌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소리를 집어삼키는 안개는 그 소리의 일부분을 집어삼켰고, 그 먹먹한 울림은 더욱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단발 소녀는 건물 틈새에 몸을 숨긴 채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쫓아온 거지?’

숨은 저절로 가빠졌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어댔다.

안개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괴물은 소녀의 공포심을 극대화했다.

온몸이 피투성이인 괴물, 키는 3m가 훌쩍 넘고 양팔을 팔꿈치 부분부터 잘려 톱이 달려 있었다.

괴물은 그 기괴한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소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으윽. 그으윽.

괴물의 양팔에 달린 톱이 아스팔트 위를 긁으며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워질수록 분명하게.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다가오는 그 소음은 소녀의 공포를 끝없이 증폭했다.

단발 소녀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손을 떼면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으윽. 그으윽.

끊임없이 반복되는 소리가 소녀의 귓가를 에워쌌다. 톱 괴물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소녀의 심장은 더욱 거세게 요동쳤다.

당장이라도 괴물의 톱이 단발 소녀의 머리 위로 내려칠 것만 같아서, 그녀는 두 눈을 꼭 감았다.

톱이 끌리는 소리가 코앞에 도달한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퍼억.

둔탁하면서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따뜻한 액체가 소녀의 머리 위로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공포에 질린 채 천천히 눈을 뜬 소녀의 시야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톱 괴물의 가슴에서 날카로운 뼈 같은 것이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힉!’

소녀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제서야 소녀는 톱 괴물 뒤에 서 있는 또 다른 괴물을 발견했다.

공터에서 톱 괴물과 싸우던 녹색 파충류 괴물이었다.

이 녹색 피부를 가진 괴물은 팔이 없었지만, 그 대신 꼬리가 마치 창처럼 날카롭게 뻗어 있었다.

바로 그 꼬리가 톱 괴물의 가슴을 관통한 것이었다.

톱 괴물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자, 녹색 괴물은 입으로 톱 괴물의 가슴팍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헤쳐진 가슴 속에서 구슬을 입으로 물고 확 뽑아내었다.

뽑아내는 순간, 구슬과 괴물을 이어주던 하얗고 반투명한 무언가가 같이 딸려 나왔다.

마치 길쭉하게 늘어난 접착제나 하늘하늘한 솜사탕 실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간단하면서 하찮게 딸려 나왔지만, 소녀에게는 왠지 그 하얀 것들이 중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구슬을 몸에서 뜯어내자, 톱 괴물 시체에서 인간이 튀어나와 바닥에 널브러지더니 공간에 스며들듯이 사라져 버렸다.

사라지기 직전 보았던 모습은 마구 꾸겨진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를 입은 젊은 남자였다.

쿵. 쿵.

그리고 녹색 괴물은 뒤를 돌아서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사… 살았다!’

단발 소녀의 마음속으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천천히 번져나갔다.

‘이제 이 정체불명의 안개 공간에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돼.’

쿵.

그 순간, 녹색 괴물은 걸음을 멈추고 가래가 끓는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공간이 사라지질 않는군.]

그리고 괴물은 천천히 뒤로 돌기 시작했다.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하아. 하아. 하아.

양손으로 막은 입에서는 과호흡에 걸린 사람처럼 숨이 새어 나왔다.

쿵. 쿵. 쿵.

녹색 괴물의 걸음 소리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다가오더니.

쿵. 쿵. 쿵.

소녀가 있던 건물 틈을 지나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하아.

소녀는 괴물이 멀리 떨어졌는데도 진정되지 않는 숨을 애써 참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빨리 도망가야 해.’

소녀가 후들후들 떨리는 무릎을 간신히 짚고 일어나자, 노랗게 빛나는 파충류의 눈이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꺄아아악!”

소녀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자, 소녀의 팔뚝만큼 두껍고 날카로운 꼬리뼈가 소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심장을 향해 날아오는 뼈를 보며, 소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작에 구슬을 먹었어야 하는 걸까?’

그리고 언니에게 사과하며 눈을 감으려는 순간.

하늘에서 황금색 혜성이 떨어져 내렸다.

박살 난 격자무늬 하늘을 배경으로 소녀 앞에 내려앉은 그것은 황금 갑옷 사신이었다.

***

격리실에서 빈둥거리다 보니, 갑자기 납 인형에게 생각이 닿았다.

‘무차별적으로 염원을 들어주는 납 인형의 모습은 푸른 소녀의 꿈에서 나왔던 옛 신 같았지.’

나는 아무 이유 없이 괜히 신경이 쓰여서 자리에서 일어나 납 인형이 격리 중인 격리실로 걸음을 옮겼다.

납 인형의 격리실에 도착하자, 바닥에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는 미니 사신들과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납 인형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격리실 내부를 훑어보고는 살짝 안심했다.

‘내 격리실보다 미니 사신이 훨씬 적네.’

후후, 역시 가짜는 진짜를 못 이기는 법이지.

내가 유령화를 풀고 격리실 침대 위에 나타나자, 미니 사신들이 잔뜩 호들갑을 떨며 폴짝폴짝 뛰었다.

‘앗! 엄마가 놀러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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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다!’

그와 동시에 몇몇 미니 사신들이 내 근처로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미니 사신들은 뚜방뚜방 걸어서 내 몸 위로 착착 달라붙었다.

나는 당연히 번잡스럽게 달라붙는 미니 사신들을 침대 밖으로 던져버렸다.

‘으앙!’

그리고 납 인형을 대상으로 실험을 시작했다.

납 인형은 장작을 동력으로 움직이고 염원을 들어주니까, 장작에 염원을 실어서 불어넣는 식이었다.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어.’라고 명령하자, 미니 사신에게 간식을 먹여주는 와중에도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었다.

그 외에도 몸을 움직여서 빠르게 달성 가능한 명령은 대부분 수행할 수 있었다.

미니 사신 ‘때찌’ 하기 같은 것도 말이다.

다만 어려운 명령이나, 공간을 절단해달라는 명령처럼 초능력이 필요한 명령은 전부 불발이었다.

‘세희 연구소 사람들을 모두 재워줘.’

‘세희 연구소를 달로 순간 이동 시켜줘.’

‘P-NP 문제를 풀어줘.’

‘127에 1,452를 더하면 뭐야?’

이런 것들을 지시하면 고개를 갸웃하거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납 인형에게는 장작을 사용하는 능력이 없어 보였다.

‘흠.’

이 정도면 충분히 검증했다고 생각해서 다시 돌아가려는 순간, 시선이 느껴졌다.

침대 밑에 잔뜩 널브러진 미니 사신들의 시선이었다.

미니 사신들은 납 인형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옴뇸뇸.

납 인형은 여전히 미니 사신들을 품에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면서 간식을 먹여주고 있었다.

미니 사신들의 시선은 마치 ‘왜 엄마는 저렇게 안 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납 인형처럼 해달라는 뜻인가?

어쩔 수 없네.

히히.

나는 최대한 장엄한 말투를 하려고 노력하며 미니 사신들에게 의지를 전달해 주었다.

‘너희들의 염원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납 인형에게 장작을 퍼붓기 시작했다.

물론 그 장작 속에는 내 염원이 가득 실려 있었다.

‘와아!’

‘상냥한 엄마!’

미니 사신들은 폴짝폴짝 뛰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 장작이 납 인형에게 닿자, 납 인형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다.

‘으앙!’

납 인형은 무릎 위에 앉아 있는 황금 사신을 집어 던져버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미니 사신들을 향해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으앙!’

‘엄마가 괴롭혀!’

‘거짓말쟁이!’

물론 나도 납 인형에게 합류해서 미니 사신들을 향해 데굴데굴 굴렀다.

납 인형과 엄마가 같아진다는 소원이 이루어졌으니까 행복하겠지?

히히.

***

미니 사신 정원, 마시멜로 평원.

분홍 소녀는 검은 사신과 황금 사신이 잔뜩 있는 언덕 위에 누워, 교과서처럼 보이는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 쓰는 말과 몇 가지 지식을 익히고 나면, 나도 학교라는 곳에 갈 수 있대.”

분홍 소녀는 푸른 아이돌 사신을 내려다보며 활짝 웃었다.

“학교는 일종의 아카데미라던데, 아카데미에 가고 싶었던 내 꿈이 이뤄질지도 몰라!”

행복해 보이는 애착 인간을 보며 푸른 아이돌 사신도 비슷한 표정으로 웃었다.

분홍 소녀는 책을 덮으며 푸른 아이돌 사신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너도 같이 언어를 배우지 않을래?”

분홍 소녀는 당연히 같이 해줄 줄 알았지만, 푸른 아이돌 사신은 고개를 저었다.

“왜? 같이 배우면 훨씬 재밌을 텐데….”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엄마가 하지 말래!’

‘한국어? 아는 척하지 말래!’

‘푸른 동생들 그래서 혼났어!’

황금 사신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폴짝폴짝 뛰며 답하고 있었다.

황금 사신들은 한국어가 정확히 뭔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엄마의 의지는 명확히 기억하는 중이었다.

물론 분홍 소녀는 미니 사신의 의지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푸른 아이돌 사신이 옆에서 번역해 주었다.

“그렇구나….”

분홍 소녀는 살짝 아쉬웠지만, 회색 사신이 한 일이라고 하니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회색 사신처럼 대단한 마도서가 하지 말라고 한 걸 보면 굉장히 중요한 이유가 있겠지.’

‘어쩌면 세계의 명운이 달린 금기 사항일지도 몰라.’

분홍 소녀는 그렇게 나름대로 납득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미니 사신들 사이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앗, 누가 또 깨물었어!’

‘찾아야 해!’

‘나쁜 사신!’

깜짝 놀라서 폴짝 뛰는 황금 사신.

미니 사신들이 조그마한 발로 뚜방뚜방 걷는 소리.

범인을 잡기 위해 마시멜로 위를 마구마구 뛰는 황금 사신들의 발소리.

하지만 이미 범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잠을 자다가 깜짝 놀라서 깬 황금 사신의 통통한 볼에는 미니 사신의 이빨 자국이 남아 있었다.

***

안개로 가득한 격자무늬 하늘의 세상.

얼마 전까지 괴물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였던 공간이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양팔에 톱을 단 괴물도.

녹색 파충류 괴물도.

구슬을 먹지 않았던 소녀도.

그리고 하늘을 뚫고 내려온 황금 사신도.

아무도 없었다.

그런 텅 빈 장소의 허공에서 갑자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남자는 하늘에 뚫린 구멍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 얼굴. 황금 사신인가.]

남자는 천천히 걸으며 핏물로 흥건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핏물 속에는 황금 갑옷 사신 모양 구멍이 뚫린 파충류의 사체와 톱 괴물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대업의 끝에서 그 얼굴을 만난 것은]

[필연인가. 우연인가.]

남자는 한쪽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짓씹듯이 말을 토해냈다.

[분명 필연이겠지.]

[최후의 연금술사….]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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