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9
지난 번 변태사도에게 장신구를 받을 때 난 그 녀석과 연락할 수 있는 수정구도 함께 받았다.
자신이 받은 은혜가 있으니만큼 필요할 때 언제라도 연락을 달라고 녀석은 그랬지만 난 그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들었다.
옆에 있는 얼빠여우 하나만 해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데 그 변태 사도까지 옆에 두라고?
그리 판단을 내린 나는 쓰레기통에 수정구를 처박으려다 말고 인벤토리에 대충 수정구를 집어 던졌다.
일단 변태사도의 인간성은 뒤로 하고 그 사람의 능력 자체는 써먹을 만 하니까. 언젠가는 도움을 청할 일이 있겠다 싶었지.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면 그 판단은 옳았다.
채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녀석을 부를 일이 생겼으니까.
매력을 극한으로 높여서 사람들의 혼을 빼놓은 후 정신을 차리기 전에 연설을 끝마치고 내려간다.
얼빠여우의 헛소리에서 시작된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을 현실로 이끌어 내기 위해선 변태사도의 능력이 필요하거든.
생각해봐.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혼을 빼놓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얼빠여우나 변태사도 같은 쓰레기라면 모를까. 정상적인 사람들의 정신을 날려버린다는 계획을 위해선 내 매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어.
그리고 이 매력을 끌어올린다는 부분에 있어 전문가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변태사도지.
페도 쓰레기 자식 개인의 인성이 어찌 되었든 간에 그 녀석은 미와 예술의 사도에게 선택을 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미적감각을 지닌 녀석.
그 놈의 협력을 구할 수 있다면 훌륭한 코디가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변태 까마귀 여신의 축복까지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야.
겸사겸사 내 코디말고 다른 부탁을 할 게 있기도 하고.
“알른 영애! 오늘도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여신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수정구로 연락을 보내자마자 상기된 얼굴을 들이미는 변태 사도를 보고 있자니 나쁜 말이 자꾸 샘솟으려 했다.
대체 뭘 하고 있었길래 내 연락을 1초만에 받은 거지?
설마 항상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거나 그런 거야?
“영애의 서릿발 같은 시선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뛰는군요! 좀 더 날 선 눈으로 바라봐 주시겠습니까?!”
…그냥 잘못 연락했다 그러고 끊어버릴까.
<여아야! 진정해라! 조금만 참으면 된다!>
그 조금을 참다가 제 어금니가 박살이 나버릴 것 같은데요.
…젠장. 이 녀석이 대체재가 없을 만큼 뛰어난 사람만 아니었으면!
주먹을 꼭 쥐며 여러 나쁜 말을 참고 있으려니 변태 사도가 어색한 웃음을 흘린다.
“아! 죄송합니다! 저 혼자 한참 떠들어버렸네요. 그래서 무슨 용무로 연락을 주신 겁니까?”
‘그게 그러니까…’
“잘 들어. 역겨운 변태 사도. 네게 날 꾸밀 권리를 줄게.”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까?”
정확한 사정은 감추고 아카데미 종강 파티에 연설을 하게 됐는데 그 곳에 최고의 모습으로 서고 싶다 이야기를 했더니 변태 사도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바로 내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응?
아니. 아직 종강 파티가 열리려면 꽤 시간이 남았는데 내일 오겠다고?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네가 벌써부터 호들갑 떨면 부담스러우니까 그냥 적당히 하루 이틀 전에 와도.
“사도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신가요?!”
변태 사도의 열정에 눈을 끔뻑이고 있으려니 수정구 저 뒤편에서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도님께서 떠나계시는 동안 얼마나 일이 쌓였는지 아세요?!”
“케시 사제. 이는 제 목숨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제발! 좀! 사도님! 예술 교단의 하나 뿐인 사도라는 자각을 가져 주세요! 당신은 그렇게 한량처럼 지내도 되는 위치가 아니라고요!”
“저. 케시?”
“얼마 전에도 목숨보다 중요한 일이라면서 일주일 간 틀어박혀서 장신구를 만들더니! 이번엔 또 뭔데요!”
“케시. 케시. 잠시만요.”
“잠시는 뭐가 잠시에요! 제가 사도님 때문에 며칠 밤을.”
“화 좀 가라앉히고 이 수정구를 봐 주세요.”
“하아아. 별 거 아닌 일이기만 해봐요.”
분노로 일그러진 여성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마음속에 절로 두려움이 새겨졌다.
그.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일부러 폐를 끼친 건 아니었어요. 그냥 저 변태가 저한테 달라붙은 건 뿐이라고요. 그러니까 화를 내려면 저 변태에게.
“…사도님. 이 분은.”
속으로 무작정 사과의 말을 늘어놓고 있으려니 갑자기 여성의 안색이 바뀌었다.
방금 전의 분노는 어디로 간 건지 순수한 감탄만이 담긴 그녀의 얼굴은 방금 전까지 마주하던 변태 사도를 떠올리게 했다.
“알른 가문의 영애십니다. 제가 자주 말씀을 드렸지요?”
“그렇긴 했습니다만. 와아.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어. 그. 감사합니다?’
“흐흥. 나한테 감사하도록 해. 매일 거울에서 이상한 걸 봐야 했을 눈을 정화시켜 준 거니까.”
“어쩜 목소리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방금 전까지 이 여성분이 정상이라 생각했던 내가 밉다.
변태 까마귀의 아래에 있는 사람이 멀쩡할 리가 없는데 잠시 착각을 해버렸어.
일부러 들으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지만 수정구 너머의 두 사람은 내 반응을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 분께서 전체적인 코디를 부탁하셔서요.”
“…사도님. 방금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제가 가겠습니다!”
“아무리 케시 사제라도 그건 허락할 수 없어요. 이건 여신님께서 제게 맡긴 과업이라고요.”
“하! 여신님께서도 제 영감을 마주하신다면 말을 바꾸실 걸요?!”
수정구 너머에서도 시끄럽단 생각이 들 정도로 소란스럽던 두 사람의 싸움은 예술 교단의 교회 안에 울려 퍼질 정도로 거대했던 모양이다.
“이번엔 또 무엇 때문에… 허어! 이럴 수가!”
“제발 잠 좀!… 사도님! 저에게 기회를!”
무슨 일이냐는 말과 함께 찾아온 교단의 사람들이 내 얼굴을 마주하곤 싸움에 합류하기를 몇 번.
“이렇게 된 이상 어찌할 수 없군요! 교단의 규율에 따라 승부를 가립시다!”
“사도님이라 하여 언제까지고 이길 것이라 생각하지 마시죠!”
“당신께서 한량처럼 떠돌아다니는 동안 저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부탁의 당사자인 나의 의견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이들을 구경하던 난 그냥 수정구를 꺼버린 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저 절대로 예술 교단에는 안 들릴래요.’
<…어. 그래. 본인의 생각에도 그것이 옳을 듯 하구나.>
*
“다들 많이 성장했지만 그래봐야 여신께서 택한 사도인 저를 이길 순 없었답니다.”
자부심 가득한 변태사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온갖 말들이 속에서 차올랐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 변태 새끼가 기뻐할 게 분명한데 뭐 하러 입을 움직이겠어.
“입을 드레스는 정해두셨다고 하셨죠? 한 번 보여주시겠어요?”
‘여기요.’
“자. 역겹고 지독한 변태인 네 눈으로 살펴봐.”
조이가 골라 준 드레스를 테이블 위에 올리자 변태 사도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디자인은 괜찮네요. 영애의 신체에 맞게 조절을 좀 해야겠지만 이대로 가도 문제는 없어요.”
“장신구는 제 걸 착용한다 하셨으니 화장은 그 쪽에 맞추면 될 테고.”
“여신의 권능을 빌려 몇 가지 축복을 드려도 괜찮겠네요. 영애께서 지닌 신성이 막대하니 분명.”
“아아! 안 되겠어요!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라요! 영애! 부디 시연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영애께서 꾸미신 모습을 보면 분명 뭔가가 떠오를 듯 합니다!”
애처롭게 날 바라보는 변태 사도의 간절한 시선을 살핀다.
분명 내가 부탁하는 입장일 터인데.
아직 그에게 어떤 대가를 제시한다고 한 적도 없는데.
이토록 필사적인 변태사도를 보고 있으니 한 가지 재미난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분위기면 꾸밀 수 있게 해주는 비용을 청구해도 될 것 같지 않아?
‘저어. 사도님…’
“변태 사도. 우리 아직 중요한 이야기를 안 했잖아.”
“중요한 이야기요?”
‘네. 그게…’
“네 허접하고 역겨운 손으로 날 꾸밀 수 있게 해주는 데다가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해주는 거잖아. 설마 맨입으로 넘어갈 생각은 아니지?”
“…과연. 죄송합니다. 영애. 제가 무례했습니다.”
무얼 바라느냐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하겠다며 진지하게 말하는 변태 사도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샜다.
이럴 것 같다고 예상은 했지만 실제가 되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네.
‘별 건 아니고요…’
“요구는 간단해. 내 친구들의 옷을 네 쪽에서 만들어줬으면 좋겠어.”
이틀 전 밤.
연설이라는 이슈 때문에 반쯤 정신이 날아갔던 나는 밤잠을 설치다 그냥 자는 것을 포기하고 책상에 앉아 과거 커마질을 하던 때의 기억을 되새겼다.
그리 어려운 작업일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내가 패션 센스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말야. 커마충들이 투기장을 열어가며 니가 맞네 내가 맞네 떠들어대던 건 기억하거든.
그 의견들을 기반으로 커마하던 걸 떠올리며 의상을 구상하던 나는 이내 한 가지 장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여아야. 이게 사람을 그린 건 아니지?>
‘…일단은 사람이에요. 일단은.’
내 손은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구현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머릿속에 개쩌는 커마들이 들어 있으면 뭐 해!
그걸 종이 위에 그려 놓을 능력이 없는데!
밤을 새어가며 발악을 하다 네 친구들에게 복수를 할 계획이냐는 할배의 통렬한 비판을 들은 나는 스스로 옷을 디자인 하는 걸 포기했다.
그 대신 조이와 페이비 두 사람에게 어울리는 의상의 특징을 정리해 종이에 적어 두었지.
변태 사도 이 녀석에게 디자인을 부탁하기 위해서.
이 놈이 페도에 변태에 역겨운 쓰레기인 건 사실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미적 감각은 경이롭잖아.
내가 적어둔 걸 기반으로 이 녀석에게 디자인을 맡기면 분명 두 사람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올게 분명!
원래는 따로 보수를 지급해가며 부탁할 일이었지만
“별 어려운 부탁은 아니군요. 영애님을 제 손으로 꾸밀 수 있다면 그 정도쯤이야 기꺼이 하죠.”
변태 사도가 도를 넘은 쓰레기인 덕분에 날로 먹을 수 있게 됐네.
…이거 내가 이득인 거 맞겠지?
분명 난 손해 본 거 하나 없을 텐데 변태 사도의 해맑은 웃음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찝찝해지는 걸까.
“제가 의상을 만들어드릴 친구분들을 뵐 수 있겠습니까? 그 분들을 눈으로 봐야 판단이 설 것 같아서요.”
‘물론 가능하긴 한데요…’
“가능하긴 한데. 평소처럼 토 나올 것 같은 소리 지껄이지 마라? 네 변태 기질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면 머리를 깨버릴 테니까.”
“아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교단의 사도로 지낸 것이 몇 년인데 어찌 예의를 모르겠습니까.”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완벽한 예의범절이 담긴 인사를 본 나는 예의를 알면서 나한텐 왜 그러냐면서 성질을 부리려다가 무슨 대답이 나올지 대충 예상이 돼서 입을 다물었다.
이 페도변태의 헛소리를 듣고 있어봐야 내 정신력만 깎일 뿐이니 그냥 무시하자. 무시.
‘지금 친구들을…’
“그 바보들을 지금 데려올 테니까 넌 징그러운 손을 움직일 준비나 하고 있어.”
“친구분들 앞에서 시연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네.’
“응. 역겨운 변태의 평가에는 객관성이 없으니까.”
그 네 사람의 반응을 보면 내 계획이 실현 가능한 지 아닌 지 대충 감이 잡히겠지.
제발 결과가 좋아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 변태의 헛소리를 여태까지 견딘 게 헛수고가 되어버리잖아.
“이것 참. 신용 받지 못해 슬프네요. 미라는 부분에서 저보다 객관적인 사람은 없을 텐데 말이죠.”
변태사도가 지껄이는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방에서 빠져 나온 나는 이마를 붙잡고 한숨을 내뱉었다.
으으으. 지친다. 지쳐.
변태 사도 한 사람만 있어도 이 꼴인데 이거랑 비슷한 놈들이 차고 넘치는 예술 교단은 도대체 어떤 지옥일까.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거기에는 들리지 말자.
변태 까마귀 여신의 신도들에게 둘러싸였다간 진짜 정신적으로 죽어버릴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