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서대문구.
결국 서대문구에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대형병원의 환자들마저 이송되었는데도 고집스럽게 남아있던 사람들이었지만, 황금 사신들이 달려들자 금세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긴 위험해!’
‘인간 도망쳐!’
화난 표정으로 뺨을 때찌때찌하거나.
슬픈 표정으로 볼을 잡아당기거나.
바지 밑단에 잔뜩 달라붙어서 질질 끌려다니거나.
부탁하는 표정으로 애교를 부리거나.
이런저런 황금 사신들의 귀여운 설득에 모두 넘어가 버렸다.
그렇게 서대문구는 마치 유령도시처럼 적막에 휩싸였지만, 장작 돼지 황금 사신의 흔적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실종된 황금 사신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보고 싶은 걸 보면 분명 위험할 상황일 텐데….
그 순간, 칠흑 같은 밤하늘을 가르며 한 줄기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황금색 혜성 같은 빛줄기.
처음에는 미니 사신만큼 작은 불꽃이었지만, 폭발적으로 확산해서 서대문구 전체를 황금빛 물결로 뒤덮었다.
거리의 그림자들은 춤을 추듯 일렁이고, 모든 것이 황금빛 테두리에 둘러싸인 듯했다.
그 태양 같은 빛의 중심에는 조그마한 장작 덩어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황금 사신의 조그마한 주먹 모양 장작이었다.
그리고 태양이 나타난 것과 동시에, 실종된 황금 사신의 기척이 느껴졌다.
‘거기 있었구나!’
황금 사신 주먹 모양의 작은 균열.
그 균열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지만, 이미 한번 위치를 관측한 이상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양손에 장작을 잔뜩 밀어 넣고, 공간을 찢어발겼다.
분노를 담아서 할퀴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그그극.
그러자 마치 유리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수상쩍은 공간이 드러났다.
소용돌이치듯이 염원이 흐르는 뒤틀린 공간.
구석에 쓰러진 단발머리의 소녀.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먹을 들어 올린 자세로 천천히 쓰러지는 황금 망토 사신.
아마 저 장작이 풍부해 보이는 소녀가 황금 망토 사신의 애착 인간이겠지.
나는 그대로 황금 사신을 향해 뛰어내렸다.
내 모습을 올려다보며, 황금 망토 사신은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떨어져 내리며 황금 망토 사신을 가둔 공간을 간단히 찢어발기고, 황금 망토 사신을 품에 안았다.
‘안심해. 엄마가 왔어.’
나는 그렇게 의지를 보내며, 황금 망토 사신에게 장작을 불어넣었다.
장작을 불어넣었다.
장작을 불어넣었다.
장작을 불어넣었다.
‘???’
장작이 보통 황금 사신의 100배는 들어가네….
장작을 통통하게 먹여주자, 황금 망토 사신은 정신을 차리고 나를 올려다보며 작게 웃었다.
나는 그 아이를 한번 쓰다듬어 준 뒤, 내 정수리에 올려두고 쓰러진 소녀는 미니 사신 정원으로 보내버렸다.
‘싸울 준비 끝!’
그리고 납치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머리 위에 헤일로를 쓴 남자가 나를 보며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은 증오하는 것 같기도 했고,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미 늦었다. 부산물.]
남자의 입술이 떨리며 말을 뱉어내는 순간, 공간이 깨지듯이 갈라졌다.
그리고 썩어 문드러진 손들이 공간의 틈새에서 솟아올랐다.
염원으로 만들어졌으나, 뒤틀리고 부패해 버린 욕망의 흔적들이었다.
그 손들은 마치 오랜 시간 동안 갈구해 온 것을 붙잡으려는 듯 필사적으로 남자를 향해 뻗어왔다.
그리고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남자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기 몸을 파고드는 손들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의 살점이 손들과 하나가 되어 녹아내리는데도 그의 표정은 황홀경에 빠진 듯했다.
[드디어… 대업이 성취되었다!]
그의 환희에 찬 목소리와 함께, 융합은 완성되었다.
그런 남자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무수한 손들이 살을 뚫고 솟아 나오고, 움켜쥔 기괴한 형상.
그리고 그 모습은 땅에 못 박힌 ‘옛 신’의 모습과 약간 닮아있었다.
***
늦은 밤, 세희 연구소.
예린은 오랜만에 회색 사신과 같이 놀다가 잠들기 위해 격리실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회색 사신은 오지 않았기에, 예린은 슬픈 표정으로 격리실의 과자를 천천히 집어 먹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사신이용 파자마도 준비했는데….”
물론 입어주지 않았겠지만, 격리실 파자마 파티를 하기 위해서 매번 옷을 준비하곤 했다.
게다가 회색 사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언제나 격리실에 바글바글하던 미니 사신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남아있는 것은 뚜방뚜방 순찰하는 검은 사신들과 졸린 눈으로 침대 위를 뒹굴뒹굴하는 황금 사신들뿐이었다.
침대 위의 황금 사신들도 길쭉한 창을 품에 안고 있는 걸 보면, 비상경계 중인 것 같았다.
예린은 황금 사신이 ‘흐아암’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는 것을 보고, 손가락을 끝을 입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앗!’
거의 눈이 감겨서 당장이라도 잠들 것 같은 황금 사신은 예린의 손가락을 살짝 물어버리자, 화들짝 놀라서 잠에서 깨어버렸다.
‘물어버렸어!’
‘아프지 않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예린을 올려다보며, 손끝을 할짝할짝 핥는 황금 사신.
예린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웃었다.
“말랑말랑해서 하나도 안 아팠어.”
그렇게 말하며 예린은 황금 사신의 말랑 통통한 볼살을 잡아당겼다.
흐아암.
다른 황금 사신들도 모두 하품하며, 잠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졸려서 잠 깨려고 물구나무서기를 하던 황금 사신이 꾸벅꾸벅 졸다가 대굴대굴 굴러버리거나.
잠들지 않기 위해 창을 들고 대련하던 황금 사신들이 깜빡 잠들어서 ‘콩’하고 서로 머리를 박아버리기도 했다.
꾸벅꾸벅 졸면서도 잠들지 않으려는 황금 사신들을 보면, 세희 언니보다 프로 의식이 있어 보였다.
[뉴스 속보.]
[서대문구에 오브젝트 현상 발생.]
그런 문구가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TV 화면이 갑자기 전환되었다.
그러자 어둑어둑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건물들이 우수수 부서져 나가는 모습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면 가운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회색의 형체가 있었다.
“!”
예린이 깜짝 놀라는 순간, 황금 사신들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랜만이야!’
‘부르고 있어.’
‘도움이 필요해?’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예린의 곁으로 걸어와서, 찰싹찰싹 달라붙기 시작했다.
***
마치 염원을 먹는 개미지옥처럼 뒤틀린 공간 속.
나는 흉측하게 생긴 헤일로의 남자를 향해서 ‘뀩’을 사용했다.
그러자 공간이 이리저리 찌그러지더니 검은색 구체가 나타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소용없다.]
하지만 남자의 일갈과 함께 헤일로가 강하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검은 구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성가시네.
저거 설마 공간을 다루는 헤일로야?
남자는 찬란한 헤일로의 빛을 뿌리며, 뭔가에 홀린 것처럼 입을 열었다.
[나는 드디어 ‘신’의 힘을 얻었다.]
[연금술사들의 오랜 비원은 바로 나의 손으로 달성된 것이다!]
그 모습은 조금 광신도처럼 보였다.
그나저나 신이라고?
내가 보기에는 조금 긴가민가했다.
헤일로를 쓴 아귀 사신이나 거미보다는 확실히 강했지만, 외신급인지는 불명확했다.
그 이유는 저 남자의 파괴 조건인 <염원의 ■을 파괴한다.>이었다.
‘눈’으로 파괴 조건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걸 보면, 검은 거인이나 붉은 외신급은 아니더라도 외신에 한 발 걸쳤다고 봐도 되려나?
뭐, 실루엣은 ‘옛 신’이랑 가장 닮기는 했네.
염원에 붙잡혀 날지 못하는 옛 신.
남자는 정말 즐거워 보이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신에 도전했던 흔적을 물리치는 것으로 ‘그 칭호’를 돌려받겠다!]
말하면서 점점 격앙된 남자가 마지막에 이르러 박수를 치자, 강력한 충격파가 불어닥쳤다.
공간 자체에 압력을 가해서 공간을 부스러트리는 충격파였다.
나는 산산이 박살 나는 격자무늬 공간에서 튕겨 나가며, 현실로 튕겨 나와 데굴데굴 굴렀다.
텅 빈 도시와 충격파에 우르르 무너지는 건물들.
저 멀리서 이곳을 찍고 있는 드론들.
그리고 형형색색의 달빛과 하늘에 걸린 4개의 헤일로.
‘바보.’
차라리 갇힌 공간에서 계속 싸웠어야지, 나를 지구로 밀어내다니.
히히.
내가 데굴데굴 구르기를 멈추자, 공간의 틈새에서 남자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자의 뿌리 같은 다리가 지구에 닿자,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뒤틀린 손들이 지면을 향해 뿌리를 뻗었다.
놀랍게도 그 손들은 지구 표면에 닿자마자,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단단히 뿌리내렸다.
그리고 그렇게 뿌리를 내리면서 그 썩어 문드러진 손들은 점점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어?’
마치 ‘옛 신’의 뿌리처럼.
그와 동시에 남자의 몸과 격도 점점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외신급 크기를 가진 남자를 바라보며, 하늘에서 능력 무효화 헤일로를 불러내서 머리 위에 썼다.
그러자 남자의 몸 위로 하얀색 불꽃이 잔뜩 달라붙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오른손에 장작을 잔뜩 밀어 넣고, 남자를 포함한 공간을 그대로 찢어버렸다.
다섯 줄기의 상흔이 하늘에서부터 시작해서 남자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닿지 않았다.
‘어째서?’
자세히 살펴보니, 남자의 피부 위에 씌워진 얇은 공간 장벽이 하얀 불꽃과 공간 절단을 막아내고 있었다.
남자는 이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신의 증거.]
[공간을 다루는 보라색 달이 최강이었듯이, 공간을 다루는 신의 파편은 모든 파편 중 으뜸이다.]
그리고 남자가 검은 거인처럼 길게 늘어진 팔을 휘두르자, 사방에 수많은 검은 구체가 잔뜩 생겨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갈아버리는 검은 구체가 수백 수천 개.
내 몸도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지만, 장작을 사용해서 순식간에 재생했다.
하지만 남자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뒤틀린 염원으로 강화된 공간의 헤일로가 빛을 뿜어내자, 세상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만화경으로 보는 세상처럼 이리저리 뒤틀리고 꺾인 세상.
꺾인 공간에 닿을 때마다, 내 몸은 잘게 토막 나버렸다.
나는 헤일로를 완전 회피 헤일로로 바꾸고, 뒤틀린 공간을 ‘뀩’으로 마구 찢어발겼다.
[잔재주를 부리는군.]
그렇게 뒤틀린 만화경을 찢어버리려는 순간, 남자의 한마디와 함께 공간이 다시 뒤집히더니 내 공간 절단이 나를 향해 돌아왔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온 공격은 완전 회피 헤일로에 의해서 이리저리 비틀려서 빗나가버렸다.
그와 동시에 뒤틀린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남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대단해. 정말 그 터무니없는 계획으로 여기까지 한 건가.]
남자는 약간 감탄과 아련함이 섞인 목소리를 흘렸다.
나는 남자의 말을 흘려들으며, 내 상태를 점검했다.
장작은 아직도 충분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첫 번째는 푸른 아이돌 사신을 불러서 더블 헤일로.
두 번째는 아귀 사신을 불러서 더블 헤일로.
세 번째는 멋지고 강한 티라노를 필두로 미니 사신들을 모두 부른다.
네 번째는 푸른 구체를 불러서 푸른 거인 모드로 싸운다.
다섯 번째는 불변구를 불러서 진짜 옛 신의 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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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예린이를 불러서 무한 장작의 힘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작 선택할 만한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는 막대한 양의 염원으로 강화된 공간의 헤일로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확실하게 승리하겠지만, 이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거인들은 왠지 꺼림칙하단 말이지.
특히 검은 거인.
그리고 예린이 소환은 위험해 보이니까 최후의 수단이었다.
‘….’
아, 생각하기 귀찮아.
그냥 검은 거인이나 부를까.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하늘에서 황금색 오로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장작의 흐름이었다.
남자가 뿌리내린 지면에서 흐르는 질척한 염원처럼, 하늘의 미니 사신 네트워크에서 막대한 양의 장작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흐름의 중심에는 한 황금 사신이 있었다.
유일하게 멀쩡한 고층 빌딩 위에 서서, 한쪽 손을 들고 있는 황금 사신이었다.
그것은 귀여운 뿔이 돋아난 황금 뿔 사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