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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48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세희 연구소 안뜰.

단발 소녀는 그곳에서 부활한 언니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물론 언니가 죽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였으니 부활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돌아온 언니는 인간이 아니었다.

롤케이크 인간.

처음에는 정말 언니가 맞을지 불안하고 어색했지만, 대화를 나눠보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진짜 언니가 돌아왔다고.

그리고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언니가 이렇게 된 것도 ‘그 남자’에게 속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점이라던지.

언니도 ‘축제’에서 최종 승리했는데도, 식물인간이 돼버렸다는 이야기라던지.

그렇게 잔뜩 이야기를 나누고 나자, 단발 소녀와 언니는 서로 기댄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무런 대화도 없었지만,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렇게 단발 소녀가 빤히 언니 쪽을 바라보고 있자, 언니가 시선을 맞춰오며 입을 열었다.

“역시 먹어볼래?”

아니, 역시 말을 안 하는 편이 좋았다.

원래부터 조금 4차원이었던 언니였지만, 롤케이크 인간이 된 뒤로는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은 장난을 자주 쳤다.

갑자기 “듀라한!”이라고 외치더니 자기 머리를 떼어 내서 옆구리에 끼거나, 손가락을 뚝 잘라서 먹어보라고 들이밀지 말았으면 했다.

“그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

“맛있는데….”

단발 소녀는 자기 손가락을 먹는 언니를 보며 푸욱 한숨을 내쉬더니, 주변을 뚜방뚜방 돌아다니는 미니 사신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머리카락을 날카롭게 세워서 뿔처럼 만들며 노는 황금 사신들.

롤케이크 인간을 지키는 것처럼 하얀 아귀를 타고 돌아다니는 황금 사신 기사단.

손톱만 한 오목눈이에게 과자를 먹이는 미니 사신들.

그리고 자기 손가락을 미니 사신들에게 먹이는 언니.

지금 서울은 난리가 났는데, 여기서 언니랑 미니 사신들을 보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현재 언니를 포함한 ‘롤케이크 인간’은 세희 연구소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고, 지금 TV를 보면 ‘롤케이크 인간’이 인간이다 아니다로 의견이 분분했다.

그때 황금 망토 사신이 약간 우울해 보이는 단발 소녀의 볼을 콕콕 찔렀다.

‘?’

단발 소녀가 고개를 돌리자, 황금 망토 사신은 소녀를 향해 믿음직스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마치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미소.

그 미소에는 무슨 일이 생겨도 도와주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녀는 황금 망토 사신을 손바닥 위에 올린 뒤, 살살 쓰다듬으며 되물었다.

“회색 사신은 대한민국의 ‘신’이나 마찬가지니까, 롤케이크 문제도 잘 풀리겠지?”

황금 망토 사신은 안심하라는 것처럼 두 주먹을 단단히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단발 소녀는 마음이 놓인 듯한 모습으로, 안뜰에 마련된 푸딩을 황금 망토 사신과 나눠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푸딩 하나를 다 나눠 먹을 때쯤, 오브젝트 협의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세희 연구소 안뜰로 우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 중요한 발표를 할 것만 같은 분위기에 안뜰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삼켰다.

***

미니 사신 정원, 까맣게 탄 마시멜로 평원.

원래 평범한 마시멜로 평원이었던 이곳은, 하얀 아귀 소각로 골렘이 돌아다니는 바람에 까맣게 색이 변해버렸다.

그런 까만 마시멜로 평원 위, 나는 적당한 높이의 언덕 위에 앉아서 골렘을 구경하고 있었다.

골렘 주변에는 하얀 아귀들이 잔뜩 모여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하얀 아귀가 아니라 미니 사신들이었다.

‘공격!’

내가 전에 미국에서 하얀 아귀를 뒤집어쓴 것처럼 미니 사신들도 하얀 아귀를 뒤집어쓴 채, 하얀 아귀 ‘용사’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하얀 아귀를 입고, 골렘을 물리쳐서 하얀 아귀를 구출한다는 설정의 놀이였다.

‘도대체 저런 놀이는 누가 생각하는 거지?’

물론 내가 구경하는 동안, 하얀 아귀 용사가 승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으앙! 당했어!’

골렘의 불길에 하얀 아귀 옷에 불이 붙자, 황금 사신은 그 옷을 벗어 던지고 죽은 것처럼 바닥에 널브러졌다.

아마 몸에 불이 붙으면 패배하는 설정으로 보였다.

그리고 황금 사신이 벗어던진 하얀 아귀 허물은 골렘이 집어서 소각로에 집어넣었다.

뀨힝힝.

‘재밌어 보이네.’

나는 하얀 아귀만 억울한 놀이를 하는 미니 사신들에게서 눈을 떼고, 내 손아귀에 잡힌 주황 왕관 사신을 내려다보았다.

주황 왕관 사신은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렸다.

사실 조금 특별해 보이는 미니 사신들을 모두 불러서 헤일로 테스트를 하려고 했는데, 특별히 주황 왕관 사신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나는 아직도 ‘바쁨’이라고 한마디만 하고 일광욕을 즐기던 괘씸한 모습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거대한 지게를 만들어서 황금 뿔 사신과 몇몇 황금 사신들을 태우려고 하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 황금 사신들이 늙었다고 그러는 것 같았는데, 왠지 나도 태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나는 주황 왕관 사신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소환할 수 있는 헤일로를 모두 소환했다.

능력 무효화 헤일로.

완전 회피 헤일로.

환상 구현화 헤일로.

언령의 헤일로.

공간의 헤일로.

총 5개.

게다가 공간의 헤일로는 내가 직접 써보지도 못한 신상품!

히히.

‘….’

‘….’

테스트가 모두 끝나자, 주황 왕관 사신은 죽은 것처럼 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았다.

뭉게구름 같은 머리를 한 주황 왕관 사신이 엎어진 채, 움직이질 않으니까 복슬복슬한 애벌레 같아서 살짝 웃음이 나왔다.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바쁨’을 다시 떠올려 보니 아직 조금 모자란 듯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주황 왕관 사신을 들어 올려 머리카락을 잘 엮어서 진짜 애벌레처럼 꾸며주었다.

그리고 나는 주황 왕관 사신 애벌레를 양지바른 곳에 배치해 두었다.

히히.

이번 주황 왕관 사신 실험은 꽤 성공적이었다.

미니 사신마다 잘 맞는 헤일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험 결과를 얻어냈으니까.

푸른 아이돌 사신이 사용하는 언령의 헤일로처럼, 주황 왕관 사신도 완전 회피 헤일로를 썼을 때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모든 헤일로를 미니 사신들에게 넘겨주면, 외신이 나타나도 싸울만하겠네.

나는 꿈 같은 미래를 그리며, 다른 특수 미니 사신을 향해 뚜방뚜방 걸어 나갔다.

***

오브젝트 협의회에서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어서 그런지, 세희 연구소 사무실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 술렁거렸다.

연구원들의 발걸음 소리와 흥분된 목소리가 뒤섞여 한데 어우러졌다.

원래부터 일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더욱 그런 현상이 두드러져 보였다.

헬멧 연구원은 이 소란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바쁘게 오갔고, 눈은 모니터에 고정된 채 보고서 작성에 몰두했다.

하지만 헬멧 연구원의 귀는 주변의 대화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들었어? 황금뿔 격리 구역처럼 롤케이크 인간 특별 구역을 만든대.”

“뭐, 그게 제일 자연스러운 해결 방법이기는 하지.”

두 명의 연구원이 안뜰이 내려다보이는 사무실 창문가에 서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엔 오브젝트로 분류해서 연구소에 격리하자는 의견도 있었다던데, 용케 이런 결과가 나왔네.”

“황금 사신들이 보호하고 있어서 그랬겠지. 격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거야.”

“하긴 황금 사신들 인기가 상당하니까. 투표에 영향을 줄지도 몰라.”

연구원들은 그렇게 키득키득 웃으며 대화하다가 김중뢰가 사무실로 들어오자,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렇게 다시 조용해진 사무실 안에서, 헬멧 연구원은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보고서의 제목은 <귀여운 강아지 강탈 보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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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 사신 정원 깊숙한 곳, 마시멜로 평야와 사탕 산맥이 만나는 곳 너머에는 숨겨진 성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회색 사신조차 그 존재를 알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숨겨진 비밀의 성이었다.

성벽은 형형색색의 사탕과 투명한 물의 조화로 이루어진 예술품처럼 보였다.

성의 주변에는 하얀 아귀를 탄 황금 사신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성벽 위 망루에서는 푸른 창을 든 황금 사신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 주변의 분위기는 미니 사신 정원이라기보다는 기사 이야기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이 성은 다른 미니 사신들에게 이렇게 불렸다.

‘황금 사신 기사단의 성.’

그 황금 사신 기사단 성의 웅장한 성문 너머, 긴 복도 끝에는 성에서 가장 넓고 화려한 방이 있었다.

이 방의 천장은 높이 솟아있어 웅장함을 더했고, 벽면은 황금색 사탕으로 장식되어 눈부시게 빛났다.

바닥은 투명한 사탕으로 만들어져 있어 마치 유리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방의 중앙에는 거대한 원탁이 놓여 있었는데, 그 주변을 빙 둘러서 수많은 황금 사신이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 화려한 방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원탁의 한가운데에 놓인 거대한 개집이었다.

그 안에는 황금 사신이 강탈한 ‘귀여운 강아지’가 누워 있었다.

‘!’

그때 ‘귀여운 강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허공을 향해 마구 짖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금 사신들은 의자에서 일어나, 히히 웃으며 무언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귀여운 강아지가 짖는 것을 멈추자, 방의 구석에 얌전히 서 있던 푸른 사신이 천천히 원탁 근처로 다가가 물로 만든 문자열을 수놓았다.

<서울 북서쪽, 12km>

<강함은 ‘황금 사신 제1 검’급!>

그 문자열을 보자 황금 사신들이 깜짝 놀라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한 황금 사신이 하얀 아귀를 잡아타더니, 창을 들어 올렸다.

‘함께라면 무서울 게 없어!’

그 황금 사신은 마치 문제 될 것은 전혀 없다는 것처럼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다른 황금 사신들도 하얀 아귀에 올라타더니, 의지를 내뿜었다.

‘전부 출진!’

‘해로운 오브젝트!’

그렇게 황금 사신 기사단은 서울에 나타난 오브젝트를 처치하기 위해 출진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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