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오후의 종로구 거리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평소라면 관광객들과 직장인들로 북적이던 이곳은 지금 공포에 질린 군중들의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먼저 들려온 건 저 멀리 광화문 쪽에서 울려 퍼진 굉음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건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핸드폰 비상 알림음이었다.
삐비빅! 삐비빅!
거리에 있던 모든 사람의 휴대전화에서 일제히 똑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은 어딘가 섬뜩해 보였다.
<[안전 안내] 긴급 오브젝트 경보.>
<[종로구] 특급 오브젝트 출현>
<주민 대피령 발령. 즉시 가까운 대피소로 이동 바람.>
<관계 기관 안내에 따라주시기를 바랍니다.>
재난 문자를 확인한 사람들이 일제히 도망가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귀를 찢는 듯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이렌 소리를 울려 퍼지며 사람들이 정신없이 도망가는 가운데, 사이렌 소리에 섞여 굉음이 울려 퍼졌다.
쿠구궁.
그러자 도망치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멀리 보이는 고층 빌딩이 마치 종이처럼 구겨지듯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흙먼지가 하늘로 치솟았고,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도망가!”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군중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여유롭게 걸었던 거리를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달렸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들은 신발을 벗어 던진 채 맨발로 뛰어갔고, 양복 차림의 남성들은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숨을 몰아쉬었다.
거리의 모든 것이 혼돈 그 자체였다.
신호등은 무의미해졌고, 차들은 도로 위에 무질서하게 멈춰 서 있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도시는 점점 더 큰 혼란에 빠져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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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사람의 외침과 함께, 도시에는 묘한 안도감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이야!”
화려하게 장식된 하얀 아귀를 타고, 푸른 창을 쥔 황금 사신 기사단이 사람들 사이를 질주했다.
사람들의 흐름을 역행하며 흙먼지를 뚫고 들어간 끝에, 황금 사신들이 맞닥뜨린 것은 거대하고 반투명한 나비였다.
나비는 그저 천천히 날개를 펄럭이며 날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도시는 엉망진창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나비가 날갯짓을 한 번 하면, 주변 물건들이 모래처럼 부스러지기도 했다.
나비가 날갯짓을 또 한 번 하면, 주변 물건들이 원래 형상을 되찾기도 했다.
황금 사신들은 그 기묘한 현상을 나름대로 분석했다.
‘새싹 동생 능력이랑 비슷해?’
‘비슷해!’
황금 사신이 보기에 저 나비는 시간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나비가 움직이면 일부분은 풍화될 정도로 미래로, 어떤 부분은 현재, 어떤 부분은 과거의 형상을 취했다.
그따위로 시간이 조각나버리자, 인간이 만든 건물들은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황금 사신 원탁의 멀린 역인 푸른 사신이 해석한 것처럼, ‘제1 검급’에 걸맞은 강력한 오브젝트 능력이었다.
‘돌격!’
황금 사신들은 일제히 하얀 아귀의 오브젝트를 태우는 불길을 몸에 두르고, 나비를 향해 돌진했다.
푸른 사신이 만들어 준 푸른 창이 나비의 몸통에 날아들었지만, 반투명한 나비의 몸통은 그저 창날과 불꽃을 뒤로 흘려버릴 뿐이었다.
‘안 통해!’
‘강해!’
나비는 황금 사신 기사단을 무시한 채,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해 끊임없이 날아갈 뿐이었다.
‘앙대….’
‘인간이 위험해!’
당황한 황금 사신들은 창마저 바닥에 던져버리고 겹치기를 사용했지만, 나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황금 사신들은 나라를 잃은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은 채, 엄마를 부를 준비를 했다.
‘엄마, 빨리 와.’
‘엄마, 근처에 있어?’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참격이 나비를 향해 내리꽂혔다.
‘엄마?’
엄마가 사용했던 공간 찢기와 비슷한 규모의 참격.
하지만 하늘과 땅, 주변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엄마와 달리, 나비만 깔끔하게 잘라내는 세련된 참격이었다.
‘제1 검이 왔어!’
‘더 강해졌어!’
황금 사신들의 시선이 일제히 주변에 높게 솟아오른 건물의 옥상을 향했다.
그곳에는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은 황금 사신 제1 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거칠지 않고 고르게 정돈된 장작 검을 손에 든 채, 나비가 있던 곳을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나비가 죽지 않았다는 것처럼.
‘앗!’
‘나비가 살아있어!’
황금 사신들이 고개를 돌리자, 반으로 잘렸던 투명 나비는 어느새 멀쩡해진 채,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황금 사신 제1 검은 재생하는 나비의 모습을 보며, 어떤 원리로 살아남은 것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재생. 그렇다면….’
황금 사신 제1 검은 나비 주변에 뒤엉킨 시간과 공간의 결을 바라보며, 천천히 어깨높이로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몸을 한 바퀴 매끄럽게 돌리며,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공허 베기!’
그러자 검이 그린 궤적의 형상대로 검은 선이 그어지더니, 거대한 나비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투명한 나비를 공간의 저편으로 모조리 빨아들일 때까지, 계속.
그것은 엄마의 ‘뀩’의 검은 구체와 닮아있었다.
***
나는 외신 자동 사냥의 큰 꿈을 안고, 가장 먼저 황금 사신 제1 검을 불러냈다.
저번에도 순순히 날아왔던 녀석이라 기대를 품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바쁨.’
헉!
안 돼.
황금 사신 제1 검마저 비뚤어졌어.
나는 마음속에서 심술이 돋아나는 것을 느끼며, 황금 사신 제1 검이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어디론가 바쁘게 뛰어가는 제1 검과 도시에 불쑥 튀어나온 거대한 나비 오브젝트였다.
나비는 척 보기에도 상당한 격을 가진 특급 오브젝트였다.
‘앗. 진짜로 바빴네….’
혼자 심술을 내서 그런지,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제1 검에게 ‘다음에 부를게’ 하는 의지를 남기고, 미니 사신 정원으로 돌아와 버렸다.
미니 사신 중, 격으로는 주황 왕관 사신이랑 제1 검이 제일 뛰어나서 먼저 실험하려고 했는데, 바쁘면 어쩔 수 없지.
왠지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쩔 수 없네.
실험은 다음에 전부 모아서 해야겠어.
***
미니 사신 정원, 노란 사신 극장.
나는 극장 좌석에 앉아서, 이번 사건을 바탕으로 한 연극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연극은 나의 화려하고도 멋진 펀치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마지막 장면은 그야말로 그때의 전투를 그대로 재현한 멋진 장면이었다.
나는 짝짝 박수를 치며 멋진 연극에 찬사를 보냈지만, 미니 사신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엄마 펀치 달라?’
‘가짜 연극?’
내가 연극 내용을 조금 바꾸라고 했는데, 예상외로 미니 사신들은 금세 눈치를 채 버렸다.
펀치를 날리는 동작을 정말 아주 조금 살짝 바꿨을 뿐이었다.
팔, 다리, 허리를 바꾼 길이를 다 더해도 1m도 안 될 정도!
멋진 엄마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노란 사신을 협박까지 했는데….
유능한 엄마 프로파간다는 실패인 건가?
미니 사신들에게 가짜 연극이라는 항의를 들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노란 사신이 나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못 본 척 자리를 떴다.
히히.
그렇게 노란 사신 극장에서 벗어나서 마시멜로 평원을 뚜방뚜방 걷고 있었더니, 황금 사신들이 우르르 어딘가로 몰려가는 것이 보였다.
‘새로운 땅이 나타났대!’
‘새로운 탐험!’
‘새로운 간식!’
모험할 만한 새로운 땅을 찾아가기 위해 생겨난 황금 사신의 길쭉한 행렬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미니 사신 정원 탐방을 별로 안 하고 있었네.
이유는 딱 하나.
미니 사신 정원이 너무 넓어졌어….
딱히 새로운 지역이 생기지 않더라도 슬금슬금 크기가 늘어나더니, 지금은 걸어서 돌아다니기 귀찮을 정도로 넓어진 상태였다.
‘엄마도 가자!’
‘모험!’
몇몇 황금 사신들은 내 몸을 타고 올라와서는 같이 가자고 재촉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런 황금 사신들을 잔뜩 몸에 붙이고, 황금 사신들의 행렬을 천천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
세희 연구소의 뒤뜰에는 늦은 오후의 황금빛 햇살이 스며들었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들이 잔디밭 위에 신비로운 무늬를 그리는 가운데, 하늘에서 구름 고기들이 잔뜩 내려와 있었다.
뒤뜰을 마치 놀이터처럼 누비는 구름 고기들은 미니 사신들을 전 세계로 나르기 위한 구름 고기들이었다.
수많은 미니 사신이 구름 고기에 타고 내리는 그곳에서, 보기 드문 미니 사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머리 위에 조그마한 열매를 달고 있는 새싹 사신이었다.
새싹 사신의 품에는 더욱 조그마한 미니 새싹 사신이 안겨있었다.
‘갈 거야!’
미니 새싹 사신은 새싹 사신의 품속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고, 새싹 사신은 미니 새싹 사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끌어안는 중이었다.
‘애착 인간 찾으러 갈 거야!’
미니 새싹 사신은 세희 연구소에 있는 인간 중에서 애착 인간을 고르지 못했는지, 구름 고기를 타고 여행을 떠나겠다고 보채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던 새싹 사신은 작게 한숨을 푹 쉬더니, 열매를 똑 뜯어서 지나가던 구름 고기의 입속에 물려주었다.
그 모습을 본 미니 새싹 사신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뚜방뚜방 걸어가더니, 그 구름 고기 위에 올라타고는 의지를 내뱉었다.
‘출발!’
그러자 구름 고기는 빠른 속도로 하늘로 솟구치더니, 빠른 속도로 세희 연구소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니 새싹 사신의 모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