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짝폴짝.
경쾌한 걸음걸이로 달려 나갔다.
폴짝폴짝.
기계 좀비를 생산하는 본체를 찾아 떠나는 짧은 여정이었다.
상당한 거리를 움직여야 하니 유령화 상태로 폴짝폴짝 뛰어가고 있었다.
저 멀리서 계속 쫓아오는 유령잡이들만 아니면 더 좋았을 텐데.
유령화 중인 나를 발견하자, 유령잡이들은 눈이 돌아가서는 미친 듯이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분명히 다른 유령 오브젝트를 쫓아가던 녀석들도 있었던 거 같은데, 나만 보면 이상하게 나만 쫓아왔다.
다행히 속도는 내가 월등히 빨라서 붙잡힐 염려는 없어 보였다.
그냥 빨리 포기하고 다른 유령 오브젝트나 쫓아가라고!
“그아아아아!”
짜증난다는 듯 한 유령잡이의 고함소리가 숲속을 울렸다.
***
유령잡이를 완전히 따돌린 지 시간이 좀 지났다.
서울과 거리도 꽤 떨어져, 기후와 식생도 조금씩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귀찮게 굴던 유령잡이 같은 오브젝트도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았다.
조금은 삭막해 보이는 숲 속에서, 슬금슬금 걸어오는 좀비 하나를 처리한다.
푹하고 좀비의 심장을 꿰뚫는다.
좀비를 여럿 처리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좀비를 처리할 때는 심장을 뽑을 필요는 없었다.
간단히 심장을 파괴하는 것만으로도 오브젝트로써의 조합이 깨졌다.
조합이 깨지면? 재생력을 상실하고 강철탑에 분해되는 것이다.
상당히 먼 거리를 이동해 와서 그런지, 처리한 좀비의 숫자도 꽤 많았다.
30마리쯤 죽였나?
좀비를 만드는 본체가 강철탑 근처에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이정도면 본체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지는 한참이 지났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보내는 거야?
이러다가 옛 북한 국경을 넘게 생겼다.
***
“세희 언니, 그러면 저 먼저 내려가 볼께요!”
예린은 그 말을 끝으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도봉구 사태 이후로 연구소는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귀여운 강아지’의 신호로 관측을 나갔던 직원들이 대부분 도봉구 사태에 휩쓸렸기 때문이었다.
연구소 규모 확대 목적으로 ‘귀여운 강아지’를 임시로 맡겠다고 나선 게 실수였던 걸까?
다행히 도봉구 사태에 휩쓸렸던 직원들은 김중뢰와 몇몇 이들의 발로 뛰는 노력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예린이 주먹을 빙빙 휘두르며 직원들을 이끌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옥상에 있었는데, 기운차기로는 연구소 no.1이었다.
연구소 인근은 전보다 훨씬 북적이고 있었다.
서울 외곽에 존재하는 연구소 밀집단지인 데다가, 인프라도 충실히 갖춰진 지역이라서 피난을 온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다.
서울숲에서 꽤 떨어질 수 있으면서 인프라도 있고 서울에서 그렇게도 멀지 않은 최적의 입지라는 걸까?
“후우….”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사신이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도봉구의 얼음 왕좌는 완전히 녹아내렸다.
얼음 병사들도 모두 가루가 되어버렸다.
서울 전체를 공포와 충격에 빠트린 더욱 큰 문제, 강철탑의 이변도 멈췄다.
처리한 공로자가 밝혀진 도봉구의 얼음 왕좌와는 달리강철탑의 맥동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끝나버렸다.
물론 시작된 이유도 몰랐다.
왜 이런 일이 시작됐고, 왜 갑작스럽게 끝이 났는지를 알지 못하고 끝났다.
그 때문에 서울에서는 언제든지 저런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공포를 안고 살게 된 것이다.
사신 바라기인 예린은 도봉구도 사신이 처리했고, 강철탑 문제도 사신이 처리했다고 농담처럼 떠들고 다녔다.
지금 안 돌아오는 것도 뭔가 할 일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할일이 끝나면 훌쩍 돌아와 있을 거라고 했다.
나도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신이 없으면 뭔가 쓸쓸한 기분이 드니까 말이다.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한밤중, 한 무리의 남자들이 폐가 같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에휴.”
불퉁한 표정의 대머리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머리는 이런 사람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까지 조사를 나와야하는 현 상황이 답답했다.
중앙 연구소 소속이었던 대머리는 이제는 ‘임시 오브젝트 관리 기구’ 소속이 되어 일하고 있었다.
대머리가 받은 명령은 딱 하나.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누구보다 빠르게 황금뿔 사건을 해결할 것.
대머리는 이 사건은 절대로 해결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납치돼서 중국까지 끌려온 사람의 흔적을 도대체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오브젝트가 나타나기 전의 안전했던 세계면 몰라도, 치안이 좋은 편인 한국조차 오지라면 사람이 빈번히 시체가 되는 이 시대에?
하지만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은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같은 ‘임시 오브젝트 관리 기구’에 속한 어떤 요원이 황금뿔의 행방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대머리는 그 요원의 공을 가로채기 위해서 미리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대머리가 받은 명령은 ‘누구보다 빠르게 이 사건을 해결할 것.’ 이었으니까 말이다.
불만스러운 표정의 대머리는 고개를 까닥이며 부하들에게 건물로 진입을 명령했다.
부엉이가 우는 소리가 불길하게 울려 퍼졌다.
요원이 남긴 기록을 보면 황금뿔 밀수의 흔적은 이 흉흉한 연구소에서 끊겨 있었다.
덕분에 이렇게 늦은 밤, 이렇게 흉흉한 폐건물에 걸음을 옮기게 된 것이었다.
대머리는 부스러진 콘크리트 한 조각을 집어 들고는 중얼거렸다.
“여기가 수일 전까지 운영했던 연구소라고? 제대로 찾아온 거 맞나?”
기록에 따르면 눈앞의 폐건물은 겨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상적으로 운영을 하던 연구소였다.
하지만 지금 꼬라지를 보면, 건물은 이미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폐가가 되어버렸다.
그그극.
딱딱한 유리가 신발에 짓눌리는 소리, 조용한 폐건물이라 그런지 그 소리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느껴졌다.
평범한 사람은 딸꾹질을 할 만큼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훌쩍거리며 우는 여자의 목소리, 그리고 벽을 사정없이 긁는 소리.
남자들은 놀라서 사방을 훑어보지만, 소리의 근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남자들은 달아나고 싶을 만큼 무서운 상황이었지만, 간신히 이성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여기서 도망쳐 버린다면 자신들의 현실이 더욱 공포스럽게 변할 테니 말이다.
마른 침을 삼키며 그저 폐건물의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여자의 우는 소리, 그리고 손가락 끝의 살이 뭉개지는 기분 나쁜 소리를 배경으로 말이다.
“흐어억!”
전진하던 남자 중 한명이 갑자기 벽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에 깜짝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집으로. 보내줘. 보내줘.>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집으로. 보내줘. 보내줘.>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집으로. 보내줘. 보내줘.>
의미심장한 문구들이 핏물로 벽면에 새겨졌다.
대머리는 놀라서 쓰러진 직원을 발로 걷어차며 빨리 전진할 것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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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의 일종이겠지. 하는 꼴을 보니 겁밖에 못 주는 것들이야. 전진해!”
저런 애매한 공포보다는 자신의 보스가 더 잔혹했기에 나올 수 있는 태도였다.
말 그대로 죽기 싫으면 죽는 시늉까지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남자들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 앞에 도착했는데, 불길한 흔적들이 가득했다.
까맣게 타죽은 시체들.
그리고 귓가에서 계속 웅얼거리는 작은 목소리.
그리고 빛을 아무리 비춰도 밝혀지지 않는 계단의 입구.
그 무저갱 같은 계단은 마치 지옥의 입구처럼 보였다.
공포에 질린 직원들은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이런 멍청한 놈들. 내가 갈 테니 따라오기나 해.”
겁에 질린 남자들을 비웃은 대머리는 거리낌 없이 계단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단을 앞장서서 내려가기 시작한 대머리의 눈앞에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끄어억!”
누군가가 대머리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대머리는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분명 눈앞에는 아무도 없는데!
꺽꺽, 하고 숨을 쉬지 못하는 채로 팔다리를 무의미하게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전신으로 옮겨붙은 불은 그를 깡그리 태우기 시작했다.
대머리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가던 남자들은 그 광경에 대경해서 줄행랑 쳐버렸다.
끊임없이 울리던 대머리의 비명은 금세 멎었다.
그 처절한 절규가 멈춘 폐건물은 이제 평소와 같이 기분 나쁜 적막만이 가득했다.
***
‘흐으음.’
여긴 확실히 한국은 아닌 것 같다.
강도 몇 개 건넌 거 같은데, 그 중에 압록강 같은 것도 있지 않았을까?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같은 현대 문물이 흉물스럽게나마 남아있는걸 보면 강철탑의 범위에서도 벗어난 걸로 보였다.
다행히 좀비를 보내는 본체의 위치를 찾아냈다.
눈앞에 보이는 버려진 콘크리트 건물이 그것이었다.
건물 자체가 오브젝트는 아니니까, 저 안에 본체가 있겠지.
건물 앞에 서자 불길한 부엉이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운 한밤중에 버려진 건물 앞에 서니 확실히 으슬으슬한 기분이 들었다.
건물에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깨진 유리를 밟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기괴한 소리가 근처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벽을 긁고 있는 유령이 보였다.
‘!’
와, 귀신 처음 봤어.
영체를 볼 수 있게 된 뒤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귀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정말 인간이 죽으면 귀신이 될까?
꼭, 확인해보고 싶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귀신은 없었다.
적어도 오늘 이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귀신이라니! 왜 여기에만 귀신이 있는 거지?
울면서 벽을 벅벅 긁는 귀신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귀신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품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