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좋네.”
창가에 앉아 중얼거리는 단발 소녀의 머리카락이 따스한 햇살에 반짝였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창밖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기고 있었다.
새로이 지어진 건물들과 아직 도시가 익숙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
이곳은 서울 송파구 외곽에 위치한 ‘오브젝트 침습 피해자 특별 관리 구역’이었다.
일명, 롤케이크 특구.
이곳은 원래 제임스 연구소 소유의 건물들이 잔뜩 들어서고 있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언니’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곳이 되어버렸다.
원래 특구는 조금 더 위험한 지역에 마련될 예정이었지만, 제임스 연구소에서 이 지역을 오브젝트 침습 피해자들에게 제공해 준 덕분에 이곳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단발 소녀는 창가에 앉아 ‘롤케이크 특구’를 구경하며, 어느새 갑옷을 모두 갖춰 입은 황금 갑옷 사신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푸른 하늘과 따뜻한 햇살, 그리고 거리를 가득 채운 활기.
이런 격리 구역에 강제로 들어오게 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면 누구나 불안감을 느낄 법도 했지만, 거리의 분위기에서는 그런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감은 느껴지지 않고, 긍정적인 분위기만 느껴지는 원인?
그것은 도시 어디서든 시선을 돌려보면,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특구 중앙에 솟아오른 거대한 바람개비.
황금 사신이 잔뜩 돌아다닌다는 증거.
사탕과 과자와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바람개비는 천천히 회전하며, 특구 전체에 달콤한 향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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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소녀는 깊은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창문을 통해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황금 사신 향기.’
그와 함께 태양을 닮은 향기가 마음을 더욱 편하게 만들어줬다.
눈을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시 정비 작업을 지휘하는 한 인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로 제임스 연구소의 소유주인 제임스였다.
얼핏 보기에도 유능하고 진지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단 하나의 기이한 모습이 그의 전체적인 인상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제임스의 머리 위에는 황금빛 사신이 자리 잡고 앉아, 마치 그의 머리카락을 조종하듯 양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따뜻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후후.”
단발 소녀는 그 모습을 보며, 절로 나오는 웃음을 작게 흘렸다.
그렇게 활기가 넘치는 창밖을 구경하고 있었더니, 갑자기 집안이 너무 조용하게 느껴졌다.
‘언니가 어디 갔지?’
단발 소녀는 창밖에서 시선을 떼서 집안으로 돌아보았지만, 집은 어느새 텅 빈 상태였다.
“언니?”
단발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도중, 언니가 휘갈겨 쓴 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잠깐 나갔다 올게. 냉장고에 먹을 것 좀 사다 놨으니, 먹고 싶으면 먹어.>
먹을거리?
뭘 사 온 걸까?
단발 소녀는 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아무런 생각 없이 냉장고에 다가가서 그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에비!” 라고, 소리치며 정체불명의 괴물체가 그녀에게 뛰어들었다.
“꺄아악!”
단발 소녀는 새하얗게 질린 채,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몇 초 뒤, 괴물체의 정체를 확인한 단발 소녀는 몹시 화난 표정으로 괴물체를 마구마구 찌그러트렸다.
“언니! 그런 거 좀 하지 말라고 했잖아! 벌써 몇 번째야?”
단발 소녀는 원래부터 장난기가 심했던 언니가, 롤케이크가 된 뒤 듀라한 장난을 너무 많이 쳐서 심장이 하루에도 몇 번씩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으악. 찌그러진다!”
언니는 자기 머리가 마구마구 찌그러지면서도, 재밌다는 듯이 히히 웃고 있었다.
***
평소처럼 어딘가 소란스러운 분위기의 세희 연구소 사무실.
헬멧 연구원은 주변의 소란스러운 소리를 무시한 채, 책상에 앉아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헬멧 연구원이 작성하고 있는 보고서의 제목이 떠올라 있었다.
<귀여운 강아지 강탈과 하얀 아귀를 탄 황금 사신의 연관성.>
헬멧 연구원은 귀여운 강아지 강탈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던 도중, 흥미로운 데이터를 발견하고 보고서로 엮는 중이었다.
그 흥미로운 데이터란, ‘하얀 아귀를 탄 황금 사신’의 활동 범위와 귀여운 강아지의 경고 범위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증거들을 종합해 볼 때, ‘하얀 아귀를 탄 황금 사신’ 집단은 강탈한 귀여운 강아지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서울 내 오브젝트 제거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강탈된 강아지를 무리해서 되찾아 올 필요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고서 작성을 마치고 의자를 살짝 뒤로 밀자, 심심한 표정으로 구석에 찌그러져 앉아 있던 황금 사신이 벌떡 일어나서 후다닥 달려들었다.
‘끝난 거야?’
‘끝난 거지?’
황금 사신은 자신을 올려다보며 폴짝폴짝 뛰며, 뭔가를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빨리 집에 가서 같이 놀자는 이야기가 아닐까?
헬멧 연구원은 시계를 힐끗 쳐다봐서 확인한 뒤, 황금 사신을 들어 올리며 작게 속삭였다.
“그래, 돌아가자.”
그러자 황금 사신은 행복한 표정으로 히히 웃으며, 헬멧 연구원의 셔츠 주머니로 쏙 들어가 버렸다.
웅성웅성.
헬멧 연구원이 퇴근 준비를 마치고 천천히 사무실을 나서자, 세희 연구소 직원들이 잔뜩 모여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호기심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화려하게 장식된 디저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스크림과 푸딩, 그리고 과일로 장식된 디저트였다.
물론 세희 연구소에서 보기 힘든, 특별한 간식은 아니었다.
세희 연구소는 미니 사신들을 위해 온갖 종류의 단 음식을 준비해 두고 있었으니까.
왜 저렇게 우글우글 모여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니 사신들이 연구소 직원들을 위해서 간식을 만들고 있었다.
푸른 사신들이 마법으로 그릇을 깨끗하게 만들고, 검은 사신들은 빈 그릇을 날랐다.
황금 사신들은 그릇 안에 과일을 예쁘게 담아냈고, 아귀 사신이 아이스크림을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푸딩 사신이 가운데 자리에 ‘쏙’하고 들어갔다.
물론 서빙되기 전에 푸딩 사신의 본체는 아귀 사신이 잡아당겨서 밖으로 꺼내고, 푸딩만 서빙되었지만 말이다.
미니 사신이 만든 디저트라….
헬멧 연구원도 갑자기 먹고 싶어져서, 디저트를 받은 뒤 황금 사신과 같이 먹었다.
옴뇸뇸.
소소한 행복이 가득한 세희 연구소의 일상이었다.
***
모험을 떠나는 황금 사신들의 행렬을 따라서 내가 도착한 곳은 젤리 밀림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장소가 발견된 줄 알았는데, 젤리 밀림이었던 건가?
‘그러고 보니 황금 사신들이 젤리 밀림을 돌아다니는 걸 본 적이 없네.’
곰곰이 생각해 봐도 젤리 밀림에서는 날아다니는 초록 사신이나 주황 사신만 가끔 보였을 뿐이었다.
‘젤리!’
‘젤리!’
황금 사신들이 알게 된 것은 모든 미니 사신이 알게 되는 건지, 젤리 밀림에는 다양한 미니 사신들이 뚜방뚜방 돌아다니며 각자의 방법으로 즐기고 있었다.
커다란 젤리 버섯을 트램펄린처럼 쓰거나.
젤리 넝쿨을 타고 땅에 발을 대지 않고 돌아다니거나.
젤리 나무를 이용해서 만든 투석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거나.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놀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젤리 밀림은 그렇게까지 새로운 지역이 아니었다.
슬슬 지루해져서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몇몇 황금 사신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황금 사신들의 행렬은 멈추지 않고 전진해서 젤리 밀림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마치 젤리 밀림이 그들의 진정한 목적지가 아니라는 듯이.
그 점이 신경 쓰여서 계속해서 따라가다 보니, 정말 처음 보는 구조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
그것은 젤리로 가득한 밀림 속에 어색하게 자리 잡은 페이스트리 구조물이었다.
그 구조물은 나선형으로 지면 깊숙이 파고드는 형태였는데, 왠지 ‘개미지옥’을 연상시켰다.
헤일로를 쓴 남자가 만들었던 공간과도 조금 닮아 있었다.
게다가 그 규모도 상당히 거대했다.
지하로 파고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고, 그 넓이는 대형 경기장만큼 넓었다.
나는 황금 사신들 사이에 섞여 뚜방뚜방 지하로 향하는 나선을 걸어 나갔다.
계속, 지하 깊은 곳으로.
점점 어두워지는 나선을 걸어가다 보니, 왠지 모험하는 기분이 들어서 조금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지하로 파고드는 나선의 통로는 빛 한 점 없이, 칠흑처럼 어두운 길이 쭈욱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황금 사신들은 가끔 뒤를 돌아보며, 내가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무서워서 그러는 건가?
나는 그 모습이 조금 귀여워서 살짝 웃었다.
하지만 이 어둠은 조금 신기하긴 했다.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면 밝은 하늘이 보이는데도 이렇게나 어둡다니.
‘신기한 현상이네.’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향하면, 마치 밤하늘에 점점이 황금색 별이 빛나는 것 같았다.
어두운 통로는 밤하늘이었고, 은은하게 빛나는 황금 사신들은 별빛이었다.
그렇게 별빛을 길잡이 삼아 나아가는 선원들처럼, 용감한 황금 사신들의 인도를 따라 어두운 모험 길을 나아갔다.
그렇게 나아가던 도중, 황금 사신들의 고통스러워하는 의지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아!’
나는 깜짝 놀라서 가장 선두를 걸어가는 황금 사신에게 순간 이동했다.
그러자 도착한 곳은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최심부.
위를 올려다봐도 하늘이 보이지 않는 칠흑 속이었다.
그리고 최심부의 끝에는 황금 사신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서 황금 사신들을 품 안으로 거둬들였다.
그러자 황금 사신의 몸에 묻어있는 액체가 느껴졌다.
서둘러서 그 액체를 지워내자, 액체가 닿아있던 부분이 마치 표백된 것처럼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이건?’
내가 검은 거인의 몸으로 본 기억이 있는 회색빛 액체였다.
그것은 염원.
검은 거인의 몸을 지면에 붙들어 버린 그것이었다.
게다가 이 최심부에는 그 염원이 조금씩 조금씩 스며 나오고 있었다.
‘마아아.’
그리고 그 바닥에 찰랑이는 염원 속에서 조그마한 실루엣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