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55
파트란 가문의 사람답게 태생적으로 경이로운 마력의 양과 드높은 마력친화를 지닌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어릴 적부터 개화했다.
가문의 마법사들이 무언가를 가르쳐주면 하루가 지나기 전에 감을 잡고 채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능숙하게 펼쳐 보이기까지 했지.
안 그래도 자식들을 아끼던 파트란의 공작부부는 조이의 재능을 알아차리고서 그녀를 더욱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손쉬운 던전 공략을 체험 할 때에도 몇 명의 실력 있는 기사를 붙일 만큼.
덕분에 조이는 여러 실전 경험 속에서 빠르게 파티의 마법사가 해야 할 일을 익혔지만 홀로 남은 마법사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습득하지 못했다.
이러한 경향은 아카데미에 들어오고 나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조이는 루시를 만나 빠른 속도로 마법의 실력을 키워 나갔지만 여전히 마법사로써 최전선에서 싸우는 법은 조금도 연습하지 않았다.
대개의 경우 그녀의 옆에는 루시, 아서, 프레이처럼 전선을 지탱해줄 수 있는 이들이 존재했으니.
조이의 실전 경험은 어디까지나 파티의 마법사로서의 경험일 뿐.
그녀는 단 한 번도 혼자서 무언가를 해 본 적이 없었고 홀로 서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앞을 든든하게 지켜 줄 이들이 있는데 왜 굳이 그런 방식을 배워야 하겠는가. 그럴 시간에 조금 더 저들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익히는 편이 낫지.
지금에 이르러 조이는 과거 합리적이라 여겼던 판단이 사실은 게으름일 뿐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래. 알른 영애의 말씀이 옳아. 언제나 내 앞을 지켜 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건 어리광이야.
내가 귀족 가문의 영애인 이상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필연적인 일.
미지의 공간인 던전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데 어떻게 내 곁에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겠어.
근데 그 필요성이랑 별개로 영애의 훈련은 좀 많이 힘드네.
마력은 바닥난 지 오래고 체력도 이미 한계야.
마음 같아선 그냥 흙바닥에 널부러지고 싶지만 영애께서 눈빛으로 저렇게 압박을 하시니 일단 일어나.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키려던 조이는 갑작스레 차오른 현기증 탓에 앞으로 고꾸라질 뻔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허접한 얼빵이♡”
다행히 그녀가 얼굴을 흙에 박는 것보다 루시가 그녀를 안아드는 쪽이 빨랐다.
멍하니 자신을 올려다 보는 조이의 눈빛에 키득거리는 소리를 낸 루시는 조심스레 조이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만전일 때조차 아무것도 못한 얼빵이가 더 허접해졌는데 결과는 안 봐도 뻔해♡ 얼빵이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치?♡”
조이는 루시의 도발에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도 차마 반박을 하진 못했다.
점심을 먹고 훈련을 시작한 후 노을이 져가는 지금까지 조이는 단 한 번도 루시의 돌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녀가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장난감을 만들어 준거야?♡ 고마워라!♡’
접근을 막기 위해 대지를 뒤엎었더니 대지를 밟지 않고 접근을 해온다.
‘푸흐흫♡ 얼음놀이를 하기에 적당한 계절은 아닌 것 같은데?♡’
얼음으로 방벽을 세웠더니 그냥 돌진하는 것으로 그걸 박살내 버린다.
‘따뜻하네♡ 난로로 쓰면 딱 좋겠어♡’
주변에 불로 진을 그려도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마냥 통과해 버린다.
이외에도 조이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모든 것을 시도해 보았지만 그 모든 계책은 루시의 앞에서 무력했다.
생각해보니까 억울하네.
이거 그냥 알른 영애가 사기적인 거 아냐?
어지간한 적이 상대였다면 접근할 엄두도 못 냈을 것 같은데?!
아니 진짜로! 중간부터 꽤 진심을 담아 포격을 날렸는데도 방패로 가뿐히 막고 달려드는 데 나보고 어쩌란 거야!
마법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잖아!
기절할 것 같은 정신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땀을 씻어낸 조이는 침대에 누워 억울함에 몸서리를 쳤지만 그런다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녀의 상대가 루시 알른인 이상 상대가 달랐다 같은 가정은 무의미했다.
어떡하면 좋을까. 점점 검게 물들어가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던 조이는 과거의 기억을 되새겼다.
마법사가 홀로 기사와 대적해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건 아냐.
가문의 여러 마법사 분들께도 배웠고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나서도 몇 번이나 귀담아 들었지.
‘최선은 애초에 기사나 마물을 홀로 상대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겁니다.’
‘허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우선 접근을 막는 걸 우선시해야합니다.’
‘아무리 단련했다한들 마법사는 기사를 근접전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다가오기 전에 박살내는 걸 목표로 해야 하죠.’
이 조언들은 무의미 해. 이미 이것들을 기반으로 알른 영애께 대응을 해봤지만 결과는 참패.
난 알른 영애께 속수무책으로 접근을 허용해야만 했어.
그렇다 해서 다른 조언이 있는가하면 그렇지도 않아.
나보다 뛰어난 마법사분들께서 해 준 조언은 대부분 비슷해.
그나마 다른 거라면.
‘얼빵이의 허술한 마법 하나로 날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푸하핳♡ 아. 혹시 마법하나 밖에 못 쓰는 건가?♡ 그런 거려나?♡’
“으으으!”
조언 대신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떠올린 조이는 베개를 마구잡이로 후려치면서 속으로 분노를 표했다.
어떡하라고요!
알른 영애 당신이 마법 하나 완성할 시간밖에 안 주잖아요!
그렇다고 어설픈 마법을 사용하면 이딴 것도 마법이냐면서 달려들 거면서!
나보고 어떡!…
‘조이. 새겨 듣거라. 진정 강자를 상대할 때 필요한 것은 강력한 마법이 아니다. 그 때 너를 구할 것은 흔히들 기본이라 여기며 쉬이 넘길 것들이지.’
…분명 예전에 아버님이 이런 말씀을 했어.
피해를 주는 것과 발을 묶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말과 함께.
알른 영애께서 하려던 말도 이것과 일치해.
그렇다면.
단서를 얻은 조이는 퍼뜩 몸을 일으키고는 자신의 앞에 마력을 짜냈다.
*
‘조이? 괜찮아요?’
“얼빵아. 살아 있어? 땅에 묻어줄 테니까 쉴래?”
“…흡?! 아. 그. 괜찮아요! 완전 멀쩡…하진 않지만 문제없어요!”
지팡이에 기대 꾸벅거리며 졸다 퍼뜩 정신을 차린 조이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온전함을 어필했다.
아무리 봐도 마력이 고갈되는 것보다 기절하듯 쓰러지는 게 먼저일 것 같은데.
어젯밤에 뭐 하느라 잠을 안 잔 거야?
어제 하루 종일 구른 걸 생각하면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뻗어야 정상인데 내가 너무 살살 굴렸나?
으음. 아서랑 프레이가 왜 벌써 아침이냐고 투덜대던 걸 생각하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좋아. 오늘부터는 대련 끝나고 나서 따로 체력 단련 같은 거 더 시키자.
일주일 후면 자고 싶어도 잘 수 없게 될 텐데 그 때까지 푹 재워 놔야지.
“자! 오세요! 어제 제가 준비한 걸 보여드리겠어요!”
다크서클이 잔뜩 낀 눈으로 날 노려보는 조이에게 웃어준 나는 아무 전조 없이 발을 움직였다.
조이의 주변에 몇 개의 마법진이 그려진다.
어제처럼 커다란 하나의 마법진이 아닌 마법사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마법이 담긴 진.
기사를 상대할 땐 화력보다 여러 마법으로 움직임을 방해하는 게 낫다는 걸 벌써 눈치챈 거야?
최소한 이삼일은 지나야 눈치를 챌 거라 생각했었는데 확실히 조이가 똑똑하긴 하네.
그렇지만 아직은 어설퍼.
저런 마법진의 조합으로 날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처음 발현된 마법은 냉기마법이었다.
내 발치를 노리고서 쏘아진 마법은 땅과 맞닿은 발을 얼려 나를 묶어두고자 했지만 난 발에 힘을 주는 것으로 가뿐히 얼음을 박살냈다.
연이어 발현된 마법은 대지였다.
잠시 발이 멈춘 사이 의지를 얻은 흙이 내 다리를 붙잡으려 했으나 흙이 움직이는 것보다 내가 얼음에서 빠져나가는 게 더 빨랐다.
그 때문에 대지마법은 발현된 의미를 잃어버렸다.
내가 돌진하는 걸 본 조이는 다급히 세 개의 마법진을 연이어 발현했다.
불과 바람을 뒤섞어 시야를 가리고 바위로 복부를 쳐서 돌진을 멈출 생각인가.
발상은 나쁘지 않지만 말야.
상대가 나인데 그게 먹힐 거라고 생각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방패를 치켜 든 나는 방향을 돌리는 대신 속도를 올렸다.
대수롭지 않은 충격들이 방패 위를 스치고 지나간 후 방패를 내리자 지척에 달한 조이의 모습과 그녀의 주변을 지키는 아홉 개의 마법진이 보였다.
그새 마법을 보충한 거야? 진짜 마법사로서의 재능은 압도적이라니까.
이번에는 뭘까. 날 저 멀리로 날려버릴 생각을 하려나? 아니면 전격으로 접근을 막는다거나?
일부러 살짝 속도를 늦춰 마법이 발현되는 걸 기다린 나는 마법이 발현되며 피어나는 불꽃을 보고 웃으며 방패를 치켜들었다.
콰아앙! 몇 개의 마법이 겹쳐 만들어진 폭발은 위력적이었지만 그렇다고 내 돌진을 멈출 수준은 아니었다.
폭발의 충격을 그대로 받아내며 앞으로 돌진한 나는 방패 끝으로 조이를 지키는 방어막을 박살낸 후 그녀의 눈앞에서 방패를 멈췄다.
‘훌륭했어요.’
“얼빵이치곤 나쁘지 않았어. 얼빵이치곤 말야.”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것만을 목표로 한다 생각하게 만들고 접근한 순간 초근거리에서 화력을 박다니.
겨우 밤사이 고민했을 뿐인데 이 정도로 발전한 건가.
굴리는 맛이 있네.
이 상태로 며칠 더 굴리면 진짜 볼만해 지겠는데?
내 입가의 미소가 진해질 때마다 조이의 눈동자에 떨림이 강해졌다.
‘다시 한 번 해보죠.’
“아직 제대로 안 한 거지? 그렇게 자신이 넘쳤는데 이렇게 허접할 리가 없잖아! 다시 갈게. 이번엔 꼭 제대로 해야 해?”
“…저. 조금만 쉬면 안 될까요? 진짜 쓰러질 것 같은데요.”
‘자. 회복시켜드렸어요. 이제 괜찮죠?’
“자 이제 멀쩡하지? 안 아프지? 좀 더 괴롭혀도 괜찮지? 그치? 응?”
“아니 회복 시켜주지 않으셔도 괜찮으니까 잠시만 쉬게. 쉬게 해달라니까요?! ”
‘갑니다.’
“최선을 다해봐. 얼빵아!”
“사람 말 좀 들어요오오!”
그 후로 나는 알른 가문의 영지를 떠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서 조이를 굴렸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신이 나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더라.
덕분에 하루가 지날 때마다 점점 더 조이의 몰골이 처참해졌지만 그만큼이나 실력이 늘어나기도 했으니 조이도 즐거웠을 거야. 분명해.
그렇게 내 친구들이 알른 기사단에 방문하고서 일주일이 지나고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될 무렵.
나는 여느 때처럼 다른 기사들과 함께 훈련을 하는 대신 베네딕의 집무실을 찾았다.
‘아버님…’
“바보 아버님. 떠날 준비는 되셨나요?”
“물론이다! 우리 루시가 함께 놀러 가자는 데 이 파파가 어찌 거절을 하겠느냐! 제국의 투기장이라! 우리 루시라면 가뿐히 우승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야!”
지금의 내게 가장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