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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56

오늘 일정이 모두 끝나자, 갈색 소녀의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 헌신하러 가는 사람을 배웅하는 자리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허술하고 간략한 졸업식이었다.

‘수상해.’

‘시설’이 꺼림칙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소녀가 볼 때, 정말 미심쩍은 졸업식이었다.

졸업을 정해진 스케줄 없이 간헐적으로 한 명씩 뽑아서 하는 것도, 졸업식이 이토록 간소한 것도 석연찮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데, 왜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지? 그리고 왜 이제서야 그걸 느낀 걸까?’

은색 소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른 훈련생들의 시선을 따라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육교처럼 높이 위치한 통로 위로 갈색 소녀가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갈색 소녀가 자신을 보며 손을 흔들며 웃었다.

마치 ‘너는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눈초리에, 은색 소녀는 다시 한번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반드시 구해줄게.’

그 순간, 흐릿한 환상들이 현실과 겹치듯이 보이기 시작했다.

‘?’

뭐지?

자세히 살펴보니,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을 보여주는 환영이었다.

마치 고속으로 움직이는 물체의 잔상처럼, 1초 간격의 반투명한 형상이 주르륵 늘어서 있었다.

10초 과거부터, 10초 미래까지의 환영.

시선을 돌리자, 꿈속의 은색 소녀가 어느새 통로 위로 올라서는 모습이 보였다.

몸을 한껏 낮추고, 시선을 피하듯이 살금살금.

‘빨리 가야 해. 시간이 없어.’

저 환영보다는 훨씬 빨라야, 갈색 소녀를 구해낼 수 있을 테니까.

소녀는 최대한 빨리 통로에 들어서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 했으니까.

꿈속의 소녀도 최대한 빠르게 쫓아가고 있어서 그런지, 도무지 추월할 수가 없었다.

‘더, 더욱더 빨리.’

소녀는 이를 악물고 최대한 빨리 통로를 지나쳐서, 구불구불하고 기분 나쁜 통로로 들어섰다.

지저분하고 흐릿하게 피 냄새가 나는 통로였다.

피 냄새를 맡자, 은색 소녀의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이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소녀는 가속 능력을 최대한 사용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환영들과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속도로 뛰는 것에 불과했다.

‘더 빨리 뛰어야 해!’

하지만 갑자기 능력이 강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라면….

피와 내장을 쏟아내는 갈색 소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안 돼. 그럴 순 없어.’

‘제발, 조금만 더 빨리.’

소녀는 이를 악물었지만, 그것은 환영들도 마찬가지.

‘안돼. 안돼. 안돼.’

초조함이 가슴속을 가득 채운 순간, 귓가에서 환청이 들려왔다.

[인간! 열매를 먹어!]

작은 목소리였지만, 묘하게 친근하고 설득력이 있는 환청이었다.

이판사판인 소녀는 그대로 열매를 집어삼켰다.

그 순간, 머리 위가 타오르는 것처럼 아프더니 무언가가 돋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

은색 소녀는 갑자기 느껴진 극심한 통증에, 급박한 상황인데도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그렇게 달리면서 확인해 보자, 머리 위로 부들부들한 무언가가 자라나 있었다.

당황한 소녀가 그것을 잡아 뜯으려는 순간.

[인간, 달려!]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당황했던 소녀는 상황을 인지하고, 다시 이를 악물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원래의 10배는 빠른 속도로 시간이 가속했다.

‘능력이 강해졌어!’

‘이 정도 속도라면!’

소녀는 환영들을 순식간에 추월해 버리고, 앞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

커다란 채광창으로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세희 연구소 부소장실.

고개만 돌리면 커다란 창문으로 미니 사신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안뜰이 보였지만, 서아는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서아는 일본 태평양 인근의 미니 사신들의 이상행동에 대한 보고서가 올라와서 검토하는 중이었다.

온갖 색상의 미니 사신들이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진이 보고서에 실려있었다.

이른 아침 태양 빛을 반사하는 바다를 바라보며 만세를 하는 황금 사신.

바다를 향해 마치 손으로 망원경을 만드는 것처럼 자세를 취하는 검은 사신.

낮은 각도의 태양이 만드는 길쭉한 그늘 속에 숨어서 바다를 등진 보라 사신.

인간의 정수리에 앉아서, 나른한 표정으로 일출을 바라보는 붉은 사신.

정말 많은 사진이 실려있었다.

“쓸데없이 사진이 너무 많네요.”

무심코 서아가 목소리를 흘릴 정도로 많았다.

이게 보고서인지, 미니 사신 사진첩인지 헷갈릴 정도!

그래서 서아가 보고서 앞 장을 확인해 보자, 예상했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작성자 : 세희 연구소 연구원, 오예린.>

일본에 출장간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이런 사진을 대량으로 구한 거지?

유능한 것 같으면서, 무의미한 점이 딱 오예린다웠다.

보고서를 보면 볼수록 두통이 슬금슬금 찾아오는 것 같아서, 서아는 푸욱 한숨을 쉬고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그러자 부소장실 문에 달린 ‘미니 사신 전용 문’을 열고 황금 사신 하나가 뚜방뚜방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 황금 사신은 해맑게 웃으면서 커다란 빵을 들고 뚜방뚜방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님용 탁자 위에 빵을 ‘통’하고 올려두었다.

황금 사신이 손님용 탁자 위에 자리를 잡자, 서아의 어깨 위에 있던 새싹 사신이 황금 사신을 향해서 뛰어내렸다.

서로 후다닥 달려가서 꼭 껴안은 다음, 서로의 뺨을 조물조물.

그리고 서로 마주 보며 히히 웃었다.

미니 사신들끼리의 인사 같은 건가?

귀여운 인사가 끝나자, 황금 사신은 서아를 바라보며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같이 빵 먹자!’

빨리 와서 빵을 먹자는 것 같은 행동에, 서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서 일어나 빵이 놓인 탁자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 잠시 쉬자.”

소파에 앉자, 잘 구워진 빵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고소한 빵의 향기와 정말 맛있게 만들어진 빵의 생김새.

제대로 된 빵집에서 파는 빵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빵이었다.

‘생긴 건 시판 빵처럼 생겼지만, 절대로 파는 물건은 아니겠지.’

서아는 황금 사신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지고 오는 빵을 몇 번 먹어본 적이 있어서, 저 빵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설탕을 빵 모양으로 바꾼 거라고 해도 믿어버릴 정도로 달았으니까.

솔직히 너무 달아서 썩 좋아하는 맛은 아니었지만,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 엄청나게 단 빵을 먹지 않으면, 황금 사신이 펑펑 울어버릴 정도로 슬퍼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황금 사신은 위험을 피하라고 경고할 때를 제외하면 인간에게 강요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조금 신기한 일이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빵이길래?

빵을 안 먹으면 무슨 위험한 일이라도 있나?

서아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빵을 야금야금 뜯어 먹었다.

***

미니 사신 정원, 마시멜로 평원.

그 마시멜로 평원에 미니 사신들이 우글우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황금 사신 제1 검과 아귀 사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이기려나?’

나는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구경하며 팝콘을 냠냠 먹었다.

하지만 주변에 모여든 미니 사신들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왜 싸워?’

‘모르겠어!’

‘푸딩 내기?’

이 뜬금없는 대결의 시작은 특수 미니 사신과 헤일로 적합성 테스트였다.

전부 다 불러 모으면 바쁜 아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시간이 비는 아이부터 테스트할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비는 녀석 아무나, 내가 있는 곳으로 와줘.’

그렇게 불러 모았더니 황금 사신 제1 검과 아귀 사신이 동시에 도착해 버렸다.

그렇게 그 두 명을 동시에 보는 순간, 뇌리에 굉장히 궁금한 것이 생겨버렸다.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둘 다 엄청난 검술의 고수인 데다가, 다른 미니 사신들과 궤를 달리하는 녀석들이라서 예측하기도 힘들었다.

등장할 때부터 엄청난 힘을 과시한 아귀 사신!

아귀 사신에게 검술을 배웠지만, 새로운 영역을 열어버린 제1 검!

적당히 미니 사신들이 모여든 것처럼 보이자, 내가 박수를 치며 시합의 시작을 알렸다.

아귀 사신이 검을 휘두르자,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꽃잎처럼 아귀 모양 불꽃이 사방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오오.’

물리 면역인 내 몸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정도로 흉악한 기술이 시작부터 튀어나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제1 검의 대응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제1 검에게는 광역기가 부족한 인상이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저 불꽃들을 다 지우려면 엄청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제1 검의 대응은 내 예상과 달랐다.

검을 천천히 가로로 들어 올리더니, 나지막하게 의지를 냈다.

‘공허 베기.’

그와 함께 검을 휘두르자, 검의 궤적을 따라서 검은색 공허가 보이더니 아귀 모양 불꽃을 마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아귀 사신의 필살기인 아귀 모양 불꽃이 무력화되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보자, 아귀 사신은 검으로 만든 손을 다시 손 모양으로 되돌리면서 작게 소리를 냈다.

“뀨.”

마치 ‘나의 패배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소리였다.

그러자 구경하고 있던 미니 사신들이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대단해!’

‘강해!’

박수를 치고, 폴짝폴짝 뛰고, 뒹굴뒹굴 구르고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나는 얌전히 미니 사신들이 좋아하는 걸 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들뜬 상태였다.

‘제1 검이 조금만 더 강해지면 외신 이길 수 있는 거 아냐?’

그야말로 완벽한 자동 사냥!

앞으로 제1 검에게 잘해줘야지.

‘무럭무럭 자라렴!’

히히.

***

흐릿한 피 냄새가 흐르는 복도.

소녀는 이제까지 없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이 정도 속도라면!’

그리고 은색 소녀는 복도의 끝에서 문을 발견했다.

꿈속에서 매번 봤던 커다란 문.

언제나 갈색 소녀가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있던 문이었다.

은색 소녀는 그 문 너머를 보는 것이 조금 무서웠지만, 이를 악물고 그대로 박차고 뛰어들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두 가지.

당장이라도 갈색 소녀의 목을 찌를 것 같은 남자.

그리고 아직 죽지 않은, 살아있는 그녀의 친구!

은색 소녀는 그것을 보자마자, 앞뒤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날려 남자를 걷어차 버렸다.

‘우드득’하는 흉악한 소리가 들렸지만, 은색 소녀는 신경 쓸 생각도 못 하고 갈색 소녀를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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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은색 소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보자, 창백한 얼굴의 갈색 소녀는 표정을 굳히고 대답했다.

“여기로 오면 어떡해? 규정 위반이야. 아직 안 들켰을 거야, 빨리 돌아가.”

그 말을 듣자, 은색 소녀는 답답하다는 것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제정신이야? 조금 전에 너 죽을뻔했어!”

하지만 갈색 소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규정을 지켜야지. 인류의 배신자가 되고 싶은 거야?”

“그런 일을 당하고도 아직도 그런 소리야? 시설이 우릴 속인 거라고!”

그러자 갈색 소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시설이 우릴 속였다니? 시설이 그럴 리가… 그럼 지금은….”

그 순간, 목이 부러져서 덜렁거리는 남자의 시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뒤…! 뒤를 봐!”

“!!!!”

갈색 소녀가 남자를 보고 경고하자, 은색 소녀는 깜짝 놀라서 거리를 벌렸다.

우드득우드득.

남자는 부러진 목을 제자리로 돌리려는 것처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지만, 반대로 돌리는 바람에 목은 그대로 툭 하고 잘라져 버렸다.

“아, 젠장.”

그러자 바닥에 떨어진 남자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잘린 머리가 말하다니?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리고 남자가 욕설을 내뱉기 무섭게, 남자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피부색의 뒤틀린 괴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감히.]

[가축 따위가.]

그 괴물이 입을 열자, 그 입에서는 짙은 유황 냄새가 흘러나왔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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