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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57

졸업생이 걷는 복도의 끝.

그 끝에 있는 방에서 짙은 유황 냄새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

바닥에 떨어졌던 머리는 저절로 허공으로 떠올라, 남자의 몸에 달라붙더니 붉은 불길이 솟아올랐다.

불길은 그의 눈을 태워 없애버렸고, 그 자리엔 검게 탄 구멍만이 남았다.

피부는 열기에 바짝 말라 버리더니 붉고 검은 가죽만 남은 흉측한 몰골이 되어버렸다.

남자는 이제 완전히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뒤틀린 시체를 연상케 하는 괴물로 변해버린 것이다.

괴물은 은은한 잔불이 남은 눈구멍으로 은색 소녀를 천천히 내려보았다.

은색 소녀는 처음 보는 끔찍한 광경에 살짝 겁을 먹긴 했지만,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녀는 겁을 먹었는데도 멈추지 않고 천천히 몸을 움직여서 남자가 떨어뜨린 칼을 조심스레 주워 들었다.

그 칼은 마치 송곳처럼 앞이 뾰족했고, 칼날에는 짙은 피 냄새가 배있었다.

은색 소녀는 송곳 같은 칼의 손잡이를 단단히 움켜쥐고, 남자를 향해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며, 괴물은 은색 소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가축은 주인을 이길 수 없다.]

그것은 거칠고, 왜곡되어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였다.

괴물의 손이 갑자기 공기를 가르며 휘둘러지자, 붉은 불길이 허공에 궤적을 남겼다.

굉장히 빠른 참격.

그 참격은 ‘시설’에서 그녀가 겪어온 그 어떤 공격보다도 빠르고 강력했다.

‘시설’의 어떤 아이도 막거나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아마 열매를 먹기 전의 은색 소녀였다면, 절대로 피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은색 소녀는 이제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극도로 가속된 시간 속에서, 은색 소녀는 바람처럼 유연하게 공격을 피해냈다.

[아니, 가축이 어떻게…?]

괴물의 목소리에 놀라움이 담겼다.

하지만 괴물의 거친 목소리는 더 이어지지 못하고, 거기서 끝이 나버렸다.

은색 소녀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서, 송곳 같은 칼날을 괴물의 심장에 박아 넣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괴물은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면서 자기 심장 부분을 더듬었다.

말라붙은 핏물처럼 질척질척하고 끈적거리는 검붉은 액체가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남자가 가슴팍을 내려다보자, 상처는 당장이라도 재생될 것처럼 꿈틀거렸지만, 뭔가에 막힌 것처럼 재생이 되지 않고 있었다.

[어… 어째서?]

남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바닥에 쓰러지더니, 그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은색 소녀가 본 그 시체 위에는 꿈틀거리는 작은 남색 새싹이 잔뜩 돋아나 있었다.

***

미니 사신 정원, 마시멜로 평원.

내 앞에 노란 사신과 안대를 낀 보라 사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노란 사신은 기절한 것처럼 대자로 뻗어서 통통한 뱃살을 내밀고 있었고, 보라 사신은 벽에 기대고 앉아 나름대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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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사신들은 기절할 때도 자세를 잡으면서 기절하네.

그게 조금 신기해서, 나는 보라 사신의 볼을 콕콕 찔렀다.

보라 사신과 노란 사신이 기절한 뒤로는 황금 사신 제1 검과 아귀 사신이 천천히 움직이며 뭔가를 하고 있었다.

칼을 들고 서로 합을 맞춰가며 천천히 칼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도대체 뭘 하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드디어 실험할 수 있었네.’

특별한 아이들을 불러서 헤일로 실험을 하려고 할 때마다 사고가 났었는데, 이번에는 별다른 문제 없이 실험을 마칠 수 있었다.

나는 마시멜로 위로 끄적끄적 뭔가를 쓰면서 실험 결과를 정리했다.

<노란 사신 – 환상 구현화 헤일로 사용 가능.>

<가짜 안대 보라 사신 – 공간의 헤일로 사용 가능.>

<이미 실험한 아이들.>

<푸른 아이돌 사신 – 언령의 헤일로.>

<주황 왕관 사신 – 완전 회피 헤일로.>

<아직 실험 못 한 아이들 – 패륜 검은 사신 & 황금 뿔 사신 & 망토를 입은 황금 사신.>

<주인이 없는 헤일로 – 능력 무효화 헤일로.>

<황금 사신 제1 검 – 없음.>

<아귀 사신 – 없음.>

<특이 사항 – 제1 검과 아귀 사신은 아무 헤일로 하나를 그냥 쓸 수 있다.>

<다만 푸른 아이돌 사신이나 주황 왕관 사신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실험 결과를 잔뜩 적다 보니,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서울 연구소 소속 직원이었을 때 매일매일 적던 ‘귀여운 강아지’ 관찰 보고서가 떠올라서 그런 건가?

그래서 그런지, 갑자기 ‘귀여운 강아지’를 괴롭히고 싶어졌다.

히히.

저번에 젤리 돼지 병원에서 본 뒤로 못 본 것 같은데, 어디 있으려나?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귀여운 강아지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

‘올림픽!’

그렇게 귀여운 강아지를 찾으러 가는 도중, 미니 사신이 낼 것 같지 않은 의지를 내는 황금 사신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황금 사신이 그런 의지를 내뿜으며 어딘가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나는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 황금 사신들을 천천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들의 행렬은 상당히 길게 이어졌다.

구불구불한 복도를 지나, 유령화로 강철 격벽을 넘나들 정도였다.

‘세희 연구소에 이런 통로가 있었던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렇게 통로의 끝에 도착하자, 엄청 넓은 방 안에서 세희가 황금 사신들이랑 놀고 있었다.

또, 이상한 거 만들었네….

세희도 그렇고 예린이도 그렇고, 내 주변에는 왜 이렇게 이상한 녀석들이 많은 걸까?

“사신아, 여기야!”

세희도 나를 발견했는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뚜방뚜방.

내가 천천히 걸어서 세희 곁에 앉자, 세희는 주변을 빠른 속도로 훑어보더니 짝짝 박수를 쳤다.

‘올림픽!’

‘과자!’

잔뜩 기대하는 표정의 황금 사신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세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세희는 그 표정들을 보며 작게 웃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제1회 황금 사신 올림픽을 시작하자!”

‘우아!’

세희의 외침에 따라서 황금 사신들은 환하게 웃으며 폴짝폴짝 뛰었다.

황금 사신들은 언제봐도 분위기를 잘 맞춰준단 말이지.

그러자 거대한 방에서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황금 사신 사이즈의 경기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 세희는 경기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상석에 앉아서, 간식을 집어 먹었다.

옴뇸뇸.

그렇게 맛있는 간식과 음료수를 먹으며 보고 있었더니, 첫 번째 종목이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나온 종목은 달리기 대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빵 먹기 경주였다.

짧은 거리를 빠른 속도로 뛰어서 가장 먼저 빵을 먹은 황금 사신이 승리하는 방식!

일등을 차지한 황금 사신은 마치 로켓처럼 멀리서부터 발사되듯이 튀어 나가, 빵을 물어뜯은 녀석이었다.

다른 황금 사신과 격차가 상당한, 심상치 않은 운동 능력이었다.

일 등을 한 황금 사신은 빵을 물어뜯은 채, 해맑은 표정으로 히히 웃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종목이 이어졌다.

더듬이에 도넛을 끼우고, 상대의 도넛을 뺏는 격투기 경기.

상대방을 밀어내서 링 밖의 핫초코 속으로 빠트리는 경기.

사탕을 정확히 던져서 점수를 매기는 경기.

가장 무거운 초콜릿을 들어 올리는 것을 겨루는 경기 등.

마치 올림픽에 있던 종목들을 황금 사신답게 바꾼 녀석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올림픽이 끝나자, 획득한 점수가 발표되었다.

“일등은~ 거기 도넛을 먹고 있는 황금 사신!”

세희가 1등을 발표하자, 1등을 한 황금 사신은 폴짝폴짝 뛰며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다.

“첫 경기에 승리한 아이가 결국 1등을 해버렸네.”

‘?’

세희가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지만, 나는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그게 구분이 된다고?’

‘황금 사신 구분하기’ 같은 예린이만 하던 초능력을 하는 녀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네….

1등을 한 황금 사신은 신나는 걸음걸이로 상품을 받으러 나아갔고, 나머지 황금 사신들은 시무룩한 얼굴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세희를 따라서 뚜방뚜방 나아간 끝에는 커다란 문이 하나 있었다.

“자, 여기 있는 간식은 모두 1등 거야!”

세희가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자, 방의 내부가 드러났다.

조명이 없어서 방을 가득 채운 어둠.

문밖으로 밀려 나오는 달콤한 향기.

추울 정도로 서늘한 공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쭉한 방.

그리고 방에 불이 들어오자, 방의 양 벽을 따라서 끝도 없이 늘어선 온갖 종류의 간식이 보였다.

‘간식!’

황금 사신은 행복한 표정으로 웃더니, 커다란 푸딩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려 가로세로 3m는 되어 보이는 초거대 푸딩이었다.

황금 사신은 입으로 푸딩을 야금야금 뜯어먹다가, 세희를 향해 뚜방뚜방 걸어오더니 의지를 보냈다.

‘같이 먹어도 돼?’

세희는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황금 사신의 손짓, 발짓에 결국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황금 사신은 환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더니, 의지를 보냈다.

‘엄마도 같이 먹자!’

그리고 세희와 널브러진 황금 사신들을 바라보면서 의지를 내뿜었다.

‘모두 같이 먹자!’

그러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던 황금 사신들이 부활하더니, 우르르 몰려들었다.

‘같이 먹자!’

그렇게 올림픽의 마지막은 옴뇸뇸 파티가 되어버렸다.

그나저나 이 정도의 시설에 과자면 가격이 상당할 텐데, 서아에게 안 걸리려나?

***

“하아. 하아.”

은색 소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새싹이 돋아난 괴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투가 별로 힘들지는 않았지만, 잔뜩 긴장하고 있어서 그런지 절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게 숨을 고르던 은색 소녀는 호흡이 조금 진정되자, 갈색 소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천천히 침대에 묶인 갈색 소녀의 구속을 풀어주었다.

“인류군이 오브젝트였다고?”

풀려난 갈색 소녀는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금세 마음을 추스르더니 은색 소녀를 향해 말했다.

“우선 같이 돌아가서 보고하자. 오브젝트가 침입해 와서 생긴 문제일 거야.”

은색 소녀는 아직도 답답하게 구는 갈색 소녀를 향해 소리칠 뻔했지만, 꾹 참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 보자. 절대로 돌아가면 안 돼.”

“그래도….”

은색 소녀는 그런 갈색 소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고는 눈과 눈을 맞췄다.

“혼란스러워도, 나를 믿어줘. 알았지?”

강한 의지를 품고 빛나는 은색 소녀의 눈동자 덕분인지, 갈색 소녀는 차분하게 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알겠어, 그럴게.”

그리고 갈색 소녀는 작게 “난 널 믿으니까.”라고 작게 덧붙였다.

은색 소녀와 갈색 소녀는 서로 손을 꼭 붙잡고, 침대 방을 나섰다.

그 너머에는 더욱 허름한 복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숭고한’ 인류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지저분한 복도.

그렇게 복도를 끝까지 나아가자, 커다란 문이 소녀들을 반겨주었다.

은색 소녀와 갈색 소녀는 서로를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문을 밀어젖혔다.

그러자 문 너머로 방의 내부가 드러났다.

빛 한 점 없이 방을 가득 채운 어둠.

문밖으로 밀려 나오는 짙은 피 냄새.

추울 정도로 서늘한 공기.

복도에서 들어오는 빛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쭉한 방.

은색 소녀가 스위치를 찾아서 불을 켜자, 끔찍한 광경이 드러났다.

방의 양 벽을 따라서 끝도 없이 늘어서 고기, 고기, 고기.

그 고기는 모두 인간의 것으로 보였다.

그야말로 인간 도축장이었다.

갈색 소녀는 창백한 얼굴로 그 광경을 보며, 숨을 삼켰다.

“이거 전부 사람이야? 말도 안 돼….”

그리고 갈색 소녀는 하얗게 질린 채, 가쁜 숨을 한참 동안 몰아 쉬었다.

갈색 소녀는 이 충격적인 광경을 보자, 시설이 잘못된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조금 진정된 갈색 소녀가 은색 소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이건, 한 명의 일탈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야.”

“응, 시설 전체가 문제야.”

그 순간,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붉은 등이 점멸하며, 방송이 흘러나왔다.

[시설 내부에 ‘인류의 배신자’가 침입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사방에서 발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마치 포위된 것처럼.

그 순간, 은색 소녀의 시야에 조그마한 무언가가 보였다.

[인간! 이쪽이야!]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남색 오브젝트였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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