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별빛이 천장을 가득 채운 동굴, 고풍스러운 저택의 한구석에서 우적우적 소리가 새어 나왔다.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 속에서, 한 남자의 그림자가 음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면, 코를 찌르는 날고기 냄새와 피 냄새가 뒤엉켜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식탁 위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날고기들이 붉은 액체를 뚝뚝 흘리며 기괴한 모습을 자아냈다.
그 앞에 앉아있는 남자는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고기를 게걸스럽게 뜯어 먹고 있었다.
허리를 푹 숙여서 식탁에 고개를 박은 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남자의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지만, 그의 움직임은 거칠고 빨랐다.
“배고파… 배고파….”
남자는 입 안 가득 고기를 물고도 계속해서 이 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지하실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공허하고 음산했다.
그때, 촛불 하나가 기울어지면서 드러난 그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
창백하고 말라붙어 있는 피부.
깊숙하게 푹 꺼져 있는 두 눈.
그 모습은 마치 걸어 다니는 시체와도 같았다.
꾸르륵.
촛불 아래에 드러난 남자의 피부 아래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그것은 빛을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의 몸속에 또 다른 생명체가 숨어 있는 것처럼, 피부가 불규칙하게 움직이며 기괴한 모습을 연출했다.
남자는 계속해서 고기를 집어삼켰다.
그의 턱이 움직일 때마다 피부 아래의 그것들도 함께 움직였다.
그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고깃덩어리가 보일 때마다, 그의 배 아래에서 무언가가 환희에 차 꿈틀거리는 듯했다.
방 안에는 점점 더 피 냄새가 가득해졌고,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오직 남자의 우적거리는 소리와 중얼거림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그 기괴한 식사 시간은 갑자기 끝이 나버렸다.
남자의 손이 멈칫했다.
입으로 향하던 고깃덩어리가 공중에 멈춰 있었다.
그의 얼굴에 순간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
천천히,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고기를 식탁 위에 놓았다.
“양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군.”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공허했지만,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마치 짐승에서 인간으로 변한 것 같은 변화였다.
남자의 피부 아래에서 꿈틀거림이 더욱 격렬해졌다.
마치 그의 결정에 반발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등은 여전히 굽어 있었고, 뼈만 남은 몸은 언제라도 부서질 것처럼 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 옆에 놓인 수건을 집어 들더니, 핏물로 범벅이 된 손을 꼼꼼히 닦아 내렸다.
그의 동작은 느렸지만 정확했다.
마치 오랜 시간 반복해 온 의식과도 같았다.
그리고 경건한 의식을 끝낸 남자는 천천히 방구석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정장 한 벌이 걸려 있었다.
피와 날고기 냄새가 가득한 이 기괴한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옷을 입는 동안에도 그의 몸속 무언가는 계속해서 꿈틀거렸다.
마치 그의 결정을 막으려는 듯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남자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정장을 입을수록 그의 눈빛에는 생기가 돌아오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넥타이를 매만지며 남자는 방을 돌아보았다.
촛불은 여전히 외롭게 타오르고 있었고, 그 빛에 반사된 고기 더미는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남자는 잠시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그의 뒷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구부정했던 등은 조금 펴졌고, 걸음걸이에는 힘이 실렸다.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촛불은 계속해서 타오르며, 식탁 위의 인간 고기 더미를 비추고 있었다.
***
깊은 동굴 속, 짙은 안개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듯했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두 소녀의 숨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런 짙은 안개 속에서 한 남자가 은색 소녀와 갈색 소녀의 앞을 막아섰다.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는 그 남자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그의 모습은 안개 속에서도 기괴하게 선명했고, 주변의 공기마저 무겁게 만들었다.
그때, 은색 소녀의 머리 위에 돋아난 새싹 위에 매달린 새싹 사신이 의지를 내뿜었다.
[해로운 오브젝트!]
은색 소녀도 남자에게서 풍기는 위험한 기운을 감지했다.
피 냄새, 그것도 굉장히 짙은 피의 비릿한 냄새가 그에게서 배어 나왔다.
하지만 새싹 사신의 반응은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격렬했다.
은색 소녀는 부드럽게 손을 들어 새싹 사신을 쓰다듬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점차 안개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긴장감 넘치는 대결의 서막을 알리는 듯했다.
남자가 구부정한 허리를 천천히 펴는 것과 동시에.
은색 소녀와 갈색 소녀는 눈빛을 교환하더니, 말없이 서로의 의지를 확인하고 동시에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두 소녀의 공격은 남자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은색 소녀의 시간 가속을 이용한 빠른 칼날도.
갈색 소녀의 신체 강화 능력이 담긴 묵직한 주먹도.
남자는 한 손을 등 뒤에 뒷짐 진 채로, 마치 무술 시범을 보여주듯 빠르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소녀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흘려냈다.
“한 명은 가축 수준.”
남자의 무심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갈색 소녀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남자의 단순해 보이는 한 방에 그녀의 몸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트럭에 치인 것처럼 그녀는 동굴 벽에 처박혔다.
“나머지 한 명은 가축 수준을 겨우 넘었군.”
이번엔 은색 소녀를 향한 평가였다.
그 말이 동굴 속에 메아리치는 순간, 은색 소녀는 느려진 시간 속에서 다가오는 남자의 주먹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능력으로 인해 주변의 모든 것이 거의 정지한 듯 보였지만, 남자의 주먹만은 여전히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순간, 피할 수 없는 방향과 속도로 다가오는 주먹.
그 순간, 은색 소녀에게만 들리는 의지가 들려왔다.
[인간, 다치면 안 돼!]
그 순간, 마치 세계가 한 번 더 숨을 들이쉰 것처럼 시간이 한 차례 더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은색 소녀는 더욱 느려진 시간 속에서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해냈다.
그녀의 몸이 마치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비틀어졌다.
남자의 주먹이 그녀의 뺨을 스치며 지나갔고, 동시에 소녀의 송곳 같은 칼날이 공기를 가르며 남자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갔다.
칼끝이 남자의 피부에 닿는 순간, 시간이 원래의 흐름으로 돌아왔다.
은색 소녀는 균형을 잃고 지면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그녀가 멈춰 섰을 때, 그녀의 첫 번째 반응은 새싹 사신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강화된 힘이 어디서 오는지, 이제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은색 소녀는 걱정 가득한 눈으로 새싹 사신을 들어 올렸다.
선명한 남색이었던 새싹 사신의 피부가 이제는 거의 회색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괜찮아?”
소녀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
새싹 사신은 힘겹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은색 소녀는 갈색 소녀 쪽으로 시선을 돌려,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이야. 생명에 지장은 없어 보여.’
한편, 남자는 천천히 재생 중인 목을 만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놀람과 흥미가 교차했다.
“거기서 2배나 더 가속하다니. 더 이상 가축이랑 비교할 수 없겠어.”
그의 목소리에는 진한 인정의 기색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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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천천히 뒷짐 진 손을 풀었다.
그의 양 주먹이 움켜쥐어지며, 그의 자세가 낮아졌다.
공기 중의 긴장감이 한층 더 고조되었다.
“그럼, 그 속도에 맞춰서 손을 하나 더 쓰면 될 뿐이지.”
은색 소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새싹 사신을 조심스럽게 정수리의 새싹 위에 올려놓으며, 다시 한번 칼날을 들어 올렸다.
***
태평양의 한가운데, 고독한 바위섬이 끝없는 푸른 물결 위에 우뚝 솟아있었다.
나는 물결처럼 밀려 나가는 미니 사신들의 행렬을 따라, 조심스레 그 신비로운 섬의 단단한 표면에 첫발을 내디뎠다.
‘오브젝트!’
‘오브젝트 섬!’
미니 사신들은 꽤 넓은 섬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오브젝트’라고 의지를 내뿜고 있었다.
보안팀 직원들과 미니 사신들이 자리를 잡자, 연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차례로 섬으로 내려서기 시작했다.
“정신 오염 수치 측정 한도 미만!”
“이 섬은 물 위에 떠 있는데도, 구성 물질이 대단히 무겁네요.”
“푸른 안개나, ‘수중 도시’와 연관성은 보이지 않는데, 연관 없는 오브젝트인 것은 아닐까요?”
여러 가지 장비로 이것저것 조사를 하는 연구원들을 지나쳐서, 나는 섬의 중심부를 향해 계속 걸어 나갔다.
그 섬의 중앙에는 지옥의 입구처럼 입을 벌린 무저갱 같은 동굴이 하나 뚫려 있었다.
동굴에는 침입자를 막아내는 기능이 있는지, 어느 정도 들어가면 번개가 내리쳤다.
‘찌릿찌릿!’
그래서 그런지 미니 사신들은 차례대로 그 동굴로 걸어 들어가서 만세 자세를 한 채, 벼락을 맞으며 즐거운 얼굴로 히히 웃었다.
‘썬더!’
푸른 사신이나 구름 고기 같은 녀석이면 몰라도, 황금 사신이나 검은 사신에게는 재미있는 놀이에 불과했다.
‘번개!’
‘낙뢰!’
‘라이트닝!’
나는 소란스러운 동굴 입구에서 내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공간이 끊어져 있네.’
동굴은 중간에 공간이 끊어져 있어서 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는 수상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
가짜 별빛이 장식하는 동굴 속, 안개가 가득한 전장.
남색 빛으로 생동감 넘치던 새싹 사신은 이제 회색으로 변색된 상태로, 은색 소녀의 새싹을 꼭 붙들고 있었다.
은색 소녀의 한쪽 팔은 부러져 축 늘어져 있었고, 거친 숨을 내쉬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송곳 같은 칼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소녀는 한계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 선 남자는 그 어디에도 상처 하나 없었고, 지친 기색도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빠르게.’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새싹 사신과 함께라면, 더욱 빨라질 수 있어!’
그녀는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었다.
실제로도 몇 차례나 가속한 소녀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 남자는 전장에 안개를 다시 불러들인 상태였다.
“이만, 슬슬 끝을 내지.”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들려오는 순간, 남자가 안개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 순간, 지친 소녀의 눈동자에서 남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세계가 느리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인간….!]
그리고 새싹 사신의 도움으로 세계의 흐름이 더욱 느려졌다.
그때, 그녀의 뒤편에서 안개를 뚫고 남자가 주먹을 내밀며 돌진해 왔다.
은색 소녀의 칼날이 다시 한번, 남자의 목덜미를 향했다.
기교 없이 그저 정직하지만, 확실한 궤적.
하지만 남자에게 닿기에는 속도가 모자랐다.
‘조금만, 조금만 더 빠르게!’
주먹이 닿기 직전, 소녀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지듯, 그녀의 머리 위 새싹에서 은은한 빛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싹 사신의 몸에서도 다시 한번 남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
“….”
남자의 주먹은 은색 소녀의 복부에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환하게 웃었다.
“훌륭하다.”
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
그의 목덜미에는 송곳 같은 칼날이 손잡이까지 푹하고 박혀 있었다.
상처는 끊임없이 재생하려고 했지만, 그것을 남색 새싹이 방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처에서 시작된 남색 새싹은 점점 퍼져나가더니, 남자의 전신을 가득 메워버렸다.
“하, 하하.”
은색 소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소리 내 웃었다.
[이겼어!]
새싹 사신도 은색 소녀의 정수리에 주저앉으며 히히 웃었다.
은색 소녀는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나, 기절한 갈색 소녀를 어깨로 부축해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동굴의 출구에서 쏟아지는 빛은 마치 신의 축복처럼 그들을 감쌌다.
은색 소녀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이제 출구가 코앞이야.”
은색 소녀가 힘겹게 그 앞까지 걸음을 옮기자,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며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 빛 너머에서 한 남자의 실루엣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마치 시공간 자체가 그를 중심으로 휘어지는 듯했고,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그림자 아래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가 내뿜는 아우라는 마치 끝없는 어둠과도 같아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했다.
은색 소녀는 그 남자를 보는 순간,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무릎이 꺾이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강해…!]
역광 속에서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입가에 드리워진 미소만은 선명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 미소에는 강자 특유의 여유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한 걸음을 내딛자, 순식간에 은색 소녀의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마치 그의 모든 움직임이 세상의 섭리를 바꾸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