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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62

장대한 남색 나무가 천장을 꿰뚫어 버린 거대 지하 공동.

나는 공간을 가르고 튀어나온 남색 나무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며, 이 드넓은 지하 공동을 시야에 담았다.

커다란 도시를 중심으로 한쪽으로는 오르막이 끝없이 뻗어 올랐고, 다른 한쪽에는 연구소처럼 보이는 시설과 화려한 저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생각보다 분위기는 좋네….’

약간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공기와 밤하늘 같은 천장, 그리고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도시.

도시의 건물들은 마치 고대 신전처럼 바위로만 지어져, 마치 유럽의 관광지 같은 느낌을 풍겼다.

미니 사신 정원에도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저 도시를 채우고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진화액 급으로 ‘해로운 오브젝트’라는 점이었다.

그렇게 해로운 도시를 눈에 담으면서 바닥에 발을 딛자, 바닥에 깔린 고운 모래가 허공으로 천천히 떠올랐다.

내가 발을 디딘 충격으로 떠오른 모래들은 느리게 재생한 동영상처럼 느릿느릿하게 떠오르더니, 어느 순간 허공에 멈춰버렸다.

마치 모래들의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

내가 모래들을 신기한 눈치로 쳐다보고 있었더니, 미니 새싹 사신의 염파가 들려왔다.

[엄마, 엄청나게 빨라!]

미니 새싹 사신은 애착 인간으로 보이는 인간의 정수리 위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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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자라게 하는 데 힘을 거의 다 사용한 건지, 장작 빛이 조금 희미한 것만 빼면 건강해 보였다.

나는 미니 새싹 사신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며, 미니 사신의 적으로 보이는 오브젝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꽤 귀족적으로 생긴 남자였다.

남자의 태도는 흠잡을 곳 없이 태연해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상당히 겁을 먹은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태도보다 더욱 거슬리는 것은 저 남자가 풍기는 짙은 악취였다.

지하 공동 중앙에 있는 해로운 오브젝트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심한 악취.

이제까지 만났던 오브젝트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해로운 녀석이었다.

도대체 뭘 했길래 저런 냄새가 나는 거지?

‘저런 해로운 녀석과 싸우기 전에, 미니 사신과 인간들을 대피시켜야겠네.’

나는 그대로 미니 사신 정원을 불러내서, 미니 새싹 사신과 인간 두 명을 보내버렸다.

[엄마, 안 돼!]

미니 새싹 사신이 뭔가 나에게 말하려고 했던 것 같지만, 뭐 상관없겠지.

“흐, 흐하하하하.”

그리고 내가 미니 새싹 사신을 정원으로 보내버리기 무섭게, 해로운 남자가 입을 열고 웃기 시작했다.

‘뭐야. 갑자기 의기양양해졌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저 멀리 공허마저 찌를 듯 높이 솟아있던 나무가 시들어 가기 시작했다.

마치 동영상을 빨리 감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그 웅장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미니 새싹 사신이 사라져서 그런 건가?’

내가 그런 당연한 의문을 품는 순간, 세상이 까맣게 물들었다.

아무런 소리도, 그 어떤 빛도 보이지 않는 어둠.

‘!’

그리고 마치 콘크리트 속에 갇혀버린 것처럼, 공간 자체가 딱딱하게 굳어 내 몸을 가둬버렸다.

***

모든 것이 멈춰버린 세계에서, 남자는 큰 소리로 웃었다.

정말 통쾌하다는 것처럼 웃었다.

“정말이지, 운이 좋군!”

마치 신이 점지해 준 대적자처럼, 진정한 지배의 힘을 얻기 일보 직전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오브젝트.

하지만 그 오브젝트는 저절로 사라져 버렸다.

그야말로 세계의 지배자로 선택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에게는 세계가 이렇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이 세계에는 너의 대적자가 있으니, 충분히 준비하고 대비하라!]

“흐흐, 하하하하!”

남자는 다시 한번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그래. 역시 절대자에게는 그에 걸맞은 대적자가 있기 마련이지.’

한참을 웃던 남자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무표정한 얼굴로 시간 속에 박제되어 버린 회색 사신을 내려보았다.

“대적자를 치워줘서, 정말 고맙다.”

남자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기생충들이 오른팔의 피부를 뚫고 나와서 날카로운 창처럼 꼬이기 시작했다.

“그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단숨에 죽여주지.”

그리고 창처럼 변한 오른손을 회색 사신의 심장 부분을 겨눴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너는 죽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 외침과 함께, 거대한 창이 회색 사신의 심장을 향해 뻗어졌다.

하지만 날카로운 창날은 회색 사신의 피부를 뚫지 못했다.

‘!’

남자는 그것을 보고는 다시 한번 팔을 들어 올렸다.

“그렇다면!”

그리고 그 창날이 마구 떨리며, 천천히 영체화되기 시작했다.

퍼억!

그 커다란 말뚝 같은 손은 회색 사신의 심장부와 함께 쌍소멸 해버렸다.

심장이 꿰뚫린 회색 사신은 그대로 공간에 붙잡힌 것처럼 허공에 덩그러니 남았다.

“끝났군.”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회색 사신에게서 등을 돌리며 천천히 걸어 나갔다.

남자는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대적자를 처리하기 위해서 더욱 힘을 쌓고, 함정과 부하들도 준비해야 했다.

‘다시 한번 어둠 속에 숨어들어야 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겠지.’

그 순간.

끼기기기긱!

남자의 뒤편에서 마치 공간 자체를 긁어내는 듯한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언제나 조용하고 적막으로 가득한 ‘시간이 멈춘 세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다.

남자가 회색 사신 쪽을 향해서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활활 타오르는 황금색 불꽃이 보였다.

시간에 붙잡히지 않은, 넘실거리는 화염이었다.

회색 사신의 심장부에서 시작된 황금색 화염은 순식간에 전신에 옮겨붙었다.

그와 동시에 상처가 점점 회복되더니, 천천히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올린 회색 사신의 얼굴은 더 이상 무표정하지 않았다.

회색 사신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히히.

하고 웃는 것 같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듯한 장난기 어린 표정이었다.

***

빛도 소리도 없고, 심지어 움직일 수조차 없는 어둠 속.

나는 이것이 새싹 사신의 능력인 ‘시간’과 연관이 있는 현상인 것을 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고 있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속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이 멈춰버린 세상에서 억지로라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침묵의 어둠은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나는 온몸에 달라붙은 장작과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해로운 오브젝트를 시야에 담으며 웃었다.

히히.

장작을 태워 억지로 움직여서 그런지, 움직일 때마다 공간이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끼기기긱.

나는 공간을 찢는 감각으로 몸을 움직이며, 남자를 향해 공간 절단을 사용했다.

하지만 남자는 느릿하게 휘둘러지는 내 손을 보며, 공간 절단의 궤적을 최소한의 피해로 피하고 있었다.

“…!”

남자의 입에서는 영어 비슷한 말이 튀어나오고 있었지만, 나는 영어를 잘 못해서 알아듣지 못했다.

아마, 어떻게 시간 정지 능력을 얻었냐고 하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시간 정지 능력은 얻지 못했다.

나는 남색 달을 해치웠을 때도 시간 가속 정도만 얻었으니까.

그리고 그 얻은 능력도 황금 사신보다도 못 다뤘었고 말이다.

이렇듯, 나랑 시간 능력은 썩 궁합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나는 그저 한 가지를 깨달았을 뿐이었다.

시간을 멈춘다고 해서, 나를 붙잡아 둘 수는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말이다.

나는 시간 정지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점점 익숙해지는 것을 느끼며, 작게 웃었다.

이대로라면 금세 저 해로운 남자를 죽일 수 있겠어.

남자의 파괴 조건은 단순했다.

<먹어 치운 생명의 소진.>

마치 진화액에 오염된 아귀 같은 조건이었다.

그렇게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천천히 적응해 가며 남자의 재생력을 천천히 고갈시키고 있었더니, 남자는 갑자기 시간 정지를 풀어버렸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간 정지 말고는 별로 특별한 것도 없으면서, 왜 정지를 풀지?

***

남자는 능숙하게 공간 절단을 피하고 있었지만, 그 표정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럴 수는 없다.’

‘절대로 이럴 수는 없어.’

저 회색 사신은 시간을 멈추지도 못하면서, 시간이 멈춘 공간에서 억지로 움직이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어떻게 흐르는 시간의 힘을 거부할 수 있단 말이냐!’

하지만 저 황금색으로 타오르는 불길은 그것이 당연한 세계의 규칙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점점 빨라지고 있어.’

‘이대로라면 곧 따라잡힐 거야. 그 전에 도망쳐야 해.’

남자는 흉악한 흔적을 남기며 찢어지는 공간을 피하며, 시간 정지를 풀어버렸다.

그러자 공간 절단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궤도와 속도로 날아들어, 남자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남자는 그렇게 갈기갈기 찢어진 몸을 재생하면서, 남자를 따르는 모든 부하를 불러 모았다.

‘수의 폭력을 보여주마!!!’

물론 저런 강자를 부하들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도망갈 시간을 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남자는 오르막을 가득 채우며 올라오는 부하들을 보며,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 대군을 보고 회색 사신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발을 두 번 굴렀다.

콩콩.

그러자 발바닥 밑의 공간이 깨져 나가더니, 황금색 물결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진정한 수의 폭력이었다.

그리고 남자가 수십 년간 모아왔던 부하들의 말로였다.

“하, 하하하.”

하지만 남자는 실망하지 않았다.

단 몇 초.

그 찰나의 시간에 상당한 거리를 벌린 것이다.

남자는 섬의 출구로 뛰어들며, 시간을 멈추고 소리쳤다.

“당장의 승리는 넘겨주마!”

하지만 득의양양한 남자의 표정은 순식간에 일그러져 버렸다.

“움… 움직일 수 없어….”

남자의 발걸음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어… 어째서?’

공간이 굳어버려서, 이제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점점, 어디론가 끌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끌려들어 가는 남자의 시야에는 흉흉한 검은 구체를 배경으로 한, 회색 사신만이 비칠 뿐이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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