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 박힌 무수한 빛들이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지하 공동.
그 신비로운 공간을 황금빛 물결이 거칠게 휩쓸고 있었다.
‘해로운 오브젝트!’
‘오브젝트!’
미니 사신들의 적의를 담은 의지가 사방으로 뻗어져 나왔다.
미니 사신들의 눈빛은 전에 없이 사나웠고, 얼굴에는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나타난 오브젝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악취도 전에 없을 정도로 강렬했으니까.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미니 사신들의 공격을 받은 오브젝트들이 마치 거대한 믹서기에 빨려 들어가듯 산산조각 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내 머릿속에서는 복잡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시간 능력과 새싹 사신.’
‘시간을 다루던 남색 달과 남색 나무.’
‘공간 능력과 보라 사신.’
‘그리고 가장 강력하다는 보라색 달.’
시간과 공간을 다루던 달과 사신에 대해 천천히 곱씹어 보았다.
보라 사신은 여러 능력을 다룰 줄 알았지만, 주로 공간을 다루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반면 남색 새싹 사신은 시간을 가속하거나 역행시키는 등, 시간을 자유자재로 조종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등장한 꽃 달린 새싹 사신은 아예 시간을 멈추기까지 했다.
‘정말 기묘해….’
‘어째서 시간보다 공간이 우월한 걸까?’
시간을 다루는 남색 달보다 공간을 다루던 보라색 달을 높이 치던 것은 단순히 격의 차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시간과 공간은 본질적으로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시공간’이라고 묶어서 부를 정도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남색 나무도 공간 절단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보라색 달도 시간을 다룰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아갔다.
그 순간, 내 시선이 멀리 향했다.
사지가 잘려 나갔던 남자가 어느새 온전히 회복되어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표정이 가득했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
그때였다.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지더니, 시간이 마치 딱딱한 얼음처럼 굳어버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뀩’을 넘어선, 새로운 차원의 공간 활용법이었다.
단순히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까지도 붙잡는, 진정한 의미의 공간 지배였다.
시간 조작을 막고, 나의 시간에서 움직이기를 강요하는 힘!
나는 주저 없이 그 새로운 힘을 발현시켰다.
그리고 그 힘으로 머리 위에 공간의 왜곡을 만들어 냈다.
그 공간의 왜곡은 내 이미지에 영향을 받는 건지, TV에서 봤던 블랙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붙잡힌 시공간 속에서 멈추길 바라자, 남자는 더 이상 발을 뗄 수 없게 되었다.
“….!”
갑자기 발이 묶인 남자는 굉장히 당황한 목소리를 흘렸다.
붙잡힌 시공간 속에서 침묵을 바라자, 남자는 더 이상 말을 뱉을 수조차 없었다.
내 의지대로 그의 발걸음은 멈췄고, 입은 다물어졌다.
그리고 블랙홀은 거침없이 그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공간의 왜곡 속에서 남자의 몸은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찢겨진 몸은 다시 재생되었고, 그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었다.
마치 영원히 재생될 것처럼 반복되는 중이었지만, 재생될 때마다 그의 힘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저 남자의 격은 낮지만, 재생력을 보니 힘의 규모는 상당해 보였다.
오염 아귀 100마리분은 되어 보이는 그 엄청난 재생력.
파괴 조건이 <먹어 치운 생명의 소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남자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삼켜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해로운 악취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수많은 ‘인간’을 잡아먹은 거겠지.
‘….’
블랙홀 속에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미니 사신들도 다른 해로운 오브젝트들을 모두 처리하고 내 곁에 모여들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평소 오브젝트를 너무 잔인하게 죽이는 것을 꺼리던 아이들이었지만, 이 남자에 대해서만큼은 예외를 두는 듯했다.
그렇게 남자는 끝없는 고통 속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생명력을 소진해 갔다.
그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지만,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만으로도 그가 겪는 고통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이것이야말로 장작을 함부로 한 자에게 걸맞은 말로였다.
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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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의 한가운데, ‘제임스 익스플로러’ 호가 정박한 거대한 섬은 현재 부자연스러운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조금 전까지 섬을 조사하던 흔적과 연구원들의 흔적이 생생했지만, 섬 위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제임스 연구소의 직원들은 제임스 시티를 박살 냈던 남색 나무의 등장에 경악해서, 모든 장비를 버려둔 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나무가 사라지고 나서도 탐사팀은 제임스 익스플로러호에 숨어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무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던 미니 사신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간, 이제 안전해!’
‘인간, 오랜만이야!’
겨우 수 분간 떨어져 있었지만, 외로움을 잘 타는 몇몇 미니 사신들은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것처럼 인간들에게 달려들어 안겼다.
그들의 귀환은 섬의 안전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았다.
보안팀이 선발대로 섬을 정찰한 뒤, 연구원들이 뒤따라 상륙했다.
그들은 즉시 다양한 측정 장비를 꺼내 들고 작업에 착수했다.
나무가 나타났던 지점의 여러 가지 수치를 측정하고, 태평양 안개 사태와 연관된 정신 오염 수치를 확인하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이 소란스러운 현장의 중심에는 머리 위에 보라 사신을 얹은 정장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천천히 보고서를 읽으며 생각에 잠겼다.
보고서를 모두 읽자,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데이터가 예상과는 전혀 다르군요.”
“우리가 찾던 정신 오염 패턴이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서 조금 더 조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가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우선 추가 인력이 도착할 때까지만 철저히 조사하도록 합시다. 그 후에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죠.”
그때 조그마한 배추를 안고 있는 여자 연구원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배추 여자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묻어났다.
“팀장님, 동굴 입구의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미니 사신들이 물러났어요.”
팀장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결단력 있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좋습니다. 보안팀이 선두에 서서 동굴 내부의 안전을 확인하세요. 조심히 움직이되, 어떤 이상 징후라도 발견하면 즉시 보고해 주십시오.”
보라 사신은 애착 인간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이 공간의 지배자였던 오브젝트가 파괴되자, 구경하던 미니 사신들은 흩어져서 어디론가 달려가 버렸다.
나는 아무도 남지 않은 내리막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동굴 특유의 부드러운 모래가 발바닥에 밟혔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들어와 약간 간지러운 모래.
나는 웅장한 도시의 입구 앞에 서서 고개를 들어 올리자, 눈여겨보던 장관이 나를 반겨주었다.
까만 동굴 천장에 박힌 수없이 많은 작은 빛들은 마치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보는 듯했다.
그 빛은 푸른 빛을 띠며 공기 중에 부유하는 미세한 입자들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다시 시선을 내려보니 거대한 돌기둥들이 도시의 대로를 따라 주르륵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고대 신전을 연상케 하는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굉장히 오래된 유적지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거칠게 마감된 돌벽과 조각들은 이 도시의 그런 분위기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마치 관광지 같은 분위기였지만, 이 도시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아무도 없어서 더욱 마음에 드는 분위기를 풍겼다.
적막함이 오히려 이곳의 매력을 더해주었다.
고요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는 공기의 진동, 그리고 어둠 속에서 부유하는 푸른 먼지들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의 춤사위.
‘미니 사신 정원에도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
정말 신비롭고 위험해 보이는 분위기라서, 무심코 그렇게 생각해 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도시를 지나 언덕을 오르는 길목에서, 갑자기 뭔가 폭발하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
그리고 그 소리에 이끌려 다가갈수록, 황금 사신들의 애처로운 의지가 점점 또렷해졌다.
‘으앙!’
‘인간이 때려!’
‘때리지 마!’
다들 어디로 갔나 했더니, 이 인간들을 느끼고 달려간 거구나.
마치 오래된 연구소를 개조해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시설에서, 한 무리의 인간들과 황금 사신이 대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과 황금 사신의 대치는 단방향이었다.
“강력한 오브젝트들이야. 모두 조심해!”
한 남자가 내가 모르는 언어로 외쳤다.
“교관들이 모두 사라지더니, 오브젝트가 여기까지?”
“귀여운 모습에 속지 마. 저런 오브젝트가 가장 위험해!”
그 말에 답하듯이, 다른 이들이 덧붙였다.
황금 사신들은 일방적으로 맞고 있었다.
해맑게 웃으며 양손을 벌리고 뚜방뚜방 걸어가다가, 뭔가에 맞고 데굴데굴.
그렇게 튕겨 나간 황금 사신들은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을 그렁그렁 담으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황금 사신들은 마치 ‘그러지 말아줘!’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인간들에게 달려들었다가 튕겨 나가기를 반복했다.
저 아이들이 물리 면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내가 봐도 정말 불쌍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몇몇 황금 사신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인간들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의 동그란 눈에 담긴 진실한 슬픔과 애정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몇몇 인간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로워 보이지 않아.’
‘내가 먼저 해로운지 테스트해 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다양한 생각을 품고, 점점 더 많은 인간이 슬금슬금 다가와 슬픈 표정의 황금 사신들을 품에 안았다.
황금 사신들은 안아준 인간을 향해 태양같이 밝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말랑한 황금 사신들을 품에 안은 인간들도, 그 미소에 답하듯이 작게 웃었다.
그러자 일방적이던 전투도 서서히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모두 정신 차려! 오브젝트라고!”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마지막으로 외쳤지만, 이미 그의 마음도 흔들리고 있었다.
바지 밑단을 붙잡고 천천히 기어오르는 황금 사신들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아… 안 돼….”
남자는 결국 작은 손으로 바지를 붙잡은 채 올려다보는 황금 사신의 눈빛에 함락되어 버렸다.
흠.
황금 사신의 정신 오염이 이 정도였던가?
전보다 몇 배는 심해진 것 같은 기분인데….
뭐, 황금 사신은 착하니까, 정신 오염이 아무리 강해도 괜찮겠지.
그렇게 인간들과 놀고 있는 황금 사신을 지나쳐서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의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마….’
‘어떡해….’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싶어서, 나는 급히 공간 이동으로 혼자 덩그러니 떨어진 황금 사신을 향해 이동했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황금 사신이 나를 돌아보며 펑펑 울고 있었다.
‘우으….’
그것은 정말 원통하고 슬픈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