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방의 입구에서, 황금 사신이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아 있었다.
황금 사신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은은한 빛은 어둠 속에서 홀로 타오르는 촛불 같았다.
하지만 그 방의 짙은 어둠은 촛불 하나로 밝히기에는 너무 깊어서, 벽과 천장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엄마….’
방 안에는 정말 슬퍼 보이는 황금 사신이 있었다.
평소에는 해맑게 웃고 있던 황금 사신이 이러고 있으니까, 갑자기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슬금슬금 돋아났다.
뚜방뚜방.
나는 그 약간의 장난기를 참지 못하고, 황금 사신에게 천천히 다가가서 울고 있는 황금 사신의 뺨을 콕콕 찔렀다.
그렇게 괴롭히니까, ‘빼애앵!’이라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슬퍼 보이는 반응이었다.
황금 사신이 장난을 받아주지 못할 정도로 슬퍼하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우는 거지?’
이 궁금증은 곧 작은 걱정으로 변모했고, 나는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서, 눈에서 나오는 빛으로 방의 내부를 비춰보았다.
‘!’
그렇게 방 내부를 밝히자,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평범한 정육점처럼 보이는 구조의 공간.
다만 그 규모를 몇 배로 크게 만든 공간.
그 거대한 공간에 인간들이 고기처럼 잔뜩 걸려있었다.
이 광경은 내 마음에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안 그래도 인간이, 장작이 쉽게 죽어 나가는 이 세상에서, 인간을 이런 식으로 학살하다니.
게다가 황금 사신을 이런 흉악한 사건으로 울게 만들다니.
‘황금 사신에게 가장 슬픈 일은, 내가 ‘댖지’로 만들었을 때여야만 해.’
그렇게 분노와 연민이 적당히 섞인 감정은 내 마음속에서 귀찮음을 밀어내 버렸다.
나는 울고 있는 황금 사신을 품 안에 안아 올렸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리고 황금 사신을 안아 들고는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의지를 흘려보냈다.
‘그래도 이미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어.’
‘오브젝트가 되어버린 사람은 몰라도 말이야.’
그러자 황금 사신은 더욱 눈물을 포롱포롱 흘리며,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흠.
다른 애들이 보기 전에 깔끔하게 부숴버려야겠지.
나는 양손을 넓게 펼쳐서, 이 방 전체를 단단히 붙잡았다.
짝.
그리고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박수를 쳤다.
그러자 방의 모든 것이 우그러들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넓은 방도.
고기를 걸어두는 갈고리도.
그리고 거기에 잔뜩 걸려있던 시체도.
전부 사라져 버렸다.
황금 사신은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전부 사라지고 나자, 황금 사신은 두 눈을 꼭 감고 의지를 흘렸다.
‘인간에게도 발할라가 있기를.’
‘그래서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것은 기도를 모르는 황금 사신의 기도와 닮은 무언가였다.
나는 그런 황금 사신의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토닥거려 주었다.
***
미니 사신 정원 깊숙한 곳, 마시멜로 평원.
[엄마, 안 돼!]
진화한 미니 새싹 사신, 미니 꽃 사신은 엄마를 향해 다급하게 염파를 보냈다.
하지만 미니 꽃 사신의 간절한 염파는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엄마는 마치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무시해 버리고, 미니 꽃 사신을 미니 사신 정원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엄마… 안 되는데….’
미니 꽃 사신의 눈에 걱정의 그림자가 깃들었다.
그리고 미니 꽃 사신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곰곰이 엄마에게 닥칠 위기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상상해도 엄마가 지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라면 괜찮겠지.’
‘엄마는 무적이니까!’
그렇게 마음에 평온을 얻은 미니 꽃 사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니 꽃 사신의 시선이 멈춘 곳에는 두 소녀가 누워있었다.
은색 머리카락의 애착 인간과 갈색 머리카락의 애착 인간의 친구.
두 소녀는 마치 긴 여정을 마친 듯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와 겪어온 사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다행히 멀쩡해 보여!’
미니 꽃 사신이 두 소녀의 상태를 유심히 살피더니,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고 애착 인간의 뺨에 달라붙어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도 잠시, 마시멜로 평원의 고요는 사방을 가득 채우는 황금빛으로 깨어져 버렸다.
‘다친 인간이 있어.’
‘푸른 동생을 불러!’
‘하얀 아귀도 필요해!’
미니 사신 정원에 갑자기 나타난 두 소녀를 관찰하러 나타난 황금 사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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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은 표정으로 구경하던 황금 사신들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지만, 뼈가 부러진 갈색 소녀를 보고 깜짝 놀라서 푸른 사신과 하얀 아귀를 불러내었다.
그리고 잔상처가 많은 은색 소녀 쪽을 유심히 살펴보던 중, 황금 사신들의 시선이 갑자기 한 곳에 고정되었다.
‘새로운 동생?’
‘진화한 동생!’
황금 사신들은 미니 꽃 사신을 발견하고는 해맑은 표정으로 히히 웃으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머리 위, 신기해!’
‘멋있어!’
황금 사신들의 열정적인 관심은 마치 폭풍과도 같았다.
뺨과 뺨이 짓눌릴 정도로 거리감이 없는 황금 사신들이 달려들자, 미니 꽃 사신은 굉장히 당황해서 이리저리 휩쓸릴 뿐이었다.
그렇게 한 차례의 황금 사신 폭풍이 지나가고 나서야, 미니 꽃 사신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아프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푸른 사신이 나타나서 은색 소녀와 갈색 소녀를 치료하고, 하얀 아귀가 갈색 소녀를 어디론가 옮겨버렸다.
이제는 황금 사신 밀도가 확연히 줄어든 미니 꽃 사신의 주변.
몇몇 남은 황금 사신들은 부러운 표정으로 미니 꽃 사신의 머리 위에 돋아난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
미니 꽃 사신이 황금 사신을 향해 손가락을 꼿꼿이 들어 올리며 [에잇!]하고 외쳤다.
그러자 갑자기 황금 사신의 머리 위로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짙은 푸른색으로 흔들거리는 귀여운 새싹이었다.
‘!!!’
황금 사신은 머리 위에 생겨난 새싹을 만져보더니, 히히 웃으며 폴짝폴짝 뛰었다.
‘고마워!’
황금 사신은 해맑은 표정으로 히히 웃었다.
물론 그걸 본 다른 황금 사신들도 굉장히 부러운 표정으로 우물쭈물했다.
‘나도 해줘!’라고 하고 싶지만, 동생에게 힘든 일일까 봐 차마 부탁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에잇!]
그 모습을 본 미니 꽃 사신이 양손을 벌리고 꽃에서 빛을 뿜어내자, 주변에 있는 모든 황금 사신의 정수리에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머리 위에 새싹이 달린 황금 사신이 마구마구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명 새싹 황금 사신 대유행!
***
태평양 한가운데 덩그러니 솟아난 섬.
제임스가 연구소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서 그 섬으로 들어서자, 미니 사신들이 미어캣처럼 잔뜩 고개를 내밀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인간?’
‘과자를 잔뜩 주는 인간!’
‘과자!’
제임스의 머리 위에는 조그마한 황금 사신이 일어서서, 미어캣 같은 황금 사신들을 향해 손을 휙휙 흔들었다.
‘안녕!’
‘안녕!’
제임스는 배의 현측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며,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보고서 안에는 정신 오염 수치와 패턴, 그리고 태평양 인근 이상 현상과 섬과의 비교 분석이 빼곡히 들어있었다.
“흠, 이 정도라면 이 섬과 태평양의 이상 현상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어.”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머리 위에 보라 사신을 얹은 여자가 딱딱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지던 대화는 섬 중앙에 뚫린 동굴을 통과하는 순간 끊어져 버렸다.
“이건 꽤 대단하군.”
제임스는 별하늘 같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야말로 오브젝트가 아니면 나오기 힘든 환경이었다.
오브젝트 급 규모.
바깥과 별 차이가 없는 맑은 공기.
신비롭게 반짝이는 먼지들.
제임스 일행은 조용히 풍경을 구경하며,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목적지는 가장 오브젝트 연구소를 닮은 시설이었다.
“정말 똑같군.”
시설의 입구에 도착한 제임스는 보고서를 천천히 넘겨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사라진 지 36년 만에 이런 외딴곳에서 발견되다니….”
제임스가 살펴보는 보고서 안에는 굉장히 오래돼 보이는 사진이 잔뜩 실려있었다.
수십 년 전 갑작스럽게 사라진, 영국의 어느 연구소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오브젝트가 공공연해지기 전, 오브젝트와 인간의 융합을 통한 초인 양성을 목적으로 세워진 연구소였다.
물론 제임스 정도가 아니라면 알 수가 없는 비밀스러운 정보였다.
“성공 직전까지 갔다고 들었는데…. 인간을 먹어서 능력을 강화하는 ‘초인’이 나타났다고 했던가?”
제임스는 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번 사건은 확실하게 인간이 불러온 재앙이라고 볼 수 있겠어.’
그도 그럴 것이, 이 시설의 지하에는 ‘먹어 치운’ 인간의 흔적이 잔뜩 나왔으니 말이다.
게다가 납치된 사람도 영국이나 유럽 쪽에 집중된 점도 그 생각을 더욱 강하게 했다.
‘오브젝트가 된 실험체의 복수였겠지. 물론 오브젝트가 된 인간이 제정신을 30년이나 유지했을 리는 없겠지만.’
생각을 마친 제임스는 보고서를 덮고는, 천천히 배로 안내되는 소년·소녀들을 여러 가지 생각이 담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미니 사신 정원, 핫초코의 바다.
뀨힝힝.
하얀 아귀가 핫초코의 바다 위를 떠다니며, 서글픈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꼬리에는 불이 붙어 있었고, 등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상태였다.
그래서 하얀 아귀는 불을 끄기 위해 핫초코의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뀨힝힝힝.
사탕 산맥과 마시멜로 평원 사이, 아귀들의 마지막 낙원을 잃어버린 하얀 아귀들은 안식을 찾지 못했다.
많은 하얀 아귀들은 새로운 낙원을 찾아 미니 사신 정원을 헤매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소각로 골렘의 안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 핫초코의 바다를 떠도는 하얀 아귀도 새로운 낙원의 꿈을 꾸는 아귀 중 하나였다.
그렇게 핫초코의 바다 깊숙이 들어가 바닥을 짚고 걸어 다니던 도중, 아귀는 갑자기 나타난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짙은 핫초코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닷속에 숨겨진 함정이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빨려 들어간 아귀는 고운 모래 위를 데굴데굴 굴러버렸다.
‘!!!’
하늘을 올려다본 아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핫초코의 바다 밑에 위치한, 굉장히 넓은 지하 공동.
천장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사탕이 가득했고, 바닥에는 푸른 빛을 띠는 고운 사탕가루가 깔려 있었다.
하얀 아귀가 데굴데굴 구른 내리막의 끝에는 바삭바삭한 웨이퍼로 만든 건물들도 보였다.
뀨히.
뀨히히히.
뀨히히히히히히.
하얀 아귀는 작은 발을 들어 올리고, 기쁨에 겨워 웃었다.
하얀 아귀는 온몸에 잔뜩 달라붙은 사탕가루는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기뻤다.
드디어 찾았다!
아귀만의 새로운 낙원이야!
하얀 아귀의 눈동자는 희망으로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