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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65

어디를 봐도 수평선뿐인 태평양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은 섬.

나는 그 섬 절벽 끝에 누워서 태양 빛을 쬐고 있었다.

절벽을 둘러싼 바다에서는 파도가 쉼 없이 섬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대한 물의 벽이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며, 하얀 포말을 하늘로 뿌리고 떨어진다.

그 끊임없는 충돌음은 자연에 깔린 백색 소음처럼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시선을 돌려보면, 내 몸 위로 쏟아지는 찬란한 햇빛과 반대로 어둠이 가득한 풍경이 보였다.

섬 중앙의 깊고 어두운 동굴.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동굴 입구를 제임스 연구소 직원들이 쉴 틈 없이 드나들었다.

장비와 서류 등을 가지고 동굴을 드나드는 직원들의 머리 위에는 미니 사신이 하나씩 얹어져 있었다.

정수리 위에 앉은 미니 사신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제임스 연구소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웃으며 구경했다.

미니 사신의 애착 인간들인데도, 세희 연구소랑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세희 연구소 직원들은 미니 사신에게 간택 받고 나면, 미니 사신 관리를 이유로 아예 일을 안 하던데….

‘흠, 황금 사신이 나타나기 전의 세희 연구소라….’

‘….’

‘….’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세희 연구소 직원들은 간택 받기 전에도 일을 별로 안 했었다.

역시 미니 사신이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이 문제였나 보네.

지금도 섬에는 직원의 숫자가 상당히 많아 보였지만, 사실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다.

제임스가 타고 왔던 배가 다시 돌아가면서 상당수의 직원들과 피해자들을 싣고 떠났으니까 말이다.

아마 제임스랑 같이 돌아간 걸 보면, 한국으로 옮겨졌다가 다른 나라로 이송되겠지.

피해자들은 척 보기에도 한국인들은 아니었으니까.

‘….’

그렇게 태양 빛을 쬐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더니, 어느새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진작에 세희 연구소로 돌아갔어야겠지만, 이상하게 이 섬에서 뒹굴뒹굴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계속 머무는 중이었다.

‘엄마가 계속 있어!’

‘상냥한 엄마!’

이렇게 한 장소에 오래 있는 내가 신기한지, 미니 사신들은 내 근처에 몰려들었다.

배 위로 올라가서 작은 손바닥으로 톡톡 두들기거나.

줄까지 서가며 순서대로 내 더듬이를 물어보거나.

그저 내 몸에 기대서 눈을 감고 누워있거나.

그런 식으로 애착 인간이 없는 아이들은 내 주변에서 계속 노닥거렸다.

처음 몇몇은 절벽 밑으로 데굴데굴 굴려버렸지만, 굴리기도 귀찮아져서 내버려 두니까 그런 듯했다.

그러던 아이들과도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빨리 와!’

그때, 저 멀리 배 위에서 미니 사신들이 폴짝폴짝 뛰며 의지를 보내왔다.

그러고 보니 섬 위에 남아 있는 직원들의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아마 섬에 남아서 조사할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태평양 탐사를 이어갈 생각으로 보였다.

내 주변을 떠나가는 미니 사신들은 아쉬운 눈빛으로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엄마도 같이 가면 안 돼?’

물론 나는 그 눈빛을 무시하고 절벽 꼭대기에 계속 누워있을 생각이었다.

뚜방.

기웃.

뚜방.

기웃.

뚜방.

미니 사신들은 배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돌아보며 나아갔다.

‘엄마가 따라오겠지?’

‘지금쯤은 일어났겠지?’

이런 느낌이었다.

그런 미니 사신들마저 배 위로 올라타자, 배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절벽 위에서 몸을 일으켜 세워,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태양이 천천히 수평선으로 기울어 가며 하늘을 황금빛과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구름은 마치 불타오르는 듯한 색채로 하늘을 수놓았고, 그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마치 녹은 금속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시선을 반대로 돌리면, 거대한 배가 점점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높은 절벽에서 그 모습을 보니, 조금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한쪽은 녹아내리는 황금 같은 바다가 있었지만, 반대쪽은 점점 차가운 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차가운 바다가 있었다.

360도를 볼 수 있는 입장에서는 잘 만들어진 파노라마 사진을 보는 듯했다.

‘흠.’

태양의 반대편을 향하는 배의 모습은 어쩐지 빛과 온기로 가득한 곳에서, 끝없이 차갑고 어두운 곳을 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멀어져 가는 배의 갑판을 살펴보자, 미니 사신들이 배의 난간에 잔뜩 달라붙어서,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살짝 미어캣 같기도 했다.

‘엄마!’

‘엄마가 보고 있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녀석.

아직도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녀석.

그저 빤히 나를 바라보는 녀석까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는 미니 사신들이었다.

태양 빛이 내리쬐는 절벽 위에 앉아서 어두운 바다로 향하는 미니 사신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약간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아련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어두운 바다처럼 불안하다고 해야 할까.

조금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제임스 익스플로러’ 호에 더 머무르기로 마음먹었다.

순간 이동으로 배 위로 올라서자, 난간에 달라붙어 있던 미어캣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엄마다!’

‘엄마가 왔어!’

미니 사신들은 나를 향해 우르르 몰려들어, 나를 고치로 만들어버렸다.

‘…, 벌써부터 엄청 귀찮네.’

배에 도착한 지 1초 만에 불길한 기분 같은 건 전부 무시해 버리고, 세희 연구소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

태평양을 천천히 나아가는 거대한 배 위.

나는 폭신폭신한 마시멜로 위에 누워서, 배가 천천히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는 것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역시 마시멜로에 누워서 쉬어야, 일이 끝난 기분이 든단 말이지.’

나는 세희 연구소 안뜰에 정원을 연결한 것처럼 갑판 위에 정원을 연결한 뒤, 마시멜로 정원을 불러내서 거기 누워있었다.

몸의 절반은 짭짤한 바닷바람이 부는 태평양에, 나머지 절반은 핫초코 향기가 나는 미니 사신 정원에 두고 있으니 신기한 기분이었다.

정원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줄을 쳐두고 달리기 시합을 하는 미니 사신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는 마시멜로 위를 뛰어다니는 하얀 아귀들과 그 아귀들을 사냥하는 아귀 소각로 골렘이 있었다.

다시 태평양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온갖 실험 장비로 정원 입구를 측정하고 있는 제임스 연구소 직원들이 보였다.

엄청난 괴리가 느껴지는 광경이고, 세희 연구소에서는 웬만해선 보기 힘든 광경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희 연구소 안뜰은 거의 80%는 미니 사신 정원 같은 분위기였으니 말이다.

‘아무리 봐도 세희 연구소가 망하지 않는 건 좀 신기해.’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세희가 뭔가 일을 벌여서 손해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의외로 돈 버는 쪽으로는 유능한 건가?

‘그렇다면 뭐, 세희가 있으면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지으며 다시 미니 사신 운동회를 살펴보니, 이상하게도 참가 중인 미니 사신은 황금 사신들뿐이었다.

‘황금 사신이 다른 아이들을 따돌리지는 않았을 텐데, 왜 그럴까?’

의문이 들어 자세히 관찰하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달리기 시합에 참여 중인 황금 사신들은 모두 시간 가속을 사용해 초고속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어찌나 그 속도가 빠른지, 경기장에 황금 사신들의 잔상이 가득 찰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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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속을 쓸 수 있는 건 황금 사신과 새싹 사신뿐인데, 새싹 사신은 절대로 달리기 시합을 하지 않을 테니 자연스럽게 황금 사신 전용 경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뛰고 있는 황금 사신을 구경하고 있었더니, 문득 내가 이번에 새롭게 얻은 능력에 생각이 닿았다.

시간을 붙잡을 수 있게 되었으니, 도망가는 황금 사신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히히.

그런 생각을 하니, 이미 사라져 버린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호기심과 기대감에 차서 경기장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 녀석들을 향해 능력을 사용했다.

‘앗!’

그 순간, 시간 가속이 풀려버린 황금 사신들은 일제히 멈춰 섰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역력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듯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오, 황금 사신에게도 잘 통하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시간 가속을 쓰지 못하는 황금 사신에게 달려들었다.

‘잡히면 댖지형이다!’

그러자 황금 사신들은 혼비백산해서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기 시작했다.

‘앙대!’

‘도망쳐!’

시간 가속을 쓰지 못해서 그런지, 황금 사신의 표정은 굉장히 다급해 보였다.

평소에 여유롭게 히히 웃으면서 도망가던 모습과는 달랐다.

드디어 도망가는 황금 사신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부풀었다.

나는 희망을 안고 시간 가속을 사용하려 했지만, 내 능력 아래에서는 나 역시 시간 가속을 쓸 수 없었다.

안 돼!!!

내 꿈이, 희망이!!!

순간, 엄청난 허탈감이 밀려왔다.

괜히 심통이 나서, 도망가는 황금 사신들을 원거리에서 모두 댖지로 만들어버렸다.

‘앙대!’

‘엄마, 거짓말쟁이!’

‘댖지가 돼버렸어….’

황금 사신들은 엄청난 배신감에 빠진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동시에 웃음도 나왔다.

히히.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서 소각로 골렘이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그나저나 하얀 아귀가 엄청나게 적어졌네? 하얀 아귀 소각로 골렘 때문인가?’

나는 왠지 한산해진 마시멜로 평원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깊은 밤의 침대 속처럼 아늑한 지하 공동.

그곳은 하얀 아귀들의 낙원이었다.

천장에는 별사탕들이 박혀 있어 마치 밤하늘의 별들처럼 반짝였고, 바닥은 솜털같이 부드러운 사탕가루로 덮여 있었다.

뀨히히.

공동 내부에서 하얀 아귀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벌써 미니 사신 정원에 살던 하얀 아귀의 절반 이상이 이 지하 낙원으로 몰려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 달콤한 천국에도 어두운 비밀이 있었다.

원래 이 공동의 주인들은 젤리로 만들어진 실지렁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지금 하얀 아귀들에게 사로잡혀 자유를 빼앗긴 상태였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지하 공동 밖으로 나가려 했다는 것.

하얀 아귀들의 존재와 그들의 낙원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실지렁이들은 거대한 사탕 항아리 속에 갇힌 죄수가 되어버렸다.

그들의 젤리 몸은 투명한 벽에 눌려 일그러져 있었고, 그 눈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한 마리의 용감한 실지렁이가 아직 자유의 몸으로 남아 있었다.

이 작은 영웅은 지하 공동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숨어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지하 공동에서 탈출할 기회를!

그 실지렁이는 핫초코가 넘실거리는 공동 출구를 바라보며, 굳은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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