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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66

태평양의 광활한 수면 위로 거대한 탐사선이 느릿느릿 전진했다.

제임스 익스플로러호의 갑판에 선 나는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배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천천히 움직였고, 그 느린 속도가 이상하리만치 편안하게 느껴졌다.

‘느긋하네….’

제임스 익스플로러호는 오브젝트 탐색이 목적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평소에 배의 속도 따위는 신경 쓴 적이 없었지만, 직접 탑승해 보니 그 여유로움을 새삼 실감하는 중이었다.

잔잔한 파도 소리와 느긋한 항해는 나름대로 운치가 있기는 했다.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구름 고기를 잔뜩 모으면 이 배를 들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에 피식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예상치 못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배의 최상부에 달린 레이더가 미친 듯이 회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위에는 미니 사신들이 잔뜩 매달린 상태였다.

‘빙글빙글!’

‘빙글빙글!’

미니 사신들이 마치 놀이기구에 탄 것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매달려서 회전 중이었다.

게다가 레이더 아래에는 미니 사신들로 이루어진 긴 줄이 생겨 있었다.

‘….’

레이더가 저렇게 빠르게 회전한다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거기다 미니 사신들이 저렇게 달라붙어 있으면 고장 날 법도 한데,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실제로 문제가 생기지 않아서 내버려 두는 걸까?

아니면 미니 사신들을 통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내버려 두는 걸까?

뭐, 저 행렬에 황금 사신들이 잔뜩 섞여 있는 걸 보면, 미니 사신이 달라붙어도 문제가 없는 거겠지.

인간이 곤란한 감정을 품으면 황금 사신들은 금세 그걸 눈치챌 테니 말이다.

‘아무래도 미니 사신들을 위해서 쓰이지 않는 레이더를 일부러 고속 회전시키고 있는 것 같네.’

레이더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미니 사신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뭔가가 먹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그저 재미있는 광경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빙글빙글한 움직임이 점점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흠, 도대체 뭐가 먹고 싶은 걸까?’

그렇게 계속 생각하다 보니, 결국 깨달을 수 있었다.

빙글빙글 도는 미니 사신들이 수직으로 세워진 케밥 꼬치를 연상시켰다.

빙글.

빙글.

원인을 알아내서 그런지, 케밥이 더욱더 먹고 싶어졌다.

‘맞다. 갑판 아래 식당에 케밥이 있었지?’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빙글빙글 돌아가는 미니 사신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완연히 케밥으로 보였고, 그 광경은 내 식욕을 더욱 자극했다.

‘왠지 미니 사신도 맛있어 보이기 시작했어….’

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갑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뚜방뚜방.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케밥의 향긋한 향과 지글지글 구워지는 소리가 상상 속에서 선명해졌다.

식당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좁은 복도를 지나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바로 그곳이었다.

나는 그대로 문을 열고 식당으로 들어섰다.

‘케밥!’

하지만 식당에 도착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절망뿐이었다.

‘안 돼….’

어젯밤에 봤던 케밥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를 다른 요리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상심한 표정으로 주방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방 안을 살폈지만, 그곳에서도 케밥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예린이에게 케밥을 준비해달라고 해야 하나?’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였다.

주방 안에서 수상한 행동을 하는 검은 사신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온몸에 질척질척한 밀가루를 잔뜩 묻히고 살금살금 움직이는 검은 사신이었다.

‘뭐 하는 걸까?’

호기심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니, 검은 사신은 튀김기 앞에 도착해 히죽 웃더니 망설임 없이 기름 속으로 퐁당 뛰어들었다.

놀랍게도 주방 직원들은 이 상황을 모른 척하며 미소 짓고 있었다.

튀김을 만들던 요리사는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채,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검은 사신을 정성스레 트레이에 옮겼다.

그러고는 누군가 실수로 먹지 않도록 잘 보이는 곳에 놓고, 그 위에 장식용 깃발까지 꽂아 넣었다.

마침내 검은 사신이 담긴 트레이가 식당으로 옮겨지자, 검은 사신은 히히 웃으며 같은 트레이에 담긴 튀김을 야금야금 뜯어 먹기 시작했다.

오물오물.

그것은 튀김이 튀김을 먹는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앗!’

검은 사신은 그렇게 야금야금 튀김을 먹다가도, 직원들이 다가오면 눈을 꼭 감고 튀김인 척했다.

물론 튀김 옷이랑 색이 비슷한 황금 사신이면 몰라도 검은 사신은 그런다고 절대로 숨겨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직원들은 튀김을 먹으러 다가왔다가도, 검은 사신을 발견하고 작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가길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재미있는 장난이 떠올라버렸다.

뚜방뚜방.

나는 모른 척하고 천천히 튀김 트레이를 향해서 걸어갔다.

‘맛있어 보이네, 먹어버려야지!’

그리고 검은 사신 튀김을 집어서 한입에 집어넣어 버렸다.

눈을 꼭 감고, ‘엄마도 속았어!’ 하고 있던 검은 사신은 깜짝 놀라서 버둥거렸다.

‘으앙! 앙대!’

히히.

***

송파구 외곽에 위치한 제임스 타워, 임시 재활 시설.

은빛 머리카락이 햇살에 반짝이는 소녀와 따뜻한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는 나란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임스 타워 내부에 있는 재활 시설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푸른 하늘과 번화한 도시의 풍경은 그들에게 여전히 낯설기만 했다.

“이제서야….”

은색 소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정말 이제서야 지하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거짓이었다는 게 실감이 나.”

갈색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아. 세상 전부라고 생각했던 지하 공동이… 그저 사육장이었다니.”

두 소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혼란과 배신감이 뒤엉켜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세상의 종말 이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류라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바깥세상은 평화롭다고 하기는 힘들었지만, 멀쩡히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겪었던 상황은 오브젝트가 만들어 낸 지옥에 불과했다.

“넌,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은색 소녀가 물었다.

갈색 소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시야 구석에서 허공을 향해 손바닥 치기 놀이를 하는 황금 사신을 시야에 담았다.

“난, 이 나라에 좀 더 머물면서 알아보려고. 우리를 구해준 회색 사신이나 미니 사신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

갈색 소녀는 황금 사신을 손아귀에 들어서,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황금 사신은 갈색 소녀와 시선을 맞추며 히히 웃었다.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나도 여기서 머물면서 생각해 보려고 해. 이 아이도 한국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은색 소녀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미니 꽃 사신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두 소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그래도 조금은 막막하고 무섭기도 하네.”

갈색 소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곳에서의 삶이 거짓이었지만…. 해야 할 일이 명확하고 단순했으니까.”

“나도 그래.”

은색 소녀는 갈색 소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도 괜찮을 거야.”

그러자 그 말에 동의하듯이 황금 사신과 미니 꽃 사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해맑게 웃었다.

***

송파구의 건물들 사이로 우뚝 솟은 제임스 타워의 최상층.

넓은 창을 통해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사무실에서 제임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임스는 모니터를 통해 이번 오브젝트 사태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보고서에는 ‘인간 도살장’에 대한 자료부터 시작해서, 현재 구조된 피해자들의 상태까지 모두 들어있었다.

제임스의 애착 황금 사신은 하얀 천으로 두 눈을 꽁꽁 가린 채,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직도 안대 벗으면 안 돼?’

황금 사신은 제임스의 볼을 콕콕 찌르고 자기 안대를 톡톡 건드렸지만, 제임스는 황금 사신의 손을 꼭 잡아서 안대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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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벗으면 안 돼.”

‘힝.’

그러자 황금 사신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제임스의 어깨 위에 누워버렸다.

‘대부분이 한국에 남기로 했군.’

제임스는 보고서의 페이지를 스크롤 하며, 구출된 이들의 사연을 하나씩 읽어나갔다.

페이지를 내릴 때마다 그의 눈빛은 무거워졌다.

대부분 납치 당시 가족을 모두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에게 돌아갈 ‘집’이란 것이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인류의 멸망이라.”

‘오브젝트가 된 인간이 저지른 사건이라 그런지, 피해자들을 납치할 때부터 정신 오염을 염두에 두고 상황을 조성했어.’

제임스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보고서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그곳에는 재활 시설 내부에 엄청난 숫자의 황금 사신을 배치한 결과가 적혀 있었다.

<결론>

<환자의 전반적인 정신건강 상태가 현저히 개선되었음. 우울감 감소, 행복감 증가, 수면 문제 해결 등 긍정적인 변화가 관찰됨.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유지 관리 계획 수립 권장.>

그리고 보고서 끝에는 특이 사항이 덧붙여져 있었다.

<황금 사신의 태양을 닮은 향기가 정신 오염을 직접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으로 보임. 추가적인 검증 필요.>

제임스는 특이 사항을 읽는 것과 동시에 보고서를 닫았다.

‘심리 치료, 사회 적응 프로그램, 직업 훈련 같은 것들보다 황금 사신을 배치하는 쪽이 훨씬 효과적이군.’

제임스는 조금 황당한 기분을 느끼며 TV를 켜고, 황금 사신의 안대를 벗겨주었다.

‘안대 불편해!’

그러자 황금 사신은 약간 타박하는 듯한 표정으로 제임스의 볼에 뚜시 한 방을 날렸다.

그때 TV에서 오브젝트 사건 뉴스가 흘러나왔다.

[최근 중국과 유럽 여러 지역에서 거대 나비 오브젝트가 출현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거대 나비들은 주변 건물을 초토화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일으키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이 나비들이 얼마 전 서울에서 나타난 것과 동일한 종으로 추정 중입니다.]

[현재까지 황금 사신들의 신속한 대응으로 피해는 어느 정도 억제되고 있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작스럽게 출현하는 나비들로 인해 전 세계적인 관심과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미국 오브젝트 협회에서는 이 현상의 원인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으며, 각국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 하에 대응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TV에서는 찬란한 빛을 뿌리는 검으로 건물만 한 나비를 반으로 쪼개버리는 황금 사신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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