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게 뒤틀린 섬의 해안가.
거친 파도가 기형적으로 솟아오른 바위들을 때리고, 하늘은 음울한 푸른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 섬의 모든 것이 내 마음을 불쾌하게 자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손바닥 위에 황금 사신을 올려두고, 작게 의지를 보냈다.
‘늦게 와서 미안해.’
모든 장작을 잃어버려서 따뜻한 빛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자, 가슴 한구석이 아팠다.
구슬을 꼭 안고 있는 것만 제외하면, 힘이 빠져서 축 늘어진 황금 사신.
언제나 태양 같은 미소를 짓고 있던 황금 사신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황금 사신에게 장작을 천천히 불어넣고 있었다.
마치 새싹에게 물을 주듯이, 숨결을 불어 넣듯이.
그러자 시든 꽃이 다시 피어오르는 것처럼 황금 사신의 몸에서 천천히 그 광채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점점 더 밝아지는 황금빛은 이내 눈부신 빛무리로 변모했고, 천천히 허공으로 녹아들듯이 사라졌다.
미니 사신 정원으로.
미니 사신들의 발할라로.
돌아갈 곳을 찾지 못했던 황금 사신에게 다시 한번 인도가 깃들어, 있어야 할 곳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영원히 사는 황금 사신들의 올바른 순환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미간에 작은 주름을 만들었다.
분노라고 해도 좋고, 짜증이라도 해도 좋은 조금 복잡한 감정이었다.
‘왜 황금 사신은 미니 사신 정원으로 돌아가지 못한 거지?’
약간의 짜증을 담아서 허공을 향해 의지를 뱉어냈다.
딱히 미니 사신 정원과 연결이 막혀있지도 않았고, 염파를 보내지 못할 상황도 아니었던 것 같았다.
게다가 누군가를 지키거나, 제거하기 위해서 싸우느라 장작을 격렬하게 소비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
나는 분노와 의문이 뒤섞인 채, 섬의 중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황금 사신이 푹신푹신한 잔디의 감촉을 느끼며 눈을 뜨자, 밝은 빛을 뿜어내는 은하수가 걸린 아름다운 밤하늘이 보였다.
고급 카펫처럼 푹신푹신한 잔디와 아름다운 밤하늘.
황금 사신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돌아왔어…!’
황금 구슬을 꼭 껴안은 채 깨어난 황금 사신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히히 웃었다.
황금 사신은 이제 쓸모를 다한 구슬을 없애버리고, 미니 사신 정원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뚜방뚜방.
그렇게 미니 사신 정원으로 나오자, 다른 황금 사신들이 우르르 어딘가로 몰려가는 것이 보였다.
‘간식이 잔뜩 있대!’
‘푸딩!’
황금 사신은 그 행렬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 무리에 슬쩍 끼어들어서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니 사신 정원 밖으로 나오자, 황금 사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미니 사신이 계속 튀어나오는 사탕 바람개비.
하늘을 향해 당당히 손을 뻗은 거대한 엄마 동상.
인간들이 잔뜩 자리 잡고 있는 천막.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간식.
그야말로 황금 사신들을 위한 축제였다!
하늘 위에는 형형색색의 아귀 모양 풍선이 둥실둥실 떠 올라 있었는데, 그 밑에는 인간들이 쓰는 글자가 쓰인 천이 펄럭거렸다.
<회색 사신 테마파크 오픈 D-17 축제.>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즐거운 기분이 깃든 것 같은 글자였다.
‘와!’
축제의 즐거운 감정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그늘을 만드는 천막 밑에는 커다란 인간과 조그마한 인간들, 그리고 미니 사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황금 사신들은 인간들과 같이 먹기 위해서 푸딩을 머리 위에 얹고 뛰어다녔고, 인간들은 미니 사신들과 간식을 같이 먹기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즐거운 웃음소리와 향긋한 음식 냄새.
황금 사신은 어떤 직감을 가지고, 축제를 구경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때, 축제의 소란 속에서 작은 흐느끼는 소리가 황금 사신의 귀에 들렸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고개를 돌리자, 한 구석에서 울고 있는 작은 소녀를 발견했다.
길을 잃었는지, 슬픈 감정을 흘리며 펑펑 울고 있는 작은 인간.
‘인간!’
황금 사신은 망설임 없이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소녀의 볼을 토닥였다.
소녀는 놀란 듯 고개를 들었고, 황금 사신의 해맑은 웃음에 울음을 그쳤다.
이내 소녀의 입가에 황금 사신을 닮은 작은 미소가 번졌다.
울음을 그친 소녀는 황금 사신을 손바닥 위에 놓더니 여러 가지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신기한 미니 사신들의 모습, 맛있는 음식들, 그리고 화려한 퍼레이드에 대해 생생하게 설명했다.
‘인간의 목소리.’
황금 사신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애착 인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이어지던 이야기가 끝나자, 소녀는 환하게 웃었다.
소녀의 밝은 눈동자, 장난기 어린 미소.
‘인간의 생김새.’
황금 사신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애착 인간의 모든 것을 보고 들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따라 웃었다.
‘드디어 만났어!’
***
송파구 외곽, 제임스 타워.
제임스는 여러 가지 사건 처리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로 유럽에서 일어난 납치 사건 피해자들의 처리나, ‘제임스 익스플로러’ 호에서 보내오는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야 했으니까.
‘후, 힘들군.’
제임스는 확인한 데이터를 연구소 보안 클라우드에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한 차례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하자, 제임스는 허리를 쭉 펴며 스트레칭했다.
제임스는 아직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니건만, 한국에 온 뒤 데스크 업무를 너무 해서 그런지, 허리가 조금 아팠다.
그렇게 허리를 쭉 펴고 있었더니, 탁자 위에 앉아 있던 황금 사신이 제임스랑 비슷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며 똑같이 따라 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그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와서 스트레칭을 계속하기가 힘들어져 버렸다.
“운동할 때, 사람을 웃기면 안 되지.”
제임스는 손가락으로 황금 사신의 머리를 통통 두들기며 말했다.
‘인간, 어디 아파?’
그러자 황금 사신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제임스를 올려다보며, 제임스의 손가락을 감싸 쥐었다.
“아니, 괜찮아.”
제임스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웃으며, 황금 사신을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 순간, 책상 위의 전화기가 큰 소리로 울렸다.
‘앗, 인간을 일하게 만드는 기계가 울렸어!’
황금 사신은 전화기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작게 주먹을 말아쥐고 전화기 표면을 통통 두들겼다.
제임스가 전화기를 들어 올리자, 익숙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임스 익스플로러호 정기 연락입니다.]
“그래, 이쪽으로 돌려줘.”
그러자 전화기에서 약간의 잡음과 함께 연결되었다.
기기긱. 기기긱.
오래된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지만, 배에서 나는 ‘정상적인’ 소리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렸다.
[제임스 소장님. 정기 연락입니다. 현재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대화가 이어졌다.
탐사선의 현재 위치나 진행, 그리고 ‘푸른 안개’와 관련 있어 보이는 일이 있었는지 등등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그런 대화가 이어지는 도중, 제임스는 선장에게 이상한 말을 던졌다.
“아, 이번 일이 잘 끝나면 자네를 JamesSS로 올려보낼 수 있을지도 몰라.”
오브젝트를 다루는 탐사팀과 통신을 할 때면, 중간중간 이상한 정보를 섞어서 반응을 봐야 한다는 오래된 확인법이었다.
물론 미국 오브젝트 협회에서는 드론이나 정신 오염 센서 등을 이용해,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하는 쪽을 선호하긴 했다.
[감사합니다. 소장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굉장히 감격한 목소리.
하지만 제임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SDVIMVFoanVzY1YwSVhjamMzUkt1U3pnY1pRaU5OZVlrWGsxQUxDREd6eEtUVzY5QmxaKzJsbVE4cUpwcjQ3NA
JamesSS는 이미 박살 난 우주 정거장의 이름이었으니까.
***
황금 사신을 되돌려보내 준 뒤, 나는 기괴한 섬을 끊임없이 오르고 있었다.
겉에서 볼 때는 그렇게까지 커 보이지 않았지만, 직접 걸음을 옮겨보니 그 크기가 상당했다.
기기긱.
그렇게 섬의 중심을 향해서 올라가다 보면, 때때로 이상한 소리와 환상이 보였다.
사방이 곰팡이로 만들어진 거미줄이 가득한 환상이었다.
‘어지러워.’
그때마다 머리가 핑핑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아무래도 이런 환각과 어지러움 때문에 황금 사신이 길을 잃고 연락을 못 한 걸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계속 올라가다 보니, 한때 인간이었던 오브젝트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기기긱. 기기긱.
그 오브젝트들은 생김새만으로도 기괴하다고 할만했지만, 더 이상한 것은 그 행동이었다.
[키키. 키키킥.]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하면서, 너무 즐거운 것처럼 웃었다.
고통으로 가득 찬 얼굴에서 새어 나오는, 즐거워 보이는 웃음소리라니?
아니, 저걸 웃는 거라고 봐도 되는 걸까?
그들 중 일부는 ‘언어’라고 인식될 만한 말을 입에 담기도 했다.
[다가가지 마!]
[다가가기 싫어!]
[빛이, 어둠이, 색채들이!]
두 눈을 모두 긁어내서 텅 빈 안구를 드러낸 오브젝트가, 여전히 자기 안구를 후벼파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들이 뱉는 언어는 지구상의 그 어떤 언어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광기로 만들어진 저주로 변해버린 단말마라고 불러야겠지.
더욱 기묘한 점은 절규하는 오브젝트들의 행동이었다.
그토록 공포를 말하고 피하라고 외치고 있으면서, 그들은 천천히 섬의 중앙을 향해 나아갔다.
다리가 있는 자는 제 발로 천천히 걸어 나갔고.
팔이 있는 자는 기어서 나아갔고.
팔다리가 모두 없는 자는 꿈틀거리면서 다가갔다.
그들은 나아가면서 더욱 기괴한 형태로 뒤틀려 버렸다.
푸른 공허와 촉수들이 뒤엉킨 모습으로.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불쾌해서 저 해로운 오브젝트들을 모두 ‘뀩’으로 부숴버렸다.
그렇게 뒤틀린 오브젝트들을 모두 처리하고 섬의 중앙으로, 외신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방향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
그렇게 나선형으로 뒤틀린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어두운 바위 뒤편에서 한 남자의 실루엣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음울한 푸른색 빛이 그의 얼굴 반쪽을 비추자, 한쪽 눈에 박힌 오브젝트 의안이 그 빛을 받아 반짝였다.
남자가 천천히 다가오자, 그의 길쭉한 코트 자락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남자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과 함께 수많은 경험이 새겨져 있었다.
‘….’
이탈리아에서 봤던 기억이 있는 남자였다.
아마 안대를 쓴 보라 사신의 애착 인간이었을 텐데….
이상하네, 보라 사신이 안 보여.
‘보라 사신은 어디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