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펑펑.
스포트라이트에서 마치 공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스포트라이트가 폐건물 위로 잔뜩 비춰졌다.
뭔가를 경계하듯이 철저한 경계망이었다.
부엉엉엉.
불길한 목소리로 울던 부엉이는 애처롭게 울며 빛을 피해 달아났다.
“목표 건물 근처에서 정체불명의 차량 발견!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라!”
푸른색 직원복을 입은 남자들이 능숙하게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성은 정체불명의 차량 앞에 서서 보고를 듣고 있었다.
“이거… 우리 쪽 차량인 것 같습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요원은 귀찮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
“다른 팀에서 이곳에 온다는 연락은 못 받은 것 같군요.”
마치 내막을 짐작한다는 듯한 말투였다.
“보닛이 아직 따뜻하니, 도착한지 얼마 시간이 지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며 진행하도록 하죠.”
검은 요원은 보닛에 손을 대고 있다가 손을 떼며 말했다.
“우리 쪽 차량이라고 조사를 소홀히 할 수는 없죠. 차량 소유주와 관련 정보를 정리해서 제출해 주세요. 상부로 보고는 제가 하겠습니다.”
딱딱한 말투로 상황을 정리한 검은 정장의 요원은 환하게 빛이 집중되고 있는 폐건물로 향했다.
그렇게 건물로 향하던 검은 요원의 앞을 금발의 소녀가 막아섰다.
“아저씨!”
“아가씨. 오셨군요.”
검은 요원이 쓰는 것과 똑같은 수첩과 볼펜을 들고 있는 소녀는 약간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저씨, 왜 또 저를 두고 간 거에요?”
검은 요원은 소녀를 위험한 현장에 데리고 오고 싶질 않아서 몰래 출장을 나왔지만, 소녀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마 그녀 주변에 병풍처럼 서 있는 호위 겸 비서들이 어떻게든 해준 거겠지.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저 소녀는 ‘국립 오브젝트 관리 협회’ 의 협회장의 손녀.
비리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권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검은 정장의 요원은 체념하고 그냥 데리고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
검은 정장의 요원은 벽면의 흔적을 살펴보더니, 수첩을 열고 간단하게 몇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소녀는 그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똑같이 수첩을 열고는 슥슥 뭔가를 적고는 현장으로 다다다 뛰어가서 콘크리트 조각 하나를 집어 높이 들었다.
“아저씨! 조사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일주일 전까지 사람들이 있었던 연구소라기에는 너무 낡아 보여요.”
금발소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검은 요원은 손가락으로 로비의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말을 했다.
“아가씨. 여기부터, 저기까지 데스크가 있던 흔적이 보입니다. 극히 최근에 치워진 흔적이죠. 아마 낮이 되면 좀 더 잘 보일 겁니다.”
검은 요원은간단한 필기와 스케치를 하면서 앞으로 나아갔고, 동시에 주변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지시를 내렸다.
소녀도 그 행동을 보고는 요원처럼 수첩을 열고 뭔가를 끄적이며 따라 했다.
그렇게 조사를 진행하던 요원과 소녀의 앞에 바닥에 널브러진 남자가 발견됐다.
“아! 이 사람이 밖에 있던 차량을 몰고 온 사람이겠네요!”
금발 소녀는 허리에 손을 얹고 가슴을 쭉 펴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신분을 특정할 만한 물품이 없지만, 이 얼굴 본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 임시 본청에서 딱 한번 스쳐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요원이 소녀의 말에 동의를 하자, 소녀는 히히 웃으며 좋아했다.
검은 요원은 파란 정복의 직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잘 묶어두고 감시하세요. 아마 물어봐야할 것들이 꽤 있을 겁니다.”
그리고는 검은 요원은 다시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
꽤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던 폐건물이었지만, 다량의 인원이 북적거리며 손전등 불빛을 들이대고 다니니 그런 분위기는 많이 희석되었다.
모든 방을 샅샅이 뒤지며 조사하던 남자들은 본격적으로 수상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불에 탄 덩어리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금발 소녀는 꺼림칙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아저씨… 설마 이거 사람 시체인가요?”
소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분위기도 으스스한 게, 역시 사람 시체겠죠? 누가 이런 끔찍한 짓을 한 걸까요?”
언제나 어른인 체하는 소녀였지만, 이런 일에는 내성이 부족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본검은 요원은 슬그머니 다가와서소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그러자, 소녀는 헤실헤실 웃으며 안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건 오브젝트의 흔적이 분명해 보이는 군요.”
검은 요원은 오브젝트의 짓이라고 단정했다.
소녀는 머리를 갸웃하며 물었다.
“네? 오브젝트요? 아무것도 없는데요?”
“엄청난 고온으로 순식간에 죽은 시체입니다. 옮겨진 흔적도 없고, 주변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게 가능한 건 오브젝트뿐이죠.”
“그…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오브젝트 같네요.”
“모두 철수하죠. 오브젝트 대비를 충실히 한 뒤, 낮에 다시 진입하는 걸로 합시다. 이대로 진입하는 건 너무 위험할 것 같군요.”
생명을 해하는 오브젝트가 있다고 여겨지자 요원은 그대로 철수를 지시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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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요원은 그대로 뒤를 돌아서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
폐건물의 샹들리에 위에 거꾸로 매달려서 금발 소녀를 바라봤다.
신기한 꼬마였다.
아무렇게나 행동하는데 기품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어린애인데, 꽤 당돌한 면이 있었고 사용하는 어휘도 꽤 어른스러웠다.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현대의 귀족이 저런건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이 건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좀비제작자와 한패인지만 확인하고 떠나려고 했는데, 눈을 잡아끄는 소녀가 있어서 계속 구경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까지 소녀를 따라다니며 확인해본 결과로는, 범죄자 추적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저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훨씬 유능했다.
한국에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이 있었다니!
짝짝짝.
유령화 상태로 아무도 듣지 못하는 박수를 쳤다.
이제 뒷일은 이들에게 맡기고 세희 연구소로 가서 쉬어야지!
***
해가 중천에 떠오른 한 낮, 중무장한 직원들이 우르르 지하실로 향했다.
검은 요원은 팔짱을 낀 채로 그들의 호출을 기다렸다.
“이상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검은 요원은 팔짱을 풀고 소녀와 함께 어두운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폐건물의 지하는 실험실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관련 실험 기록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아저씨, 이거 실험 기록을 파기하지도 않고 일부러 바닥에 둔 것 같네요.”
호기심에 여기저기를 쏘다니던 소녀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한 장 주워들며 말했다.
“이 실험 일지만으로도 중형을 피할 수 없을 텐데, 파기를 안 하고 바닥에 뿌려두다니….”
검은 요원도 종이 한 장을 주워들어 확인하며 말했다.
“확실히 정보를 숨기려고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 두 가지 중 하나겠죠. 절대로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거나, 이미 여기 뿌려진 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악업을 쌓고 있거나.”
금발 소녀는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보다 더한 악행이 있을까요? 납치, 감금. 살아있는 사람의 눈을 적출. 내장을 얼기설기 대충 만든 오브젝트로 대체. 잠깐 읽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네요.”
소녀는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잊고 싶다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종이가 널브러진 복도를 지나 검은 요원과 금발 소녀는 커다란 방에 도착했다.
엄청나게 넓은 방.
방의 양 옆으로는 돼지고기를 걸어두는 것 같은 행거가 설치되어 있었고, 방 한복판에는 터져 나온 핏물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핏물 중앙에는 혀를 빼물고 죽은 남자의 머리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검은 요원은 그 모습을 보고 소녀의 뒤로 다가서서 눈을 가려주었다.
“앗! 또 뭔가 있었어요?”
금발 소녀는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반발은 없었다.
아마 비슷한 상황에서 못 볼 꼴을 봤던 것 같았다.
“이 남자는 한국에서 수배 중인 남자군요.”
검은 요원은 널브러진 남자의 머리통을 보고는 그의 정체를 간단히 짐작했다.
“아가씨도 제 사무실에서 본적이 있을 겁니다. 가짜 연구소를 세워서 사람들을 잔뜩 납치했던 중년 남성입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황금뿔 때문에 수배된 남자 말이죠? 기억하고 있어요!”
검은 요원은 수첩을 탁하고 덮고는 조사의 종료를 알렸다.
“유출된 걸로 확인된 대부분의 황금뿔을 되찾았으니,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은 끝난 셈입니다.”
검은 요원은 방안에 잔뜩 굴러다니고 있는 황금 심장을 보면서 말했다.
“이제부터는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를 알아봐야겠죠.”
***
이번 사태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을 것 같던 남자는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니 그러니까. 귀신이 있었다고!”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면 계속해서 귀신 타령을 했다.
하는 말도 지리멸렬하고, 정확히 본 것도 거의 없어서 어떤오브젝트였는지조차명확하지 않았다.
거기에 조사반이 도착했을 때는 오브젝트는 흔적도 안 남아 있었고 말이다.
왜 그곳에 있었는지를 물어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 남자는 그저 빚 때문에 끌려온 일용직 노동자에 가까웠다.
즉,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심문은 더 이상 이어가도 무의미했다.
검은 요원은 꾸벅꾸벅 조는 소녀를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심문실을 나서며 수첩을 열었다.
수첩 위에는 간단한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유일하게 증거로 가치가 있어 보이는 흔적.
남자가 발견될 당시에 옷 위에 남아있던 흔적이었다.
가지런하게 찍힌 아기처럼 작은 발자국 두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