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75
소울 아카데미가 나오고 나서 약 1년 정도가 지났을 즈음인가? 그 때까지 사람들은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에 모드를 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익히려다 1일차를 100번쯤 반복하다 포기한 나라서 그 때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게시판에서 떠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코딩이 너무 좆같아서 도저히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팔이 머리에 있고 다리에 머리가 있고 팔에 몸통이 있는데 기묘하게도 잘 걸어 다니고 있는 물건을 어디서부터 개조해야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대체 이 게임을 만든 제작사는 뭘 하는 놈들인가. 어떻게 하면 이 따위로 프로그래밍을 했는데 게임이 돌아가는 것인가. 코딩의 신께서 기적이라도 내린 것일까.
하다하다 이 게임의 코딩을 분석하는 데 성공하면 코딩의 신께서 말씀을 전해줄 것이란 개소리까지 나오던 때에 커뮤니티에 한 유저가 글을 올렸다.
소울 아카데미의 모드를 만드는 법을 알아냈단 것이었다.
그 때에도 멍청했던 나는 그 유저의 글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때를 기점으로 상황이 바뀌긴 바뀌었다. 혁명이 일어났다 외친 사람들이 하나 둘 저마다 만들고 싶어 하던 모드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해소하기 위한 모드부터 시작해서. 게임 속 여러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것들. 새로운 캐릭터, 무기, 특성, 스킬을 추가하는 모드. 거기에 더해 자신만의 창의성으로 만들어낸 게임에 없는 새로운 던전까지.
한 유저가 제시한 발상은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에 두 번째 전성기를 만들어냈고 그 속에서 난 온갖 모드를 허겁지겁 처먹으면서 행복을 느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전성기가 끝날 것이란 거도 모르고.
아니. 내가 미래를 보는 것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아냐. 그 후로 DLC도 제대로 된 모드도 안 나오는 기아가 몇 년이나 지속될 거란 걸 어떻게 아냔 말야!
예지 능력이 있었다면 최대한 아껴서 하나 둘 처먹었겠지!
어쨌든 그 당시에 내가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은 새로운 던전의 모드였다.
1년간 한 게임을 붙잡고 대부분의 컨텐츠를 소모한 나에게 새 던전은 반드시 공략해야만 하는 물건이었으니까.
제작사가 아니라 유저 개인이 제멋대로 만든 모드답게 던전의 퀄리티는 천차만별이었다.
언젠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대부분이 쓰레기였고, 또 대부분이 트롤링을 위한 모드였지.
그럼에도 나는 새 던전을 공략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것 말고는 할 일이 없기도 했고 또 쓰레기 중에 가끔 진주가 나오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지금 내가 공략하는 던전은 분명 그 진주 중 하나였다.
<괴악하군. 던전 안에 들어온 자를 죽이기 위한 악의로 가득 차있어.>
전조도 없이 튀어나온 창을 내가 가뿐히 피해내자 할배가 기함을 했다. 방금 전 튀어나온 창에는 마력이 담겨 있었기에 사람의 살을 꿰뚫는 게 아니라 터트릴 만한 위력이 담겨 있었으니 던전을 만든 자의 지독함에 경악할 수밖에 없지.
물론 그 힘으로 허공을 꿰뚫어버린 이상 악독한 함정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그쵸? 이 던전 만든 사람 완전 악질이라니까요.’
내가 예전에 던전제작자에게 엿을 먹일 의도로 이 던전을 밑바닥부터 해체한 게 아니었다면 썩은물인 나도 꽤 위험하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지. 입구에서 네 걸음쯤 갔을 때 세 가지 함정이 합쳐진 콤비네이션에 당하고는 사후세계의 실존을 검증하게 됐을 거야.
<크흠.>
여태까지 당했던 여러 일들을 떠올리며 험한 말을 했더니 할배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평소 같았으면 나한테 동조해서 이런저런 소리를 할 할배가 말을 아끼는 모습이 기이했지만 그걸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 설마 주신께서 이 던전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말을 아끼시는 건가요?’
<크흠흠.>
그리고 그걸 설득하는 것 또한 손쉬웠다.
‘에이. 할아버지. 설마 위대하신 주신께서 이런 지옥 같은 던전을 만들었겠어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 그런가?>
‘그럼녀! 자비로운 주신께서 이런 악독한 던전을 제작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따지고 보면 지금 할아버지가 하는 행동이 주신을 의심하는 행동이란 소리라구요!’
<…묘하게 설득력이 있구나. 그래. 네 말이 옳다. 내 주신을 의심하였어. 그 분께서 악의로 똘똘 뭉친 이딴 던전을 만들 리가 없는데 말이다.>
신에 대한 믿음이 광적이진 않으나 나름 굳건한 할배는 이런 개같은 던전이 주신의 작품일 리 없음을 확신한 듯 그 동안 참고 있었던 던전에 대한 욕지거리를 이어갔다.
던전을 만든 자는 피를 보는 것을 즐기는 악한 일거라느니. 사람의 절망을 얼마나 사랑하면 이런 함정을 만들 수가 있냐느니. 악신의 던전도 이것보다는 덜할 거라느니.
어느 하나 틀리 말이 없었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이 던전을 만든 게 주신일 것임이 분명했단 사실이었다.
모드로 만든 던전의 대부분이 쓰레기이기에 그 속에서 빛나는 보물은 다른 것보다도 더 기억에 새겨지는 법이다.
내가 이 던전을 생생히 기억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 곳은 분명 지독하디 지독한 악의로 똘똘 뭉친 곳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잘 만들어진 던전이기도 했으니까.
다른 허접한 모드 던전들과는 격이 다른, 본편에 편입 되었더라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장소.
가끔 가다 이런 모드들이 튀어 나왔기에 나는 매일 욕지거리를 내뱉어가면서도 모드를 찾아 헤맸다.
그러면서 한 가지 확신을 얻은 것이 있었다. 퀄리티 좋은 모드의 제작자들이 몇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이 게임을 만든 이들이리라는 것.
본편의 던전에서 묻어나던 여러 버릇들이 모드의 던전에서도 그대로 남아있는데 소울 아카데미의 썩은물이 내가 그걸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그 때는 회사에 뭔 일이 났구나. 씨벌 이번 년도에도 DLC 나오기는 글렀네. 정도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내가 공략했던 모드가 이 곳에 그대로 재현되었다는 것은 그 모드를 만든 이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드의 제작자는 아마 메스가키 모드를 제작해 날 이 세상으로 끌어들인 이와 동일인물이거나 가까운 관계겠지.
근데 있잖아. 우리 허접 주신께서는 날 관측하자마자 지극한 관심을 보이셨거든? 심지어 연금술사 그 개새끼한테 뒤질 뻔 했을 때 반쯤 협박해서 사도의 계약을 맺기까지 했고?
이쯤 되면 아무리 멍청한 나라도 원흉이 누구인지 알 수밖에 없잖아!
허접 주신 이 개새꺄! 모드 만들어서 빙의시킬 거였으면 좀 제대로 된 걸로 해야지!
왜 메스가키 모드 같은 걸 만들어서 사람을 이 꼴로 만들어!?
네 취향이냐?! 빙의시키는 김에 개인적인 취향을 잔뜩 집어넣은 거냐!?
씨발 개변태새끼! 네가 바라는 대로 하루 종일 매도를 해주마! 너무 좋아서 미쳐 버릴 때까지 귀에다 욕을 때려 박아 줄게!
근데 그러면 네가 기뻐하기만 할 것 같으니까 여기에 할배의 욕도 같이 얹어 줄 테다! 던전 제작자에 대한 할배의 증오와 나의 직선적인 증오를 함께 받아라!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나는 빠른 속도로 던전을 진행했다.
과거 날 도발했던 던전제작자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 수도 없이 공략해 보았던 던전이고 그 후에도 이만한 퀄리티의 던전이 없다며 생각날 때마다 들락날락했던 곳이다.
시간이 꽤 지나갔다 한들 이 곳의 풍경은 오늘 낮에 공략했던 던전보다도 생생했으니 내 걸음이 중간에 멈추는 일은 없었다.
생각해보니까 말야. 그럼 그 때 나랑 키배를 떴던 녀석이 허접 주신이라는 거 아냐?
오. 씨발.
네 던전을 이런 식으로 강간할 수 있다는 거 아냐? 어때 개쩔지?
왜케 화나서 부들부들대. 네 부족한 창의력을 쥐어짜내느라 고생한 건 알겠는데 그런다고 없던 창의력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
한계가 이건데 뭐 어쩌겠냐. 힘내라. 파이팅. 어쨌든 덕분에 재밌게 놀았다.
라고 내가 놀렸던 상대가 허접 주신이었다고!?
내가 던전제작자에게 했던 여러 말들을 되새기고 나니 나를 놀리던 허접 주신의 행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당했으면 조금은 되돌려 주고 싶을 수도 있지.
근데 선하고 자비로운 주신이라는 작자가 복수를 해도 되는 거야? 선신이라면 그 건방짐조차 자신의 따스함으로 품어야하는 거 아닌가?
아니 애초에 좆같은 던전을 만들어서 먼저 사람을 꼴받게 만든 건 허접 주신이잖아. 난 내가 당했던 걸 되돌려줬을 뿐인데 나한테 업보라고 할 만한 게 있나? 그 때도 허접 주신은 겁나 치졸한 새끼였네?
안 그래도 없었던 신앙심이 더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지금이라면 아무런 죄책감 없이 허접 주신을 방에 가두고 군만두만 먹이면서 던전을 만들어내라고 협박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보스룸으로 향하는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이미 알고 있다. 보스를 강아지 다루듯 가지고 놀다가 쓰러트리는 방법도.
여태까지 지나온 던전의 풍경이 내 기억과 다르지 않은 걸 보면 이 너머도 그렇겠지.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 내가 지금 한 일주일 정도는 안 자도 문제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잠을 취하는 편이 더 낫단 말야.
<여아야. 잠시 기다려봐라.>
당연하다는 듯 문에 손을 댄 순간 할배가 목소리를 냈다. 여태까지 자기도 모른 채 주신을 욕하던 열띈 목소리와는 다른 걱정스런 음성이었다.
‘왜요?’
<뭔가 이상하다. 저 너머에서 아무런 위협도 느껴지지 않아.>
‘…어. 그럴 리가 없는데?’
이 너머에 있는 게 내 기억 속 그 보스가 맞다면 위협이 느껴지지 않을 리가 없다.
할배의 착각…일 리도 없지. 내가 생체레이더로 요긴하게 쓰고 있는 게 할배인 걸.
여태까지 할배의 감각이 틀렸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레이더의 반응이 늦어서 곤욕을 치른 적은 몇 번 있지만.
<지금 불경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으냐?>
‘생각 읽기 금지! 사생활을 존중해 주세요!’
<하고 있었다는 소리구나.>
‘…앗. 그. 크흠. 글쎄요? 전 아무것도 모르겠는데요?’
<내 몇 번이나 하는 말이지만…>
갑작스레 시작된 할배의 잔소리 투하를 애써 흘려들으며 문을 살폈다.
방금 전 할배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너머에 있는 것은 미지의 적이라는 이야기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단 거지.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난 오히려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오히려 잘 됐다. 지겹도록 재탕했던 던전을 한 번 더 공략하느라 지루했었는데 드디어 새 컨텐츠가 튀어나온 거잖아.
여기가 허접주신이 만든 곳이 확실하니만큼 도전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어. 뭐가 잘못되어도 목이 날아가진 않을 테니까.
뭣보다 허접 주신 그 새끼의 창의력에는 한계가 있거든. 이 너머에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해봐야 자기가 만들었던 것들의 재탕일 게 뻔해.
그 새끼가 만든 던전을 내가 어디 한 두 번 공략해본 것도 아닌데 설마 그 놈의 수작질에 당할까.
뭐가 됐든 가뿐하게 공략하고 허접 주신한테 한 소리나 해줘야지.
그 자식이 예전에 제일 기분나빠 했던 게 뭐였더라. 아무런 걱정 없이 보스룸으로 향하는 문을 연 순간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 너머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위협적인 적이었냐고?
아니. 차라리 그런 거면 다행이지.
소울 아카데미 내에 존재하는 보스라면 어떻게든 공략할 수 있을 테니까.
근데 저건 적이 아니잖아.
어린 시절의 루시가 어떻게 적이 될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