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인근 황금뿔 격리 구역.
머리에 황금뿔을 달고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모여서 살도록 만든 구역에서 언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이, 그렇게 고집 피우지 마. 지금 팔아치우는 게 가장 고가라고. 내가 아는 업자가 있는데 단가도 적당하고 아주 양심적이야.”
“절.대.로. 안 판다구요! 누가 미쳤다고 뿔을 팔아요?”
남자의 말을 무시하면서 성큼성큼 앞서 나가는 황금뿔의 소녀를 뒤따라가는 비굴한 표정의 남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어차피 30살 넘어가면 저절로 없어지는 건데 잘라서 팔면, 돈도 벌고 좋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
“싫어요! 전에 아는 언니도 팔아먹었다가 우울증 걸려서 자살했었다구요. 설마 그것도 아저씨가 소개한 거 아니죠?”
남자는 과장된 표정으로 놀라며 부정했다.
“절~대로 아니지. 나는 우울증 케어도 확실하다고. 나도 뿔이 있는데 그런 거 하나 모르겠어?”
“아! 그러고 보니 그렇게 좋으면 아저씨부터 팔아요. 뿔!”
황금뿔소녀는 뒤를 돌아서 소리를 꽥하고 질렀다.
비굴한 표정의 남자가 무려 30분이나 소녀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으니 짜증날 법도 했다.
“아~ 이거? 난 이거 사업도구라서 못 파는 거야. 뿔 자르면 여기 못 들어오는데, 그럼 나는 뭐 먹고 살라고? 곧 나가서 살 거라며? 그럼, 여윳돈이 있는 편이 좋지 않겠어? 그리고 뿔 달고 밖으로 나가면 위험해. 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튼 절대로 안 팔아요!”
집에 도착한 황금뿔의 소녀가 쾅 소리 나게 문을 닫자, 이제야 시끄럽게 떠들던 남자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소녀가 생각할 때, 남자의 말이 전부 잘못된 건 아니었다.
실제로 요즘 뿔을 잘라가는 범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소녀는 밖으로 나서야만 했다.
사라진 하나뿐인 언니를 찾기 위해서.
***
기분 좋은 햇볕이 내리쬐는 탐정 사무소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햇볕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의 피해 금액은 오브젝트 피해 최고 금액을 갱신할 것으로 보이며….>
TV에서는 ‘강철탑 맥동’ 사태의 피해 금액이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서울숲 인근에는 서울숲 관련 연구기관들이 즐비해있었는데, 한순간에 가루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건물들이 증발해버렸다.
물론 건설업계는 일거리가 늘어나서 대 호황이었다.
“선배!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가 최초 아니에요?”
“최초?”
책상 위에 늘어져있던 후배가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오브젝트에게 빼앗긴 땅을 다시 되찾은 최초의 나라요! 미국도 다시 되찾은 경우는 없지 않아요?”
“글쎄. 내 기억에는 미국이나 중국에서 몇 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얼음 왕좌 급으로 광범위한 영역을 차지한 오브젝트에게서 되찾은 건 처음 같네.”
후배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이번에 도봉구 탈환을 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목숨까지 걸어가며 도봉구로 잠입해서 작전성공! 이거 영화로 나오겠죠? 당연히 나오겠죠?”
“이미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하던데,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네. 요즘 시대에 이런 영웅담은 찾아보기 힘드니까, 정부 지원도 들어갈 것 같던데?”
“역시 그렇겠죠!”
후배는 헤헹, 하고 바보처럼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의뢰 실패했다며?”
의뢰 관련 이야기를 하자 생기가 넘치던 후배는 다시 삶은 배추처럼 책상 위에서 흐느적거렸다.
“아니, 그게. 실패는 아니고… 저보다 빨리 해결한 사람이 있더라고요. 솔직히! 의뢰를 맡긴 곳에서 직접 해결해 버리는 건 사기 아니에요?”
후배는 억울했는지 책상 위에 엎드려서 버둥거렸다.
뭐, 아무리 억울해해도 계약서에는 그런 것도 다 명시되어 있었으니 어쩔 수 없지.
“슬슬 나가봐야겠어.”
자리에서 일어나서 코트를 걸치고, 거울을 보며 복장을 정돈했다.
“갑자기 어디로요? 의뢰도 없지 않아요?”
“중요한 의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기분이라서 말이야.”
“네?”
어리둥절해하는 후배를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
하아암.
왠지 지루해져서 하품을 했다.
육체적인 피로에서도 완전히 해방됐는데도 하품이 났다.
이런 것도 인간 시절의 습관이려나.
TV에서는 시답지도 않은 걸 가지고 다투고 있었다.
강철탑이 처음 나타났을 때도 나왔던 이야기였고, 도봉구의 얼음 왕좌가 처음 나타났을 때도 나왔던 이야기였다.
<이제 수도를 옮겨야 할 때가 된 겁니다! 훨씬 괜찮은 입지를 가진 곳들이 많아요!>
<다른 곳이라고 안전할 것 같습니까? 이번에 대전에서는 사람을 요리로 만드는 오브젝트까지 나왔어요!>
서울에서 벗어나서 다른 곳에 둥지를 틀자는 이야기였다.
거의 10년 동안 매년 같은 이야기가 튀어나오는데, 하지만 설문조사 같은 걸 하면 언제나 서울 잔류를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긴 서울 거주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하면 당연히 그런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인간 시절, 여러 곳을 전전해 본 입장에서 이상하다고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
언제나 자기가 사는 곳이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울 사람은 서울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고, 부산 사람은 부산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뉴스에는 언제나 흉악한 오브젝트 사건만 나오니, 어디든 위험하다고 느낄 법 했다.
자기가 사는 곳이야, 지금 실제로 살고 있으니까 살만하다고 느끼는 거겠지.
앵무새처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TV는 꺼버렸다.
***
황금심장을 부수고 다녀서 그런지 이상한 능력을 하나 얻었다.
내면의 불꽃을 소비해서 일시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었다.
아마 지속시간은 하루정도?
시험 삼아서 만들어보니, 나와 똑같이 생긴 황금색 인형이 만들어졌다.
오오오.
신기하네.
감촉까지 재현할 정도로 굉장히 정교한 인형이었고, 소모되는 장작도 얼마 안 돼서 잔뜩 만들었다.
침대 위가 황금 인형으로 가득 찰 때쯤, 아주 귀찮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눈치 챘다.
황금 인형들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따로 컨트롤할 수가 없었다.
인형들은 애정결핍인 것처럼 나에게 마구 달려들었다.
TV를 보지 못할 정도로 달라붙는데, 엉기고 달라붙는 게 매우 성가셔서 장롱 위로 도망쳤다.
내 옆에는 이미 도망친 유령 고양이도 같이 있었다.
애옹.
짜증스러운 울음소리와 함께 왜 저딴걸 만들었냐고 타박해 왔다.
처치 곤란한 인형들이 내 격리실을 차지해버렸다.
그렇다고 부숴버리기는 좀 미안했다.
내가 만든 아이들인데 만들어 놓고 필요 없다고 부숴버리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거겠지.
그때 격리실 밖에서 예린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후후, 매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예린에게 모두 줘버리자.
***
사신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회를 틈타서 몰래 빠져나왔더니 충격적인 장면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사신이가, 한가득!”
미니 황금 사신이 격리실 안에서 잔뜩 뛰어다니고 있었다.
장롱 위의 사신에게 닿으려고 폴짝폴짝.
사신이보다 작아서 그런지 2배로 귀여운 사신이들이 잔뜩!
나는 홀린 것처럼 격리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장롱 위로 올라가려고 폴짝거리던 사신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파도처럼 잔뜩 몰려드는 시선을 직접적으로 받아보니 느낌이 색달랐다.
이렇게 보니 황금 사신이 엄청나게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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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진 않고 쳐다보기만 하는 황금 사신이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한손에 들어오는 크기.
와 말랑말랑해.
귀여워.
손에 쥐자, 긴장으로 몸을 굳히고 있던 황금 사신이었지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는지 내 팔을 타고 올라가 볼에 달라붙었다.
그걸 시작으로 격리실에 있던 모든 황금 사신이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헤헤, 행복해.
***
격리실을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반차를 쓰고 연구소를 나왔다.
당연히 황금 사신이를 몰래 집으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오브젝트 무단 반출? 안 걸리면 괜찮아!
가방 속에 담아온 황금 사신이를 집안에 풀어놓자, 폴짝폴짝 뛰면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몇 마리는 내 몸을 타고 올라와 달라붙었다.
아아, 여기가 천국인가.
황금 사신이의 식성은 사신이랑 비슷했다.
과자 같은 단걸 좋아했다.
다만 다른 점은 TV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원본 사신이는 이상하게 뉴스 같은 걸 자주 틀어두던데, 무슨 차이일까?
황금 사신이는 원본보다 10배는 고양이 같아서 집안 물건이 남아나질 않았지만 귀여우니 괜찮았다.
물건을 건드려서 떨어트리고, 잡으려고 하면 도망가고…
사신이랑 놀다보니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늦은 밤이라 황금 사신이도 졸린지 눈을 감고 내 몸을 타고 와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졸리면 달라붙는 건 원본이랑 비슷하네.
침대에 눕자, 사신이의 체온으로 매우 따뜻했다.
***
왠지 모르게 시야가 흔들리고 몽롱하게 느껴졌다.
품 안 가득히, 황금 사신이들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래! 그래 바로 이거야!’
아 행복해. 미니 사신이랑 함께하는 나날.
아아 행복해.
이게 행복인가.
하지만 사신이들은 하나둘 내 품 안을 빠져나가더니 작별 인사를 했다.
“안 돼. 안 돼! 기다려!”
하지만 내 절규에도 사신이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날 떠나지 말아줘. 제발!”
하지만 사신이는 모두 떠나버렸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갑자기 느껴지는 추위에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꿈속에서처럼 나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사신이들도 꿈속에서처럼 온데간데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