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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83

[시청자 여러분의 각별한 주의를 당부드립니다.]

한반도와 유럽 북부를 향해 뻗어오는 눈보라에 대한 뉴스 특보가 끝나자마자, 나는 서울숲 너머에서 돌아다니는 황금 사신 쪽으로 순간 이동했다.

‘앗! 엄마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나를 반겨주며 폴짝폴짝 뛰는 황금 사신과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이 솟아오른 하얀 ‘벽’이었다.

거대한 하얀 장벽이 저 멀리 지평선 끝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상당히 크네….’

나는 멀리 떨어진 눈보라를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그것은 이상하게도 단순한 눈보라가 아니라, 어떤 오브젝트가 나에게 보내는 도전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고오오오.

귓가를 울리는 기이한 소리가 내 몸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뭔가 귀가 먹먹해지면서도,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소리였다.

그 이상한 소리는 너무 커서, 오히려 주변이 조용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내가 공간을 붙들어야 버틸 수 있는 강풍이 불어오는데도, 그 소리는 그 바람 소리마저 잡아먹고 있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소리!

눈 벽이 가까워질수록,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흐름이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작은 소용돌이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눈 벽 위로 흉악한 바람의 흔적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었다.

문득 서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눈보라가 도시를 덮친다면?

고층 빌딩의 유리창들은 마치 얇은 종이처럼 찢겨 나갈 테고, 허술한 건물들은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겠지.

게다가 눈 벽 속에서는 급격한 온도변화로 인한 번갯불이 번쩍이고 있었다.

저 멀리 눈보라 속에서 푸른 섬광이 눈보라를 관통할 때마다, 내 주변의 공기도 전기를 띤 듯 전기를 머금었다.

나는 손에 잡힐 듯한 푸른 섬광을 손바닥으로 꼭 움켜쥐었다.

그것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정전기 같았다.

내가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눈보라를 계속 올려다보고 있었더니, 미니 사신들이 잔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커다래!’

‘인간 위험해?’

눈보라의 크기를 가늠해 보려는 것처럼 양손을 펼치거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미니 사신들.

주변에는 드론들이 멀찍이서 상황을 촬영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서울숲에 기계가 들어가도 괜찮아졌었지.

‘슬슬 시작해 볼까.’

나는 양손을 펼치고, 헤일로를 하나 머리 위에 올렸다.

‘환상 구현화 헤일로.’

헤일로를 써야 할 정도로 강한 오브젝트랑 싸울 때는 쓸모가 없지만, 이럴 때는 아주 쓸만한 녀석.

나는 장작을 잔뜩 태우며, 거대한 벽을 상상했다.

저 눈보라보다 크고 튼튼한 장벽을.

그 순간,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거대한 벽이 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워낙 거대해서, 마치 하늘처럼 보이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눈보라에서 울리던 기이한 소리가 차단되자, 주변에 정적이 차올랐다.

시끄러웠다가 한순간에 조용해져서 그런지, 마치 흡음실에 들어간 것처럼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커다란 충격파가 울려 퍼졌다.

쿵!

묵직한 무언가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출렁였다.

‘….’

나는 미니 사신들을 데리고, 내가 만든 벽 위로 올라갔다.

워낙 높이가 높아서 그런지 색다른 풍경이 보였다.

남쪽은 드넓은 숲과 도시, 그리고 울퉁불퉁한 지평선과 수평선.

북쪽은 지평선까지 하얗게 물들어 버린 끝없는 설원.

마치 시간마저 얼어붙은 것처럼, 북쪽에는 움직이는 것이 전혀 없었다.

‘높아!’

‘하얘!’

‘엄마 대단해!’

황금 사신들은 신기하다는 의지를 마구 뿜어내며, 벽 끝에 엎드려서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흠….’

나는 그 무방비해 보이는 황금 사신 하나를 발끝으로 톡 건드려서 벽 밑으로 떨어트렸다.

‘앙대!’

황금 사신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끝없는 하얀색의 설원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히히.

하얀 눈 속으로 사라졌던 황금 사신은 순식간에 벽 위로 돌아와서, 내 정수리를 주먹으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내 정수리 위의 황금 사신은 엄청 차가운 콜드 사신이가 되어 있었다.

저기 온도가 엄청 낮은가 보네, 최소 도봉구 급인가?

나는 저 멀리 설원의 끝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

끝없는 설원 한복판, 날카로운 바위에 둘러싸인 도시 프로스트는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시끄러운 비상벨 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푸른 석탄을 캐던 노동자들은 도시 외곽으로 몰려들어 높은 벽을 쌓기 시작했다.

의장은 입에서 하얀 김을 뿜어내며 사람들을 진두지휘했다.

그의 목소리는 강풍에도 불구하고 또렷이 들렸다.

“서두르시오! 우리에겐 시간이 없소!”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산호빛 소녀는 의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안 무섭게 생겼네.’

소녀가 늘 보는 포스터에서는 엄청 무서운 사람처럼 보였었다.

게다가 의장의 이름으로 발표된 법들은 정말 가혹한 것들이 많았다.

그런 법들이 발효될 때마다.

‘의장은 예전엔 안 저랬는데….’

‘도시가 커지니 사람이 바뀌어버렸어.’

어른들이 저런 식으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자랐으니 그렇게 생각할 법했다.

꿈틀꿈틀.

그때 갑자기 소녀의 옷 안에서 무언가가 부스럭거리기 시작했다.

“앗, 움직이면 안 돼!”

산호빛 소녀는 간지러운 듯 웃으며, 자신의 상의 안쪽을 톡톡 두들겼다.

“어른들이 그랬어, 네가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절대로 안 된대.”

소매까지 기어간 붉은 사신이 불쑥 머리를 내밀었지만, 산호빛 소녀는 재빨리 붉은 사신의 머리를 꾹 눌러 다시 소매 속으로 밀어 넣었다.

붉은 사신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소매 속에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의장의 지휘 아래 공사가 마무리되자, 해산 지시가 내려왔다.

의장이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처럼 바쁘게 자리를 비우자, 선전부 사람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인원은 각자 주거지에서 대기! 강풍과 눈보라에 최대한 대비해, 이후 노동에 지장이 없도록 해라!”

쾅쾅.

그리고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몽둥이가 황동 파이프를 강하게 두들기자, 노동자들은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거리는 순식간에 텅 비었고, 오직 바람 소리만이 남았다.

‘….’

집으로 돌아온 산호빛 소녀는 작은 담요를 덮은 채, 붉은 사신을 빤히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다들 괜찮겠지?”

어린아이인 산호빛 소녀가 보기에도 지금 상황은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래서 소녀는 자신을 돌봐주는 어른들이 괜찮을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불꽃이 그 사람들을 지켜줄 거야.’

그러자 붉은 사신은 최대한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하며 소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붉은 사신은 내심 불안함을 숨길 수 없었다.

‘미니 사신 네트워크가 막혔어….’

‘엄마를 불렀어야 했나? 그래도 아무 일도 없이 부르면 엄청나게 혼날 텐데….’

‘그래도 ‘의장’이라는 사람은 착한 인간이었으니까, 괜찮겠지?’

쿵.

바람이 도시를 후려치는 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추위가 도시를 덮쳤다.

급조된 벽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오브젝트의 힘이 깃든 추위가 사람들을 물어뜯기 위해 도시 내부로 스며들고 있었다.

***

서울 송파구 외곽, 제임스 타워의 최상층에 자리 잡은 상황실은 조용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여전했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거대한 눈보라가 서울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방한용품의 분배 상황은 어떻습니까?”

제임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모두 서울 각지의 연구소와 정부 시설에 인계 완료했습니다.”

“타워 밀폐 작업도 곧 끝날 예정입니다.”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이자, 한 기상전문가가 덧붙였다.

“약 6시간 후에 눈보라가 서울 외곽에 도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애착 인간들의 심각한 분위기 때문인지 상황실 안에 있는 황금 사신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화난 부모님을 피하는 아이들처럼 얌전히 앉아 있었다.

‘인간, 힘내….’

‘힘내….’

그때, 한 기술자가 소리쳤다.

“드론이 목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제임스의 시선이 대형 스크린으로 향했다.

화면에는 아직 맑은 하늘 아래, 이상할 정도로 거대한 하얀 벽이 보였다.

그것은 무해한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어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서울을 한순간에 무력화시킬 재앙이었다.

지지직.

드론이 눈보라로 천천히 다가가자, 화면이 흔들리고 화질이 나빠지고 있었다.

제임스가 눈살을 찌푸리자, 드론 기술자가 입을 열었다.

“전자기 간섭이 감지됩니다.”

“눈보라에 신호를 교란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더 이상 다가가기엔 바람이 너무 강합니다.”

드론들은 화면이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근접해서 눈보라를 관측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허공에서 갑작스럽게 회색 사신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눈보라 쪽을 잠시 올려다보더니, 양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회색 사신의 몸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회색 사신의 몸이 검게 물들더니, 깨진 도자기처럼 붉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머리 위에는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헤일로가 얹어져 있었다.

헤일로의 빛이 점점 강렬해졌다.

그리고 한순간에, 아무런 전조도 없이 거대한 벽이 솟아올랐다.

“!”

제임스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벽이 있었다.

그것은 신기루나 정신 오염을 의심할 만큼 기괴한 느낌이었다.

그 벽은 구름만큼 높았고, 눈보라를 충분히 막아설 만큼 견고해 보였다.

제임스는 전율했다.

그가 지금까지 본 어떤 것과도 달랐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그야말로 신의 기적이었다.

화면을 바라보는 제임스의 눈에는 경이로움이 가득 차 있었다.

‘엄마다!’

‘엄마 강해!’

‘엄마 대단해!’

상황실의 인간들은 경악하고 있었지만, 황금 사신들은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엄마를 칭송하고 있었다.

***

지평선까지 이어질 정도로 드넓은 설원.

하늘을 뒤덮은 짙은 구름층이 태양을 완전히 가려, 새하얀 설원은 칙칙한 어둠 속에 잠겨있었다.

희미한 빛 속에서도 얼음 결정들은 어렴풋이 빛을 반사하며 설원을 은은하게 밝혔다.

그 한가운데 거대한 왕좌가 우뚝 솟아있었다.

얼음으로 조각된 그 왕좌 위에는 거대한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의 공기는 얼어붙은 듯했고, 왕좌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힘은 압도적이었다.

설원의 한기마저 무력화시키는 듯한 냉기가 그곳에서 퍼져나갔다.

마치 시간마저 얼어붙은 것 같은 설원에서, 왕좌 위의 존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침공을 시작하라!]

그 순간, 설원 전체가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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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눈이 흩날렸고 얼음이 깨져나가며, 거대한 형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얼음 속에서 깨어난 거인들은 차가운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들의 몸 위에는 녹지 않는 얼음이 뒤덮여 있었다.

철컥. 철컥.

거인들이 움직일 때마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냉기를 품은 채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더욱 으스스하고 위협적으로 보였다.

수천, 아니 수만의 거인들이 왕좌의 명령에 따라, 천천히 행진을 시작했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얼음 거인들의 행진이 계속될수록, 주변의 기온은 급격히 떨어졌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두꺼운 얼음층이 남았고, 모든 것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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