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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84

설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유일한 도시, 프로스트는 유례없는 폭풍에 휘말렸다.

산호빛 소녀가 집으로 삼은 폐기된 증기 기관실에도 냉기가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소녀는 얇은 담요를 두른 채, 붉은 사신을 품에 꼭 껴안고 있었다.

“물방울 소리가 안 들려….”

평소라면 황동 파이프 위를 때리는 ‘통. 통. 통.’ 소리가 들려왔겠지만, 오늘 밤은 그 소리마저 침묵에 잠겼다.

아마도 혹한에 얼어붙은 모양이었다.

대신 문밖에서 울부짖는 바람 소리가 소녀의 귓가를 채웠다.

‘….’

바람은 마치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는 것 같기도 했고, 날카로운 칼날을 휘두르는 것 같기도 했다.

산호빛 소녀는 붉은 사신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탕! 탕! 탕!

갑자기 들려오는 충돌음에 산호빛 소녀는 화들짝 놀랐다.

무언가가 문에 세차게 부딪히고 있었다.

처음에는 바람에 날린 돌멩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소리는 점점 더 강해졌다.

황동으로 만들어진 낡은 금속 문이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소녀는 숨을 죽이고 그 문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저 문 너머에 뭐가 있는 걸까? 오브젝트? 사람? 아니면 더 위험한 무언가?’

“도… 도대체 뭘까?”

겁을 먹은 산호빛 소녀가 생각하던 것을 무심코 흘리자, 붉은 사신은 안심하라는 것처럼 작게 웃으며 소녀의 볼을 토닥여 주었다.

그러고는 소녀의 품속에서 빠져나와 불꽃으로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다.

작은 불꽃놀이가 기관실 안을 가득 채웠다.

불꽃으로 만들어진 불타는 아귀가 울타리를 넘었고, 불꽃으로 만들어진 수십 마리의 붉은 사신들이 하늘 위에서 춤을 췄다.

“와….”

산호빛 소녀는 입을 작게 벌리고, 감탄을 흘렸다.

소녀가 느끼던 공포는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충돌음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녀는 불꽃놀이를 꾸벅꾸벅 졸면서 보다가 100마리째의 불타는 아귀가 울타리를 넘자, 곤히 잠들어버렸다.

소녀의 자는 얼굴을 확인한 붉은 사신이 작게 박수를 치자, 허공을 수놓던 수많은 불꽃이 허공에 녹듯이 사라져갔다.

‘잘자.’

붉은 사신은 곤히 잠든 애착 인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다.

하염없이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붉은 사신의 손아귀에서는 온갖 형상의 불꽃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애착 인간에게 보여줄 다음 불꽃놀이의 연습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산호빛 소녀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몸을 둥글게 만 채, 눈을 감고 잠든 붉은 사신의 모습.

소녀는 작게 웃으며, 붉은 사신을 천천히 들어 올려 주머니 속에 살며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이 소녀를 맞이했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해 평소보다 조금 어두워야 했지만, 사방이 눈으로 가득해서 그런지 조금 밝아 보였다.

깨끗하게 눈으로 덮인 도시는 적막에 잠긴 것처럼 고요했다.

밤중의 소란이 거짓말 같았다.

하아.

하얀 김을 입 밖으로 뿜어내며 어른들이 있는 공터로 내려오자, 평소보다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어른들이 보였다.

“좋은 아침이야.”

“네, 아저씨도 좋은 아침이에요.”

어른들이 웃으며 하는 인사에 소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변이 너무 조용해서 그런지, 목소리를 작게 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생각보다 눈보라가 심각하지 않은 건가?”

한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자, 나이 든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할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모두 고개를 돌리자, 증기탑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증기탑은 엄청난 양의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고, 마치 불에 달군 쇠처럼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심상치 않아. 저런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노인의 중얼거림이, 공터 속에서 불길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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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스트의 의장실은 무거운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가진 도시 의장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주름진 손가락이 종이 위를 천천히 훑으며 숫자들을 짚어갔다.

푸른 석탄의 재고와 소모량.

이 두 숫자 사이의 간극이 도시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다.

“이런….”

한숨과 함께 내뱉은 그 한마디에는 절망이 묻어났다.

아무리 계산해도 증기탑 과출력 상태를 오랜 시간 유지할 수 없었다.

푸른 석탄과 석유 같은 연료의 소모가 너무나 심각했다.

의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시 지도 위에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답은 하나뿐이야. 난방 구역을 최소화해야 해.’

‘온실과 광산의 일부, 그리고 주거 구역은 모두 폐쇄.’

‘증기탑 광장을 개방해서, 주거 구역 대신 사용해야겠군.’

최소한의 연료 소모로 도시를 유지 시키기 위한 영역 표시였다.

‘의원들은 보안을 핑계로 증기탑 광장의 개방을 반대하겠지.’

의장은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설득해야 할 텐데….’

도시의 중심에 우뚝 선 증기탑이 붉게 달아오른 채 끊임없이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의장의 머릿속에 이상한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의원들이 증기탑 출력 증가를 너무 쉽게 허가했어.’

‘비축된 푸른 석탄을 자기 주머니의 돈처럼 여기는 그들이… 조금 이상하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프로스트는 고개를 저었다.

‘뭐, 의원들도 사람이니까. 시민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었겠지.’

그때, 의장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평소 같으면 들려야 할 소음들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의장은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의원들의 수족 노릇을 하는 선전부 직원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불길한 예감을 안고 의장은 서둘러 증기탑 광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오직 선전부와 의원, 그리고 의장만이 출입할 수 있는 특권의 상징이자 도시에서 가장 따뜻한 장소였다.

평소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텅 비어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의장은 걸음을 재촉해 증기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한 순간, 최악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증기탑의 가장 중요한 부품, 기계 심장이 사라진 상태였다.

“안 돼!”

절규와 함께 의장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푸른 석탄과 석유가 열심히 타오르며 증기탑을 데우고 있었지만, 기계 심장 없이는 도시의 유지가 불가능했다.

“어떻게 도시의 의원이라는 자들이….”

의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

세희 연구소, 점심시간.

헬멧 연구원은 휴게실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샌드위치 하나와 버블티, 그리고 황금 사신용 초코 쿠키.

하지만 황금 사신은 쿠키는 입에 대지도 않고 버블티를 먹으려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힝.’

황금 사신은 시무룩한 얼굴로 빨대에서 얼굴을 떼고 주저앉았다.

‘빨대가 너무 커서 먹지 못하나 보네.’

황금 사신은 굉장히 부러워하는 표정을 지은 채, 옆자리에 앉아있는 검은 사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헬멧 연구원이 황금 사신의 시선을 따라가자, 검은 사신이 버블티를 냠냠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빨대에 고개를 들이밀고는 얼굴만 쭈우욱 길게 늘어나더니 타피오카 펄을 날카로운 이빨로 야금야금 뜯어먹었다.

저걸 버블티를 먹는다고 봐야 하는 건가?

검은 사신을 애착 사신으로 가진 직원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었지만, 그 모습은 조금 징그러워 보였다.

뀨히히.

어느새 나타난 하얀 아귀도 검은 사신과 비슷한 방식으로 타피오카 펄을 냠냠 먹고 있었다.

‘힝.’

정말 슬픈 표정의 황금 사신.

헬멧 연구원은 그걸 보고는 황금 사신을 위한 버블티를 만들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빨대랑 펄의 크기를 줄이면 되겠지?’

***

세희 연구소 안뜰.

나는 장벽 너머의 설원을 조금 구경하다가, 황금 사신들을 남겨두고 돌아왔다.

뭔가 일이 생기면 황금 사신들이 알려주겠지.

그리고 적당한 크기의 하얀 아귀를 침대처럼 만들어서 그 위에 누웠다.

그렇게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누워있었더니, 황금 사신 하나가 찾아와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엄마 대단해!’

장벽 근처에 있던 황금 사신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본 거지?

장작이 부족해서 그런지, 조금 귀찮아져서 댖지로 만든 뒤 내 배 위에 올려두었다.

‘앙대!’

황금 사신의 비명을 들으며 눈을 감고 쉬고 있었더니, 슬금슬금 다른 미니 사신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요즘 자주 어울리는 유령 사신과 탈색 사신.

안아보지 못한 미니 사신을 찾아 정원을 배회하는 허그 사신.

하얀 아귀의 뱃살을 파먹는 검은 사신.

내 배 위에 올려진 댖지가 된 황금 사신 때문인지, 다른 황금 사신들은 멀찍이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편하네.

다음부터 침대에서 쉴 때는 배 위에 댖지 하나 올려둬야겠다.

TV에서는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요즘 인기를 끄는 버블티였다.

찰칵.

그렇게 TV를 보는 도중 사진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려보자, 예린이가 핸드폰을 들고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세희 연구소의 일상이었다.

***

눈보라가 휩쓸고 지나간 북부지방.

완전히 얼어붙은 침엽수림 위로 묵직한 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묵직한 걸음 소리와 함께, 침엽수림 너머로 얼음 왕좌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얼음 왕좌 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개구리가 앉아있었다.

개구리의 머리 위에는 서늘한 냉기가 흐르는 왕관이 얹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초전도체가 떠올라 있었다.

쿵. 쿵. 쿵.

기계 거인들이 거대 개구리의 왕좌를 짊어지고 행진했다.

금속 거인의 몸체는 튼튼한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들의 눈동자는 명령에 따라 무기질적으로 빛났다.

개구리 왕은 그의 거대한 손가락으로 저 멀리 가리키며 염파를 보냈다.

[전진하라! 복수의 시간이 도래했도다.]

기계 거인들은 일제히 움직였다.

발걸음마다 땅이 흔들렸고,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나갔다.

왕좌에서 바라보는 시선 끝에는 지평선을 전부 먹어 치운 거대한 장벽이 보이고 있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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