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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89

형형색색의 색채 우주 아래에 펼쳐진, 끝이 보이지 않는 설원.

손바닥만 한 조그마한 전사들과 하늘에 닿을 것처럼 커다란 거인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미니 사신들과 기계 거인들의 전쟁이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공기마저 얼릴듯한 한기가 몰아치는 거인과 손톱만 한 장작을 품은 미니 사신들.

아무리 봐도 미니 사신들에게 승산은 없어 보였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전투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냉기를 몰고 다니는 거인들의 영역이 줄어들고, 반대로 미니 사신의 영역은 늘어나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구름 고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미니 사신들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붉은 태양 사신은 그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늘이 변하고 있어.’

구름 고기들의 행렬 위로 보이던 부자연스러운 구름과 그 너머의 색채 우주가 사라지고 있었다.

기계 거인들이 뒤로 물러서는 만큼 설원과 구름, 그리고 색채 우주가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붉은 태양 사신이 있는 곳에서 냉기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미니 사신 네트워크가 연결되었다.

‘이겼어!’

‘승리!’

‘빨리 가야 해!’

그러자 승리를 외치는 미니 사신들의 의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미니 사신들의 의지를 천천히 들어보니, 미니 사신들은 세계 곳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승리한 것으로 보였다.

가장 먼저 쳐들어온 것은 도시 프로스트와 한국이었지만, 기계 거인들의 침공은 전 세계적인 규모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 기계 거인들에 맞서, 미니 사신들은 마치 장마전선처럼 세계를 아우르는 전선을 만들어 냈다.

‘….’

휴식을 취하며 장작을 회복하던 붉은 태양 사신은 다시 한번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미니 사신 네트워크가 연결되지 않는 색채 우주의 설원 속으로.

***

‘혁명!!!’

현실에 풍압을 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의지가 울려 퍼졌다.

하늘을 덮은 구름을 순간 밀어낼 정도로 엄청난 압력이었다.

설원과 색채 우주가 보이는 장벽 위에서, 나는 하얀 아귀에 앉아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옴뇸뇸.

손에는 팝콘 한 봉지를 들고,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으로.

거대한 붉은 사신과 황제 개구리의 대결은 처음부터 일방적이었다.

쾅! 쾅!

붉은 사신의 강렬한 불길이 황제 개구리를 압도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나는 해맑은 붉은 사신의 전투를 구경하면서 위화감을 느꼈다.

‘황제 개구리가 약해진 것 같아’

그래서 전투에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살펴보자, 특이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색채 우주 너머에서 다가오던 외신의 기척과 영향력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내 감각에 들어온 것은 색채 우주와 설원 사이의 미묘한 연결고리였다.

두 공간은 어떤 규칙으로 얽혀 있었지만, 그 연결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황제 개구리가 만들어 낸 설원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걸까?

미니 사신들이 설원으로 빙수라도 만들어 먹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

히히.

콰아앙!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황제 개구리의 힘과 설원의 영향력이 급격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생명력을 빼앗기는 것처럼, 동작이 둔해지고 기세가 꺾였다.

반면 붉은 사신은 융합에 익숙해지는 건지, 점점 압도적인 힘으로 개구리를 몰아붙였다.

거대 붉은 사신은 낫을 휘둘러 황제 개구리를 내리쳤다.

날카로운 낫이 개구리의 살을 파고들어 개구리를 제자리에 고정했다.

입을 크게 벌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개구리를 앞에 두고, 붉은 사신은 천천히 입을 벌렸다.

‘혁명!’

해맑은 의지와 함께, 입에서 엄청난 양의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하얀 아귀에 불을 붙일 때처럼.

황제 개구리도 입에서 냉기를 뿜어내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왕관은 마치 토치에 태워지는 얼음처럼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왕관을 녹이는 혁명의 불길, 붉은 혁명이었다.

***

끝이 보이지 않는 기계 거인들의 대군 앞, 붉은 태양 사신의 몸에서 나오는 빛이 설원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붉은 태양 사신은 냉기를 몰고 다니는 기계 거인들을 녹여버리면서 생각했다.

미니 사신과 기계 거인의 일진일퇴하는 전투 때문인지, 설원은 이제 군데군데 녹아 검은 땅을 드러내고 있었다.

설원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바람개비와의 거리가 멀어져서 그런지, 미니 사신의 진군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기계 거인들의 재생 속도와 미니 사신들의 참전 속도가 비슷해져서 그런 것으로 보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을 뒤덮고 있던 구름이 터져나가듯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얇게 깔린 밀가루를 입으로 불어서 날려버리는 것처럼.

그와 동시에 설원에 깔려있던 냉기도 함께 증발해 버렸다.

‘!’

기계 거인들이 검은 재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검은 재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어딘가 마음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끝난 건가?’

구름과 색채 우주가 사라지자, 태양이 고개를 내밀어 따사로운 햇살을 내리쬐기 시작했다.

햇살은 바람에 흩날려 사라지는 검은 잿가루 위에도 내려앉았다.

밝은 태양 아래, 지평선을 가득 메운 거인들이 사라지고 흩어지는 장면은 나름대로 볼만한 장관이었다.

미니 사신들은 그저 기계 거인들과 끝없이 싸웠을 뿐이니까, 아마 엄마가 뭔가를 한 거겠지.

엄마는 언제나 장난치고 믿음직스럽지 못했지만, 위기의 순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모든 것을 해결하곤 했다.

그때, 붉은 태양 사신의 의식 속으로 수많은 의지가 밀려들었다.

‘이겼어!’

‘여기 다친 인간!’

‘배고파….’

‘엄마 아직도 없어?’

‘못 들어?’

설원에 의해 차단되었던 미니 사신 네트워크가 마침내 복구된 것이다.

언제나 행복한 의지와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기계 심장!’

‘엄마가 찾는대!’

그런 시끄러운 의지 속에서, 엄마가 자신을 찾는다는 의지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자 붉은 태양 사신은 팔랑팔랑 돌아가는 바람개비와 셸터쪽을 바라본 뒤, 자신을 부르는 미니 사신을 향해 이동했다.

***

설원을 불러들이고, 기계 거인들을 지휘하던 거대 황제 개구리.

그 황제 개구리의 왕관이 투명한 액체로 변해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똑. 똑. 똑.

황제 개구리의 머리에 떨어지는 투명한 물방울들은 마치 모래시계처럼 천천히 흘러내렸다.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하늘을 뒤덮고 있던 짙은 구름이 마치 연기처럼 사라졌다.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동안 하늘을 대신했던 신비로운 색채의 우주가 서서히 녹아 사라졌다.

색채 우주에 도사리고 있던 ‘만화경 개구리’ 외신의 기척도 서서히 멀어져갔다.

그와 동시에 태양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따스한 빛이 대지를 어루만지며, 기계 거인들도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거인을 지탱하던 철골은 마치 모래성처럼 부서져 잿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어졌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의 중심이었던 황제 개구리의 거대한 몸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황제 개구리는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열고 뻐끔거렸지만, 황제 개구리의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황제 개구리는 순식간에 무수히 많은 푸른 옥구슬로 변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며, 대지 위에 작은 언덕을 이루었다.

따스한 태양 아래, 옥구슬 더미가 반짝이는 모습은 마치 설원의 끝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거대한 붉은 사신이 나를 향해 돌아보며, 해맑게 웃었다.

그 모습은 마치 ‘엄마, 나 잘했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여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거대 붉은 사신도 그 쓰임을 다하자, 황제 개구리가 옥구슬로 분해된 것처럼 수많은 붉은 사신으로 분해되어서 떨어져 내렸다.

‘앙대!’

첫째 붉은 사신은 나라를 잃어버린 표정으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나머지 클론 붉은 사신들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붉은 사신을 위로해 주려고 전전긍긍했다.

‘다들 융합이 풀리면 무지 슬퍼하네, 그렇게 재밌나?’

나중에 나도 다른 미니 사신들이랑 융합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시끄러운 의지가 마구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겼어!’

‘배고파….’

‘엄마 아직도 없어?’

시끄럽네.

언제나처럼 미니 사신 네트워크를 차단하려는 순간, 무시 못 할 의지가 들려왔다.

‘엄마 댖지!’

못 듣는 것 같다고 엄마를 음해한 황금 사신을 내 손아귀 안에 소환했다.

‘!!!’

‘엄마가 들었어!’

그러자 황금 사신은 정말 귀신을 본 것처럼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앙대!’

나는 황금 사신을 십자가에 매단 뒤, 댖지로 만들어버렸다.

뚜방뚜방.

그때 또 다른 황금 사신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엄마! 찾았어!’

그리고 눈에 띄게 활활 타오르는 붉은 사신을 나를 향해 내밀었다.

‘기계 심장!’

그리고 ‘잘했지?’라고 말하는 표정으로 히히 웃었다.

나는 그 아이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의지를 보냈다.

‘너무 늦었어.’

그렇게 하얀 아귀 의자 위, 댖지가 매달린 십자가 세 개가 장식되었다.

‘앙대!!!’

‘앗…!’

***

시끄러운 미니 사신 네트워크를 닫고 댖지들의 뱃살을 콕콕 찌르면서 놀고 있었더니, 의지가 들려왔다.

‘엄마, 큰일이야!’

또, 무슨 일이라도 터진 건가?

게다가 의지를 보내온 미니 사신의 위치는 미니 사신 정원이었다.

설마 세희 연구소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서, 나는 서둘러서 세희 연구소로 순간 이동했다.

‘앗, 엄마다!’

‘엄마!’

‘바쁜 일 다 끝났어?’

안뜰에서 뒹굴뒹굴하며, 나를 반겨주는 수많은 미니 사신.

내가 도착한 세희 연구소 안뜰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흠.’

아무래도 큰일이 아닌데도 엄마를 부르는 괘씸한 신참 황금 사신이 나타난 것 같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미니 사신이 호출한 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그곳은 미니 사신 정원 안에 위치한 우유 빙수 설원이었다.

‘엄마!’

시선을 돌려보자, 고개만 빼꼼 내민 황금 사신이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엄청 맛있는 간식이 나타났어!’

황금 사신은 엄마랑 같이 먹고 싶다며, 기대에 찬 얼굴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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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싸우던 황제 개구리가 간식이 됐나 보네.

숟가락을 들고 한입 먹자, 정말 시원하고 맛있는 빙수의 맛이 느껴졌다.

게다가 한입 씹을 때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퍼져 나와서 재밌기도 했다.

‘맛있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황금 사신은 행복한 것처럼 히히 웃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황금 사신을 댖지로 만들어버렸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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