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9
나는 여전히 루시가 저 목걸이를 간절히 바란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내게 주어진 루시의 기억은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 끝이 나 버렸으니까.
하지만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그 때의 루시를 움직인 원동력은 미라가 죽기 전 남기고 간 여러 추억 일 테니 미라가 착용하던 목걸이와 한없이 비슷한 저 물건을 루시가 왜 바랐는지 유추하기란 어렵지 않다.
분명 그 때의 루시는 저 목걸이에서 어머니의 환영을 보았겠지.
이를 알고 있었기에 난 저 목걸이를 미라에게 선물했다. 루시가 지녔던 그리움과 슬픔의 감정을 전하기 위해 저 목걸이를 꺼냈다.
무언가 이상하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장신구의 외형이라는 건 그 시대의 유행을 따르기 마련이니까.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엔 세상에 똑같은 장신구가 너무도 많잖아.
그치만 이제는 아냐. 이 목걸이에 허접 주신의 신성이 깃든 순간부터 허접 주신이 이 순간을 안배해 뒀다는 게 명확해졌으니까.
허접 주신. 넌 아주 예전부터 루시를 보고 있었구나. 루시가 슬퍼하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야. 루시가 축복이라는 이름의 저주에 고통 받으며 무너져 내려가는 걸 가만 지켜보고만 있었던 거야.
예전의 루시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분명 원망을 쏟아냈으리라.
무능한 주신을 향해 자신의 울분을 토해냈겠지.
지금의 나라고 해서 별 다르진 않다.
난 여전히 허접 주신의 무능함을 혐오하고 장난을 치며 유쾌한 체 하는 그를 한심하게 바라본다.
성인이 되지도 못한 여자아이에게 과중한 짐을 건네는 녀석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건 아니다.
나는 그의 의도가 선함을 안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슬픔에 그가 똑같이 슬퍼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자신의 무능에 마음 아파하고 있음을 안다.
페이비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전했던 것을 알기에 그가 무능할 뿐 악하지 않음을 안다.
그렇기에 개인적인 감정과는 별개로 그를 저주하진 않는다. 내 마음 안에 남아 있을 루시가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허접 주신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저 목걸이에 담긴 건 자기 나름의 사죄겠지.
그리 생각한 나는 웃음을 지으면서 감정을 통해 목걸이를 살폈다.
[기적이 담긴 목걸이]
[주신의 기적이 담겨 있는 목걸이입니다. 안에 깃든 신성이 부족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미라에게 속으로 사과하며 목걸이를 다시 집어 들었다.
무능하기 그지없는 허접 주신은 자기가 안배한 것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했지만 문제는 없다.
지금 이 곳에 주신의 사도가 있으니까.
내가 바라서 모시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주신의 대리자로써 그가 못 다한 일은 끝마쳐야 하지 않겠는가.
심호흡을 한 나는 주신의 신성을 끌어올려 목걸이에 불어 넣었다.
그리고 나서 깨달았다. 기적이 기적이라 불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음을.
젠장. 더럽게 복잡하네. 단순히 신성을 불어넣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면 어쩌자는 거야?
…괜찮아. 침착하자. 이미 한 번 기적을 일으켜 본 적 있는 너잖아. 메네스테일에서 네가 했던 일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냐.
<루시, 네가 정말 그를 할 수 있겠느냐?>
‘…네?’
<과거 짐승같던 기사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네가 이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아니. 왜 갑자기 시비를 걸고 그래요?! 제가 지금 농담할 기분처럼 보여요?!’
이 인간 갑자기 왜 이래?! 장난을 자주 치긴 하지만 아예 분위기를 못 읽는 사람은 아니었잖아! 노망난 거야? 노망 든 거야!?
<그에 대해 전문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네 옆에 있다만?>
할배의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들은 나는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냥 도와준다고 하시면 안 돼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구나. 난 도와달란 부탁을 들은 적이 없다만?>
할배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루시의 슬픔에서 시작된 울적함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할아버지. 얼마 전에 저한테 솔직하지 않다 그러셨지만 그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인 것 같네요.’
<크흠.>
‘알겠어요. 할아버지. 도와주세요. 제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세요.’
<네가 그리 부탁한다면 어쩔 수 없지. 자. 우선 신성영역을 펼치거라. 신성의 운용을 쉽게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리고 그 다음은…>
할배는 내가 부탁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해야 할 일을 알려줬다. 나는 그를 따라서 차츰차츰 목걸이에 담긴 기적 속에 신성을 흘려 넣었다.
그 과정이 너무도 복잡해서 나는 수도 없이 실패를 이어나갔지만 할배는 날 질책하지 않았다. 그저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 알려줄 뿐.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내가 할배의 설명을 들으며 신성을 다루는 데에 능숙해져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설명 하나를 수행하기 위해 수도 없이 실패를 해야 했지만 점차 실패의 횟수가 줄더니 아예 실패하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경우까지 생겨났지.
아 물론 어디까지나 실수가 줄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난 여전히 많은 걸 이해하지 못했고 계속해서 실패하기를 거듭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거듭하던 난 결국 목걸이에 깃든 기적을 완벽히 재현해냈다.
‘할아버지! 성공했어요! 제가 드디어 해냈다고요!’
<하하. 기쁜 건 알겠다만 잠시 침착하거라.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봐야하지 않겠느냐.>
‘그럼 일단 도와줘서 감사하단 이야기만 전할게요! 정말 고마워요! 할아버지!’
제일 중요한 말을 전한 나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주신이 안배해 둔 기적을 살폈다.
허접 주신이 루시에게 무얼 전하려 했을까. 고통 받던 아이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그는 무엇을 남겨 두었을까.
– 루시.
머릿속에 맴돌던 무수히 많은 생각은 귓가에 스며든 한 마디 말에 무너져 내렸다.
– 사랑하는 우리 딸.
잠시 멈췄던 눈물이 다시금 쏟아져 나와서 도저히 생각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널 혼자 내버려둬서 미안하구나.
이성을 부여잡는 것조차 버거웠지만 난 입 밖으로 새 나오는 모든 소리를 억눌렀다.
그래야 내 마음 속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을 루시가 이 목소리를 선명히 들을 수 있을 테니까.
– 이제와 이런 말을 하기에는 염치가 없다만 그래도 이것만큼은 알아주렴. 이 어미는 네가 있어서 행복했단다. 너와 함께한 순간 하나하나가 너무도 아름다운 추억이었단다.
루시가 전하고자 하는 목소리를 선명히 들을 수 있을 테니까.
– 그러니 루시. 이 못난 어미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어미는 이미 네게 너무나도 큰 행복을 돌려받았으니.
“…마마.”
– 도저히 미안함을 떨칠 수 없다면 이 못난 어미의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렴.
“…네. 마마.”
– 부디 행복해야 한다. 친구도 많이 사귀고. 재밌는 것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눈물 사이로 주신의 신성이 흐려지는 게 보였다. 기적이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안 돼. 안 돼!”
– 길고 긴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났을 때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아직이야. 아직이라고 멍청한 허접 주신!”
그를 본 나는 다급히 목걸이에 신성을 흘려 넣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목걸이가 내 신성을 거부하고 있었다.
– 사랑한단다. 루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겨우 이 정도로 헉헉대는 거야!?”
–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제발! 제발! 제발…”
주신의 신성이 사그라 들며 묘실이 본래의 차가움을 되찾았다.
나는 그 한 가운데에서 목걸이를 부여잡은 채 필사적으로 신성을 끌어 올렸다.
어떻게든 다시 기적을 펼치고자 노력했다.
<루시.>
‘할아버지! 빨리 도와주세요! 아직 들어야 하는 게 많이 남았을 거에요! 해야만 하는 말이 많이 남았을 거라고요!’
<그 목걸이는 지금 기적을 잃어버렸다. 네가 아무리 그런다 한들.>
“개소리 말고 도와 달라고! 당장! 나는 지금!…”
소리를 내지르던 중 정신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아냐.
안 돼.
아직 쓰러질 수 없어.
쓰러져선 안 돼.
나는.
난 반드시…
*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내 방의 침대 위에 뉘여 있었다.
익숙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손이 허전한 것을 느끼고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가 현기증이 차올라서 앞으로 고꾸라져버렸다.
<좀 진정 하거라. 지금 네 몸은.>
‘목걸이! 목걸이는요?! 목걸이는!’
<…네 목에 걸려있지 않으냐.>
억지로 팔을 움직여 가슴팍을 더듬던 나는 목걸이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넌 신성을 바닥까지 끌어 쓰는 바람에 탈진한 상태다. 아무리 루시 너라도 며칠은 안정을 취해야 할 게다.>
아. 어쩐지 몸에 힘이 잘 안들어 가더라.
메네스테일에서 일을 끝마쳤을 때랑 비슷한 상태인 건가.
언제까지고 고꾸라져 있을 순 없어서 억지로 몸을 일으킨 나는 자연스레 뒤로 넘어가서 배게에 머리를 뉘었다.
‘…저. 할아버지. 죄송해요. 그게.’
<사과해야 할 쪽은 오히려 나다. 천천히 진정시켰어야 했는데 너무 다급했었어.>
할배의 진심 어린 사과에 말문이 막혔다. 평소 같았으면 장난스레 할배 잘못이 맞다며 뭐라 그랬을 텐데 묘실 안에서의 일이 떠올라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루시.>
‘…넷?!’
<그 목걸이에 담긴 기적 말이다.>
‘아. 이거요.’
묘실 안에 있을 때는 감정에 휩쓸려서 할배의 말을 외면했지만 어느 정도 침착해진 지금은 그의 말이 옳았음을 알았다.
그 때의 기적은 허접 주신의 힘을 빌려서 만들어낸 무언가 였을 뿐이니. 그의 힘이 흩어져버린 지금 이 목걸이는 그저 평범한 목걸이에 불과했다.
‘괜찮아요. 할아버지.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기적의 구성 자체는 기억해뒀다. 앞으로 꾸준히 분석을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그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테지.>
‘…네?’
<재현할 수 있을 거란 이야기다. 루시. 네가 내 일화를 재현했던 것처럼 말이야.>
‘그런 게 가능해요?’
<본인은 전설적인 성기사인 루엘이다. 수도 없이 기적을 일으켜 온 내게 이 정도는 별 것도 아니지.>
할배. 아니. 루엘 할아버지는 믿음직스런 목소리로 장담하듯 이야기했다.
<기적은 재현될 수 있다. 루시.>
‘…’
<그러니 너는 그 때까지 실력을 키우거라. 기적을 네 손으로 일으킬 수 있도록.>
‘…네. 할아버지.’
목걸이를 꾹 붙잡고 있던 나는 남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직도 나올 눈물이 남아 있었느냐.>
‘…그러게요. 저도 신기할 지경이에요.’
<허. 이러다 또 탈진하는 건 아닐지 원.>
‘그보다 할아버지.’
<뭐냐.>
‘자기 입으로 전설적인 성기사라 그러면 안 쪽팔려요?’
<…오늘 너무 말을 많이 해서 그런가 피곤하구나. 잠시 쉬어야겠다.>
자기가 말해놓고 부끄러워하시기는.
피식 웃음을 흘리다 사래가 들려버린 난 한참 동안 기침을 하다 다시금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앞엔 지긋지긋한 푸른 색 창이 떠 있었다.
다만 평상시와 다른 것은.
[숨겨진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 곳에 보상이란 단어가 적혀 있었다는 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