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39

실리아 온라인의 채널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아무리 자유도를 중시하는 실리아 온라인이라고 해도, 플레이어들이 너무 많이 몰리면 게임을 즐길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는 경우 채널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쾌적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세계를 방으로 본다면, 완전히 똑같은 방을 하나 더 만들어서 분리한 셈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채널은 평소엔 다른 채널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이쪽 채널에서 몬스터를 잡았다고 해서 저쪽 채널에 있는 몬스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특별한 일… 개변 이벤트가 발생할 경우 상호 불침의 규칙이 깨지고, 다른 채널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예를 들어 저니가 지금 있는 블럼 마을이 오우거에 의해 파괴되면, 그 결과가 다른 채널, 더 나아가 세계에 반영되는 것이다.

즉, 한 채널에서 일어난 일이 정식 역사가 되는 것이고, 그렇기에 개변(改變)이었다.

개변 이벤트의 정확한 발생 조건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플레이어들은 NPC에 연관되는 게 조건이 아닐까 추측했다.

확인해 본 결과 플레이어들이 겪은 개변 이벤트는 직간접적으로 NPC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NPC가 엮였다고 해서 무조건 이벤트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추측으로 남았다.

게임 인생 중 한 번 보기도 힘들 정도로 희귀한 이벤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흔한 이벤트도 아니라서 저니도 개변 이벤트의 존재를 알기만 했지 직접 겪은 적은 없었다.

문제는, 개변 이벤트가 발생하면 발생할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만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저니가 있는 채널에 참가를 시도했지만 막힌 시청자들이었다.

“마을의 존망이 걸려 있는 문제니까 작은 일이 아니긴 한데, 왜 하필 지금….”

절망하던 것도 잠시, 저니는 침착하게 마을의 전력을 헤아렸다.

마을을 지키는 스무 명가량의 경비병, 상단이 고용한 여덟 명의 용병, 그녀를 포함한 열한 명의 플레이어.

무기를 쥘 수 있는 사람을 따지면 더 많겠지만, 전력으로 따지면 대충 그 정도의 수였다.

사실, 저니가 관대하게 생각해서 그 정도였지 실제 전력은 그보다 아래라고 봐도 무방했다.

작은 마을의 경비병들이 오우거와의 싸움에서 도움이 될 리 없으니까.

‘그리고 용병들도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

자잘한 상처를 입히거나 시선을 끌 순 있어도, 깊은 상처를 입히거나 결정적인 일격은 넣지 못할 것이다.

결국 믿을 건 그녀와 같은 플레이어들뿐이다.

빠르게 상황을 분석한 저니가 플레이어들에게 물었다.

“레벨들이 어떻게 되세요? 아, 그리고 직업도 알려주세요.”

“마법사예요. 레벨은 45고요.”

“레, 레벨 35! 사제입니다!”

“40레벨 결계술사입니다.”

“저는….”

저니의 요청에 따라 자기소개를 시작한 플레이어들.

묵묵히 그들의 말을 듣던 그녀의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부족해.’

애써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저니가 보기엔 이 정도 전력으론 오우거 무리를 상대하긴 힘들어 보였다.

서너 마리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수라면 무찌르기는커녕 버틸 수도 없을 것이다.

-흠…

-좀 빡세 보이는데

-레벨들이 너무 낮다ㅠㅠ

-힐러도 너무 많음

-아니 쪼렙이 어떻게 돕겠다고 저길 갔냐. 자리만 차지하고 개 민폐네;

“나쁜 말 하면, 알지?”

그녀가 기대했던 것보다 전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녀를 돕겠다고 선뜻 달려와 준 사람들한테 불만을 표하는 건 스트리머이기 이전에 예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해선 안될 짓이었다.

그렇기에 저니는 불온한 낌새를 보이는 몇 명의 시청자를 숙청했다.

숙청을 마친 그녀가 다시 플레이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전략을 세워볼까요? 혹시 좋은 생각 있으신 분?”

“….”

“….”

“음….”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저니는 어쩐지 이 어색한 기류가 굉장히 익숙하게 느껴졌다.

-숨이 턱

-어우 내가 다 숨이 막히네;

-조별 과제인가요?

“…그거다!”

그래, 대학 때 많이 느꼈지.

하지만 익숙함의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플레이어들을 지켜보던 NPC들도 상황이 좋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점차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하다못해 몇 마리가 오는 건지라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오우거를 최초로 발견한 사냥꾼에게 물어봤지만 사냥꾼도 정확한 수는 모른다고 말했다.

오우거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허겁지겁 도망치는 바람에 몇 마리인지 확인할 정신은 없었다고.

“저… 저니 님?”

“네?”

“그냥 카나 님한테 부탁하면 안 되나요?”

사제가 손을 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희는 몰라도 저니 님 말이면 들어줄 것 같은데….”

“….”

저니는 망설였다.

과연 카나가 부탁을 들어줄까?

무엇보다….

‘…카나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싶진 않았는데.’

하지만 고집을 부리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걸려 있다.

소신과 현실. 저니가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때였다.

밖으로 정찰을 나갔던 청년이 큰 소리로 외치며 마을에 들어왔다.

“오, 오고 있어요…!”

“…!”

“몇 마리, 몇 마리야?”

“이쪽으로 오고 있나? 지금 어디쯤 왔지?”

“열 마리고… 아깐 멀리 있었지만 지금은 꽃밭 근처까지 왔을 거예요!”

“여, 열 마리?!”

상상 이상으로 많은 수에, 듣고 있던 사람들 모두 충격에 빠졌다.

저니도 그중 하나였다.

서너 마리만 되어도 상대하기 힘들 텐데, 열 마리라니.

“…이건 무리야.”

저니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지, 지금이라도 도망갑시다!”

“아직 안 늦었어! 빨리 짐 실어!”

“저니 님!”

“….”

저니의 마음속 저울이 현실을 향해 크게 기울었다.

무력감과 비참함에 젖은 채로 저니가 고개를 숙였다.

“카나… 네 힘이 필요해. 도와주면 안 될까?”


“….”


“…?”

카나는 아무 말도 없었다.

마지못해 수락하지도, 단칼에 거절하지도 않은 채로.

“…카나?”

완벽한 무반응에 의아함을 느낀 저니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작은 새의 눈은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마을 밖, 그리고 그보다 멀리.

카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눈으로 좇은 저니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산?”

* * *

저니가 뭐라고 떠든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상하다 싶었지.’

오크 무리가 등장했을 때부터 조짐은 있었다.

수가 너무 불어난 나머지 새로운 영역을 찾아 나섰다고 하기엔 놈들의 상태가 너무 양호했거든.

지금 생각하면 녀석들의 목적은 피난이었던 것 같다.

맞설 수 없는 강대한 적을 피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

그리고, 지금 이 마을을 향해 오고 있는 오우거들도 마찬가지겠지.

“….”

산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미리 피난을 떠나던 걸 보면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걸까.

차원수의 등장을 감지할 수 있다니. 이래선 누가 카나리아인지 모르겠네.

“카나?”

저니가 다시 한번 내 이름을 불렀다.

뭐라고 했더라….

맞아, 도와달라고 했었지.

“비켜.”

아마 쳐들어오는 오우거들을 죽여달란 얘기겠지.

오우거는 따위로 취급할 수 있는 것이 뒤에 있다는 것도 모르고.

이대로 산에 얌전히 처박혀 있으면 상관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산에 등장한 차원수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내가 놈을 감지한 것처럼 놈도 나를 감지한 걸지도 모르겠네.

나를 향해 다가오는 걸 보면 말이야.

그렇게 죽고 싶으면 어쩔 수 없지.

“죽여줄게.”

“어, 어? 응! 고마워!”

나는 허리를 꾸벅 숙이는 저니를 떨떠름하게 보았다.

…너한테 한 말이 아닌데.

딱히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는 없겠지.

‘그럴 시간도 없고.’

스릉.

검을 뽑아 들었다.

“…뭐야? 설마 싸우려고 하는 거야?”


“안 말리고 뭐 해요?! 빨리 말려요!”


“저런 어린애한테까지 싸워달라고 하다니….”

시끄럽네.

주변에서 뭐라고 떠드는데,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하는 거 신경 쓰지 않았다.

“아.”

그렇지.

나는 달려 나가기 위해 다리에 힘을 모으던 것을 잠시 멈춘 다음 케이프를 벗었다.

“이거, 맡아 줘.”

괜히 저번처럼 찢어지는 걸 보고 싶진 않으니까.

게다가 이번 전투는 조금 거칠 거 같거든.

저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녀에게 케이프를 떠넘긴 나는 발을 굴렀다.

파앗-!

주변 사물이 길게 늘어진다.

사람, 건물, 목책, 들판, 길.

오우거.

“일단 하나.”

달리는 게 아니라 쏘아졌다는 말이 어울리는 속도를 그대로 살린 채 가볍게 뛰어오르며 검을 휘둘렀다.

검은 조금의 저항감도 없이 오우거의 목을 통과했다.

그다음은 동물의 고기로 보이는 걸 뜯고 있던 놈이었는데, 많이 배고파 보여서 목구멍에 검을 쑤셔 넣어 주었다.

역시 저항은 없었고, 저항감도 없었다.

마스터씩이나 돼서 고작 오우거도 쉽게 못 잡으면 체면이 안 살지.

애초에 그랬다면 내 몸뚱이는 어딘가의 전쟁터에서 뒹굴고 있었을걸.

아니면 제국에 잡혀서 돈 많은 귀족 밑에서 아양 떨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우웩. 상상하니까 기분 나빠졌어.

“…너희 때문이야.”

기분 나쁜 상상을 하게 만들다니.

그 죄, 백번 죽어 마땅하다.

마나를 옅게 두른 검으로 오우거의 목을 베어 떨어트렸다.

처음 두 놈을 포함해서 총 네 마리를 죽였을 때, 길게 늘어졌던 주변이 마침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푸슛.

쿠우웅!

목을 잃은 오우거들이 뒤늦게 쓰러지며 땅을 울렸다.

잘린 단면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크왁?!”

“응. 크왁.”

내가 알기로 오우거들은 동료의식이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동료가 죽는 걸 눈으로 보면 복수를 할 정도는 되지만, 동료가 당하는 걸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놈들은 갑자기 쓰러진 동료를 보며 그저 당황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멀쩡하던 동료가 갑자기 죽었으니 그럴 만하지.

오우거의 물음에 친절하게 답해주며 남은 놈들을 사냥했다.

한칼에 한 마리씩,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게.

열 마리의 오우거가 모두 쓰러지기까진 수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맞서 싸워도 상대가 안 될 텐데, 기습으로 동료들을 잃은 게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놈들은 무기를 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 놈들을 잡아 죽이는 거야 뭐, 누워서 떡 먹기지.

가볍게 피를 털어낸 나는 몸을 빙글 돌렸다.

자아, 그러면….

“안녕. 나 보러 온 거야?”

만나서 반가워.

나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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