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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92

기계 거인들의 습격이 있었던 러시아의 한 도시.

한 남자가 창문가에 앉아서 창문 너머 박살 난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때 활기 넘치던 거리는 이제 기계 거인들의 습격으로 인해 반쯤 무너진 잔해의 풍경으로 변해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마치 전쟁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가 도로 위에 흩어져 있었고, 깨진 유리 조각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햇빛에 반짝였다.

한때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북적이던 보도는 이제 깊게 패인 구덩이들로 가득했다.

뒤집힌 자동차들이 길가에 무질서하게 놓여 있었고, 몇몇은 완전히 으스러져 원래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철저히 망가진 풍경 속에서 도시는 아직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허름한 안전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부서진 건물들 주위에 임시 울타리를 설치하고 있었다.

큰 사건이 있었어도 멈추지 않는 도시의 모습이었지만, 남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미니 사신들이 공사하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뚜방뚜방거리고 있었다.

잔해를 치우는 것을 돕겠다고 손톱만 한 돌멩이를 들고 옮기거나,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따라 하곤 했다.

미니 사신들도 그 옆의 사람들처럼 안전조끼와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뭔가 어울리지 않아서 조금 웃음이 나오는 모습이었다.

“저런 조그마한 옷과 모자는 어디서 난 거지?”

남자는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이 도시의 사람들은 오브젝트 전반에 대해 극도의 적개심을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도시에는 ‘설원의 달’이라고 불리는 오브젝트 때문에 고향을 등지고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기계 거인들의 습격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미니 사신들이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황금색 불꽃을 핏물처럼 흘리는 미니 사신들의 용기와 희생정신, 그리고 무엇보다 그 귀여운 외모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창문에서 시선을 돌려 TV를 보면 며칠째 비슷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러시아 전역에서 벌어진 미니 사신들의 사투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것은 오브젝트에게 굉장히 적대적인 러시아에서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미국처럼 광고 같은 곳에 황금 사신이 나올 날이 머지않은 것 같네….’

광고를 시작한 TV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자리에 앉아 있는 황금 사신이 눈에 들어왔다.

황금 사신은 남자를 따라 한 것인지, 어디선가 구해온 미니 책을 들고 안경을 쓰고 있었다.

게다가 황금 사신은 인상을 잔뜩 쓰고, 입을 굳게 다물고 의자에 비스듬하게 앉은 상태였다.

“설마 나를 따라 한 건가?”

누군가 자신을 따라 한다면 보통은 기분이 좋지 않을 텐데, 남자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거 책이 거꾸로야.”

남자는 황금 사신의 통통한 볼을 꼬집으며 책을 정방향으로 돌려주었다.

‘?’

황금 사신은 머리카락으로 물음표를 만들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고민을 포기하고 남자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인간!’

그 모습이 같이 놀자고 뛰어드는 강아지처럼 보였다.

***

뜨거운 햇살이 아스팔트 위로 쏟아지는 오후, 세희 연구소 정면 공터 주차장.

나는 조금 심심한 기분이 들어 돌아다니다가 소란스러운 소리에 이끌려 연구소 밖으로 나가보니 예상치 못한 광경을 발견해 버렸다.

평소엔 연구소 방문객들의 차로 빼곡했던 주차장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활기찬 모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차장 한가운데를 차지한 화려한 가건물.

반짝이는 은색 패널로 장식된 이 임시 구조물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 분위기를 바꿔버렸다.

가건물 앞에는 대형 LED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 형형색색의 미니 사신들의 모습이 끊임없이 비치고 있었다.

가건물의 입구 위로는 크고 화려한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꼈다.

<제1회 세희 연구소 미니 사신 패션쇼>라는 글씨가 반짝이는 금색 글씨로 새겨져 있었고, 그 주위로 미니 사신의 실루엣이 장식되어 있었다.

현수막 아래로는 레드카펫이 깔려 있어, 마치 할리우드 시상식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또 세희가 이상한 짓을 시작했나 보네.….’

패션쇼라니?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지만, 연구소 입장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생각보다 돈이 될 것 같아.

문제는 예린이가 나에게 옷을 입히려 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정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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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알고 왔는지, 패션쇼에는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앗! 엄마다!’

‘엄마!’

그리고 그 사람들은 수많은 미니 사신과 함께하고 있었다.

헤드 드레스와 메이드 복을 차려입은 검은 사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채, 고양이 케이지 속에 앉은 황금 사신.

애착 사신을 품에 안고, 자신의 애착 사신과 같은 옷을 차려입은 사람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입장 중이었다.

행사장 입구를 향해가는 통로 양옆에는 각종 간식을 파는 부스들이 늘어서 있어서, 애착 인간들의 지갑을 공격하고 있었다.

‘인간! 저거 맛있어 보여!’

‘인간, 고마워!’

‘히히.’

인간은 미니 사신의 의지를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해맑은 표정으로 간식을 가리키면 사주지 않는 애착 인간은 없었다.

세희 연구소에서 파는 고가의 특별 간식부터 시작해서, 미니 사신들이 좋아하는 장난감들까지.

세희 연구소가 부유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통로였다.

그래도 다들 행복해 보이는 장소였다.

인간들의 웃음소리와 히히거리는 미니 사신들의 의지가 가득했으니까 말이다.

가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조금 어두운 조명과 서늘한 기온이 나를 반겨주었다.

‘오.’

그리고 그 중앙.

길쭉한 런웨이 위로 미니 사신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물론 미니 사신에게 자세나 시선 처리 등의 모델 워킹을 요구하기는 어려우니, 미니 사신들은 하얀 아귀 위에 서서 포즈를 잡고 서 있을 뿐이었다.

모델 워킹을 하는 것은 하얀 아귀였다.

평소보다 길게 만든 발을 우아하게 뻗으며 사뿐사뿐 걷는 하얀 아귀들.

다양한 옷을 입은 미니 사신들을 구경하는 것은 나름대로 재미있어서 계속 구경하고 있었더니, 예상외의 미니 사신이 런웨이에 등장했다.

‘!’

그것은 약간 뾰로통해 보이는 주황 사신이었다.

주황 사신은 붉은색 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다른 미니 사신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다른 미니 사신들은 귀여운 아기들이나, 애완동물 패션쇼 같은 느낌이었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주황 사신을 애착 사신으로 삼은 인간이 또 있었던 건가?

주황 사신은 거의 애착 인간을 만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또 생겼나 보네.

주황 사신이 하얀 아귀 위에 서서 런웨이를 빠져나가자,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겨버렸다.

주황 사신이랑 나를 융합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흠.

딱히 부러운 건 아니지만, 궁금하기는 하네.

***

정신 오염 방지 헬멧을 쓴 제임스가 어두운 옥신전에 발을 내디디자, 어깨 위에 있던 황금 사신이 폴짝폴짝 뛰어 제임스 머리 위로 올라섰다.

‘빛!’

그러더니 양손을 만세 하듯이 펼치고, 손전등처럼 빛을 냈다.

그것을 시작으로 직원들의 미니 사신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제임스가 들어선 곳은 여러 색의 옥으로 만들어진 길쭉한 통로였다.

벽면에는 형형색색의 옥으로 표현한 수많은 외신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그 모습들은 단순한 그림이 아닌,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붉은 옥으로 표현된 외신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안개 같은 괴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안개 속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옆에는 검은 옥과 흰 옥이 교차한 외신이 있었는데, 바라볼 때마다 검은색과 흰색의 위치가 바뀌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이건, 태평양 사태를 일으킨 외신인 건가….”

제임스의 시선이 멈춘 곳에는 푸른 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외신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바다 전체를 자기 몸으로 덮고 있는 듯했고, 그 위로 옥으로 만들어진 거미줄 같은 무늬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 거미줄 너머로는 수천 개의 눈동자가 조각되어 있었는데, 그 눈동자 하나하나가 제임스를 쫓는 듯했다.

제임스는 이 통로를 천천히 걸어 나가면서 감탄과 동시에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온갖 색의 옥을 엮어서 이렇게 섬뜩하면서도 매혹적인 벽화를 만들어 내다니.

통로를 가득 채운 각 벽화 앞을 지날 때마다 제임스는 자기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이상한 감정들을 느꼈다.

그것은 두려움이면서도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끌림이었다.

마치 정신 오염 오브젝트처럼, 그의 정신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정신 오염 수치는 없습니다.”

제임스가 품은 것과 같은 의문을 품은 직원 한 명이 정신 오염 수치를 측정했지만, 신기하게도 정신 오염은 없었다.

‘….’

통로를 빠져나오자, 굉장히 넓은 공간이 나왔다.

외부에서 본 신전 크기보다 넓어 보이는 이상한 공간이었다.

“저게 ‘외신’들의 왕이거나 주신이겠어.”

통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벽에는 거대한 석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가장 중요해 보이는 자리에 위치한 옥으로 만든 조각상이었다.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회색 거인.

하지만 이제까지 지나치며 봐왔던 외신들과 달리, 그 생김새는 평범한 인간처럼 보였다.

‘다른 외신과 달리 너무 평범해 보이니까, 되려 수상해 보이는군.’

하지만 천천히 다가가서 살펴보자, 그 평범한 인상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마치 모자이크를 만들듯이 온갖 색의 옥을 촘촘히 박아 넣어, 색이 뒤섞인 회색이 되어버린 조각상이었다.

그 표면에는 온갖 종류의 생물과 무생물, 도형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그리고 그 어지러운 얽힘 속에 희미한 글씨가 보였다.

그 글씨는 미래에 대한 예언 같기도 했고, 종말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했다.

제임스가 흐릿하게 쓰인 글씨를 읽으려고 하면 할수록 어지러워졌다.

제임스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자, 글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착시였던 건가…?”

벽화와 마찬가지로 정신 오염 수치는 측정되지 않았다.

제임스가 불길한 착시를 일으키는 석상의 사진을 찍는 순간, 제임스의 머리 위에 있던 황금 사신이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뭔가 있어!’

그렇게 제임스는 황금 사신의 뒤를 따라서 가자, 석상 뒤편에 숨겨진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굉장히 좁은 방.

중앙에 둥실둥실 떠올라 있는 검은 구슬.

바닥에는 찰랑찰랑하게 차오른 검은 액체.

제임스는 검은 액체를 보자마자 흠칫 놀랐지만, 이내 긴장을 풀고 관찰을 시작했다.

‘이건… 진화액은 아닌 것 같군.”

검은 액체는 굉장히 수상해 보였지만, 진화액 특유의 석유 냄새가 나지 않았다.

황금 사신은 검은 액체 앞에 쭈그려 앉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임스는 황금 사신을 지나친 뒤, 구슬 근처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구슬을 바라보는 순간, 헬멧이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이건?’

시야를 가득 채우는 끝없는 우주.

형형색색의 진리가 가득한 우주였다.

인류를 지킬 수 있는 지식이 가득한 색채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수많은 개구리의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 황금 사신이 제임스에게 달려들어 두 눈을 때찌때찌로 가려버렸다.

‘보면 안 돼!’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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