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96
예술교단의 사제인 노엘 웬츠는 몇 달 전부터 루시 알른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지겹도록 들어왔다.
미와 예술의 여신을 모시는 사도 프레테부터가 시도 때도 없이 루시 알른이라는 이름을 찬양하고 다니는데다가, 수정구를 통해 루시 알른이라는 사람을 보았다는 사제니 주교니 하는 인간들이 모두 그 분을 한 번만 뵙고 싶다며 난리를 치는 지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 그 때 없었어? 진짜로!?”
“와. 너 진짜 지금 인생 낭비하고 있는 거야.”
“난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 괜히 사도께서 노래까지 만들어가며 찬양을 하신 게 아냐!”
알른 가문의 루시가 사도께 연락을 드린 날 다른 임무를 수행하느라 자리를 비웠던 그녀는 동료들의 호들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이 예뻐 봐야 얼마나 예쁘다고 이렇게 난리람. 사도님보다 예술적으로 생긴 사람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잖아.
루시 알른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뿐 그녀를 직접 본 적이 없는 노웰은 교단에서 빠져나가서 알른 영지로 가고 싶다는 동료들을 질린 눈으로 바라봤다.
첫 사랑에 빠진 꼬맹이들도 이 정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
동료들의 상사병 때문에 온갖 고생을 하던 그녀는 어느새 한 가지 소망을 품게 됐다.
대체 그 인간이 얼마나 예쁘길래 몇 달 동안 이 지랄을 떠는 거야?!
언제 한 번 내 눈으로 보기나 했으면 좋겠다!
이 미친놈들이 호들갑을 떠는 건지 아니면 진짜 이럴 만큼 예쁜 사람인지 확인이나 해보게!
그녀의 소망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이루어졌다. 예술 교단의 많은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어대던 루시 알른 본인이 교단의 본진에 찾아온 것이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교단 바깥으로 뛰쳐나간 노엘은 순간이동진이 설치된 건물에서 빠져 나온 루시 알른의 모습을 보자마자 자신의 동료들이 왜 그리 호들갑을 떨어댔는지 이해했다.
저런 천사를 보았다면 난리를 칠 수밖에 없지.
오히려 난리를 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야.
예술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예술품 같은 알른 영애를 보고 어떻게 감복하지 않을 수 있겠어!
누군가는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고. 누군가는 이 순간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누군가는 울음을 터트리고. 누군가는 영감을 붙잡은 듯 쉴 새 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가운데.
호위기사들의 뒤에서 교단의 사람들을 둘러보던 루시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기사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저~기 언니 오빠들. 지금 일 할 시간 아냐? 왜 다들 여기에 모여 있어? 인생을 놔버린 패배자들인 거야?”
천상의 선율 같은 목소리와 경멸과 비꼼이 가득한 어투. 루시의 말을 들은 예술 교단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를 충격을 받았다 여긴 걸까? 루시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냐? 아니면 왜 다들 여기서 이러고 있어? 설마 어린 여자애를 좋아하는 페도 변태 새끼들이라서 하던 일을 다 내팽개치고 온 건가? 그러면 좀 역겨울 것 같은데.”
호위를 제치며 앞으로 나선 루시는 자기 바로 앞에서 무릎 꿇은 채 기도를 올리던 사제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여 시선을 맞췄다.
“오빠는 왜 역겹게 질질 짜고 있는 거야?”
“그. 그게. 그러니까.”
“더듬지 않고는 말 못해? 오빠야는 나이만 처먹은 애새끼인 걸까?”
“…여. 영애께서 너무도 아름다우셔서.”
한 번 숨을 몰아 쉰 사제가 간신히 자신의 말을 전한 순간 루시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다.
잔뜩 찌푸려진 미간과 내려앉은 눈썹. 역겹다는 감정이 묻어나는 눈빛.
“흐응. 오빠는 자기 허리에 닿을까말까한 여자애한테 욕정하는 변태새끼인거구나?”
“아닙니다. 저는.”
“아니라고? 정말? 진짜 이상한 생각 아무것도 안 했어? 오빠가 모시는 까마귀한테 대고 떳떳하게 이야기 할 수 있어? 응?”
“…”
“푸하하핳! 아무 말도 못 하는 것 봐. 개 역겨운 성범죄자 새끼. 뒤져버려. 세상을 위해 혀 깨물고 자살해버려.”
할 말을 모두 내뱉고 나서 속 시원하다는 듯 고개를 든 루시는 자신을 향하는 뜨거운 시선을 느낀 후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여태까지 온갖 사람들의 적의 속에서 살아왔던 루시는 지금 자신을 향하는 시선이 적의가 아님을 알았다.
교단의 사람들의 눈에 담긴 것은 평소 루시를 향하던 여러 시선과 전혀 달랐으니까. 이건 아카데미의 다른 귀족들이 나한테 보내던 시선과는 달라.
그보다는 얼빠여우나 변태사도가 나를 향해서 보내는 것과 비슷한 종류…
“알른 영애!”
예상과 다른 상황에 루시가 당혹스러워 하던 중 군중에 있던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내질렀다.
“그 녀석에게만 포상을 주지 말고 부디 저한테도 부탁드립니다!”
“지랄하지마! 다음은 내 차례야! 저 분에게 매도당하면 영감이 떠오를 것 같다고!”
“너희 다 닥쳐! 이런 건 당연히 주교의 자리에 오른 내가 먼저다!”
군중 사이로 퍼져나가는 광기에 놀란 루시는 히끅거리는 소리를 내며 칼의 뒤편에 숨었다.
그를 본 교단의 사람들은 칼을 향해 증오와 살의를 보냈지만 칼은 그 시선을 두려워하긴커녕 보란 듯 어깨를 폈다.
“꺼져라! 쓰레기들! 아가씨께서 두려워하지 않으냐!”
“닥치고 비키기나 해!”
“알른영애! 제발 저한테도 매도 한 번만 해주세요!”
“아무 말 안 해도 좋으니 그냥 경멸 어린 시선으로 내려다보기만 해줘요!”
교단의 본진을 가득 채 운 광기는 예술 교단의 사도와 교주가 모습을 드러내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진정됐다.
*
‘사람이 무서워…’
예술교단의 변태들이 만들어낸 광기의 현장에서 간신히 벗어난 나는 소파에 앉아 다리를 끌어 모은 채 마음을 달랬다.
<그러게 왜 미치광이들에게 먹이를 던져준 것이냐.>
‘설마 그렇게 미친놈들이 한 가득일 줄은 몰랐죠!’
나한테 잘못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을게! 장난기가 생겨나서 먼저 시비를 건 건 나였으니까!
근데 있잖아! 예술 교단에 속한 놈들이 전부 다 변태 사도마냥 미친놈이라는 걸 어떻게 예상해!
내가 기대한 건 전혀 다른 거였다고!
나한테 화가 잔뜩 나서 얼굴이 벌개졌지만 입장상 차마 화는 내지 못하는 그림을 기대했는데!
그런 놈들을 가지고 놀면서 다른 변태들에게 당했던 걸 되갚아 주려고 그랬는데!
왜 제발 좀 밟아달라는 미친놈들을 양산하는 결과가 된 거야?!
예술 교단의 사람들이 비교적 정상적일거라 생각한 게 그렇게나 큰 잘못인가!?
<다음부터는 조심하거라. 이번에야 네 호위들이 있어서 문제없었지만 나중엔 어찌 될지 모르잖으냐.>
‘설마 제가 미쳤다고 지켜 줄 사람도 없는데 이러겠어요?’
당연히 도망칠 구석이 있으니까 일을 저지른 거라고요. 제가 아무리 멍청하다지만 그 정도로 생각이 없진 않다고요.
<안 한다고는 말하지 않는 게냐?>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순간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음. 그게.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상대의 인격을 짓밟아야만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고?>
‘뭐요! 왜요!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현실은 창작물보다 드라마틱한 법이라고요! 저희의 미천한 상상력으로 개연성을 따져봐야 의미 없는 순간이 찾아온단 말이에요!
당장 예술 교단이 저런 변태들도 가득 차있는 것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상황 아니에요!?
매도를 바라는 변태들이 가득할 수 있다면 반대로 매도를 해야만 하는 상황 있을 수도 있는 거죠!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할아버지! 자꾸 그러면 저 진짜 화내요?!’
<아니. 이해해 주는 것도 잘못이냐? 이 할애비는 너무 억울하구나.>
‘전혀 진지하게 이야길 안 듣고 있잖아요오오!’
할아버지에게 왁왁대고 있으려니 응접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짓으로 어찌할까 묻는 에린에게 고개를 주억거리자 에린이 나 대신 들어오라는 말을 전했다.
그렇게 응접실 안으로 들어온 변태사도는 문이 닫히기 무섭게 땅에 머리를 박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알른 영애! 저희 교단의 사람들이 큰 결례를 끼쳤습니다!”
분풀이를 위해서라도 툴툴 댈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변태 사도의 사죄를 보고 당황해서 입을 헤 벌렸다.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희 측 사람들이 영애의 아름다움에 홀려버렸을 뿐!”
“그것이 결례의 변명이 된다 생각하십니까?”
당황해서 눈을 끔뻑이고 있으려니 내 옆을 지키던 칼이 날 선 목소리를 냈다.
얘 오늘 왜 이래? 평소엔 내가 뭐라 하지 않으면 얌전히 내 뒤를 지키던 놈이.
“물론 저희 측의 잘못이 없다 이야기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에 대해서는 응당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다만…”
“방금 전에 저희 아가씨께서 얼마나 무서워하셨는지 아십니까! 이건 분명한!”
칼의 분노 어린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얘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됐다.
지금의 난 이전과 달리 표정이 자유자재로 바뀌니까.
진짜로 무서워하는 날 보고 열이 받은 거구나.
“허접견. 내가 언제 짖어도 된다 그랬지?”
나를 생각해주는 게 기특하긴 하지만 이건 내 바람과는 다른 행동이었다.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지랄하는 건 충의가 아니라 선을 넘는 거지.
“…어. 그것이.”
“닥쳐.”
“…”
“우리 허접견은 지능이 낮아서 자기 행동이 민폐라는 것도 모르는 걸까?”
“…죄송합니다.”
강아지를 다그쳐 입을 다물게 만든 나는 변태 사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고개를 든 채 칼 쪽을 멍하니 보다 다급히 나와 시선을 맞췄다.
“변태 사도. 헛소리로 내 귀중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일어나. 여기서 숨쉬는 것자체가 역겨워서 일을 빨리 끝내고 싶거든?”
“알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난 변태 사도는 내 반대편에 앉는 게 아니라 내 옆에 와서 무릎을 꿇었다.
뭘 하는 거냐는 질문이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지만 말해봐야 나만 피곤해질 것 같아서 그냥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굳이 역겨운 곳에 온 건 너희들이 하려는 짓이 너무 한심하고 멍청해서야.”
“…그 소탕 계획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변태사도의 물음을 들은 난 대답하는 대신 알새틴에게 시선을 보냈다. 내 의도를 빠르게 눈치 챈 그는 나와 변태사도 사이에 끼어들어서 현 상황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해주었다.
처음에는 의문으로 가득하던 변태사도였지만 알새틴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그의 얼굴에 진지함이 자리했다.
“함정일 가능성이 높단 이야기군요.”
“예. 보면 아시겠지만 이상할 정도로 정보가 정확합니다. 미리 입을 맞춰뒀을 거라 보는 게 옳겠죠.”
알새틴을 향해 이런저런 의문을 늘어놓던 변태 사도는 머잖아 이 계획을 실행해선 안 된단 사실을 인정했다. 최악의 경우 잃을 것이 너무 많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영애. 덕분에 불필요한 희생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너희들이 너~무 한심하고 병신같아서 도저히 못 봐줄 것 같았을 뿐이니까.”
“그래도 감사하단 사실이 바뀌진 않습니다. 추후 일이 끝나면 부디 보답을 하게 해주십시오.”
혹여 교단의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줘야 할지도 모른단 변태사도의 이야기에 응접실에 남은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앞으로의 일을 상상했다.
이걸로 악신의 추종자들이 만들어낸 함정도 막아냈고, 변태 사도에게 에린을 가르쳐 달라 할 명분도 얻어냈어.
여기서 할 일만 다 끝마치고 바로 알른 영지로 돌아가면 돼.
그러면 아카데미가 개학할 때까지 좀 쉬자.
오늘 정신력 소모가 너무 컸으니까.
허나 내 예상과 달리 난 바로 예술 교단을 떠날 수 없었다.
“알른 영애. 좀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술 교단의 사람들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변태였으며, 병신들이었던 것이다.
함정이라는 걸 알려줘도 굳이 거기로 기어들어가겠노라 외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