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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99

늦은 밤, 샌프란시스코 외곽의 허름한 모텔.

형광등이 불규칙하게 깜빡이는 복도 끝에서 기자는 얼룩진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은 물기를 머금고 엉켜있었고, 옷은 찢어지고 얼룩져 있었다.

“나쁜 인간? 센티널이?”

기자는 어깨와 등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덩어리들이 전해주는 메시지에 고개를 갸웃했다.

언제나 친절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수호신이라고도 불리는 센티널이 나쁜 인간이라니.

물론 기자도 뭔가 상황이 수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센티널이 굳이 이런 늦은 시간에 이런 외진 곳에 있는 모텔에 올 이유가 없었으니까.

[나쁜 인간 제거!]

[선제공격!]

그래도 이 수상쩍지만, 우호적인 검은 덩어리들처럼 다짜고짜 공격하는 것이 옳아 보이진 않았다.

검은 덩어리들은 센티널에게서 무엇을 느낀 건지,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다.

그 격렬한 감정이 기자의 몸을 타고 전해져 오고 있었다.

“잠깐, 잠깐! 멈춰!”

기자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는 듯한 검은 덩어리들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기자의 손바닥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검은 덩어리들을 부드럽게 내리누르자, 덩어리들은 잠시 멈춰 섰다.

[….]

그러자 검은 덩어리들은 입을 다물고 기자를 빤히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들의 침묵 속에서도 불만과 경고가 느껴졌다.

마치 ‘후회할 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그 눈빛들에 기자는 살짝 움찔했다.

기자는 그런 검은 덩어리들을 향해 자신이 생각한 것들과 계획을 말했다.

“도망가자. 그리고 다시 한번 ‘알렉산더 그룹’ 본사로 들어가야겠어.”

[알렉산더 그룹?]

기자는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를 빠르게 정리해 말해주었다.

수상한 마지막 제보자, 그리고 알렉산더 그룹으로의 잠입을 계획한 흔적이 남은 메모들.

[?]

검은 덩어리들은 고개를 갸웃할 뿐 잘 이해하지 못했다.

[가자.]

[응.]

[거기에 엄마가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기자의 간절한 마음이 닿았는지, 검은 덩어리들은 의문스러워하면서도 기자의 계획에 동의를 해주었다.

기자는 도망갈 루트를 찾기 위해 조심스럽게 창문 너머를 내다보았다.

그녀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센티널은 여전히 주차장에 서 있었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모텔 방을 돌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정말 나를 잡으러 온 거야….’

기자는 거울 앞에 서서 찢어지고 얼룩진 옷을 최대한 정돈하고, 머리를 빗어 넘겼다.

그리고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입을 가렸다.

‘이 정도 변장이면 멀리서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는 괜찮을 거야.’

깊게 숨을 내쉬고 모텔 방을 나서려는 순간, 검은 덩어리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변장?]

[우리 변장 잘해.]

“뭐?”

그 순간, 검은 덩어리들이 기자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기자가 눈을 감았다가 뜨자, 거울 앞에 전혀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검은 피부의 건장한 체격의 남성.

너덜너덜한 옷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끔한 검은 티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옷이랑 피부색이 똑같은 점만 빼면 기자와 닮은 구석이 전혀 없는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체격, 성별, 머리카락 색.

어느 하나 일치하는 것이 없었으니까, 그 누가 와도 눈치채지 못할 게 뻔했다.

[변장 잘하지?]

“그…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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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약간 어색한 기분에 근육으로 가득한 팔뚝을 주물러보며, 천천히 모텔 방을 나섰다.

삐걱삐걱.

비명을 지르는 낡은 계단을 지나 주차장에 내려서는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주차장 중앙에 있었어야 할 프리즘 센티널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늘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친근한 미소, 따뜻해 보이는 눈빛.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센티널이 말을 걸어왔다.

기자의 온몸이 경직되었고, 심장은 가슴을 뚫고 나올 것처럼 격렬하게 뛰었다.

상대방은 최강의 초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센티널.

만약 들킨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제압당할 테니 말이다.

“….”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목소리를 내는 순간 모든 것이 탄로 날 테니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센티널을 지나쳤다.

등 뒤로 느껴지는 그의 시선이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졌다.

주차장을 벗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아, 잠시만요.”

센티널의 목소리에 기자의 발걸음이 얼어붙었다.

검은 덩어리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나쁜 인간!]

[선제공격?]

기자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센티널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에서 무언가 의심스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혹시 붉은 머리카락을 한 이 정도 신장의 여자를 보신적 없으십니까?”

기자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녀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등 뒤로 센티널의 시선이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세 걸음, 네 걸음.

어느새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섯 걸음, 여섯 걸음.

‘제발, 제발….’

마침내 모텔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순간, 기자는 겨우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아.”

그리고 다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중심부, 알렉산더 그룹의 본사가 있는 쪽으로.

***

어느새 태양이 떠오른 샌프란시스코 거리.

기자는 그 익숙한 거리에 앉아서, 저 멀리 보이는 ‘알렉산더 그룹’ 본사 건물을 바라보았다.

길거리를 향해 틀어진 TV 화면에는 그녀의 얼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걸로 유명해질 줄이야….’

기자는 알렉산더 그룹 보안팀을 수십 명이나 죽인 흉악범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뉴스 속보는 기자의 확신을 더 해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를 향해 다짜고짜 총을 쏜 군인들이 알렉산더 그룹 소속이었다는 뜻이었으니까.

[어지러워….]

[아무것도 안 보여.]

하지만 꽤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외곽 모텔에서도 그랬지만, 중심부로 다가갈수록 검은 덩어리들이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있었으니까.

검은 덩어리의 무력과 변신 능력, 그리고 특유의 검은 색으로 그룹 본사 건물에 잠입할 계획을 짜던 기자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기자는 계속 어지럽다고 중얼거리는 검은 덩어리들을 타박할 수 없었다.

얼마나 어지럽길래 그러냐고 물어봤다가, 검은 덩어리들의 감각을 공유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 느낀 감각은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보이는 모든 것이 뒤섞여서 제대로 구분할 수도 없었다.

시각을 포함한 오감이 전부 뒤죽박죽이 될 정도였으니, [어지러워….] 정도는 참아줘야겠지.

그렇게 밤이 되길 기다리고 있었더니, 미니 사신들이 기자가 앉은 테이블로 꾸물꾸물 다가오기 시작했다.

‘인간…?’

어지러운 것처럼 해롱거리며 고개를 갸웃하는 황금 사신과 완전히 녹아버린 검은 사신이었다.

‘어지러워.’

‘인간…? 뭔가 달라?’

뭔가 말을 거는 것처럼 기자와 눈을 맞추던 미니 사신들은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다가, 뒤로 콩하고 넘어져 버렸다.

넘어져서 뒤통수를 문지르던 황금 사신은 이내 의욕을 상실하고, 대자로 뻗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기자는 무심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작게 웃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서, 천천히 지평선 밑으로 가라앉아 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 석양 아래서, 초인협회의 초인들이 ‘알렉산더 그룹’ 본사 건물을 향해 끊임없이 모여들고 있었다.

***

미니 사신 정원 깊숙한 곳, 마시멜로 평원.

나는 황금 사신들과 하얀 아귀 배구를 하고 있었다.

하얀 아귀를 공으로 하는 즐거운 배구였다.

뀨힝힝.

내가 날려 보낸 강렬한 스파이크가 코트 구석을 때리고 튕겨 나오자, 하얀 아귀의 억울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엄마 강해!’

황금 사신과 융합하자, 내 저열한 운동 신경이 굉장히 좋아진 상태였다.

무려 나만 한 크기로 융합한 융합 황금 사신들과의 배구 경기가 성립할 수준!

내가 점수를 따자, 1m급 황금 사신들이 나를 향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엄마 조아!’

‘엄마 상냥해!’

그렇게 몰려든 황금 사신들에게 깔려 있다 보니, 융합 황금 사신들의 지속시간이 끝나서 하나둘 분리되기 시작했다.

‘앗!’

미니 사신 사이즈로 돌아온 황금 사신들은 내 몸에 달라붙어 계속해서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던 중,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 미니 사신들이랑 너무 자주 놀아주는 것 같은데….’

황금 사신들과 뛰어놀기.

노란 사신과 연극하기.

푸른 사신과 거대 골렘 만들기.

검은 사신과 격투기 시합하기 등등.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융합의 헤일로를 뒤집어쓰고 황금 사신을 분리해 버렸다.

‘앙대!’

튕겨 나온 황금 사신은 아쉬운 것처럼 손을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황금 사신과 융합이 풀리자마자, 내 몸에 잔뜩 달라붙은 황금 사신들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이 너무 많아서,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황금 사신들은 내 눈빛을 보고 엄마의 융합이 풀렸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나를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지금 이 상냥한 엄마 주간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몸 전체를 공간 장악으로 붙잡은 뒤, 천천히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앙대!!’

황금 사신들은 내 몸을 꽉 붙들었다.

마치 놓치면 상냥한 엄마가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하지만 내가 마치 믹서기의 칼날처럼 고속 회전하기 시작하자, 모두 버티지 못하고 팝콘처럼 사방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앙대!!!’

나라를 잃어버린 표정으로 날아가는 황금 사신들과 그 모습을 보며 뀨히히 웃는 아귀들.

미니 사신 정원의 평온한 일상이었다.

‘….’

나는 괘씸한 하얀 아귀를 뜯어먹으며, 격리실로 순간 이동했다.

그리고 굉장히 오랜만에 TV 리모컨을 손에 들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너무 오랜만에 잡아서 리모컨 위에 먼지가 쌓인 것처럼 느껴졌다.

딸깍.

오랜 침묵을 깨고 TV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화면이 서서히 밝아지며 선명해지는 순간,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

화면 가득 펼쳐진 광경은 내가 할 수 있는 예상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앵커의 떨리는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긴급 속보입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정체불명의 거대 오브젝트가 출현해 도시를 초토화하고 있습니다.]

카메라가 흔들리며 도시 상공을 비추었다.

그곳에는 꽤 익숙한 형상의 오브젝트가 있었다.

길쭉한 양팔, 뿌리내린 다리, 그리고 9개의 눈동자를 가진 두 눈.

크기가 조금 작은 점을 제외하면, 불변구 속에 잠들어 있어야 하는 옛 신의 모습이었다.

‘설마?’

검은 오브젝트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날카로운 포효를 터트렸다.

무형의 압력이 퍼져나가며 TV 화면마저 일그러졌다.

미국의 방송을 그대로 송출하는 건지, 배경음처럼 작게 영어로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화면이 정적 속에 빠졌다가 다시 오브젝트의 모습을 비추었다.

오브젝트는 이제 이제 금문교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불변구에 문제가 생긴 건가?’

최근 불변구가 불안한 기분이 들어서 그런지, 그런 의심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하지만 그 가설을 곱씹어 볼 시간도 없었다.

오브젝트의 날카로운 발톱이 금문교의 철골을 찢어발기는 순간, TV 화면이 검게 변하며 신호가 끊겨버렸다.

나는 눈을 감고 감각을 뻗어, 급히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있는 미니 사신을 찾았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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