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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01

붉은 머리의 기자는 무한히 반복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알렉산더 그룹을 조사하다가, 끝내 그 내부까지 잠입하는 꿈이었다.

매번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어두운 건물 속, 밝은 격리실.

처참한 몰골의 사람들.

그 끝에 있는 거대한 강철 문.

그리고 그 문을 열 때마다,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는 불길한 구슬.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속삭임이 그녀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인간 일어나!]

[큰일이야!]

의식이 돌아오자, 기자는 자신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누워있음을 깨달았다.

주변은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그녀의 피부를 감싸고 있는 검은 덩어리들의 존재가 느껴졌다.

그들의 불안과 초조함이 마치 전류처럼 그녀의 몸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기자의 등 뒤, 격류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거친 기척이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확인하려고 했지만, 몸을 덮은 검은 덩어리들이 고개를 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보면 안 돼!]

[보면 어지러워.]

그들의 경고에 기자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순간, 의식을 잃기 직전의 기억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래…. 지렁이가 갑자기 튀어나오고 정신을 잃어버렸어….”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지렁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광경, 그리고 보는 것만으로 정신을 잃었던 순간.

[봉인 실패했어….]

검은 덩어리들의 속삭임이 그녀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이 뒤섞여 있었다.

[엄마….]

[엄마 보고 싶어.]

[여기도 엄마가 없어.]

[어지러워.]

그러고 보니, 검은 덩어리들의 속삭임이 몇 배로 증가해 있었다.

시선을 돌려보니, 지렁이가 솟아 나오는 곳에서 새로운 검은 덩어리들이 꾸물거리며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기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검은 덩어리들이 일제히 기자를 바라보며 속삭이기 시작했다.

[도와줘.]

[인간들, 위험해.]

[어지러워.]

[인간, 도와줘.]

[어지러워, 싸울 수 없어.]

[인간, 감각을 빌려줘.]

검은 덩어리들의 간절한 호소에,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이 싸우자.”

그녀가 보기에도 저 지렁이들은 굉장히 해로워 보였으니까.

기자가 동의하자, 주변의 검은 덩어리들이 물밀듯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일주일간의 공백이었던 기억들이 천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검은 덩어리들이 그녀에게 달려들 때마다 조금씩.

알렉산더 그룹의 비밀 실험실, 그곳에서 목격한 끔찍한 광경들, 그리고 강철 문 너머에서 발견한 검은 액체와 불길한 구슬.

일주일간의 기억을 모두 되찾는 순간, 하나의 거대한 검은 덩어리로 변했고 기자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인간이 위험해.]

[다시 봉인해야 해.]

[불가능해.]

[엄마가 필요해.]

[엄마 어디?]

[지상으로 가자.]

[위로.]

검은 덩어리의 속삭임과 함께, 그들은 빠른 속도로 지하 시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계단을 휩쓸고, 벽을 타고 올라가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검은 파도 같았다.

***

좁은 건물 밖으로 나오자, 검은 덩어리들이 익숙한 모습을 취하기 시작했다.

길쭉한 양팔과 뿌리내린 다리를 가진 형상.

기자는 이제 빌딩만큼이나 거대해진 검은 덩어리 일부가 되어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잔뜩 뭉쳐서 그런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겨우 몇 마리밖에 없을 때도 특급 오브젝트였는데, 지금은 얼마나 강해진 걸까.

그녀의 시선은 불길한 하늘을 향했다.

강해져서 그런지, 하늘을 올려다봐도 덩어리들이 제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본 것을 조금 후회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끔찍했으니까.

하늘을 뒤덮은 형형색색의 지렁이들.

꿈틀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기자의 속이 뒤틀렸다.

‘그래, 이런 광경을 평범한 인간이 보면 정신을 잃을만하네.’

역겨움. 불길함. 혐오스러움. 불쾌함. 끔찍함.

저 지렁이들에겐 온갖 종류의 부정적인 단어를 붙여도 위화감이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이 끔찍한 광경을 전혀 보지 못하는 듯했다.

대신 그들의 시선은 모두 거대한 검은 덩어리로 변한 기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오브젝트?”

“도망쳐!”

“비상경보는 왜 안 울리는 거야?”

“뭔가의 촬영인가?”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쳤고, 또 다른 이들은 호기심에 찬 눈으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여기는 위험해.]

[빨리 도망가!]

[인간 엄청 많아.]

검은 덩어리는 사람들을 향해 속삭였지만, 그 누구도 듣지 못했다.

검은 덩어리들의 속삭임이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지렁이 한 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그것이 땅에 닿는 순간, 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지렁이는 마치 식물의 뿌리처럼 땅속으로 파고들었고,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몸에 작은 지렁이들을 심기 시작했다.

[인간!]

검은 덩어리들의 외침과 함께 기자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그들은 지렁이가 떨어진 자리로 달려갔다.

[인류의 적!]

[죽어!]

[공격!]

날카로운 검은 손톱이 지렁이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땅속 깊이 박힌 뿌리까지 모조리 파헤쳐 없앴다.

지렁이를 전부 부수고 주변을 돌아보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빨리 도망가. 여기는 위험해.’

그리고 도시 곳곳으로 떨어져 내리는 지렁이를 쫓아가며 부쉈다.

높은 고층 빌딩 몇 개, 금문교 등등.

그 과정에서 건물이 잔뜩 파괴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지렁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치 우산 하나 들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모두 막아내려는 짓에 가까웠으니까.

[인간….]

검은 덩어리들의 목소리에 절망감이 묻어났다.

지렁이에 감염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오염된 땅도 확산하고 있었다.

‘혼자서는 역부족이야….’

기자의 마음속에 절망감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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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갑자기 하얀 불꽃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안개가 걷히는 것처럼 세상이 선명해졌다.

숨통이 트이는 듯한 상쾌함이 온몸을 감쌌다.

‘엄마다!’

‘엄마!’

‘엄마 언제 왔어?’

들려오는 재잘거리는 귀여운 목소리.

그리고 도시 저편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존재감과 뚜렷한 연결.

[엄마??]

검은 덩어리들의 속삭임에 기쁨과 의아함이 뒤섞였다.

저 멀리, 도시의 끝자락에 작은 회색 사신의 모습이 보였다.

저렇게나 작은데도, 기자의 감각에는 도시가 회색 사신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

나는 샌프란시스코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더 이상 검은색이 아니었다.

형형색색의 지렁이들이 마치 살아있는 무지개처럼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 광경은 끔찍하기도 했지만,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는 광경이었다.

‘이제 이 사태를 해결하기만 하면 되겠네.’

새로 검은 사신들을 잔뜩 입양하게 된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눈’으로 하늘의 지렁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나 파괴 조건은 보이지 않았다.

<■ ■ ■>

나는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외신인 만큼 처리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우선 전장을 확보해야겠어.’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듭된 도시 파괴로 두려워하던 사람들마저, 내가 옛 신 형상의 괴물을 검은 사신으로 바꾸자마자 도망치는 것을 멈춰버렸다.

심지어 거대 검은 사신이나 나를 보며 반가워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귀찮아….’

평판이 좋아져서 그런지, 사람들이 도망가질 않았다.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막고, 지렁이 감염도 차단하기 위해서 도시를 시급히 비울 필요가 있었다.

특히 외신인 만큼 지렁이 감염자가 늘어나면 몇 배로 성가신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문제의 핵심이 보였다.

사람들이 지렁이를 피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언령의 헤일로를 이용해서 지렁이들의 위치를 표시해 주면 되겠어.’

그러나 곧바로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혔다.

내 머리 위에는 이미 하얀 불꽃을 흩날리는 능력 무효화 헤일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흠.’

헤일로를 두 개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기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푸른 아이돌 사신은 언령의 헤일로를 쓸 수 있었지.’

그러나 곧 그 아이디어에도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푸른 아이돌 사신의 격으로는 이 넓은 범위의 ‘외신의 부산물’에게 영향을 주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내 시야에 싱글벙글 웃고 있는 거대한 검은 사신이 들어왔다.

‘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미니 사신으로 힘든 일이라면 미니 하지 않은 사신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

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 허그 사신과 푸른 사신들을 소환했다.

푸른 사신들은 내가 전원을 불러 모으자,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공중에 둥실둥실 나타났다.

‘허그!’

그리고 허그 사신은 소환되자마자 내 발목을 꼭 껴안았다.

나는 허그 사신에게 ‘융합의 헤일로’를 씌워주고 명령을 내렸다.

‘푸른 사신을 합쳐서, 저 검은 사신만큼 거대한 푸른 사신으로 만들어줘.’

‘허그!!!’

허그 사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푸른 사신 10기를 하나로 합쳐버렸다.

그리고 내 예상 이상으로 막대한 장작이 순식간에 타들어 가며 거대 푸른 사신이 완성되었다.

‘우으으.’

거대 푸른 사신은 자신의 크기에 당황한 듯했다.

어색하게 몸을 움츠리며 건물들 사이로 숨으려 했지만, 거대 검은 사신보다 조금 작은 몸집은 쉽게 가려지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으며, 거대 푸른 사신에게 명령했다.

‘지렁이들의 위치를 인간들이 보고 피할 수 있도록 해줘.’

그러자 푸른 사신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들어 하늘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지렁이의 끔찍한 모습을 투영해 주세요!>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렁이가 있는 곳마다 반투명한 지렁이들의 거울상이 나타났다.

지면은 물론, 하늘에 있는 지렁이의 끔찍한 모습이 드러나 버렸다.

봐도 정신을 잃어버리거나 어지럽지는 않지만,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지렁이의 환영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지렁이들 환영 때문에 패닉에 빠진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긴 몸을 파고들려고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외신급 마법을 부리던 기적 같은 거대 푸른 사신은 오래가지 않았다.

거대 푸른 사신은 융합에 필요한 힘을 전부 소모했는지, 다시 10기로 분해되어 버렸다.

‘고작 마법 한 번이었지만, 대단한 효과였어.’

나는 감탄했다.

외신의 부산물에게 반영구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칠 정도로 미니 사신이 강해지다니.

‘자동 사냥의 꿈이 한층 더 가까워진 것 같아.’

나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미소 지었다.

나는 자동 사냥의 꿈을 이루어 줄 허그 사신을 어깨 위에 올려두고, 다음 계획을 생각했다.

‘다음 자동 사냥은, 지렁이 외신의 격을 깎아낼 미니 사신을 만들어야 해.’

그 순간, 내 머릿속에 가장 강력한 미니 사신의 모습이 두 개 떠올랐다.

그 둘의 조합이라면?

히히.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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